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추기경님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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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근 [kohluke] 쪽지 캡슐

2009-02-22 ㅣ No.990

추기경님 투병기

 
 
눈이 내린 날 - 2008년 1월 11일
 

눈이 내린 날은 아름답습니다.
또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꺼져가는 마지막 심지가 되도록 사랑으로 사신 분이 계십니다.
옹기처럼 소박한 마음으로 사랑하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의 그 마음을 잘 모릅니다.
그분이 지금 고독한 마지막 투쟁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아름답게 마무리 하시도록 함께 해드리고 싶습니다.
떠나실 그분의 추억 안에 우리들의 모습과 사랑이 실려 가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혜화동 할아버지...

  

그분은... - 2008년 1월 14일
 

제가 김 추기경님을 특별히 더 존경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서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홀로 앞장 서 가셨다는 점입니다.
그분은 그 누구의 충고도 들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역사적인 판단들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그분이 가신 길이 우리들의 안전한 길이 되었고
그분의 판단들은 우리들의 가치 기준이 되었고
그분의 용감은 우리들의 자신감이 되었습니다.
 

그분 덕분에 한국사회가 이만큼,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뇌 속에 걸어가셨던 그분의 세월은 바로 우리가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사는데 밑거름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자기주장들이 부메랑처럼 그분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을 볼 땐 정말로 마음이 아픕니다.
경솔과 貪益과 缺禮와 값싼 개혁들이 우리의 멋진 고목에 칼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 역사 속의 한 산봉우리, 한 물줄기이셨습니다.
세상이 아니라고 우기면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분은 한국 교회의 반석이요 Saint 이셨습니다.
세계교회가 그분을 몰라보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보게 해야 마땅합니다.
   

한국 사회도 자랑스러운 어르신이 계시고,
한국 교회도 예수님 닮은 Saint가 계시니
한국에서 사는 것이 가슴 뿌듯합니다.
 
 
 
저녁 시간 만들기 - 2008년 1월 17일
 

낮에는 좀 힘들겠지만
저녁에 추기경님 외롭지 않게 해드릴 방법들을 강구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시던 분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계시던 분이
적막한 방에 홀로 침대에만 누워계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몸은 자연에 순응하기 위해 고통을 견뎌야 하겠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화롭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많은 것들에 비하면
우리가 드리려는 이런 것들은 사실 미약한 정성이겠지요.
   

추기경님,
우리가 사랑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세요.
지금도 고통 중에 품위를 잃지 않으시고, 농담도 건네시며,
고통 속에 얻으신 신앙체험까지 나누어 주시지만,
마지막까지 철없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바람이겠지만
 

우리 위해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선종의 은혜를 구하며 - 2008년 1월 20일
 

오늘은 추기경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저녁 식사하실 때는 옆에서 말동무 해드리며 안마도 해드렸습니다.
추기경님께서 그 힘든 식사를 거의 한 시간 동안 열심히 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식사 후에, 신학교 신입생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거기에 오신 부모님들께
축하와 동시에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학생으로 살기보다, 신부로서 살기보다
신학생 부모로서, 신부 부모로서 살기가 더 어려운 십자가 길로 여겨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추기경님께서도 신부들의 어머니들의 사연을 누구 글 잘 쓰는 사람이 책으로 쓴다면
무척 감동적이고도 놀라운 책이 나올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제 어머니도 저를 위해 늘 기도하시고,
관절이 좋지 않으신 데도 로마의 모 성당에 가셨을 때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시며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얘기를 드린 후,
추기경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냐고 제가 여쭈었습니다.
 

추기경님 어머니는 무척 엄하셨답니다.
특히 막내인 추기경님께 엄하셨고 당신도 어머님께 무뚝뚝하게 대해드렸답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징병되어 나간 학병시절에 바다에 빠져 돌아가실 뻔하다 살아나셨는데
바다 위에 어머니의 모습이 비치고 그 순간 당신이 어머니의 품에 돌아가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마음속으로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신부가 되어 본당신부 시절에는 어머니를 사제관에 모시고 사셨는데
주교님 비서가 되시고는 모실 수가 없어서 어머니가 셋방살이를 하셨답니다.
늘 마음이 좋지 않다가 어렵게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드렸답니다.
 

