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

[슬로우 묵상] 청귤 항아리 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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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nansimba] 쪽지 캡슐

10:29 ㅣ No.183026

 

성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루카 1,64)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

그리고 즈카르야의 변화는 제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즈가리야의 아홉달 동안의 침묵은

단순한 벌이 아니었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옛 자아는 서서히 사라지고,

참된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근원적인 내면의 변화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이 한 문장을 글판에 쓰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뀝니다.

가문의 전통을 따르려던 친척들의 기대,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어,

즈가리야는 하느님의 뜻을 선택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내 방식', '내 생각', '내 기준'을 지키려는 고집에서 시작되는지요.

물론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 나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보여줍니다.

내 고집을 하느님의 사랑보다 앞세우지 않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요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우선에 두는 삶의 방향 전환을 말입니다.

 

그동안 내가 고수하던 것이 사실은 진짜 '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그 가짜를 기꺼이 내려놓는 순간,

하느님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피어납니다.

즈카르야의 입이 열린 것처럼, 우리도 변화됩니다.

더 이상 변명이나 불평이 아닌,

하느님을 찬미하는 말들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이 내게 속삭입니다.

'진짜 변화는 겉이 아니라 속에서 일어난다.'

거짓 자아로 가득 찬 고집을 내려놓고,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나는 마침내 하느님의 뜻에 자유롭게 응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귤 항아리 열던 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청귤 하나’가 마음 한켠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청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천천히,

온전히 익어가기를 기다리며 이 시를 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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