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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서 입문
1. 넷째 복음서 제4복음서 역시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큰 전통에 따라, 세례자 요한이 등장한 때부터 주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신 날까지(사도 1,21-22) 일어난 일들을 전한다. 특히 이 작품은 하나의 ‘증언’으로 제시된다.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진정한 의미의 복음서를 저술하려고 하였음은 확실하다.1) 매우 장엄한 어조로 펼쳐지는 신학적 머리글(1,1-18)에 이어, 저자는 첫째 부분에서 서로 연관된 여러 사건과 가르침을 전하려고 애쓴다(1,19─12,50). 둘째 부분에서는 예수님 수난 때의 일들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을 길게 이야기한다(13,1─21,35). 요한은 짤막한 맺음말에서 분명히 밝히듯(20,30-31), 특정 기적 또는 표징들을 가려 내어 전하면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독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그럼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 이루어지는 자기들의 삶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이끌려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당시 그리스도교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탈선에 관해서도 입장을 표명해야만 하였다.
2. 구 조 저자의 구상(構想)을 이보다 더 자세히 규명하고 세부 사항을 끌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이 복음서에 나오는 일화들은 대부분 그 앞뒤 경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어떠한 기준으로 그러한 일화들이 짜여졌는지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편집될 때에 어떤 단락들의 위치가 바뀌었으리라는 가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까다로운 면을 지닌다. 예컨대 5장을 7,15와 7,16 사이에 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이 자료들의 지리적 배치가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곧 예수님의 갈릴래아 체류에 이어 예루살렘에서 하신 긴 활동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것이다(4,43-54와 6,1─7,13). 어떤 학자들은 이 가설을 더욱 밀고 나아가, 수많은 본문의 위치가 편집 과정에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 복음서의 이른바 원구상(原構想)을 과감히 재구성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학설들을 지지하는 근거를 복음서 본문의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 이 학설들에는 우리 현대인들의 논리적 요구에 항상 부합하지는 않는 옛날 사람들의 구전(口傳) 전승, 그리고 히브리 말 저술에 적용되는 매우 유연한 법칙들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 현재 복음서에 제시된 본문의 맥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요한 복음서가 머리글에 이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한다. 더 나아가서, 지리적 또는 시간적 표지, 그리고 (이야기나 담화와 같은) 일정한 문학적 도식의 순환에 따라 여러 단락을 구분해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단락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문제이다. 어떤 학자들은 논리적 기획이 있다고 여기고서는, (빛, 생명, 영광 같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이 질서 있게 전개되어 가는 단계들을 그려 내기도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 점진적으로 벌어지는 대결의 단계들을 밝혀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여, 요한 복음서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큰 심판으로 마무리되는 일종의 드라마 또는 소송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주제에 따른 구상도 제시된다.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엄밀한 의미의 합리적 종합은 포기한다. 그 대신에 주제의 리듬·선율·화음 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형시켜 전체를 하나의 악곡으로 만드는 변주곡(變奏曲) 같은 형태의 구상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셈족 말로 쓰인 문학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징, 곧 내용이 같거나 비슷한 말로 문단의 앞과 뒤를 묶는 문학 방식이 이 요한 복음서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밝혀 내기도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또 이 복음서에서 쓰이는 수(數)의 비유적 의미를 강조한다. 그리고 3과 7이라는 수에 바탕을 둔 구상을 알아볼 수 있다고 믿는다. 끝으로, 어떤 학자들은 탈출기의 줄거리에 해당하는 사건들의 전개를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이 복음서가 옛 유다교 회당 전례의 성서 봉독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모든 학설이나 가설은 시사하는 바가 많고 때로는 매우 정교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복음서 전체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다. 요한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구상 원칙을 따랐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또 그가 자기 작품의 저술을 완결지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곧 넷째 복음서는 엄격한 원칙 없이 구성된 일련의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일화들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따른다. 하나는, 일정한 양상에 따라 전개되는 예수님과 “세상”의 대결이다. 다른 하나는, 처음에는 갈릴래아, 그 다음에는 특히 예루살렘에서, 믿는 이들의 깨달음이 어렵사리 진척되어 가는 과정이다.
