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성당 게시판

예전의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하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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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근 [barbara59] 쪽지 캡슐

2000-05-04 ㅣ No.404

 

 

 요즘 들어 나는 성당에 가면 고해성사 실을 기웃거리게 된다.

평일 미사에도 미사 시작 30분전에 고해성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은데 신부님께서 내 목소리를 알아 들으실까봐 주저하다가 제대를 향해 내가 지은 죄를 용서를 청하며 반성을 한다.

 

 "주님 저는 오늘도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혼자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시아버님께 짜증도 내고 물어 보시는 말씀에 성의 없이 대답을 했으며,  점점 아버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요."

 

 오로지 누워서 말씀으로 청하시는 아버님이 가끔 귀찮아 질 때가 있다. 외출하신 어머님을 5분마다 부르면서 찾으시는 아버님께 요즘은 몇 번을 부르셔야 대답을 했으며, 자꾸 부르시니 짜증도 냈다.

 

 얼마나 답답하시면 금방 물어 보시고는 또 불러서 "엄마 어디 있니"하신다. 잘 설명하다가도 나중에는 대충 이야기를 하고 내 할 일을 한다.

 

 밥을 먹여 드려야 드실 수 있는 분에게, 자주 드실 것을 달라 하실 때나, 느닷없이 색다른 음식을 청할 때는" 지금 없어요, 이따 해 드릴게요" 하면서 성의 없이 대답하며, 자꾸 재촉하면 귀찮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가족들 얼굴이 안보이면 종일 이름을 부르면서 찾으시는 아버님께

  "금방 물어 보셨잖아요."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하루종일 시아버님께 많은 죄를 짓고 산다.

부르셔도, 뭘 달라고 해도, 가족을 찾아도 열 번 아닌 백 번이라도 화 내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했어야 되는데....

 

 오늘도 어머님은 강연이 있으셔서 일찍 나가셨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스무 번은 불려 가고 했다.

 

 나는 성가대 때문에 매번 장례미사에 다녀오지만 눈물이 나서 성가를 제대로 부를 수가 없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면 지금 편찮으신 아버님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해 드리지 못한 불효를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 와서는 아버님 얼굴을 드려다 보면서 퉁퉁 부어 오른 손을 잡아본다.

 그 잘 생기셨던 얼굴하며, 유머가 풍부 하셔서 집안 식구들을 잘 웃기셨던 분이, 왼손 하나만 움직일 수 있었을 때까지도 글을 쓰신다고 펜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 지금은 미완성 작품이 있었던 것까지 잊어버리고 계시니....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가끔 내가 화를 내면 " 너 왜 나한테 화를 내니." 하실 때는

" 살아 계시구나" 하는 안도감에 기쁘기까지 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에 이해를 못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 실감이 난다. 벌써 몸져누워 계신지 7년째.

온 가족이 점점 지쳐가고 있다. 아이들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말동무도 해 드리고 했었는데 점점 귀찮아 지는지 ....

그래도 할아버지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온 식구가 할아버지 앞에 자주 모이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는 피곤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단다. 나는 아직 건강하고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일이니 얼마나 고마운가. 누워서 앓고 계시는 분의 속 깊은 고통을 위로해 드리면서 끝까지 정성껏 보살펴 드리자고, 워낙 점잖으신 분이라 그렇게 오랫동안 편찮으신데도 잘 견디고 계시니 그 또한 고맙게 생각될 뿐이다. 남을 위해서도 봉사활동 하는 분들이 많단다. 우리는 이 마음 변치말자"

 

 그렇다. 시아버님의 건강이 더 이상 좋아 질 수는 없겠지만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짜증 한번 안 내시고, 열 번이면 열 번 다 달려가시는 천사 같은 시어머니 곁에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라도 좋으니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불편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아버님이 계시기에 언제나 마음 든든하다.

 

 바램이 있다면 지금의 아버님의 모습으로 말고 예전의 아버님 모습으로 바라보게 하여 주시고, 밤에는 어머님 좀 주무실 수 있게 깨우지 마시고,  열 번 부르시는 것을 줄여 여섯 번 정도로 더 적게 부르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하루 종일 불려 가다 보면, 정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며,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기에 결국 그 화살이 아버님한테 돌아간다고 할까....

 

 2000년 어버이날에는 불편 한 몸이지만 아버님을 모시고 가까운 남산으로 드라이브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다.

 장충단 공원에 분수하며 예쁘게 장식한 연등과 벚꽃은 다 졌지만 철쭉꽃이 만발한 남산을 보여드리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주님, 아직도 제 자신을 다 버리지 못하고 제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진심으로 시아버님을 끝까지 지켜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십시요.  그리고 정말 더 늦기 전에 아버님께 바깥 구경을 시켜 드릴 수 있게 기운을 찾을 수 있도록 은총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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