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6주일(다해) 루가 10,38-42; ’25/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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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다해) 루가 10,38-42; ’25/07/20 프랑스에는 최근에 복자품에 오른 '안뜨완 슈브리에'라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이 어느 성탄절에 구유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면서 참 귀중한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은 사제가 된지 10년 동안 그야말로 죽도록 애써 일했는데, 되돌아보니, 사실상 열매 맺은 것이 별로 없다고 느끼셨습니다. 나이만 들고 세월만 보냈지 실상 이루어 놓은 것이 별로 없다고 여기셨습니다. 물론 사목이라고 하는 주님의 일은 자기가 이루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제로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주님과 가까웠는가가, 주님의 사람으로서의 본질이라는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주님과 가까워야만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고, 자기의 욕심에서가 아니라 진정 주님의 일을 할 때야만 그 일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실상 열매는 자기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맺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주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미사 성제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미사 성제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면 주님과 가까워질 수도 없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고, 결국 애만 끓이고 일은 잘 이루어지지도 않고 고생만 하게 됩니다. 시편 작가들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시편 127,1) 집을 짓는데 방해하고 지연시킨다 해도 그것이 주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면 시련은 있겠지만, 언젠가는 어엿하게 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으려고 지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주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어질 수 없을 것이고, 설사 지어진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악의 소굴이거나 평탄치 못하리라고 예견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엉뚱한 청을 드립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루카 10,40) 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거지인가? 예수님이 언제 밥 달라고 했나? 예수님은 밥을 먹으러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러 오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마리아와 마르타 중에 누가 더 마음에 들고 누가 더 아름답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발치에 앉아 경청하는 마리아가 마음에 들겠습니까? 아니면, 자기는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도 않으면서, 그나마 듣고 있는 마리아마저 끌고 가려는 마르타가 예수님 마음에 들겠습니까? 마르타는 마르타대로 자기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으니, 자기 할 일은 의당 예수님께 음식을 만들어 바치는 것으로 생각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매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으셔서 방문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정 이 자리, 이 순간에,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헤아리지도 않고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주님을 도와드리겠다고 나서면, 마르타처럼 교회의 사랑은 바로 선교로 귀결된다는 본질을 잃고, 교회 신자로서의 선교 사명을 잊고, 비본질적인 엉뚱한 곳에 힘을 쏟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러이러한 것을 바라실 것이라고, 우리가 주님 대신 생각하고, 주님 대신 결정해서, 노력하다가 잘 안되면, '주님께서는 내가 일하시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가 보다', '주님의 일은 애써 일해도 되지 않는, 고통의 십자가 길뿐이로구나’ 라고 하면서 포기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자기가 저 좋아서 자기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한 셈’이 돼버립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사람 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핑계 삼아 자기 일을 하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입장에서만 타인들을 바라보며, '주님의 일을 하는데 왜 안 도와주냐?‘ ’다같이 해야할 일인데 왜 나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고 바라보고만 잇는가?‘ 라고 캐묻게 됩니다.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셈이 되고 맙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자기 열성에 자기가 빠져 일하다가, 지치거나 일이 잘 안되거나 사람들과 관계가 안 좋아지면,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원망하면서 떨어져 나가, 그나마 차라리 일을 안 한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우리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럴 때 우리가 말하는 믿음은,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기 전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럼 주님께 여쭈면, 주님께서 우리 귀에 대고 말씀하셔 주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선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읽고 또 읽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또 우리가 알아들은 말씀의 뜻이 진정 무엇인지 기도 중에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은 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미사성제에서 받습니다. 그렇게 미사 성제를 통해 우리가 깨달은 주님의 말씀을 실현할 힘을 얻어서, 자신의 일상에 적용합니다. 적용한 것을 다시 미사 성제를 통해 봉헌하고, 주님께 바치는 기도와 형제들과의 나눔 중에 되새기고 식별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더욱더 주님의 뜻에 그리고 주님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건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기도하기보다, 먼저 자기가 생각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이고, 마치 주님께서 자기에게 시킨 것이라고까지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가게를 청소하고, 손님이 들어오시면 해 드릴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고 해서, 그렇게 손님이 쉽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손님이 들어오고 싶어야 들어오는 것이지. 주님께서 보내주시지 않으면, 가게를 지키고 애써 일하는 모든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들어오는 손님 하나하나를 주님께서 보내 주신 손님이라고 여겨 감사드리고 귀하게 여기고 대접한다면, 주님께 보답하고 형제들에게 광고하는 셈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충실히 그리고 끊임없이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기에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더라도,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게 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는 의미로, 주님의 일도 합시다. 주님의 일은 교회에 봉사하고, 형제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꿈꾸고, 더 나은 내일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물질적인 성취를 넘어 전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면, 특별히 조금 더 나은 생활의 개선과 습성의 변화 및 인격적인 성숙을 기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한가지, ’기도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내 인생의 더 나은 하루를 꿈꾸는 것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기도하면서 자신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기도하면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기도하면서 주님께 다다르고,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펼쳐주시는 은총 지위 안으로 들어가, 주님의 이끄심과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비로소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기는 하면서도, 정작 주님께 청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한두 번, 하루 이틀 청하고 나서, 한동안 노력해 보고 나서, 내 눈앞에 내 마음대로, 내가 기대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주님과 이웃을 원망한다면, 삶의 개선을 이룰 수 없고, 영적인 성숙과 삶의 성장은 요원한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어제와 오늘의 과오와 불편함과 부족함에서 벗어나 더 거룩하게 변화되기를 원하고, 특별히 주님 안에서 거룩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주님께 먼저 청하고 매달려, 주님 사랑 안에서 노력하면서,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의 섭리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기도하고, 정규적으로 기도하고, 깊이 기도하여, 주님 사랑 안에서 머물고, 주님의 은총 지위를 회복하고, 주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주님 사랑 안으로 들어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의 뜻안에서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