형수와 조카들이 모시고 살았는데,
어느 겨울 어머니는 겨우내 먹을 쌀과 땔감을 잘 준비해두시고
겨울이 끝날 무렵 사순절 어느 날에 집에 있는 고상을 떼어 들고 성당에 가셔서
십사처 기도를 마치시고 신부님께 고해성사 보시고 집에 돌아오셔서 갑자기 쓰러지셨고
급히 찾아간 아들신부 무릎에서 돌아가셨답니다.
그날은 늘 말씀하시던 사순절 둘째 토요일(영광의 신비 날)이었답니다.
사순절 둘째 토요일은 특히 직천당 가는 날로 알려져 있었답니다.
 

추기경님 어머니께서는 선종하셨습니다. 우리 추기경님께서도 선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제 어머니 갖다 드리라고 묵주하나를 주셨습니다.
그 묵주는 요한바오로 2세 교황께서 추기경님께 주신 것이고 추기경님이 쓰시던 묵주입니다.
어머니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그 묵주를 받으시고 한참을 우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을 위해서 그 묵주로 기도 많이 하시겠답니다.
그 묵주는 우리 집안의 최고 가보가 되었습니다.
 

돌아오기 전 인사드릴 때,
추기경님 몸이 아프신 것은 할 수 없지만 마음까지 아프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마음은 어떠시냐고 여쭈니 마음도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당신 때문에 고생하고 걱정하는 것 같아서 그러시답니다.
당신은 정말로 우리시대의 큰 산으로, 거목으로 우리를 위해 훌륭하게 잘 사셨기에
주위 사람들의 그런 돌봄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추기경님이 고개를 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어. 많이 부족했어.”
 

우리 추기경님은 겸손하고도 정말 멋진 Saint 이십니다.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추기경님 - 2008년 1월 25일
 

어제 저녁에는 제가 본 중에서 진지를 가장 많이 드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식사하시는 모습은 마치 힘든 운동시합을 방불케합니다.
비장한 얼굴로 조금씩 조금씩 잡수시다가
너무 오래 앉아계셔 힘드시면 일어서셔서 한참 계시다가
다시 앉으셔서 계속하십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추기경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식사를 하시는 것은
모두 우리들을 위해서이십니다.
식욕도 없고,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도 너무 힘들지만 열심히 드십니다.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시지만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보시고 그렇게 해주고 계십니다.
 

추기경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그 힘든 것을 받아들이시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저희가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식사 후에는 호주 오픈 테니스 경기도 함께 보시고
물병을 양손에 들고 운동하시면서 걷기도 하셨습니다.
제 성의를 생각해서, 제가 사가지고 간 호두과자도 좀 드셨습니다.
평화신문을 읽어드리니까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쉽고, 좋고, 길지 않은 책이 있으면 읽어드리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함께 있어도 편한 분들이 자주 찾아뵈면 좋겠습니다.
추기경님은 다른 사람이 당신 때문에 힘들어 하거나 애쓰는 것을 보시면
당신이 더 힘드신 분이십니다.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함께 해드리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입니다.
 
 
 
희망의 봄 - 2008년 2월 2일
 

어제 저녁에는 추기경님께서 정말로 식사 같은 식사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움직임도 가벼워 보이시고, 얼굴도 환해보이시고, 머리도 단정히 깎으셨습니다.
발음도 더 또렷해지시고, 눈빛도 총총해지셨습니다.
품위 있는 옛 모습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온몸을 운동하는 그 어려운 운동기구도 해주셨습니다.
1분도 하기 힘들다고 하시더니 2분을 넘기셨습니다.
운동 후에 안마를 해드렸는데 물렁하던 종아리에 제법 딱딱한 근육이 잡혀졌습니다.
몸무게도 좀 느셨고...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문희 대주교님이 수술 후 회복이 잘 안되신다고 얼마나 아프겠냐고 걱정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 걱정인데 당신은 다른 사람들 걱정만 하십니다.
   

우울해지시지 않도록 수준이하의 TV도 보시고, 몸의 일부라도 계속 움직이시라고 당부 드렸습니다.
봄이 오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앞마당을 함께 산책하시자고 말씀드리니 기분 좋아하셨습니다.
 

