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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요한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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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93

 

 

신약 요한 묵시록 해제

 

 

-안병철, 요한 묵시록,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8

 

 

 

1. 묵시록의 명칭과 내용 그리고 일반적인 특징들

묵시록 1,4에서는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유스티노 교부는 사도 요한이 묵시록을 저술했다고 주장한다. 묵시록은 신약성서의 책들 중 전체의 내용이 예언적인 것으로 되어 있는 유일한 책이다.

  묵시(계시-아포칼립소)는 묵시 1,1에만 나온다 요한 묵시록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볼 때 묵시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으로 그리고 심판관으로 당신 자신을 현현하시거나 계시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는 "이제 어떠한 은사든 부족함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사뭇 기다렸습니다."라고 한 1고린 1,7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요한 묵시록은 1세기 말경 로마 황제의 속국으로 있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의 형태로 보내진 계시다. 요한 묵시록에서 거명되고 있는 교회들은 일곱이라는 거룩한 숫자를 사용하여 그 당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소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교회들이지, 상징적이거나 가공적인 교회들이 결코 아니다.

  요한 묵시록은 신앙인들이 황제 의식이라는 것을 통해 그귿르이 목을 조여오는 박해에 굴하지 않고 결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당대의 세계 속에 유포되어 있던 일련의 이단적 경향들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잇던 그들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신앙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시며, 하늘에서 구속자께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시련들을 주도해 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신앙인들이, 스승께서 내려주실 계명과 언약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의 최종적인 운명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그 이유로 저자는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누르고 승리하실 것이며, 그분의 모든 적대자들과 동조자들을 패배의 구렁텅이로 집어넣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미래 역사의 세계관'을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묵시록에서 말하는 미래 역사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하늘 높은 곳에서 옥좌에 앉아 통치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주는 분이시다. 하늘과 땅, 즉 세상은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곳이며, 그분께서 통치하시는 장소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받으신 당신의 인간성을 통해 하느님과 더불어 세상을 통치하신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입에서 나오는 쌍날칼'로서 모든 것을 당신께 예속시키실 분으로서 이 세상에서 비가시적인 모습으로 현존하고 계신다.

  셋째,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야기시키는 용 또는 사탄이 실제적으로는 패배한 것으로 간주된다.

  넷째, 모든 인간은 실제적으로 예언자들이 예고한 '마지막 때'를 맞이하고 있으며, 세상의 심판은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섯째, 행복의 표상으로서의 천상 도시인 '새로운 예루살렘'은 이미 존재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예루살렘의 문은 그곳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져 있다.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유혹과 시련 그리고 고통을 견디어 내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통치할 날을 기다리는 한편 영적으로는 이미 그러한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묵시록이 제시해 주는 다섯 가지의 미래 세계의 역사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즉 하느님게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원수를 궁극적으로 패배시키심으로써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이 세상을 통치하기 시작하셨다. 바로 그 점이 미래 세계의 역사관을 통해 오늘의 독자들에게 묵시록이 가르쳐 주고자 하는 핵심 내용인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여러가지 유혹과 현세적인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실존 자체를 의심하려는 성향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올바로 세우게 해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묵시록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보장된 미래, 그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은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전해준다. 승리가 보장된 미래에 대한 확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한,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좌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묵시록은 비록 알아듣기 어려운 상징적 이미지나 두려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언어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해주는 구원의 기쁜소식이라 하겠다.

  요한은 미래 역사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그러한 계시를, 환시를 통해서 전해 받았다. 요한은 신학적 의미로 볼 때 꿈을 통해 주어지는 신비적 형태로, 아니면 인식 가능한 형태로 한 번 또는 여러 번에 걸쳐 그러한 환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보아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인식 가능한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 유배하고 있을 동안에 여러 가지 형태로 그에게 나타난 것들이거나, 그것들 가운에 일부는 그 이전에 이미 그에게 보여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가 본 모든 환시들을 마치 파트모서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본 것으로 한데 묶어 놓고 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요하은 '묵시적인 것'이라고 불려져 오던 문학 유형이나 문체를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묵시문학 유형이나 묵시 문체는 기원전 2세기부터 유다인 사회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것이었다. 헬레니즘에서는 그러한 문학 유형을 물론 알고 있지 못했다. 묵시록에 나오는 모든 이미지들은 알레고리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서 묵시록 저자는 그것들을 다양한 원천에서 빌어다 쓰고 있다.

