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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와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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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규환 [qhwan111] 쪽지 캡슐

2019-02-23 ㅣ No.627



♡ 유채가 순무한테 시집을 갔어요 ♡

 

옛날에 유채(油菜)라는 아가씨가 있었어요

봄바람에 나부끼듯 허리는 개미허리에

얼굴은 미소를 머금은듯 언제나 화사(華奢) 했지요

거기다가 이국적인 풍모를 지녀 누구나 탐내는 아가씨 였어요

 

 그런데 이 아가씨가 그 많은 신랑감을 마다하고

시골 촌구석 더벅머리 총각인 순무한테 시집을 갔어요

그런데 이 순무라는 총각은 모든것이 보잘것 없었지만

아랫도리 하나만은 튼실 했지요

 

야채라는 처녀는 순무의 우람한 그것 (?)하나만 보고 시집을 갔는지도 몰라요

예나 지금이나 물건이 실(實)해야 부부지간에도 금슬(琴瑟)이 좋은 법이지요

  

아무튼 시집간지 10달만에 유채는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이는 엄마 유채를 닮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빠 순무를 닮은 것고 아니었어요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완전 돌연변이가 태어나 흉(凶)한 일이 아닐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숭(菘)이라 이름 지었지요

그런데 이 숭이라는 아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 했어요

사람들은 숭이없이는 못산다고 할 지경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 숭이의 이름을 "배추"라 부르기 시작 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배추는 이렇게 해서 태어 났지요

 

순무는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 자생하던 것이라 그 유래도 오래된 것이어서

호무라 부르던 무 보다도 더 오래된 작물이지요

유채는 지중해의 동부 연안과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 반도에서 살던 풀이었는데

이 유채가 6, 7세기경에 중국에 이주되어 순무한테 시집을 간 것이지요

  

이렇게 태어난 배추는 숭(菘)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처음 태어날 때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배추처럼 줄기가 크고 흰 채소가 아니었어요

 여느풀과 다름없이 녹색 이파리의 평범한 채소풀이 탄생한 것이지요

그러나 농민들은 이 유채와 순무를 교배시키면서 더좋은 채소를 위해 개량 작업에 들어갔어요

차츰 개량이 진행될수록 줄기의 흰 빛깔이 도드라지고 단맛을 느낄수있는 채소로 변해갔지요

그에 따라 이 채소의 이름도 백숭(白菘),백채(白菜)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 젔지요

오늘날의 배추라는 어원은 이 '백채(白菜)'가 변해서 된 것이라 하지요

 

이른 봄 제주도에 가면 유채꽃이 넘실거리는 풍경(風景)을 볼수 있어요

유채의 노란 꽃들은 남쪽에서 오는 봄을 마중하는 전령과도 같아요

그런데 이 유채를 보고 배추와의 연관성을 짖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배추꽃을 본 적이 있나요?

 

역시 별로 많지 않아요

배추는 보통 씨를 사다 심고 꽃이 피기 전에 모두 수확하여 먹지요

그래서 배추꽃을 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가끔 남도 들판을 가다 보면 늦가을 배추를 심었던 밭에 상품 가치가 없어

수확하지 않은 배추가 밭에 그냥 남아 겨울을 이겨내고 꽃대를 올려 노란 꽃을 피우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배추꽃이 마치 유채꽃과 비슷하여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지요

 

또 강화도에 가면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 잡은 것이 순무이지요

강화도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려 하면 순무를 파는 상인들을 볼수 있어요

이제는 흔치 않은 순무라 지역의 특산물로 여기게 되었지만

이 순무가 예전에 배추를 대신해서 김치를 담그던 주재료였음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이 오래된 순무가 예쁜 유채 아가씨 신랑이지요

 

옛날 순무와 유채의 만남을 기억하려면 배추 뿌리를 살짝 맛을 보면 알수 있지요

배추 뿌리는 순무의 맛과 기가 막히게 닮았음을 알수 있어요

 

그런데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법인데

특이하게도 배추씨를 채취하여 다음해 다시 심으면 배추가 나와야 하는데

순무의 아랫도리가 실해서 그런지 다시 순무와 비슷한 것이 나오니 큰일이 아닐수 없었지요

그래서 배추 종자를 중국으로 부터 계속 수입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중종실록"이나 "선조실록"에 보면 중국과의 무역품에 이 배추 종자(씨)가 반드시 들어있었지요

우리는 육종 기술이 없었기에 중국에서 수입 할수밖에 없는 종자였던 것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는 더욱 중국에 굽신거리고 살아 왔어요

 

그러나 을사늑약을 맺은 이듬해인 1906년에

우리나라에도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 생기면서

우수한 품종을 들여와 배추의 육종 연구가 시행되었으나 배추 씨앗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 대신 일본에서 품질좋은 배추 씨앗을 수입할수 있었지요

 

이때부터는 중국에 의지하던 배추 종자를 일본에 기대게 되었어요

이때 비로소 본격적인 결구배추의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 시기부터 배추는 이미 무를 넘어 김치의 주재료로 부상하였어요