3. 공관 복음서들과의 관계 요한은 전체적으로 복음서라는 문학 양식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책들, 곧 공관 복음서들과는 여러 관점에서 구분된다. 먼저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장소와 시간상의 순서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오랫동안 갈릴래아에 머무르신다. 그 다음, 공관 복음서마다 여행 기간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유다 지방으로 가시고, 끝으로 예루살렘에 잠깐 머무르신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와 달리, 이 지방 저 지방으로 자주 옮겨 다니시고, 유다 지방 특히 예루살렘에 오래 체류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1,19-51; 2,13─3,36; 5,1-47; 7,14─20,31). 그리고 공관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과월절을 한 번만 지내시는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 축일을 여러 차례 곧 여러 해 지내신 것으로 언급된다(2,13; 5,1; 6,4; 11,55).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공생활이 공관 복음서와 달리 2년 이상 지속되었음을 시사하게 된다. 다른 점은 문체와 구성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공관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여러 가지 짧은 말씀을 한데 모아 놓거나 간략한 말씀이 곁들여진 기적 이야기로 된 작은 단락들이 주를 이룬다. 반면에 요한은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이나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표징 곧 기적들을 선별해서 다룬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사건이나 표징을 대담이나 설교로 길게 설명한다. 이렇게 해 나아가다가 어느 한 순간에는 매우 극적인 정점에 다다르기도 한다. 요한은 모든 복음서에 공통된 자료를 독자적으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자료를 이용한다는 사실로써도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구분된다. 물론 공관 복음서 전통에서 다루는 사건들을 요한도 많이 이야기한다. 곧 세례자 요한의 활동과 요르단 강에서 거행된 예수님의 세례와 첫 제자들의 소명(1,19-51),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 내신 일화(2,13-21), 고관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신 기적(4,43-54), 중풍 병자와(5,1-15) 눈먼 이를 고쳐 주신 기적(9,1-41), 호숫가에서 빵을 많게 하시고 물위를 걸으신 기적(6,1-21),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논쟁(7─8장과 10장), 베다니아에서 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 드린 일화, 그리고 수난과 부활을 둘러싼 사건들의 전개(12─21장) 등이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 전통의 다른 요소들은 요한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 곧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시는 유혹, 거룩한 변모, 성찬례 제정 이야기, 예수님께서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고통, 그리고 여러 가지 기적 이야기, 또 (산상 설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비유와 종말론적 설교에 이르기까지) 그 밖의 많은 가르침을 이 넷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2) 요한이 사용하는 언어도 공관 복음서와 매우 다르다. 그는 공관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단 두 번만 사용한다(3,3.5). 그 대신에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야기하기를 즐겨한다. 그리고 세상,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영광 같은 주제를 좋아한다. 요한 복음서에는 공관 복음서 전통의 많은 요소가 나오지 않는 대신에 새로운 자료들이 적잖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곧 가나의 혼인 잔치(2,1-11), 니고데모와의 대담(3,1-11), 사마리아의 어떤 부인과의 대화(4,5-42), 나자로의 부활과 그 뒷이야기(11,1-57),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13,1-19), 수난과 부활 이야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항 등이다. 그리고 사건을 길게 설명하는 설교나 대담도 주목을 끈다. 예컨대 최후의 만찬 뒤에 이어지는 마지막 대담은(13,31─17,26) 그 만찬을 넘어 교회의 시대를 준비하는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요한이 공관 복음서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많은 주석가들은 요한이 다른 복음서들을 직접 알지는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요한은 주님과 관련된 여러 전통들만 알고 있었는데, 공관 복음서 저자들도 그 전통들을 바탕으로 삼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와 공관 복음서 사이에 아주 명료한 문학적 접촉점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이 마르코 복음서, 특히 루가 복음서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가능성을 크게 높여 준다. 마태오 복음서와 관련해서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3) 아무튼 독자들이 공관 복음서의 큰 전통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요한이 전제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요한은 바로 이 전통들을 나름대로 손질하는데, 자기보다 앞서 복음서를 저술한 저자들보다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또 더 자유롭게 그 일을 한다. 요한에게 충실성이란,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는 구원 사건들을 일어난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깊이 있게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충실성은 이를테면 창조적인 것을 말한다.
