과거 세계 병자의 날 담화문

제12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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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7-01-29 ㅣ No.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12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프랑스 루르드, 2004년 2월 11일)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의장이신
존경하는 로사노 바라간 하비에르 형제 추기경님께

 

1. 해마다 각 대륙에서 열리는 세계 병자의 날 행사가 올해에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올해 세계 병자의 날 행사는 1858년 2월 11일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이후 수많은 순례자들의 목적지가 되어 왔던 프랑스 루르드에서 열릴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산간 마을에서, 특별히 고통 받는 사람들과 병자들에게 당신의 자애로운 사랑을 드러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성모님께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으로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루르드가 세계 병자의 날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2004년이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가 선포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1854년 12월 8일에, 저의 선임자이신 복자 교황 비오 9세께서는 칙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통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는 교리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교리”(「신앙 규정 편람」, 280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루르드에서 성모님께서는 그곳 방언으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Que soy era Immaculada Concepciou)고 말씀하셨습니다.

 

2. 이 말씀으로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건강과 생명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고자 하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원죄로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성모님을 죄의 모든 더러움에서 지켜 주시어,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셨습니다(로마 5,12-21 참조).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는 우리를 창조와 구원 신비의 중심으로 데려다 줍니다(에페 1,4; 3,9-11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고 싶어하셨습니다(요한 10,10 참조). 그러나 이것은 당신의 원의에 기꺼이 사랑으로 응답한다는 조건에서입니다. 불행히도 인간은 죄로 이끄는 불순종으로 이 선물을 거부함으로써 창조주 하느님과 나누는 생명의 대화를 단절하였습니다. 충만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호의’를 인간은 죽음의 전조인 오만한 자만심으로 ‘거부’한 것입니다(로마 5,19 참조).

전 인류가 하느님과 이러한 단절을 하는 데에 깊이 동참하였습니다. 오직 나자렛의 마리아만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원죄 없이 잉태되셨고,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받아들이셨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계획을 성모님을 통하여 실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하느님의 ‘호의’와, 천사가 성모님께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을 때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신 성모님의 ‘순종’이(루가 1,38 참조) 조화롭게 얽혀 있음을 예시해 주었습니다. 인류를 대신한 성모님의 ‘순종’은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께서 성모님의 몸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써(루가 1,35 참조), 이 세상에 천국 문을 다시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최초의 창조 계획이 복구되고 강화되었으며, 이 계획 안에는 동정 성모님께서도 포함되어 계셨습니다.

 

3.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요지를 만나게 됩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로, 그리스도의 성혈에서 비롯된 위대한 구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완전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골로 1,28 참조).

그러므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조화를 회복시켜 주실 그리스도의 밝은 대낮을 보증해 준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물리치신 생명의 샘이시라면,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돌보아 주심으로써 희망을 안겨 주시는 자애로우신 어머니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루르드 순례지가 신심 깊은 신자들과 순례자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하는 메시지이며, 또한 마사비엘 동굴에서 일어나는 육체적 정신적 치유가 갖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발현하신 날 이후, 그곳에서 고통과 질병을 ‘치유’해 주셨으며 수많은 당신 자녀들에게 육신의 건강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신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 인간 마음의 가장 간절한 희망에 대한 참된 대답이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을 만나게 하심으로써 신자들의 마음에 한층 더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말씀이 강생하시는 순간에 성모님을 당신 그늘로 감싸 주신 성령께서는 성모님께 의지하는 수많은 병자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들은 육체적 건강을 선물로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와 내적 기쁨의 원천인 마음의 회개입니다. 이 선물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련에서도 그들을 희망의 깃발인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도로 만들어 줍니다. 

 

4. 교황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에서, 저는 고통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줄 알아야 하는 인간의 역사적 경험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2항: 「사도좌 관보」 576[1984년], 202면 참조).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힘이 아니라면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고통은 구세주의 죽음과 부활에서 가장 깊은 의미와 구원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인간의 시련과 고통의 무게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지니심으로써 자신을 ‘죄 있는 분’(2고린 5,21)으로 만드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의 신비 안에 모두 축약되어 있습니다. 해골산에서 예수님께서는 깊은 고독 속에 홀로 남겨지시어 모든 인간의 잘못을 떠안으신 채 성부께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답은 십자가의 역설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통 받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거기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고통 받으시며, 우리의 고통을 당신과 나눌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결합될 때 인간의 고통은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바오로 성인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24).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고통은 구원하시는 주님의 고통의 신비로 들어가는 문이 됩니다. 고통은 더 이상 평화와 행복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부활의 빛이 그 고통을 비추어 주기 때문입니다.

 

5. 아드님의 고통에 매우 특별하게 참여하시어 인류의 어머니가 되셨으며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말없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구원에 이르는 고통」, 25항: 「사도좌 관보」 76[1984년], 235-238면 참조).      
루르드에서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에 비범하게 동참하고 계신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의 기적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근본 진리를 상기시켜 줍니다. 곧 당신 외아드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셨던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에 온순히 동참할 때에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이러한 구원 계획에 동참하고, 원죄에서 벗어납니다. 질병과 죽음은 현세의 삶 안에 계속해서 존재하지만 그 부정적 의미는 벗어 버리게 됩니다.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육신의 죽음,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정복된 죽음은(로마 6,4) 영원한 생명의 충만함에 이르는 필수적인 통로가 됩니다.

 

6. 우리 시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호하도록 맡기신 근본 선물, 곧 생명에 관한 과학 지식에서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생명은 시작부터 자연사에 이를 때까지 소중히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합니다. 생명과 더불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생명의 요람인 가정도 보호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유전 공학’이 널리 언급되고 있으며, 그와 함께 생명의 근원 자체에 대한 개입과 관련하여 과학이 제시하는 놀라운 가능성들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모든 진정한 발전은 그것이 임신[受精] 순간부터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는 한 마땅히 장려되어야 합니다. 사실, 누구도 인간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거나 조작할 권리를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할 수 없습니다. 보건 사목 분야 종사자들의 특정한 임무는 이 힘든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생명에 봉사하는 일에 투신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저는, 모든 보건 사목 종사자들과 특히 주교회의에서 이 분야의 책임을 맡고 계시는 주교님들, 원목 신부님들, 본당 신부님들, 이 분야에 관여하시는 다른 모든 신부님들과 수도자들,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고통과 고난, 죽음 앞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칠 줄 모르고 일관되게 증언하는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보건 종사자들, 의료인들과 준의료인들, 연구원들, 특히 신약 개발에 헌신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우리 형제들도 이용할 수 있는 의약품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를 원죄 없으신 잉태를 통하여 루르드 순례지에서 공경받으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께 맡겨 드립니다. 고통과 고난, 죽음에 대한 유일하고 진정한 대답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이심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증언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저는 존경하는 형제 추기경님과 병자의 날 행사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께 기꺼이 사도로서 특별한 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2003년 12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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