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1주간 금요일 ’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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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11-30 ㅣ No.5962

대림 제1주간 금요일 ’24/12/06

 

가끔 신자들이 엉뚱한 청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 이번에 물건을 선적했는데 물건들이 전과 같지 않고 조금 시원치 않아서 걱정이에요. 클레임 걸리지 않게 기도해 주세요.” 우리의 기도와 바람이 누군가의 손해와 피해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주 하느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신부님, 요즘 남편이 너무 고리타분한 말만 해요. 쫌 제 말에 동의 좀 할 수 있도록 말 좀 잘해 주세요.” 부부가 서로 싸우고 나서 서로 자기편을 들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면,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누구 편을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런가 하면, 아주 기대조차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있나 봅니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국가인 소비에트 소련 공화국이 붕괴하리라고 생각조차 할 수 있었습니까? 또 겉으로는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해 진심으로 기도하면서도, 정말 이루어질 수 있다고 기대나 할 수 있었던가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도, 진정 이 땅에 아버지(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마태 6,10) 고 기대나 할 수 있던가요? 요즘에서야 여기저기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도 삶 속에서 말없이 복음을 실현하는 이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해달라고 청하자,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마태 9,28) 하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 주님!”(28)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29)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가끔 우리는 마음속에서 간절히 바라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루어지리라고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스스로 던져 봅니다. 우리 눈앞에 절벽처럼 서 있는 현실의 한계 의식, 현실의 장애와 죽음이라는 한계 앞에 고정관념처럼 갇혀서 마치 넘보지 못하기라도 해야 하는 벽이라도 있다는 듯이 스스로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진정 주 하느님께서 펼쳐주시고 보여주시는 복음의 길을 진솔하고 과감히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헌신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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