4. 저술의 문제 이제 공관 복음서 전통들에 대한 이러한 독자성을 요한이 전혀 다른 사료들을 이용하였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지, 또는 요한 복음서라는 작품이 실제로 문학적 단일체를 이루는지, 단순히 여러 가지 문헌을 느슨하게 엮어 놓은 작품은 아닌지 등의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이 복음서의 첫 편집이 무슨 말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많은 학자들은 이 복음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람 말식 표현을 바탕으로 이 책이 본디 아람 말로 저술되었다가 그리스 말로 번역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그리스 말로 저술하는 저자가 이미 아람 말로 편집된 일부 단편들을 이용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복음서 본문을 더욱 자세히 분석해 본 결과, 이제는 이러한 가설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 복음서는 한 번에 저술되었다. 곧 요한 복음서는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큰 호소력을 지닌 바른 그리스 말로 직접 쓰였다. 이러한 그리스 말이 또한 이 복음서의 특징을 이루기도 한다. 특히 이 복음서에서는 아람 말에 없는 용어와 언어 유희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복음서의 문체와 문학적 특색은 그것이 단일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리스 말로 저술하는 이 저자가 본디는 셈족 말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구약성서의 그리스 말 번역본 곧 칠십인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로써, 이 복음서의 많은 사항이 설명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또한 특수 사료, 특히 기적 이야기 모음을 이용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도 공관 복음서 자료들처럼 매우 자유롭게 다룬다. 더 나아가서, 이 저자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세계에 속한 사람으로,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쓰이는 전례문이나 설교의 단편까지 더러 이용한다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머리글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 된 문학적 층(層)은 바오로의 옥중서간이나 사목서간에 나오는 찬미가들을 상기시키는 어떤 노래에서 빌려 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은 유다교 랍비들의 설교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5. 사상적 배경 모든 사상은 언어로 표현되고 그 문화적 배경과 결부된다. 사상은 또 이 문화적 배경의 관념과 생각을 반영하는 어휘와 범주를 이용한다. 사상이 독창적일 경우에는, 이러한 어휘와 범주를 새로이 조합하고 다른 데에서 빌려 온 자료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말한다. 성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뿌리를, 이 복음서가 저술된 로마 제국 내의 근동 지방에 병존하던 여러 문화에서 찾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학자들이 제시하는 요한 복음서와 여러 문화의 접촉은 매우 다양하다. 먼저 헬레니즘의 영향이 주장되었다. 이어서 구약성서와 유다인들의 여러 집단과의 관계가 점점 더 강조되고, 또 영지주의적(靈智主義的) 경향과의 관련도 제기되었다.
(1) 헬레니즘 요한이 헬레니즘의 사고 방식에 공관 복음서 저자들보다 더 친숙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식 및 진리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깊은 관심, “말씀” 곧 그리스 말로 ‘로고스’라는 칭호의 이용, 특히 우의(寓意)의 사용 등이 이 방향으로 연구해 가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기원후 1세기 초엽에 유다인들의 종교적 유산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시도를 크게 벌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 필로의 작품에서 (매우 막연하기는 하지만) 로고스의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요한 복음서에 대한 헬레니즘의 영향이 신빙성 있다고 여기는 데에 일조하였다. 필로의 사상이 팔레스티나 밖에 곧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다인들의 다양한 집단에 널리 유포되어 학문과 생활의 한 양식(樣式)을 탄생시켰을 개연성은 있다. 요한도 이러한 양식을 따르는 단체 한둘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필로와 요한의 전체적 시각은 명백히 다르다. 요한에게서는 어떠한 인식의 단계도 철학적 학문과 숙고를 ‘존재’ 그 자체 곧 하느님을 관조(觀照)하는 데에까지 끌어올리지 않는다. 그에게 본질적인 것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신앙 안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필로와 요한이 똑같은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그 의미가 각각 다르다. 그래서 요한의 로고스는 필로에게서처럼 하느님과 우주 사이에 자리잡은 중간 피조물이 아니시다. 창조 이전부터 계시는 곧 선재(先在)하시는 “아드님”, “아버지”의 행위와 완전히 결합되신 분이시다.