추기경님, 열심히 식사하시고 운동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개구쟁이 추기경님 - 2008년 2월 10일
 

금요일 저녁, 식사를 한 수저밖에 못하셔서 스프로 바꾸어 드리니 꽤 잘 드셨습니다.
그래도 하루 영양 섭취량이 너무 적어 영양주사를 맞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으시고 간절히 사양하셨습니다.
 

운동을 좀 하시자고 하니 주저 없이 응하셨습니다. 
첫 바퀴는 살살 조심스레 힘들게 걸으시더니 두 번째 바퀴는 갑자기 허리를 꼿꼿하게 펴시고 속보로 걸으셨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잘 걸으셨습니다.
자리에 돌아와 앉으셔서 숨을 몰아쉬셨습니다.
   

제가 추기경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주사 맞기 싫으셔서 씽씽하다고 과시하려 그러신거죠?”
하고 여쭈니 그 특유의 개구쟁이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외람되지만 그러실 때 우리 추기경님 정말로 귀여우십니다.
 

추기경님, 자꾸 힘들게 주사 맞자고 졸라서 죄송합니다.
 
 
 
들어주는 힘 있는 추기경님 - 2008년 2월 15일
 

저녁 7시 15분,
 
 
거실 문을 빼곡 여니 추기경님께서 단정하게 앉으셔서 신문을 보고 계셨습니다.
환자 같은 느낌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저녁시간을 홀로 즐기시는 건강하신 할아버지 모습이셨습니다.
인사를 드리니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저녁 진지를 많이 드셨냐고 여쭈니, 보통 때보다 덜 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식사하시는 일 자체가 힘드실 정도의 기력이셨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식욕도 있으신데 소화가 잘 안 될 것이 걱정되셔서 덜 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소화만 잘 되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교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 이야기를 전혀 못 듣고 지내셨다고, 오늘 많은 이야기 들려주어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들이 그리 밝은 내용들이 아닌지라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걱정거리를 더해 드린 것이 아닌가 싶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자세히 들으시며 당신이 이제는 아무런 힘이 없으나 열심히 기도해주시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왜 힘이 없으시냐고, 지금처럼 혜화동 할아버지로 앉아계신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시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걷기 운동을 하시자고 권해드리니,
첫 바퀴는 천천히, 그리고 둘째 바퀴는 허리도 펴시고 속보로 걸으셨습니다.
게다가 보너스로 한 바퀴를 더 돌아주셨습니다. 세 바퀴는 정말로 파격적인 서비스이신 것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추기경님.
 

9시 15분,
 

인사를 드리며 오늘은 안마를 별로 못해드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지금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서비스로 안마를 마저 해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제게 안마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안마이기에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추기경님께서 어떤 때 정신이 혼미해지시는 경우가 있다고 하셔서
혹시 맑은 공기를 마시지 못해서 그러신거 아니냐고 여쭈니
맞다 그런 것 같다고 하시며 환기를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자주 환기를 시키시고, 옷을 더 입으시더라도 조금 시원하게 지내시는 것이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추기경님 침실과 거실이 온도가 너무 높고 공기가 맑지 않아 저도 멍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추기경님께 교회 이야기를 드리며, 제 안에 있던 고민거리들도 많이 말씀드려서 제 속이 시원해진 날입니다.
고맙습니다. 추기경님.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함께 아파해주셔서...
어쩌면 편협하고 부족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제의 부끄러운 고백일 수도 있는데
순수한 동기로, 모두의 걱정거리로 받아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들어줌의 위력을 체험한 날입니다. 이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추기경님.
 