하지만 모든 배추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더위를 싫어하고 추워야만 잘 자라는 속성 때문에

생육기간이 긴 결구배추를 봄에는 먹을수 없었어요

다만 김장김치의 주종이 배추김치로 바뀌게 된것 뿐이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배추수급에는 별 지장이 없었어요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자 이 배추 농사에 다시 먹구름이 끼게 되었지요

종자 생산의 연구가 중단되고 일본으로부터의 종자 수입도 막혀 버렸어요

하지만 먹던 배추김치를 끊을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다급해진 정부는 1950년에 일본에 있던

세계적인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를 암암리에 불러오게 되었어요

우장춘 박사의 노력 끝에 1954년부터 국내에서 배추 씨앗을 생산할수 있게 되었고

그 기술로 인해 김장김치를 담글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우장춘 박사는 처자(妻子)를 일본에 두고 홀로 생활 할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반일감정이 심하여 정부가 우장춘 박사의 처자가 일본인이라

입국을 허가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우장춘 박사는 결국 가족과 헤어져 연구를 거듭하며 후학을 길러내고

1959년에 고국에서 쓸쓸하게 홀로 운명하고 말았지요

결국 우리는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한 우장춘 박사의 희생덕분에

맛있는 배추로 김장을 담글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장춘 박사의 큰 업적을 잊지 말아야 하지요

  

그런데

‘채소’란 배추·상추·쑥갓 ·양파 등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물을 뜻하지요

이 채소를 어떤 이들은 ‘야채’라 부르기도 하지요

그럼 과연 ‘채소’와 ‘야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채소(菜蔬)’는 나물을 뜻하는 ‘나물 채(菜)자에 푸성귀 소(蔬)자가 결합한 한자어 이지요

‘야채(野菜)’는 들을 뜻하는 ‘들 야(野)’에 나물을 뜻하는 ‘나물 채(菜)자가 합쳐진 말이구요

둘은 의미상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채소’보다 ‘야채’가 많이 쓰이는데

이는 ‘들 야(野)’자 때문에 ‘야채’가 더 구체성을 띠는 용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야채(野菜)’는 일본식 한자어 이지요

 

 중국에서는 ‘소채(蔬菜)’나 ‘채소(菜蔬)’란 말을 사용하고

우리나라도 옛날부터 주로 ‘채소(菜蔬)’라는 말을 써 왔어요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한자어인 ‘야채(야사이·やさい)’가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슬며시 ‘채소’를 밀어냈지요

 

물론 사람들은 ‘야채’가 일본식 용어인지 모르고 사용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자신도 모르게 스며드는 정풍운동(整風運動) 때문이지요

일제가 우리 한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했던 국민순화운동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까지 영향을 주었어요

 

만일 이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다면

오랫동안 써 온 ‘채소’란 말을 버리고 일본식 이름인 ‘야채’로 부를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요즘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이 이 짓을 하고 있어요

고액 연봉자 였던 전태일을 우상화 하면서

노동운동만이 살길이라며 학생들을 교육한다 하지요

이 나라를 노조천국(勞組天國)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이지요

조희연은 성공회대학 교수로 있을때 좌파독재로 망해버린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장본인이지요

 

이는 일본의 정풍운동처럼 어려서 부터 좌파이론을 아이들에게 심겠다는 의도인데

교육의 백년대계를 바라볼때 무서운일이 아닐수 없어요

 

우리모두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때라 생각 되네요

 

아무튼 ‘채소’도 좋지만 ‘남새(채소의 고유어)’ ‘푸성귀’ 등 순수 우리말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순우리말처럼 믿고 있는 '배추'와 '상추'와'부추'는

그 어원이 한자말이지만 그 말을 버릴수는 없지요

 

이것은 알게 모르게 습관화 되었고 또 우리 한글의 70%는 한자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쑥, 질경이, 냉이, 씀바귀, 꼬돌빼기, 민들레, 정구지, 머위, 쇠비름 들과는

그 느낌이 너무 다르지요

 

그래서 순수 한글과 한자는 반드시 병행되어야만 진정한 우리말을 승화시킬수 있다 하지요

한글전용만 고집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원히 노벨문학상을 받을수 없다 하네요

그 이유는 한글만 전용하면 언어의 깊이 즉 심도(深度)가 낮기 때문이지요

 

그럼 여기서 다시한번 채소의 이름을 정리하면

배추는 중국어로 백채(白菜)이지요

 

백채(白菜)를 '백채'라 부르지 않고 '배추'라 부른것은

백(白)의 고대음이 '배'이고 채(菜)의 고대음이 '추'이기 때문에

"배추"로 부르게 된 것이지요

 

벌써 남쪽에서는 봄동배추가 출하된다 하네요

이른 봄에 노지에서 당당하게 자란 봄동의 맛은 달콤하고 상큼하지요

그냥 먹어도, 쌈으로 먹어도 좋고, 겉절이로 먹어도 좋아요

 

봄동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냥 먹어보는 것이 가장 좋지요

봄동의 푸른 잎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와 달콤함

봄의 신선함과 지난 겨울 눈과 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낸 강인함이 바로 이 맛 아닐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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