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4동성당 게시판

본당 중고등생 학부모님께 올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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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향 [helena79] 쪽지 캡슐

2001-03-04 ㅣ No.1036

 다음 글은 며칠전 본당 교적내 중고등부 학부모님께 드린 편지전문입니다. 애끓는 심정과  조심스런 마음 사이를 오가며 여러 교사들과 일일히 봉투에 주소를 적어넣으면서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 9시 미사에 새로운 학생이 다섯명이나 나와서, 단 한명이라도...하며 가슴 졸이던 저를 무척 기쁘게 했답니다. 또한 하찮은 한 명의 교사의 행복에 비하면 주님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으리라 감히 판단해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협조해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리며, 오늘 주보를 보니 교적내 초중고등부 학생수와 주일학교 학생의 비율표가 나와있던데, 그런김에 더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사이버공간에도 비집고 들어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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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중·고등학생 학부모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치4동 본당 건립과 맞이한 대희년도 지나고, 2001년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덧 3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선 이렇게 친필도 아닌 편지를 무작정 올리는 무례를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천주교 대치4동 교회의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단으로서, 몇 가지 말씀 여쭙고자 이 지면을 할애하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이왕이면 자녀분들과 함께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본당 교적상에는 청소년층에 해당하는 중·고등학생의 수가 150여명 정도 됩니다만, 실제로 주일에 중고등부 미사에 참례하는 주일학교 학생은 4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주일 오전 9시 미사에 오는 학생수는 30명 정도이고 고등학생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대입수능 전날 신부님의 강복을 받으러 몰려오는 어디엔가 숨어있던 학생들을 보면 반갑다기 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유가 무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위와 같은 현상은 유독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 지역에서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 수가 교적의 1/5 정도 뿐이라면,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예 냉담중인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주일학교에 나오지 않고 홀로 혹은 부모님을 따라 교중미사나 청년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전자보다야 후자가 훨씬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어느쪽이건 그들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되기에,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것입니다.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인성교육의 터전이 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팽배한 공교육과, 입시만을 목표로 하는 사교육의 범람속에서 말 그대로 주일에만 열리는 ’주일학교’는 일상에 지치고 혹은 상처받았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접하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다거나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신실한 부모님들의 훈육아래 성가정의 자녀로서 생생한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 또한 주일학교 학생들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훌륭한 신앙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서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시험 전날 주님께 시험 잘 보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주님의 성전인 성당에 와서 미사에 참례하고 교리 수업을 받는 것은 시간이 아깝고, 공부할 시간과 학원에 갈 시간을 빼앗긴다는 발상이야말로 모순의 극치가 아닐까 합니다. 천주교는 결코 현세를 위한 신앙이 아닙니다.  

 

 성당에 다니면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러다니게 되면 어쩌나 염려되신다고요? 저희 교사들도 불과 몇 해 전에는 청소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모님을 속이고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PC방, 오락실, 노래방, 심지어 각종 유흥업소 등 청소년들에게 여과없이 노출된 장소를 드나들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불과 몇 년전과는 달리 인터넷의 범람으로 인간의 정신과 사고를 해치는, 나아가 영혼을 파괴하는 각종 유해 정보가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주일학교에 오는 하느님의 자녀들 만큼은 다르다고, 다를거라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성전인 성당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목 담당분과로부터 체계적인 정보와 교육을 접하고 있는, 아니 그 무엇보다도 주님에 대한 믿음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무기(?)인 젊은이들이 교사로서 봉사하는 주일학교는 어쩌면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참혹해져만 가는 이 세상에 별빛과도 같은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본당 내적인 일로 돌아가서,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 겨울 방학에는 8주 동안 신부님과 본당 신학생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배움터(영어·수학 무료 과외교실)가 열렸습니다. 종강 후 설문 조사 결과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만족스러운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름방학에도 또 열리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여름방학에 또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단, 배움터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그 외의 학생들은 주일 오전 9시 중고등부 미사에 참례한다는 전제하에 배움터 수업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당 청소년들을 위한 준비와 노력이 활발한데, 정작 그 주인공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들을 위해 놓여진 수많은 의자가 비어있다면, 그 의자의 주인이 이 글을 읽으시는 학부모님들의 자녀분들이라면, 혹은 본인이라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대치 4동 본당 가족 여러분.

 

 학생 선교를 위한 유일한 장소이며, 인성교육의 장으로서의 주일학교가 무너지면 가톨릭의 미래도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다음과 같이 간곡한 부탁말씀을 드립니다.

 자녀들을 중고등부 미사에 보내주십시오. 물론 아예 냉담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럽지만, 청소년은 청소년을 위해 마련된 미사에 참여하고 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대학 입학 후에 청년활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자칫하면 진정한 신앙을 정립하지 못한 채 그저 어울림이 좋아서 성당 신자가 되는,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학부모님들의 소중한 자녀분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하는 저희 교사들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신다면, 당장 눈에 보이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희는 부족함도 많고 역시 배워 나가야 할 것이 많은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저 저희끼리 즐겁자고 교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굳게 믿고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두려움을 접고 교리실 문을 들어서며 학생들 앞에 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가톨릭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라면 누구나 즐겨 드리는 ’교사의 기도’란 것이 있습니다. 무려 40행이 넘는 그 기도문 중 마지막 구절을 마음으로부터 되새김으로써, 저희들에 대한 못미더움이 조금이라도 덮어지길 바라며 긴 글을 접을까 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이 편지를 받아 보시게 될 가정 중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마음을 열고 주일학교에 나오게 된다면 진정으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아무쪼록 댁내 은총으로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여

 마지막으로

 내가 받을 최대의 보상은 여기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소서

 이 땅 위에서 당신을 빛낸 공로로 내가 가르친 학생들과 함께

 나는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리라는 것을 알게 해 주소서"

 

 

 

 

 

 

                            - 2001년 2월 25일

                                 천주교 대치4동 교회/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 일동 -

 

 

대표 연락처: 김민재 암브로시오(교감) 011-9906-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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