 
 
달을 사랑한 소년 - 2008년 2월 22일
 

어린왕자는 해가 지는 것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작은 별에서 해가 질 무렵이면,
자리를 옮겨가며 해가 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추기경님은 달을 좋아하십니다.
어제, 오늘 두 번이나 휠체어를 타고 나가셔서 대보름 달 구경을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명동 교구청에 사실 때, 어쩌다 밤에 돌아오시다가
보름달이 명동 성당 종탑 위에 휘엉청 떠있는 것을 보시면,
성당 언덕을 다시 걸어 내려갔다가 올라오시면서
몇 번이고 종탑 위로 나타나는 그 보름달을 보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 추기경님은 어려서 달을 사랑한 소년이셨을 것 같습니다.
소년 추기경님이 어려서 따라다니던 그 보름달은 지금도 그대로이겠지만,
지금 우리 추기경님은 세월의 풍파에 많이 늙으셨습니다.
추기경님이 지금 그 달을 보시는 마음속에 지나간 세월의 잔상들이 달 속의 전설처럼 흘러가겠지요...
겪어내실 때는 힘드셨어도 지금 돌아보시면 달처럼 아름다운 추억이기를 바랍니다.
 

봄이 되면 할 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하나는 추기경님 모시고 벚꽃 흐드러지게 핀 신학교 교정을 거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느 보름날 밤에 추기경님과 함께 명동 성당 언덕을 오르는 일입니다.
그날이 곧 오겠지요? 꼭 오기를...
 
 
 
추기경님의 고독 - 2008년 5월 23일
 

오늘도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준비해가서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별로 웃기지 않는다고 하시며,
당신이야말로 병마개도 못 따고, 약도 혼자 못 먹는 ‘웃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좀 무거운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고 신부 고독해 보았는가?”
“예, 고독하게 사는 편입니다.”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하느님마저 의심되는 고독말일세.
모든 것이 끊어져 나가고 나는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지면
오직 하느님만이 남는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시려고 그러시나봐.
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그러시겠지?
 

작년에 돌아간 정명조 주교가 요즘 더 많이 생각나는구먼.
아마, 죽고 나면 자네나 나나 모두 하나일꺼야.
내가 죽으면 자네 꿈에 나타나서 꼭 가르쳐주겠네.”
 

“추기경님 감사합니다. 꼭 가르쳐주세요.”
 

저도 제법 고독하게 산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송구스러웠습니다.
 

추기경님은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추기경님이 존경하시는 신부님 - 2008년 6월 1일
 

“추기경님은 가장 존경하는 선배신부님이 누구세요?”
 

“음... 내가 신학생 때 형님 신부님 일로 함안성당에 간적이 있는데,
그곳 신부님은 그 옛날에도 직접 살림을 하며 사는 신부님이셨지.
나에게 직접 밥을 차려주셨어. 당신을 위한 은경축 행사도 하지 않으시고...
내가 그분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내’라고 가르쳐 주셨지.
그분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시고,
내게 제일 큰 영향을 주셨다네.
김 요한 신부님인데 아마 180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 태생이실꺼야.
 

형님 신부님이 당시 주교 서리이셨던 주 신부님과 관계가 나빠지셨을 때,
함께 불순명에 동조했던 다른 신부님들도 계셨지만
형님만 순진하게 희생양이 되실 판이었지.
어린 신학생인 나였지만 형님과 함께 불순명하려던 선배신부님들께
교황대사님을 통해 주교서리 신부님과 화해하시도록 충고를 드렸었는데,
처음에는 나를 무시들 하시더니 나중에는 그렇게들 하셔서 모두 괜찮게 되신 일이 있었지.
 

‘인내’야말로 정말 중요한 덕이고, 교회에서는 순명이 참으로 중요해.”
 

우리 추기경님은 신학생 시절부터 대단한 수완이 있으셨습니다. 김수완 추기경님? ㅎㅎ
 
 
 
강남성모병원 6층 10호 - 2008년 7월 11일
 

소변을 보시는데 간병인이 있는데도 저를 찾으시며 굳이 “고 신부가 받으라.” 하셨습니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불편해하셨습니다.
소변보기가 힘드시냐고 여쭈니,
“간병인, 수녀님 앞이니 마음이 자유롭지 못해서 그렇지.” 하셨습니다.
 

‘자네가 계속 곁에 있어주면 자유롭고 편할텐데...’라고 속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송구스러웠습니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시냐고 여쭈니... 한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사제들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고
특히 서울교구의 사제들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오해도 많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교회에도 만연되어 있으니 걱정이라고 제가 말씀드리니,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기도하며 살겠다고 말씀드리고
추기경님께서 이렇게 계셔서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이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서품식에서 정말 좋은 신부들이 배출되었고
성소후원회와 함께 첫 강복 미사를 잘 봉헌했다는 말씀으로 위로를 드렸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걱정을 하시게 되어서 유감스럽습니다.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느님 나라에 대해 희망하시며
 

우리를 부럽게 하시는 당신의 여유를 보이셔야 할 소중한 이 나날에 말입니다.
 