  성서의 내용을 회상시킬 수 있는 이미지들과 숫자가 지니고 있는 신비적 개념들을 포함하여 바빌론, 페르시아, 헬레니즘에서 명제화시킨 우주론과 천체론을 묵시록의 첫번째 원천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구약성서를 묵시록의 두번째 원천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에제키엘서, 즈가리야서, 요엘서, 다니엘서가 그렇다. 물론 신약의 종말론과 예수를 지칭하는 표현인 어린양, 인자와 같은 이미지도 쓰고 있다. 묵시록 저자의 개인적인 영감을 세번째 원천으로 꼽을 수 있다.

 

2.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

요한 묵시록이 전해주는 메시지들은 마치 순교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처럼 여러 군데에서 표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10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장차 당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너희 중 몇몇을 감옥에 던지려하고 잇다. 그리고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그와 유사한 내용들을 2,13; 6,10; 7,14; 11,7-8; 17,6; 19,2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순교자들을 만들어 낸 박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수 없다. 요한 묵시록이 편집되던 시기는 로마 황제 도미시아누스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로마 제국은 방대한 영토의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황제의 절대권력을 끊임없이 행사하려 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은 모든 식민지 백성들로 하여금 황제를 숭배하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강요했다. 그것은 모든 식민지 백성들로 하여금 황제에게 절대 복종을 하게 하려는 정치적 방편이었다. 헬레니즘적인 전제주의 국가와 에집트의 종교적 전승 속에서는 제국의식이라는 것이 이미 뿌리 내리고 있었는데, 로마 제국은 그러한 제국 의식을 황제 의식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 유명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나 그의 후계자들은 그러한 황제 의식을 매우 제한적으로 이용했지만, 37-41년까지 통치한 가리굴라 황제나, 54-68년까지 통치한 네로 황제, 그리고 81-96년까지 통치한 도미시아누스 황제등은 자신들의 권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행사하기 위하여 황제 의식을 의도적으로 강요했었다. 이와 같은 황제 의식은 로마의 행정 조직에 연계되어 모든 식민지들 안에서 체계적으로 강요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요한 묵시록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토록 엄청난 순교자들을 양산케 했던 것이 바로 그 황제 의식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순교자들이 생기게 했던 로마 황제들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던 역사적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네로 황제는 로마시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던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로마시를 불태운 화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그들을 박해했다. 그러나 이 경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해진 박해는 로마라는 지협적인 장소에 국한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요한 묵시록에서 언급되고 있는 박해의 주된 내용이 네로 황제가 가했던 박해라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탄압 정치를 지적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심 많기로 유명했던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이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엄단했었다. 특별히 유다인들과 개종자들에게는 로마 제국에 과중한 세금을 내도록 강요했었다. 그것이 유다인 공동체들 안에서는 불안과 긴장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미시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 도미시아누스 황제가 새로운 법령을 제정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조직적으로 박해했다는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로마법 자체는 상원의 허가 없이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새로운 종교의식을 거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거행했던 종교의식은 새로운 것으로 로마법 자체에 의해 금지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새로운 경신례를 거행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로마 제국으로 하여금 그들을 정당하게 박해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즉 요한 묵시록은 새로운 경신례를 거행하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황제의 절대 권력을 구축하려는 로마 제국이 비극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 속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의 예언자적인 안목과 진단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그러한 내용들은 본문을 다룰 때 직접적으로 언급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요한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았다. 이제 그러한 역사적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요한 묵시록을 보다 깊이 그리고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종합 명제화해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첫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경신례와 황제 의식의 관계 고찰은 그리스교 신자들이 필연적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놓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 13,1에서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공권에 복종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 묵시록 저자는 권력자들이란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짐승들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와 요한 묵시록 저자는 정반대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바오로의 글과 요한 묵시록이 쓰여진 얼마 차이나지 않는 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와 같이 상반된 견해가 나타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요한 묵시록을 읽고 있는 우리가 로마 황제 도미시아누스 통치 말년 경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 사람들은 그들의 황제가 죽은 후에, 때로는 살아 있을 때에, 그를 신격화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특히 도미시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주님'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곧 '주님'이기 때문에 백성들 모두가 황제인 자신에게 종교의식을 거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절대적인 신에게 하듯, 황제인 자신에게도 당연히 종교의식을 바쳐야만 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강요했던 것이다. 