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선교사로 3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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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석 [saavedra] 쪽지 캡슐

2004-05-22 ㅣ No.397

홍보주일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세상끝까지 전파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복음선교이고, 어떻게 살아야 선교가 효과적인지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나름대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지낸 시간들이 아스라이 합니다.  신자분들의 호응속에 그 시간들을 나눕니다.   

   

 

 Ⅲ. 남아메리카에 도착

 

   2주간 미국에서 지내다, 6월말에 칠레에 도착했다.  계절이 반대라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희뿌연 안개와 스모그로 수도인 산티아고는 칙칙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남다른 애정과 호감을 갖게되었다.  

   칠레에서도 2주간 머물면서, 골롬반들이 활동하는 본당들과 그곳의 상황을 조금은 볼 수 있었다.  칠레에는 이미 골롬반 지원사제 프로그램으로 나와있던 오세만 신부님이 한인 사목을 담당하고 있었다.  필요한 많은 정보들을 쉽게 구할수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얻어 코차밤바로 향했다.  

 

 

   ⅰ. 볼리비아 코차밤바

 

   수도인 라빠스를 경유하여 코차밤바에 도착했다.  하숙집 여주인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곧바로 하숙집으로 행했다.  코차밤바에는 남미로 오는 선교사들의 언어공부를 위해 메리놀 선교회에서 만든 어학원이 있다.  꽤 오래되었고, 선생님들도 많은 경험과 열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대부분은 선교사제와 수녀, 평신도들이었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4시간 수업이다.  나머지 시간은 각자가 알아서 공부하고, 동료들과 운동하고, 미사하고, 주말에는 어울려 함께 지낸다.  평일에는 주로 공부를 하였고, 주말에는 같이 미사하고, 외식도 했다.   처음 접하는 언어라, 매일매일 예습과 복습을 필요로 했다.  하숙집에서도 식사시간이나 같이 생활하면서 언어를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집은 나름대로 깨끗하고, 식사도 어느 정도 먹을만했다.  지나고 보니 재미있기도 했지만, 어쩌면 제일 힘든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코차밤바 도시는 해발 2600m에 위치해 처음에는 잠도 잘 안오고, 소화도 힘들었지만, 20여일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공부가 끝나면, 학생들과 오후 3시에 미사를 하고, 운동도 즐겨했다.   테니스, 배구, 라켓볼, 수영 등, 사우나도 찾았다.  2개월정도 지나서 일주일 방학이 있었다.   동료들과 볼리비아 몇몇 도시를 다녔다.  4000m에 위치한 티티카카호수가 제일 인상에 남는다.   4개월이 지나자 공부도 끝나가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5개월을 이곳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  영어보다는 쉽게 느껴졌고, 그리고 당장 미사와 성무활동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끝났을 즈음에는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중간에 칠레 지부장이 찾아와 면담을 하고, 일할 곳을 정했다.  일은 내년 3월부터 하게 될 것이라고 하고, 원하면 휴가를 하고 와도 좋다고 했다.  

 

   12월초에 어학원을 마치고,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도시에서 선교사목을 하는 대구교구 신부님들과 뜨거운 성탄을 지내고, 페루에서 남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모임을 갖고, 2000년 1월 중순에 칠레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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