(2) 유다교의 영향 제4복음서의 구약성서적·유다교적 뿌리는 일찍부터 밝혀졌다. 우선 요한의 글에 셈족 말 곧 히브리 말 또는 아람 말식 표현이 많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복음서가 본디 아람 말로 저술되었다는 가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 밖에, 요한이 구약성서를 기억에 따라 이용한다는 사실이 이 복음서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요한은 구약성서를 분명한 방식으로는 드물게밖에 인용하지 않는다. 또 구약과 신약을 명확히 구분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구약성서의 여러 표현 방식과 특히 지혜 문학의 여러 주제를 이용한다. 곧 물, 천상 양식과 만나, 목자, 포도나무, 성전 등이다. 이는 요한이 이러한 주제들과 그 변형들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개성 있게 또 독창적으로 이용할 줄도 알았음을 뜻한다. 학자들은 또 이 복음서 저자와 당시의 유다교 사이의 접촉점(이론의 전개 유형, 저술 방식, 랍비들의 세계에서 이용되던 어휘 등)을 확인해 내기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유다교 전례를 시사하거나 또는 그것에서 빌려 온 요소들을 밝혀 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확실한 사실은, 요한이 기원후 1세기 팔레스티나 유다교 사고 방식의 관례와 관습에 정통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분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9,22; 12,42 참조). 유다인들의 율법지상주의나 전례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먼 요한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새 세상의 새로움과 초월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20세기 중엽 사해 부근에서 발견된 쿰란 문헌들도 제4복음서와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유다인들의 특정 세계를 알게 해 주었다. 이 복음서와 쿰란 두 군데에서 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의 대립으로 표현되는 이원론(二元論), 곧 그 동안 종교와 도덕의 영역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아 왔던 이원론이 지적되었다. 또 양쪽에서 다, 그 추종자들이 자기들의 공동체와 함께 마지막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여 구약성서의 특정 구절에 담긴 의미를 밝혀 내는 데에 애를 썼다는 점도 부각되었다. 그리고 두 군데에서 다, “스승”에게 큰 중요성이 부여되고, “진리의 영” 또는 “보호자”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러나 쿰란 공동체와 요한 복음서의 공동체 사이에는 이러한 공통점보다 오히려 다른 점이 더 많다. 우선 서로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요한은 쿰란의 일부 문헌들에서 볼 수 있는 묵시 문학적 사고 방식이라든가, 쿰란 공동체에서 보게 되는 병적인 율법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의 역할도 이 분파(分派)의 ‘정의의 스승’이나 두 메시아와 상당히 다르다. 물론 표현 방식이라든가 관념의 공통점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경향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3) 영지주의 200여 년 전부터 요한 복음서를 여러 영지주의적 경향과의 관계 속에 자리매김을 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사고 방식에 따르면, 그리스 말로 ‘그노시스’라고 하는 영지(靈智)는 일반적으로 자기들만의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이 가르침에 입문한 자들은 일정한 정화(淨化) 과정을 거친 뒤, 종교적으로 중대한 진리를 깨닫게 됨으로써, 또는 황홀경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지주의 세계에서는 이 교리 때문에 물질적 또는 육적 실체들을 ‘악(惡)’ 그 자체로 여기고 그러한 것들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이러한 영지주의적 경향들을 기원후 1세기 이후의 문헌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문헌들은 다소간 근동의 영향을 받은 헬레니즘의 배경, 또는 그리스도교의 배경 안에서 저술되었다. 