황제 의식을 거행 하는 행위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적법성을 드러내는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로마 제국 안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황제 의식에 참여해야만 했던 것이다. 로마 제국 안에서 공직을 수행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생계 유지를 위해 사회적 활동을 하는 자들마저도 로마 시민으로서의 의무적 행위에 해당하는 황제 의식을 거행해야만 했다. 이처럼 로마 제국은 절대적인 신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경배 의식의 전형적인 형태를 황제 의식에 그대로 대입시킴으로써 황제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올려놓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선택 앞에 놓여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만 바치는 경신례와 같은 의식을 로마 황제에게 바침으로써 다른 사람들처럼 로마 제국 안에서 정상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께만 경신례를 거행할 수 있기에 그 외의 다른 모든 종교의식들은 우상 숭배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하여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로마의 실정법을 어기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 두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황제 의식과 하느님께 바치는 경신례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받도록 강요받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묵시록에 나오는 전례적 내용들은 하느님만이 유일한 주님이시고, 그분께만이 영광과 권세가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협상 없는 선택을 강요받던 절망적 상황 속에 처해 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그러한 전례적 내용들은 용기와 희망을 받쳐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사실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전례적 내용들은 권력의 권한과 한계를 초월하여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합법화하고 정당화시키고 있는 전제주의에 대해 항거하는 저항의 외침임과 동시에 신앙의 절규인 것이다. 오늘이라는 현재 속에서 요한 묵시록의 메시지를 알아들으려는 우리 신앙인들은 묵시록 시대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강요받았던 선택 앞에서 겪어야만 했던 인간적 갈등과 고뇌의 상황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역사도 현실의 핑크빛 유혹을 수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소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신앙과 거리가 먼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우리 역시도 매순간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 때 우리는 마태 6,24에서 예수님께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사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받들고 다른 편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준엄한 경고의 목소리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를 목전에 둔 우리 역시도 요한 묵시록의 상황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요한 묵시록이 순교자들에 대해 증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사도 1,8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에서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가지 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바를 세상에서 증언해야 한다. 요한 묵시록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증언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순교의 순간이다. 순교자가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증언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에서는 순교자와 증언자라는 용어가 두 개의 다른 용어가 아니고 동일한 하나의 용어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된다. 즉 순교자란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자기가 믿는 진리를 증언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진리를 위한 피흘림이 자리하고 있다. 순교자가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증언자가 된다는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 요한 묵시록은 과현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혁명적'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혁명적'이라는 말 속에 인간이 모든 노력을 다해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근원적인 자유 곧 영의 자유를 수호해야만 한다는 의지의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면, 요한 묵시록은 분명히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로마 제국의 막강한 권력에 대항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무기력한 저항이 외적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요한 묵시록은 실패한 것처럼 보여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전제주의에 항거하는 저항의 외침과 신앙의 절규가 종국에 가서는 전제주의적 성격의 제국을 눌러 이기고 승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그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황제 의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하느님께만 경신례를 바침으로써, 순교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이 죽음까지도 신앙 수호를 위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잇었던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세속의 권력자인 빌라도 앞에서 당당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에 동참한다는(1디모 6,13)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믿고 고백하는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다는 인식이 죽음의 공포를 벗어버리고 황제 의식을 거부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서 그분의 승리에 또한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주님은 역사 안에 현존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서 그분의 승리에도 참여하게 된다는 믿음 속에서 죽음마저도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날이 오면 하느님께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실 것임을 믿었던 자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요한의 묵시록은 묵시가 된다. 그들은 경신례 특히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한가운데 그들의 주님께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과 그러한 경신례를 통해 그들의 주님과 온전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다. 이같은 요한 묵시록은 '전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묵시록에는 묵시와 전례라는 두 개의 문학 유형이 섞여 있다.

