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5/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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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5/07/24 우리는 무엇을 보고 싶어합니까? 사랑하는 이의 얼굴. 멀리 떠나 있는 가족과의 만남. 가족이나 친지들의 성공과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 품 안에서 행복하게 살 날을 꿈꾸는 우리에게 주님은 딱딱하게 법률이나 규정같은 형식으로 이야기 하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마태 13,10)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11-12절) 알아듣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리 쉽게 이야기 하셔도, 우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13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무지몽매한 우리 상태를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14-15절) 어쩌면 자꾸 이 말, 저 말 돌려서 해서 아예 듣지 못하게 하신 것이라도 하듯이, 에둘러 말씀하시기까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어도 따르지 않으려고 하고, 알아들었으면서도 고치려고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자신의 이해관계와 자신이 처한 상황만을 유지하기에 급급하여, 자기주장대로만 살려고 하는 우리의 목 뻣뻣이 굳은 마음과 삶을 지적하십니다. 그에 반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귀여겨듣고, 그 가르침대로 따라 살고자 하는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다행스럽게 흡족해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16-17절) 우리가 꿈꾸는 것의 종착점이랄까,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에 올라가, 주님 품안에서 행복한 나날을 지내게 될 것을 보고 싶고 또 한쪽으로는 그런 행복한 삶을 보장받고 싶습니다. 그 행복한 나날을 꿈꾸기 위해 오늘 여기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수고수난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그 말씀을 지키고 실현하여 우리도 마지막 날 주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으로 주님 부활의 영광을 선사 받아 누리기를 간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