어떤 영지주의 전통들은 기원후 1세기 이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요한 복음서와 이 사상의 접촉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사료가 별로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있는 것들도 상대적으로 후대의 작품들이어서, 이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학문적인 근거 없이 상상으로만 해답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또 상당히 후대의 저술들을 바탕으로, 기원후 1세기에 대부분의 종교 세계가 거대한 영지주의적 체계에 둘러싸였다고 가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의 고려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주로 기원후 2-3세기, 일부는 그 이전에 이집트에서 그리스 말로 저술된 특정 경향의 철학적-종교적 문헌집인 「헤르메스 전집」(라틴 말:Corpus hermeticum)의 특징적인 책 몇 권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제1권과 제13권이 상당히 단일한 이론 체계를 제시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신적’ 또는 ‘원초적’ 인간이 타락하여 물질 속에 빠진다. 그에 따라 행성(行星)들을 지배하면서 파멸을 불러 오는 대기권들을 가로질러 그 인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여러 조건과 단계가 서술된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신비스러운 존재, ‘빛’과 ‘생명’의 근원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인간의 참 생명은 직접적이고 또 참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인식을 통하여 이러한 하느님께 다다르는 데에 있다고 한다. 이 책들과 요한 복음서 사이의 문학적 종속성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종속성이 성립된다고 할 경우, 어느 쪽이 출전인가, 곧 어느 쪽이 어느 쪽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가도 난제이다.4) 아무튼 이 둘의 일부 관념과 표현 방식이 공통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사상의 흐름이 마주치고 대립하는 복합적인 세계에서 교육을 받은 요한은 사람들이 받아 누릴 수 있는 신적 생명과 인식 사이의 관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도록 자극과 격려를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대처한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그의 믿음이 형이상학적 비관주의를 배제하고, 영원하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사실이 육체와 인간적 조건에 영지주의적 사변(思辨)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4) 요한의 독창성 이렇게 요한 복음서를 여러 가지 사조(思潮)에 상세하고 면밀히 접근시켜 보았지만, 요한이 그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채택하였다고 집어 내지는 못하였다. 요한이 당시의 큰 철학적-종교적 흐름들이 합류하는 지역에 산 것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지역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스적 사상과 근동의 신비주의가 만나고, 유다교 자체도 바뀌어서 외부의 여러 영향에 개방적이었던 대도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한이 보여 주는 사상의 뿌리 깊은 독창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독창성은 우선적으로 요한이 속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생활 및 말씀과 관련된다. 요한은 또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창건된 일련의 사건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 처음으로 신학 작업을 할 때에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요한은 그 혜택도 입었다고 본다. 학자들은 바오로, 특히 그의 옥중서간들, 또 교회 전통에서 에페소와 관련되는 문헌들과 많은 접촉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요한은 또한 그리스도교의 여러 전례문(典禮文)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은 이렇게 당시의 그리스도교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랜 묵상 끝에 자기가 터득하게 되고 또 높이 평가하게 된 여러 사조에 대하여 완벽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취합하여,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20,31) 예수님의 실체와 역할이라는 복합적이면서도 단순한 관점에 따라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동화시킨다.