 

  이제 지적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추어진 미래를 열어 보여주시는 모든 것을,전례를 거행하는 속에서 이미 맛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례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능동적으로 세상에서 용기 있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최종적인 승리가 확실하게 보증되어 있다면 신앙인들은 그 승리가 완성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 에너지가 바로 전례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생명력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이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로고스이시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업적은 새로운 창조이며, 새로운 출애굽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분이시다. 그런 점에서 예수 안에서,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삶은 죽음을 통해 생명에로 건너가는 출애굽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삶의 사막을 횡단하는 신앙인들을 양육하시고, 언약의 땅인 낙원에로 그들을 이끌어 가신다. 하느님은 이처럼 우리의 오늘, 우리의 현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존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3. 저자와 집필 연대 및 저술 목적

1) 저자와 집필 연대

요한 묵시록은 4번씩(1,1; 1,4; 1,9; 22,8)이나 저자의 이름을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22,9에서는 "나도 너와 네 형제들인 예언자들과 또한 이 책의 말씀들을 지키는 사람들과 같은 종이다. 너는 하느님께만 경배하여라"하는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자기 자신을 예언자의 범주에 집어 넣고 있다.

  150년 경에 돌아가신 성 유스티노 교부를 비롯하여 초세기의 그리스도교 전승은 예수께서 사랑하셨고, 복음서와 세 서간의 저자로 간주되는 사도 요한이 묵시록의 저자라고 한결같이 증언해 주고 있다. 그리고 2세기 중엽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는 묵시록이 96년에 암살 당한 로마 황제 도미시아누스 통치 말년 약 94/95년 사도 요한이 파트모스 섬으로 귀양 가서 썼다고 증언한다.

 

2) 저술 목적

묵시록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거나 종말의 어느 한 순간을 미리 예견케 해주는 책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책은 더더욱 아닏. 하느미의 구원 역사의 손길을 통해 오히려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이다.

  요한 묵시록은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위기와 혼란이 몰아치던 시기에 특별한 목적을 갖고 쓰여졌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서는 안티오쿠스, 4세(기원전 175-163)가 헬레니즘화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면서 유다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유다인들의 저항과 반발이 거세게 일던 시기에 쓰여졌다. 요한 묵시록 역시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한 신앙인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한 메시지는 신앙 고백임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고 로마 제국이 취하고 있던 공식적 이교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증인이었다. 그는 그 옛날 예언자들이 사용했던 말과 이미지들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던 것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은 한 마디로 "여러분은 세상에서 환난을 겪겠지만 힘을 내시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요한 16,33)라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주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다니엘서가 쓰여진 목적은 헬레니즘 이교도에 의해서 유다인들의 유일신 사상이 중대한 위협을 받고 있던 시대에 그에 대항하여 투쟁하도록 유다 민족의 위대성과 용맹심을 불러일으켜 주기 위함이었다. 요한 묵시록의 집필 목적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박해에 직면해 왔던(2,8-10. 12-13; 6,9-11; 7,14; 13,11; 17,6; 20,4)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묵시록의 저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던 사람은 로마 황제였다. 소아시아 지방에 살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황제 의식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로마의 법은 모든 시민들에게 황제의 동상 앞에서의 희생제물을 봉헌 하면서 '카이사르는 주님이시다'라고 외치게 했던 것이다. 황제를 주님으로 섬긴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눈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주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에 그분의 이름을 굳게 지켜야만 했고(2,13)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주님이라는 호칭을 부여할 수 있었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이미 상당한 숫자에 육박할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그 숫자가 증가 일로에 있던 순교자들에게 어떤 생명이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는 순교자들이 누리게 될 복된 삶에 대해 자주 언급하면서 순교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행한 증언 때문에 살육 당해 제단 아래 놓여져 있는 이들(6,9-11), 승리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있는 이들, 하늘에서 영원한 축제를 거행하고 있는 이들(7,9-17), 사탄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12,7-11), 어린양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나서는 이들(14,1-5), 하는로부터 복된 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14,13), 끝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간 통치한 이들(20,4-6), 그들이 바로 순교자들인 것이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물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대상으로 묵시록을 썼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영토에 퍼져 있는 일곱 교회들이 겪어여만 했던 고통과 시련을 똑같이 겪고 있는 모든 교회들은 마치 묵시록의 메시지가 자신들을 위한 것인 양 묵시록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현실의 유혹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묵시록의 독자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묵시록의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지라 할 수 있다.

