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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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06-23 ㅣ No.182996

2025.6.23.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창세12,1-9 마태7,1-5

 

 

 

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

<너 자신을 알라>

“늘 새로운 시작, 늘 영원한 현역”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었나이다.”(시편90,1)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기간은 2013.3.13.-2025.4.21.까지 만12년 1개월 8일 이었고, 올해 부활대축일 다음날 4.21일 향년 88세로 선종하셨습니다. 재위 12년 동안 저는 거의 매일 교황님의 글을 읽을 정도로 교황님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사랑했고 심취했습니다. 다시 뒤를 이은 레오14세 교황도 경청과 균형의 인품으로 벌써 많은 분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저의 관심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분 다 교회를 사랑하며 믿음의 여정에 충실했던 교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소중하다.”

“신자이전에, 우리는 사람이 되도록 불림 받았다.”

레오 교황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제 성체성혈 대축일 삼종기도후 강론 요지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성체성사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세상 구원을 위한 궁극적 희생의 사랑이다.”

 

무엇보다 레오 교황과 오랫동안 친분을 맺었던 페루 코사카 교구장 노르베르트 스트로트만 주교의 레오 교황에 대한 인터뷰 대목이 좋았습니다.

 

“그는 결코 사치스럽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항상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교구도 잘 이끌었고 어려운 문제들도 잘 해결했습니다. 추기경단 평균나이보다 훨씬 젊은 69세 나이에, 그와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 추기경단에 없어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고 봅니다. 

그분은 북미와 남미를 알고, 로마의 안젤리꿈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신학생 교육 경험이 있고, 다국어에 능통하며,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으로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그는 조용한 대표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에 기름을 붓지 않고 오히려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항상 매우 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레오 교황은 늘 보편교회의 관점에 중심을 두고 보편교회의 일치를 생각하며 판단할 것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오늘 창세기의 믿음의 사람, 아브람을 연상했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람을 부르심으로 새로운 구원역사를 펼치십니다. 이런 구도여정에 옛 현자의 가르침도 좋은 자극이 됩니다.

 

“사람들은 노력에 한계를 두고서는 재능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다산>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칩니다.’ 공자가 답했다. ‘너는 지금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 있구나.’”

 

옛 현자에게서 불퇴전(不退轉)의 용기와 정신을 배웁니다. 아브람은 이제부터 주님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아브람에 대한 장엄한 축복선언입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마도 아브람은 평생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믿음의 여정에 충실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람뿐 아니라 우리 역시 축복받은 존재로 불림받았고 주님의 축복을 나누며 살아야 함을 믿습니다. 아브람이 롯과 함께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새삼 믿음의 여정은 늘 새로운 시작의 떠남의 여정이자 나이에 상관없이 늘 현역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군인으로 말하면 제대가 없는 죽어야 제대이고, 학생으로 말하면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영원한 현역의 삶입니다. 사실 아브람은 끝까지 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에 충실하면서 영원한 현역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정주의 수도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밖으로는 산, 안으로는 강, 바로 우리의 신원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이요 안으로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처럼, 끊임없이 내적 떠남의 여정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입니다. 아브람은 떠남의 여정중에 수시로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음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오늘 말씀중 제단을 쌓았다는 두 대목입니다. 아브람은 제단을 쌓으며 축복된 존재로서의 자신의 신원을, 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중에 있는 영원한 현역으로서 자신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을 것입니다. 아브람보다 더 많이 우리는 매일 성전에서 미사를 통해, 시간경을 통해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우리의 신원을 늘 새롭게 합니다. 

 

바로 이런 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이 오늘 복음에 대한 참 좋은 답이 됨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의 계속으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모르는 무지의 결과 교만으로 남을 심판하고,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는 것입니다. 

 

무지, 무식하고 용감하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정말 겸손하고 지혜로워 나의 한계와 부족을 안다면,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의 무지에 눈먼 자신을 안다면, 내눈에 들보를 안다면, 절대로 남을 심판하지도, 남의 눈에 티를 뽑겠다는 만용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니가 뭔데?” “니나 잘 해!”라는 자연스런 반발입니다. 정말 하느님께 모두가 소중한 사랑받는 존재임을 안다면 결코 심판하지 못할 것이며 심판은 하느님께 맡길 것입니다.

 

바로 아브람처럼 산전수전 시련과 고난의 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은 자기를 깨달아 알아가는 회개의 여정과도 일치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참 나를 알아감으로 편견과 선입견의 무지의 병은 치유되어 겸손에 이르게 되고 저절로 심판은 멈출 것입니다. 정말 자기를 모르는 무지한 자가 남을 심판하지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는 결코, 절대 남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차별이 아닌 구별을, 심판이 아닌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할 것입니다. 

 

그러니 심판과 교만의 무지에 대한 답은 평생 믿음의 여정, 떠남의 여정에 충실함에 있음을 봅니다. 믿음의 여정과 함께 가는 회개의 여정, 겸손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믿음의 여정에 항구하게 하시며 무지의 병을 치유하여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하느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이 이야기 하오리다.”(시편73,28).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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