6. 제4복음서와 역사 제4복음서가 지니는 역사성의 문제는 19세기 초엽부터 제기된다. 요한의 작품을 공관 복음서들과 구분짓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특수 사항에 여러 주석가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하여 이 복음서의 역사성에 질문을 던지기에 이른다. 곧 요한 복음서에서 강력하게 드러나는 신학적 성격이 역사와는 다른 관념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상징들을 많이 이용한다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언행, 곧 첫눈에 파악되는 현상 너머로 독자를 이끌어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은 제4복음서가 사실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단호한 판단을 내린다. 그들은 이 복음서를 하나의 묵상 또는 ‘신학적 명제’로만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의 저술 방식과 의도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고, 역사 비평적 방법에 대해 새로이 반성하고, 또 요한의 자료들을 더욱 차분히 연구한 결과,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 곧 ‘역사 아니면 신학’이라는 예전의 양자택일을 버리게 되었다. 요한 복음서의 역사성에 대한 해답이 전에 생각하였던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라는 뜻이다. 우선 공관 복음서 저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이야기하는 많은 사실을 요한도 전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 특히 세례자 요한의 활동,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일, 여러 기적, 그 가운데에서도 빵의 기적이 특히 이러한 부분에 속한다(1,19-51; 2,13-21; 6,1-21). 전체적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12─21장). 요한 복음서와 공관 복음서의 해당 구절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요한 역시 교회 전통으로 알려진 사실들을 전하고자 하였으며, 또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하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여러 사항과 관련해서, 역사성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독창적 요소들이 요한 복음서에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곧 지리 및 연대에 관한 자료들, 그리고 유다 지방이나 로마 제국의 제도와 관계되는 사항 등이다. 이 모든 것은 저자가 기원후 1세기 팔레스티나에서 벌어지는 생활상을 잘 알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은 기원후 66-72년에 벌어진 유다 독립 전쟁 이후에는 없어져, 요한 복음서와는 시간과 공간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이다. 이로써 요한이 자기의 작품을 예수님 역사의 실제적 상황과 관련지으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요한 복음서는 단순히 역사와는 관련이 없는 신학적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 복음서는 특정한 때에(2,20 참조) 사셨고 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요한은 이분에 대한 전통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저자는 자신을 사실의 목격자 곧 증인으로 여긴다.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증인으로 인정을 받는다(19,35; 21,24). 여기에는 이 증인이 직접 보아서 알고 있고 또 자기도 직접 관여한 사실 내지 진실을 증언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내용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고 저자는 말한다(1,14). 이러한 강생(降生)과 강생하신 분의 “영광”은 단순한 역사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복음서가 전하는 사실들의 역사적 실체가 지니는 비길 데 없는 중요성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요한은 예수님과 더불어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밝힌다. 그의 복음서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많은 표징 가운데에서 선택된 일련의 표징들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제시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20,30-31; 21,35). 복음서 저자는 또한 자기의 이러한 작업을 성서의 큰 전통 속에서 수행한다. 곧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관계를,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역사 안에서 하시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한 단계 한 단계 서술해 나아가는 전통이다. 이스라엘인들은 항상 사건이 ‘로고스’ 곧 ‘말씀’보다 우선한다고 여겼던 것이다.5) 복음서 저자는 사건을 일어난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건의 의미를 밝혀야 한다(9,1-41 참조). 곧 믿는 이들이 더 잘 깨닫아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도록, 그 의미의 너비와 깊이를 파악해야 한다. 표징들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20,31). 그리고 요한은 이러한 점진적 이해를 파스카의 신비에 따라 얻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생애는 물론 그분의 아주 하찮은 행동이라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충만한 영광 속으로 건너가셔야 비로소 그 깊은 뜻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파스카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7,39; 16,7; 20,22) 진리의 성령께서도 내려오셔야 한다. 이 성령께서 믿는 이들이 모든 진리를 깨닫도록,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실체와 행적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이해하도록 이끌어 주신다(16,5-15). 이를 심리학 용어로 표현하면, 요한의 ‘기억 개선(記憶 改善)’이라고 할 수 있다.6) 곧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였던 예수님의 역사를 이제 충분한 이해와 함께 복원하는 것이다(2,21-22; 12,16; 14,26; 15,26-27). 이러한 이해는 또 그리스도교의 큰 전통에 따라, 예수님께서 겪으신 일들을 (이 일들 안에서 그 참된 의미가 발견되는) 구약성서의 예언적 사건 및 말씀과 관련지음으로써 얻게 된다(2,17; 5,37-47; 7,17; 12,16.37-41; 19,24.28.36-37).