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
6월 23일 _ 김건태 루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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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와 티 오늘 예수님은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권고의 수준을 벗어난 명령의 말씀입니다. 어떠한 논쟁이나 이의 제기를 거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윤리적 차원에서 이웃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선하고 저 사람은 악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이나 단정은 우리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이 영역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심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 또는 논리는 간단합니다. 남을 심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잣대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자주 또는 함부로 들이대는 잣대는 편협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뿐입니다. ‘이 사람은 나쁘다’ 또는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은 악하다’ 하고 말할 때, 순수 외적인 것을 기준으로 할 때가 다반사입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판단하지만, 실은 정확하게 알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안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그 사람이 우리가 보기에 나쁜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정말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아가 그 사람이 한 일이 정말 나쁜 일인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나쁜 일을 하도록 이끈 그 악이란 것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만이 아시기에, 하느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을 심판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자주 남을 심판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때로는 공동체 생활 또는 공동체 관계에서 형제에 대해 피할 수 없는 판단이 꼭 필요할 때가 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판단 지연 또는 보류가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게 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덧붙이십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 눈에 있는 것이 들보이고, 그 사람 눈에 있는 것은 티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려니 생각하거나 그렇게 기대할 때가 일반적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 또는 기대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이러한 생각 또는 기대 자체가, 우리 눈에 있는 것이 진정 들보가 틀림없다는 증거라고 꾸짖으실 것만 같습니다. 형제와의 관계에서 “심판하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원리임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러나 수십 번 생각해도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먼저 내 눈의 들보부터 제거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하겠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것이 들보보다 더 크게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될 티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면, 심판이나 판단에 뒤따르는 실수나 상처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을 보고 듣고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나를 보고 듣고 판단하는 신앙인다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