 

 

 

4. 참조

-백광진 신부님의 인터넷 성서 자료 참조

1) 황제숭배사상

황제숭배사상은 황제께 충성을 바치려고 하는 과잉충성에서 출발하여 로마 제국의 왕을 신처럼 모셨다. 도미시아노 황제 때에 와서는 황제가 스스로 하느님으로 자처하여, 자신의 신상 앞에 향을 피우면서 "황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절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황제숭배사상은 악마의 덫이었으며 수많은 치명자를 낳게 했다.

 

2)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승리

  저자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영광과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미' 역사 안에 와 있지만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승리는 '아직' 이 역사 안에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그리스도처럼 아직 악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묵시록의 수신인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라고 1장 4절에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로마의 총독들에 의해 지배된 도시에 속한 교회들이다. 그러나 성서 주석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듯이 이 묵시록은 모든 교회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말할 수 있다.

 

2) 교회의 당면 문제

그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내적 위험으로는 교회내에 이단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니골라오파(2, 6 참조)는 신앙의 전통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2, 14 참조). 그리고 아시아 공동체가 종교적 생활이 이완되면서 사랑의 행위가 식고(3, 2 참조) 처음에 가졌던 그 열성을 잃어가는 것(2, 4 참조)등이다.

  한편 외적인 위험으로는 2장 8-10절에서 나타나듯이 유다인들의 적개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위험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 정부의 박해라고 할 수 있다(6,9-11; 17,6).

  저자는 박해와 고통을 극복해냄으로써 그리스도의 승리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묵시록의 저자는 교회야말로 순례의 도정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인 지상 예루살렘(11장 참조)이면서, 동시에 어린양인 그리스도께서 사도들 위에 세우신 천상 예루살렘이라는 거룩한 도시로 상징되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불변하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신부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믿음직한 신랑인 셈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교회란 바로 '도시'와 '신부'라는 두 표상이 일치하는 것이다.

  '신부'라는 말은 교회가 내적인 부정적 요소들을 극복하여 신랑인 그리스도와 가장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완전한 일치를 이룰 때가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연결되어 발전해 나가야 하는 존재를 말한다. 즉 개개인에게 관심을 가는 인격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를 '도시'라고 표현한 것은 교회 외적인 사회적 모습을 말한다. 즉 교회는, 교회에 가해지는 박해는 물론 사회내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진로를 굳건하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내 외적인 두 가지의 모습이 일치하는 가운데 점차 발전하여 완성에 이르러야만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거룩하고 사랑스런 그리고 사랑할 능력을 지닌 신부인 교회는 어떠한 박해나 고통에서도 더럽혀지지 않을 도시가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종말에 완성되는 모습이기도 한다.

 

4) 묵시록의 사탄

요한 묵시록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한 빛의 나라는, 늙은 뱀이며 마귀, 사탄이라고 불리 우는 용의 나라와 대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대치 속에서 사탄은 지상에 사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12, 9). 여인의 아들을 삼키려다 실패한 사탄은(12, 6),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를 위해 증언하는 일에 충성스런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움을 계속한다(12, 7). 사탄은 지상의 부정적인 세력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사용하고, 그 힘으로 교회에 대항하여 싸운다.

  이처럼 묵시록에서의 사탄은, 창세기에서 사탄이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류의 원조를 타락으로 이끌어들였듯이 현세적인 여러 형태로 나타나 신자들을 박해하며,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탄의 힘이 결국은 하느님의 영역에는 못 미치며, 마지막에는 영원한 패배를 볼 것이라고 기술함으로써 신자들에게 주님께 대한 항구한 사랑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5) 묵시록의 하느님

'전능하신 주 하느님'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구원의 역사에 있어 결정적인 승리를 하시는 하느님을 일컫는다. 또, '거룩한 자'는 구원역사의 발전 안에서 하느님이 가지시는 최상의 공의로움을 나타낸다. 그밖에 '정의로운 자', '옥좌에 앉으신 자', '우리들의 아버지', '살아 계신 자' 등으로 하느님을 표현하고 있다.