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실체들이 완전히 새롭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는 이러한 실체들을 전형적인 그리스도교의 도식에 따라 표현해 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요한 복음서에서 매우 역사적인 진행 방식을 보게 된다. 물론 이는 사실을 정확히 서술할 뿐 그것을 구원 역사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 배치하여 그 의미를 밝혀 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실증주의적 역사가들의 진행 방식이나 요구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의 ‘역사’를 현대식으로 ‘복음 선포적 역사’ 또는 ‘질적(質的) 역사’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 복음서를 이와 비슷하게 이미 옛날부터 ‘영적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이렇게 그리스도와 그분의 행적을 깊이 이해하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분의 역사를 상징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이나 말씀이 여러 차원의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그 언행이 늘 그 자체 너머의 다른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조금씩 조금씩 깨닫게 된다. 이렇게 하여 “표징”이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이 개념에는 어떠한 일이나 말씀이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는 뜻도 들어 있다(3,14-15; 8,28; 12,32). 저자는 또한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하는 말이 본디 의도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즐겨 지적한다(7,52; 9,24-27; 11,49-50; 12,19; 16,30; 19,18-22). 이리하여 성령의 도움으로만 본문이 의도한 바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7. 저 자 이렇게 살펴본 결과, 요한 복음서는 단순한 목격자의 증언도 아니고, 또 일이 일어난 직후 단숨에 기록된 책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그 반대로 긴 성숙 기간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미완성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연결 부분들은 매끄럽지 못하고, 어떤 단편들은 문맥과 관련이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1,15; 3,13-21.31-36). 이 모든 것은 마치 저자가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전개된다. 여러 단락이 순서가 없어 보이는 것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요한 복음서는 저자 자신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마무리를 하여 책으로 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들이 21장만이 아니라 몇몇 설명까지도 분명 덧붙였을 것이다(4,2가 그러하고, 4,1; 4,44; 7,39ㄴ; 11,2; 19,35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간음한 여자 이야기(7,53─8,11)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가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곧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모르는 이 이야기가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다가, 나중에 요한 복음서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렇지만 이 단락도 경전에 속한 것으로 인정된다). 저자와 저술 시기에 관하여 이 복음서에서 직접 언급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일부러 그러하였을 수도 있다. 이 복음서를 읽는 이들의 주의가 증인이 아니라, 이 증인이 선포하고 또 묵상하는 분께만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8; 3,29; 4,41). 그럼에도 첨가분인 21,24에서는 저자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서슴없이 밝힌다. 그리고 이 제자는 파스카 사건들이 벌어지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다(13,23; 19,26; 20,2). 그는 다른 여러 본문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다른 제자”라고만 하는 사람일 것이다. 기원후 2세기부터 교회의 여러 전통에서는 이 저자를 요한이라 하고,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인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14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아시아 프리기아 지방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남긴 작품의 단편을 고려하면 약간 주저하게 된다.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인 요한만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와 ‘원로’라는 칭호로 불리는 또 다른 요한도 저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피아스가 여러 사람을 거명하는 의도가 그들이 저술한 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원히 살아 있는 말씀’에 있기 때문에, 그가 이 ‘원로 요한’을 복음서의 저자로 말하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2세기 말엽에 이레네오는 이렇게 밝힌다: “그 다음, 주님의 제자인 요한, 주님의 가슴에 몸을 기대었던 바로 그 사람도 에페소에 머무르는 동안 복음서를 출간하였다.” “요한과 주님의 다른 제자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곤 하였던”(에우세비오, 「교회 역사」 V, 20,6-8) 폴리카르포의 제자로 자처하는 이레네오에게, 이 요한은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인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는 더러 주저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경전으로 여기는 저술들을 사도들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특히 제4복음서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거의 일치됨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무라토리 경전’이라고 불리는 아주 오래 된 문헌의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테르툴리아노 등) 모든 저술가가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인 요한의 역할을 확실한 사실로 이야기한다. 