 
 
소망과 도리 - 2008년 9월 11일
 

입원이 오래가고 있습니다. 퇴원하지 못하실 거라는 말씀들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혜화동 할아버지 추기경님께서
당신이 산책하시던 혜화동 주교관 마당을 내다보시고,
혜화동 신학교의 하늘을 바라보시며 세상 소풍을 끝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더라도
이것은 그분께 대한 우리의 도리이고,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추기경님 발톱 - 2008년 9월 12일
 

우리 추기경님은 발톱이 못 생기셨습니다.
무좀이 오래 되어서인지 삐뚤빼뚤 이상하게 변형되었습니다.
특히 오른쪽 발 가운데 발톱은 발톱 위에 카라멜 하나를 올려놓은 것 같이 기형으로 자랐습니다. 늘 불편해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신문지 깔고 주저앉아서 발톱 원형복구 공사(?)를 감행했습니다.
땀이 비오듯 했습니다. 드디어 30분 정도 걸려 갈고 닦아서 성공적으로 원형을 복구해드렸습니다.
수녀님과 간병인께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일을 해주었다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추기경님도 흡족하신 것 같았습니다.
추석 선물로 추기경님 달구경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그것은 못해드리고 발톱 깎는 선물을 해드렸습니다.
 

그 기형 발톱이 다시 그만큼 자라 제가 또 깎아드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고통인가? - 2008년 10월 4일
 

오늘 아침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습니다.
호흡곤란으로 거의 질식사하실 뻔 하셨답니다.
하루 종일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종점을 향해 달리는 낡은 기관차처럼 거칠게, 힘겹게 숨을 몰아쉬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마지막 인사들을 하셨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추기경님 곁을 지켰습니다.
닳고 닳은 추기경님의 성무일도는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이 펴져 있었습니다.
아, 오늘이 마지막인가?
 

밤 11시 30분경 추기경님이 눈을 뜨셨습니다.
“아야, 아야!” 온몸이 아프다고 호소하셨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 ‘아야, 아야’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요...
 
 
 
2008년 10월 5일
 

평화로운 주일 오후입니다. 추기경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오전에는 깨어 계시면서 많은 말씀을 하셨답니다.
인터넷에 당신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뭐 있느냐 하시며 농담도 하셨답니다.
 

추기경님의 주무시는 모습은 안쓰럽습니다.
양손을 꼭 쥐고 가위눌리어 몸부림치는 양 괴로운 모습으로 주무십니다.
얼굴은 찡그리시고, 무호흡 증상이 있으셔서 숨을 어렵게 몰아쉬십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을 받아 안고 남몰래 힘들어하는 선왕의 고독한 침상입니다.
 

깨어나셔서 화장실에 모시고 갔습니다. 배를 주물러드렸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추기경님은 배변이야말로 주님의 은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배변의 영성입니다.
면도를 해드렸습니다.
지난번에는 발톱이 다시 자라는 시간을 허락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지만
이번에는 수염을 다시 깎아드릴 수 있는 시간을 청했습니다. 초읽기에 몰리는 기분입니다.
 

추기경님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힘들어도 일일이 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공연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게 했다고 미안해 하셨습니다.
급박하고 어려운 중에도 타인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시는 그 모습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겠지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추기경님.
 

주님, 우리 추기경님 조금 덜 힘들게 데려가시면 안 될까요?
우리와 이 사회의 허물을 그분의 마지막 고통으로 용서하시려고 그러시나요?
 
 
 
관장 - 2008년 11월 13일
 

우리 추기경님은 변비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불면증, 변비 이런 병들은 모두 걱정이 많을 때 생기는 것들입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몸이 망가지도록 우리나라, 우리교회를 위해 평생 걱정으로 사셨습니다. 당신이 해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모두 걱정과 고뇌를 통한 소중한 것들입니다. 오늘은 관장을 하셨습니다. 의사가 관장하는 데 옆에 서있으라 하셨습니다. 송구스럽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관장이 끝나자 그것(?)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셔야 시원하신가 봅니다.
 

