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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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가해) 마태 5,13-16; ’26/0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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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가해) 마태 5,13-16; ’26/02/08 언젠가 쉬는 교우분이 말했습니다. “신부님, 처음엔 몰랐는데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참 부담스러워요. 영세 받을 땐 나도 신자가 되었구나 싶어서 기쁘고, 여기 저기서 칭찬해 주고 축하해 주니까 좋기만 했는데, 점점 현실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부담스럽기 시작해졌어요…… 교회에서 배운 대로 잘하면 좋을 텐데 잘 못하니까, 창피하기도 하고, 점점 죄를 지은 것만 같아 슬슬 부담스러워 성당에까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성당에 나와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신부님!” 어쩌면 열심과 냉담의 차이는, 우리 안에 주님께서 생생히 살아계시는 것과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의 차이는 ‘부담스러워 용서를 청하고 매달리며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과 ‘부담스러워 피하고 포기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천주교 신자로서 사회에서 모범을 보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더 착하고 더 많이 양보하고 남 모르게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희생까지 하기는커녕, 오늘 나의 현실은 그야말로 내 코가 석자요, 내 가정, 나 한 몸 추스르기조차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마태 5,13-15) 그러기에 가끔은 마음 속으로 ‘적당히 살자!’ ‘남하고 비슷해야지, 나만 그렇게 튀면 안 된다.’ 등등 자신의 부족을 합리화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적당히 넘기고 피해가고 싶습니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몇 %, 어느 정도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 실제로 전혀 안 지키고 안 따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지금 당장 못 지킨다고 하더라도, ‘왜 자신이 못 지켰는지?’,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 지’ 잘 고민하고 되새기고 있다가, 다음에 또 기회가 왔을 때 지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더 부담스러운 것은 그렇게 부족하고 부당한 나를 주님께서는 주님 복음 선포 사업의 도구로 쓰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내가 겪게 되는 사건과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제 때에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어렴풋이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넘어간 다음, 한 참 후에 되새길 때가 돼서야 제대로 알아 듣고 후회하는 어리석고 부족하고 나약한 나를 부르시니 오히려 이는 부담이 아니라 선택이자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지금 현재 거룩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지금 당장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지 못하여 거룩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 그러면서도 우리 마음속에서 사그라들지 않고 피어오르는 거룩함에 대한 열정 등은 결코 우리의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초대요 축복이자 선택된 이들만이 걸을 수 있는 ‘영광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3,16-18) 그런 면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오는 부담은 오히려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데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진솔하고 겸허한 고백으로 보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사도 바오로는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코린 2,3-5) 우리 생명이 우리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지혜와 힘으로는 이룰 수 없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우리 소명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6.28)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 내게 생기는 모든 일에 성령께서 함께하시면서 이끌어주시고 힘이 되어주셔서 내가 기꺼이 주님을 증거할 수 있기를,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게”(마태 5,16) 되기를 간구합니다. 매일 저녁 그날 하루를 주님 안에서 되새기면서 기도합니다. 오늘 내가 마주친 사람과 상황 중에 다 하지 못하고, 미처 다 채우지 못했던 모든 사람과 상황을 주님께서 몸소 채워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게”(15절) 되기를 간구합니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믿고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거름을 치는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 죄를 사해주시고, 주님의 영을 보내시어 저희를 주님 구원사업의 도구로 써주소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 연중 제5주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2&id=208072&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