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25/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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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토요일 ’25/08/02 우리는 매일 부동산 열기를 미디어에서 보고 듣습니다. 아파트 값이 얼마가 올랐다느니, 어디에 새로 택지를 개발하고, 어디에 신도시를 짓는다느니 등등.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아파트를 짓고 땅을 사고 팝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율법에 따르면 땅을 매매하지만, 땅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땅을 사용할 권리를 일정 기간 사고파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각 부족 각 가정에게 거져 나누어 주신 것이므로 땅 자체를 사고팔 수 없다는 믿음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땅뿐만 아니라 모든 소유물의 개념도 같습니다.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나 물질의 사용권을 사고 파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낮에 누군가의 겉옷을 담보로 저당잡아 맡아두었다면, 밤이 되어 추워지면 그 옷을 다시 그 옷을 저당잡힌 주인에게 가져다주었다가 밤을 춥지 않게 보내고 다시 따뜻한 낮에 수거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대한 믿음 인간 존중에 대한 사랑이 이스라엘 율법의 근간입니다. 실제로는 인간의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와 탐욕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에는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속죄일과 속죄일에 이어지는 희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레위 25,8-10) 안식일은 일곱 번째 되는 날 쉬는 것이고, 안식년은 일곱 번째 되는 해에 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목축을 하면서 일곱 군데로 나누어 여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양에게 풀을 뜯게 하고 한 지역은 남겨둡니다. 마치 풀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한 지역을 남겨두던지, 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지었으면, 한 해를 쉬게 합니다. 한 해 동안 사람도 쉬고 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며 뽑아내었던 토양의 영양분을 회복할 때를 기다리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식년 제도에 따라 칠 년을 일곱 번 지내고 난 다음 해에 희년을 선포합니다. 희년에는 아예 그동안의 모든 소유권을 다 무효로 하고 원주인에게 되돌려 줍니다. 모든 빚과 담보 및 은원과 죄악을 모두 소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신 법으로 희년이 되는 해에 모든 질서를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희년이 50년 만에 한 번 오니까 결국 일생에 한 번은 재생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제도의 근간에는 하느님께서 인간 생명과 자연을 거저 주셨고 하느님께서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거져 건져주셨기 때문에 형제들에게도 거져 되갚아야 한다는 신앙과 사랑의 행동 법칙에서 나옵니다. 이 안식일과 속죄일 및 희년에 관한 법을 보면서, 일과 쉼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줍니다.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여 일곱 번째 날에 먹을 것을 준비한다는 것과 엿새 동안 일하고는 일곱째 날에 일해서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이웃에게 돌린다든지. 매일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매일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자신이 부리는 일꾼들과 자신의 일터인 자연도 쉬면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아울러 여덟 시간 일하고, 여덟 시간 쉬고, 여덟 시간 인간 문화와 여가생활과 이웃돕기를 실현하며 살도록 인간과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동과 쉼과 생활 그리고 그러한 노동조건과 환경 그리고 그에 따른 이웃돕기와 자연생태 환경보존과 회복의 이치를 하느님 창조 질서 안에서 재해석하고 실현하며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