  묵시록에서 하느님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도 오실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당신의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모든 구원경륜을 다스리시고, 그것을 시간 속에서 발전시키며 윤리적이건 물리적이건 모든 악을 변증법적인 대립을 통하여 전복시키고 파괴시키는 분이시다. 또한 모든 장애를 제거한 마지막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며, 구원된 공동체 즉 천상예루살렘과 함께 또는 특별한 관계 안에서 각 개인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6) 묵시록의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에 대한 묵시록의 표현은 '환시'의 시작부분에 나타나고 있다(1, 12-20). 즉 죽으셨다가 살아 나셨으며 하느님의 모든 특권을 다 받으신 분으로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살아 계신 분이다. 또 그리스도는 당신의 손으로 교회를 잡고 계시며 힘차게 뒤에서 밀어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은 내부에서부터 교회를 정화시키시며(1-3장), 교회를 판단하시고 악마적 요소와의 싸움 속에서 신자들이 당신이 오실 시간과 당신과의 관계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모든 악의 세력을 교회와 함께 쳐 이기시며 교회로 하여금 완전한 신부가 되도록 만들고 계시는 분이시기도 한다(4-21장). 이처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옥좌에 오르셔서 부활로 얻은 개인적인 승리를 교회의 역사 속에서 계속 실현시키는 분이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묵시록 저자에게 그리스도는 어린 양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묵시록에서 그리스도를 부르는 특정적인 호칭으로 볼 수 있다.

 

7) 종말의 심판

저자의 최대관심사와 이 책을 쓴 목적은 마지막 심판인 동시에 종말의 구원이다. 하느님에 의해 설정된 마지막 시기에 대한 임박한 날짜는 땅을 파괴하는 이들의 파멸의 시간이며(11, 18),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는 구원의 시간(7, 1-8; 11, 1-2)인 것이다. 이 심판은 하느님의 분노가 절정에 달한 날에 이루어진다고 믿었다(6, 17; 16, 14). 바로 이날, 악마의 세력과 그리스도교 공동체간의 전쟁은 극에 달할 것이며 결국 마귀(12, 17)와 땅을 어지럽히던 자들은(11, 18) 하느님의 분노에 의하여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하느님은 순교자들에게 피의 대가를 치러주실 것이며(19, 2)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선언해주실 것이다(18, 20). 즉 심판의 날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겪고 있었던 고통의 끝을 의미한다.

  심판의 날은 첫째 '잠시'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박해가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주 '짧다'(6, 10)고 말하며, 촉박한 기대를 얘기해주고 있다(1, 1; 22, 6). 용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낼 수 가 있다(12, 12; 30, 3).

  하느님의 의해 주어진 이 짧은 시간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께로 회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의해 또한 세상에 의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 시간은, 11장 18절에 의하면 죽은 자들의 심판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보상을 위한 시간이며, 세상을 파괴하는 자들의 전멸을 위한 시간이다. 세상을 심판할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확신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때까지 이 땅에는 하느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이 대립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적고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하느님의 의를 위하여 사탄과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세상으로부터 구제된 사람들(5, 10)이며, 죄의 권세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람들(1, 6)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왕국을 완성해 나가는데 노력해야 할 일꾼이고, 이 하느님의 왕국은 종말에 가서야 우주 안에서 실현될 것이다. 이는 악마적 세력이 존재하는 지상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실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 예를 순교자들의 죽음으로 알 수 있다. 순교자들의 처참한 죽음은 일순간 사탄의 승리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11, 7; 13, 7), 그것은 하느님의 참된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통하여 사탄의 왕국을 이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묵시록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의 초점이다.

 

8) 박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박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왕국을 이룩한 지상에서 사탄의 권세가 파멸한다는 표징이지 마지막 시기가 임박하였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받는 박해는 이미 예견되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하느님의 왕국을 더욱 빛내줄 하나의 표징이다.

  이처럼 묵시록의 저자는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과거나 미래의 역사를 가지고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왕국의 종말론적 실현을 가지고 위로하고 있다.

 

6.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하면서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는 유언 장면이 요한 복음서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성서에는 예수의 형제에 대해 언급된 곳도 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예수의 형제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가 평소에 특히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고 전하는 요한이라는 설이 강하며, 그는 예수의 사후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라고 하는 성서의 기록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겼다고 전해진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요한이 마르코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성령을 받았을 때 마리아도 함께 있었다고 하니, 이것은 요한이 늘 마리아를 모시고 생활하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초대교회를 이끌다가 에페소로 전도하러 갈 때도 마리아를 모시고 떠났으며, 그녀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에페소의 제3차 공의회 교서가 기록하고 있다.