다만 카이우스라는 사제를 중심으로 한 로마의 한 작은 집단만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이 교회의 전통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초, 공관 복음서들과의 상이성과 신학적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제4복음서의 저자를 요한 사도로 여기는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문제삼는다. 그들은 저자가 목격 증인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경우, 그의 작품도 아무런 역사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단정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저자를 2세기 중엽, 베드로와 바오로에게서 유래하는 여러 전통을 이를테면 종합해 낸 신학자로 보려고 하였다. 이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처음에 날카로웠다. 요한이 직접 복음서를 저술하였다는 친저성(親著性) 문제와 이 복음서가 전하는 증언의 권위 문제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복음서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여기는 것을 거의 신앙과 직결된 문제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더 잘 구분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 고찰의 발달, 그 방법론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예전의 양자택일이 의미가 없음도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이집트에서 발견된 제4복음서 단편(18,31.33.37-38)의 출판을 들 수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들은 이 단편이 110년에서 13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추정한다. 이로써 성서 학자들은 전통적 견해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곧 요한 복음서는 1세기 말경에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저술 또는 출간 장소는 그리스화한 아시아의 어떤 교회, 특히 에페소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요한 사도가 이 복음서를 편집하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학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일부는 아예 저자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 대신에 1세기 말엽, 유다 세계와 그리스화한 근동의 다양한 사조(思潮)들이 마주치던 소아시아의 어떤 교회의 그리스 말을 쓰던 그리스도인 저술가라고 길게 서술한다. 어떤 학자들은 파피아스가 말한 ‘원로 요한’을 생각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복음서의 저자가 자신을 요한 사도와 연결되는 전통과 결부시킨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에게 부여된 우월한 위치가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자는 다시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과 동일시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이상하게도 주요 사도들 가운데에서 한 번도 직접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이 사도가 실제 저자와 직접적으로, 또는 적어도 간접적으로나마 관련되고 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태어 그 이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리라는 것이다.
8. 신 학 여기에서 요한의 신학적 사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는 없다. 요한은 성서의 큰 전통에 따라, 어떤 신학 체계가 아니라 구원을 가져다 주는 사건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어떤 근본 원칙을 내놓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관심은 그리스도께만 집중된다. 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과 통교(通交)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신도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 모시며 영생에 이르는 조건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방향만 지적하기로 한다. 창조 이전부터 계시는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선재-강생(先在-降生)’의 도식은 물론 이 제4복음서에만 나오는 고유한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도, 특히 필립 2,6-11의 찬미가와 골로 1,15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대비시키는 목적으로 이 도식이 쓰인다. 이와 달리 요한은 더욱 폭넓은, 결국은 더욱 전통적인 시각을 지닌다. 그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곧 그분께서 일으키신 많은 표징과 그분께서 하신 많은 말씀을) 고찰하면서, 그것이 시간 속에 펼쳐지는 사실에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그래서 이 복음서에서는 ‘시간’이라는 주제가 중요성을 띤다). 그리고 수난과 부활로 정점에 이르게 되는 예수님 생애의 제반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광스럽게 이 세상에 드러내시는 일이 이루어진다(그래서 ‘영광’이라는 주제도 중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계시는 세상에 그대로 주어지지 못한다. 세상이 그것을 문제삼기 때문이다. 믿는 이들은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지만, 세상은 자기 안에 계시는 더없이 위대하신 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 끝나는 대립을 상기시킨다. 세상은 자기가 철저히 오해한 분을 눌러 승리하였다고 생각한 바로 그 ‘시간’에, 곧 그분을 십자가에 매단 그 ‘때’에, 자기가 거꾸로 심판을 받고 단죄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창조 이전부터 선재(先在)하신 상태를 서술하지도 않는다. 또 예컨대 성자께서 당신의 사명을 부여받으신 천상 대화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요한 복음서는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믿음과 성령의 은총으로 깨달음을 더해 가는 이들에게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로 예수님이라는 존재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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