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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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6-23 ㅣ No.183008

저는 8년 동안 명동에서 지냈습니다. 명동은 서울의 중심부이고, 땅값이 참 비싼 곳입니다. 그래서 동료 신부님들이 비싼 땅에서 사시는군요하고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대개 땅은 대지, 전답, 임야로 나누어지는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대지가 가장 비싸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전답, 그리고 집도 농사도 어려운 임야 순으로 가치가 매겨지곤 합니다. 명동은 대지일 뿐 아니라, 남산이 뒤에 있고 청계천이 앞에 흐르며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더욱 비싼 땅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비슷한 현상이 있습니다. 뉴욕이나 LA에 비해 땅값과 세금이 저렴하고, 교육 환경도 좋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땅을 찾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고 하시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이집트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이 땅은 목적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과 동행의 상징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세계 안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나 보니 어떤 땅에 살고 있었고, 그 땅에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말합니다. “우리는 그 땅을 집으로 만들 책임이 있다.” 성경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에덴동산은 완벽한 땅이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자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며 하느님의 뜻을 배워야 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좋은 땅을 원하고, 넓은 집을 꿈꿉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그 땅과 집은 결코 가져갈 수 없습니다. 땅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져가야 할 것은 그 땅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웃을 사랑했는가입니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집은 나를 떠났고, 내가 정을 주던 땅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리.” 저도 외국에서 살던 시절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도로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아 처음엔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시력이 나빠져서였고, 안경을 쓰고 나니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문제가 있던 건 세상이 아니라 저의 시선이었습니다. 안경에 먼지가 끼면 잘 보이지 않듯, 우리 마음에도 원망, 욕심, 시기, 질투, 교만, 불안같은 먼지가 끼면 세상이 일그러져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왜 너는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남의 잘못은 잘 보면서, 내 안의 문제는 외면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변화는 바깥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땅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졌다면, 그것은 세상의 잘못이 아니라 내 안의 들보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잊고 땅에만 집착하면, 우리는 결국 에덴동산에서도 추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안경을 닦읍시다. 아브람이 낯선 땅을 향해 믿음으로 걸어갔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걸어갑시다. 좋은 땅은 조건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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