  요한도 도미시아노 황제의 박해를 받아 에페소 건너편에 있는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영상으로 보았으며, 그가 본 일곱 황금 등경은 요한이 전도하던 에페소지방을 비롯한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 서남부에 있던 일곱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던 이방(異邦)지역이었으나, 그리스도교의 초창기에는 어느 곳보다 신앙심과 생명력이 넘치던 곳이었다. 핍박을 이겨내고 교회의 성장을 이룩한 소아시아 지방은 1453년 비잔틴 로마의 멸망이후 이슬람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서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피폐한 땅으로 바뀌었다.

1) 에페소는 사도 바오로가 정열을 기울여 전도하던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바오로에 관련된 뚜렷한 유적보다, 바오로가 닦아놓은 기초를 더욱 공고히 하고 확장하기 위해 그보다 뒤에 이곳에 온 요한의 흔적을 더러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비교적 장수한 요한은 순교하지 않은 유일한 사도라는 전승이 있다.

  터키 남부 이즈미르 항구에서 남쪽 7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에페소는 로마의 소아시아 지방 속국의 실질적 수도 구실을 하였다. 또 한 그리스시대부터 식민지로 번영하였으며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중심지였다. 에페소의 들판 한가운데, 오늘날 셀주크라고 불리는 마을에는 우리나라 서울의 남산만한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 같은 외톨이 동산이 있고, 그 위에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성채가 있으며, 이 산 아래 요한을 기념한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요한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되어 건립되었다고 하며, 당시 소아시아지방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웅대하였다.

  대리석으로 기둥을 세우고 벽돌로 단과 벽을 쌓는 전형적 로마 건축양식인 이 성당의 지하에는 요한의 것으로 추측되는 무덤이 있고,  성당의 마당 한가운데에는 세례처가 마련되어 있다.

  요한은 에페소의 주민으로서 그곳 신자와 함께 오랫동안 생활했기에, 첫번째 편지를 누구보다 정을 쏟았던 이곳 교회에 보낸 것이다. 셀주크에서 옛 에페소로 가는 길목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이 폐허로 남아 있다. 아르테미스는 로마 신화에서 다미아나라고 하며,  에페소의 수호신이다. 바오로가 은장이들의 시위로 에페소를 떠나야 했던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지금은 거대한 대리석 기둥 하나만 남아 있고,  수만 개의 돌조각이 사방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셀주크 마을에서 남서쪽 3킬로미터 지점에는 고대에 번영했던 옛 에페소 시가의 페허가 있으며, 터키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상업이 발달하고 학문과 예술이 융성하던 에페소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문란한 항구이기도 하였다. 체육관, 야외음악당, 경기장, 도서관, 신전, 공중목욕탕과 화장실 그리고 창녀의 집들도 발굴되어 순례자의 관심을 모은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폐허의 아르카디안 길바닥에서 창녀의 집으로 가는 표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431년과 449년 두 차례의 세계공의회와 많은 지역 주교회의가 열렸던 마리아의 이중 성당(Double Church)도 이 지역 외곽에서 그 허물어진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셀주크에서 약 7키로미터 거리에 있는 나이팅겔 산 정상에는 '메리에마나'(터키 어로 어머니 마리아라는 뜻)라고 불리는 비잔틴식 경당이 하나 있다. 올리브나무로 우거진 산속에 있는 이 조촐한 건물은 마리아가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 '마리아의 집'이다.

 

2) 스미르나  

이스탄불의 남쪽,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의 그리스시대부터 번창하던 항구이며, 현재는 이곳을 이즈미르라 부른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스미르나에 침입한 그리스 군은 아타튤크 군에 밀려 퇴각할 때 이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였기에 지금의 시가는 그 후에 재건된 것이며, 이곳에선 옛 교회의 유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요한은 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장차 환난을 당하게 되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월계관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스미르나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유로운 도시였다. 그래서 이곳 시민들은 충성과 성실함을 가치의 척도로 삼았다. 스미르나에는 요한의 수제자인 뽈리까르뽀가 있으며, 그는 이곳에서 순교한 첫번째 주교이다. 그는 스승이 편지에 썼던 것처럼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다. 그는 예수를 부인하기만 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86년 동안 주는 나를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주를 배반할 수 있겠는가'하면서 화형을 자청하였다.