어제가 보름이라 오늘도 달이 크고 밝았습니다. 달이야기를 꺼내니 추기경님은 명동 종탑에 걸린 달이 또 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구청 숙소 중에서 지금 제가 쓰는 꼭대기 방이 종탑 보기에는 제일 좋다고 하셨습니다. 명동 사실 때 아름다운 종탑이 우리 추기경님을 많이 위로해 드렸었나 봅니다. 발을 씻겨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렸습니다. 아직 그 이상한 오른쪽 가운데 발톱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더 자라면 제가 깎아드릴 것이라고 안심시켜드렸습니다.
 

방안에 못 보던 멋진 사진이 있었습니다. 여쭈었더니 언젠가 가르멜 수녀원 진달래 꽃밭에서 찍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배경으로 건강해보이시는 추기경님께서 손을 흔들고 계십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몇 장이 더 있다하셔서 한 장 얻었습니다. 가르멜 수녀원에서는 늘 환영을 받으셨는데 특히 사순절 기간에 가면 더 환영 받으셨답니다. 왜냐하면 금식과 절식을 하던 수녀님들이 추기경님이 가시면 맛난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어서 더 환영받았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새로 지은 동두천 가르멜 수녀원에 언제 한번 놀러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무일도를 해드렸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성무일도가 무거워서 그러신지 옆에서 펴들고 읽어드리면 좋아하십니다. 힘드셔도 오늘은 함께 따라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추기경님 성무일도는 너덜너덜합니다. 한 번도 빠뜨리시는 적이 없으십니다.
 

추기경님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꾸 “가라, 가라.” 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재미없다 하시며 “가라, 가라.” 하십니다. 그래도 좀 더 오래 있으면 좋아하십니다. 시간이 좀 되어서 일어서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장시간 있다가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십니다. 죄송한 마음입니다. 많이 마르시고 기력이 없으신 추기경님이 의자에 앉아계신 옆모습이 오늘따라 더 외로워 보이셨습니다.
 
 
 
기적의 행렬 - 2009년 2월 18일
 

2009년 2월 16일 오후,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밀렸습니다. 병원을 눈앞에 두고 선종의 소식을 전화로 들었습니다. 멍해지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고통이 너무 많으셔서 이제는 가시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막상 가셨다 하니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습니다. 병실로 뛰어 올라가니 늘 계시던 그 침대에 주무시는 듯 누워 계셨습니다. 발과 손과 이마를 만져보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추기경님 저 잘 살게요. 사랑해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그리고 돌아가시면 저에게 죽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겠다던 말씀 잊지 않으셨죠?" 그날 밤 늦게 경황없이 잠들었는데 추기경님이 편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천국의 사인(sign)으로 알아들을 것입니다.
 

돌아가시자마자 각막적출 수술이 시행되었습니다. 집도한 의사 말씀이 연세에 비해서 각막이 깨끗하다고 앞 못 보는 두 사람이 앞을 보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셔서 그런지 추기경님 눈은 작지만 항상 빤짝거리셨었습니다. 각막기증이 가능해져서 추기경님이 참 좋아하실 것입니다. 오랜 시간 병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힘들다고 늘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베푸실 것이 있으셔서 좋으셨을 것입니다.
 

추기경님이 돌아가시자 온 국민이 애도합니다. 사회에 롤(role) 모델이 없어 방황하던 우리 민족이 이분이 돌아가시자 “아! 이분이 그분이셨구나.” 하고 뒤늦은 충격을 받나 봅니다. 날씨는 춥지만 추기경님을 애도하는 조문 행렬 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적을 맛봅니다. 당신을 놓지 못하는 미련의 끈은 길게만 길게만 끝없이 이어집니다.
 

생전에 당신 고독의 든든한 벗은 되어드리지 못했지만 철없던 우리의 따뜻해진 마음을 보시고 고독의 기억은 지워버리세요. 추기경님을 기리는 방송 프로그램이 계속 나오면서 당신의 모습과 음성이 바로 옆에 있지만 당신께 대한 그리움은 깊어만 갑니다. 추기경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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