  터키의 국법으로 그리스도교의 전도를 금하고 있으나 전국에서 몇 개 안 되는 교회가 지금도 미미하나마 활동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스미르나에 있는 뽈리까르뽀의 기념성당이다. 외관은 누렇게 퇴색된 2층 건물이지만 지하에 있는 성당 내부는 현란하게 꾸며진 현대 건물이며, 성당의 천장과 벽에는 뽈리까르뽀 주교의 순교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2세기 베르가모 왕국의 수도였고 요한이 세번째로 편지를 보낸 베르가모는 고대 로마가 소아시아 속령을 다스리던 행정 중심지였으며, 에페소에 못지 않은 유적이 산재해 있어 유럽인들의 내왕이 잦은 곳이다. 이곳은 스미르나에서 북쪽으로 10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현재 8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3) 베르가모

기원전 7세기의 명의(名醫) 아스클레피오스가 의료센터로 이용한 아스클레피온이 있다. 그는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게 되었고, 제우스 신을 위한 제단은 사탄의 왕좌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이집트의 신 세라피오에게 바쳐진 고대 베르가모의 거대한 신전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세워졌는데,  비잔틴시대에 그것이 성당으로 전환되었고 후에 사도 요한과 순교자 안티파스 주교에게 헌정되었다. 베르가모의 세라피온은 현재 두 개의 붉은 벽돌탑 일부만 남아 있다.

 

4) 티아디라

스미르나에서 동북쪽으로 9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지금의 아키사르 마을이다. 이 마을 한가운데 옛 성전의 벽과 기둥의 일부가 남아 있고, 마당에는 작은 석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모직제품과 자주 빛 염색공업이 활발했던 무역도시의 옛 모습이나, 사악하고 음란했던 이세벨이 이 마을과 교회를 미혹하게 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업자들과 어울려 잔치를 베풀고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나누어 먹던 그 옛날의 흥청거리던 이 도시는 조용한 시골마을로 바뀌었다.

 

5) 사르디스  

스미르나 동쪽 8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지금은 '살리홀리'라고 불린다. 1950년대에 와서 이 인근의 유적이 프린스턴대학 조사팀에 의해 발굴되어 유다 회당, 체육관, 경기장, 목욕탕들이 복원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빼어난 것은 기원전 5세기부터 건립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이다. 우람한 코린트식 대리석 기둥이 아직도 20여개 서있고, 여기저기 거대한 석편이 흩어져 있으며, 그 중 두 개는 기둥머리의 장식까지 완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두 기둥의 바로 옆에 아담한 모습의 사르디스 성당이 풍뎅이처럼 붙어 있는데, 일부는 복원한 듯하다. 이 신전의 규모로 보아 사르디스 사람들의 부귀와 영화가 어느 수준이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여러 차례 전쟁에 시달려 그들의 온화한 성격은 나약하고 소극적으로 변하고, 한번 지녔던 신앙과 사랑의 열정이 식어갔으며, 그러기에 요한이 '살아 있다지만 실상은 죽었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6) 필라델피아

지금 이름은 알라세히르이다. 스미르나에서 동쪽 180킬로미터 지점, 사르디스 남쪽에 있다. 필라델피아 일대는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진이 자주 일어나서 '타버린 탕'으로 불리었으나 토지는 매우 비옥하다. 특유작물 재배의 중심지였으며, 문화적 우수성과 중요한 종교적 축제들 때문에 '작은 아테네'라는 별명도 있었다. 요한이 필라델피아 교회가 가장 훌륭하다고 칭찬할 만큼 수준 높은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옛 성당의 면모를 추측할 만한 거대한 2개의 벽돌기둥만 남아 있다.

 

7) 라오게이아

일곱 교회중에서 가장 동쪽에 있으며 스미르나에서 250킬로미터 거리에 잇다. 골로사이서에 나오는 히에라폴리스(지금의 팜무칼레)와 골로사이(지금의 코나즈)도 이 근처에 있어, 필자는 히에라폴리스를 취재하고 난 다음 라오디게이아를 찾았다. 기원전 250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왕에 의해 건립된 이 도시는 모직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부근의 약수를 이용한 의료와 휴양지로 번영하였으나 부귀와 안락을 얻은 그들의 미지근하고 우유부단한 신앙의 태도를 요한은 나무랐던 것 같다.

  라오게이아 언덕에는 체육관, 공회당, 야외극장 등 비잔틴의 유적과 더불어 예 성당의 벽으로 추측되는 거대한 석조물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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