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개신교 신자들 사이의 대화들 2 [성경공부_계약] [contract_vs_cov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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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ㅣ No.1015

 
 
게시자 주:
 
 
+ 찬미 예수님
 
이 글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우리말 번역 작업이 진행되면서 글이 길어지게 되어 한 개의 게시글로서는 올릴 수가 없는 문제가 발생하여, 둘로 나누어 올려드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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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글의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
 
다음은 미국 개신교 장로파 신학자/신학교수인 스코트 한 박사(Dr. Scott Hahn)의 개종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국내에 장로파 개신교 교회가 많기에, 스코트 한 박사의 증언을 읽어 보시는 것이 여러 가지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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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
 

대학 총장의 업무 보좌관

Administrative Assistant to the College President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할 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7월 한 달 동안 고립되어(high and dry) 있었습니다. 수 많은 기도 후에,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만났던, 대학 도시(the college town)로 되돌아 이사를 가야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우리가 되돌아 이사를 간 후에, 저는 다양한 곳들에 직장을 신청하였으나, 그러나 이 대학이 저를 대학 총장의 보좌관이라는 행정 직원으로서 고용하였습니다. 2년 동안 저는 거기서 일하였으며, 그리고 이 시기는 오히려 이상적이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낮 동안에는 일을 하고 그리고 이 직업이 저녁들에는 깊이 있는 연구를 추구하도록 저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잠 재우고 난 이후에 저녁 8시쯤부터 그 다음 날 새벽 1시 혹은 2시까지, 저는 읽고 학습하며 그리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We didn't know what we were going to do. We were high and dry in July. After a lot of prayer, we decided we ought to move back to the college town where we met. When we moved back, I applied for a job at various places, but the college hired me as an administrator to be assistant to the president. For two years I worked there, and it was rather ideal because I worked during the day and it left me free in the evenings to pursue in-depth research. From around eight in the evening after putting our children down until around one or two in the morning, I would read and study and research.

 

2년이라는 시간에 저는 수 백 권의 책들을 끝까지 읽었으며, 그리고 저는 처음으로 가톨릭 신학자들과 성경 학자들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통찰력들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에 그러나 심지어 그 보다 더, 제 고유의 개인적 발견들과 동의하는 그들의 통찰력들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이미 도출하게 되었던 새롭고, 창의적인 수 많은 발견들을 그들이 가정하고 있으며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믿을 수가 없었으며, 그리고 이것은 저를 괴롭혔습니다.

 

In two years time I had worked through several hundred books, and I began for the first time to read Catholic theologians and Scripture scholars. And I was shocked at how impressive their insights were but even more, at how impressive their insights were which agreed with my own personal discoveries. I couldn't believe how many novel, innovative discoveries that I had come up with they were assuming and taking for granted, and it bothered me.

 

때로는 저는 나와서는 킴벌리에게, "이것 듣고, 저자의 이름을 말해봐" 라면서 단편들을 읽어주곤 하였습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 그녀는 신학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너무 바빠서 그녀는 많은 에너지를 실제로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으며, 그리고 저는 "저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라고 말하였습니다. "야아! 그것은 아래 버지니아에서 당신의 설교들 중의 하나 같이 들려요. 오, 난 그 설교들을 정말로 그리워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이야. 그것은 가톨릭 교회였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스코트, 저는 그것을 듣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킴벌리, 전례에 관한 이 자로는 정말로 흥분시켜. 나는 확신하지 않지만, 그러나 하느님께서 성공회 신자들이 되라고 우리를 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떤 중간의 집입니다. 그녀는 저를 바라보았으며 그리고 그녀의 눈들은 눈물로 찼으며 그리고 그녀는 "성공회신자!"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나는 장로교 신자이고, 나의 아버지는 장로교 사역자이며, 나의 삼촌은 장로교 사역자이고, 나의 남편은 장로교 사역자였으며, 나의 남형제는 장로교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며, 그리고 나 자신도 그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나는 성공회신자이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바로 이 순간에 크게 버려졌다고, 크게 배반당하였다고 느꼈습니다.

 

At times I'd come out and read sections to Kimberly and say, "Hear this, name the author." Because she was a theologian in a sense, and she was so busy with raising children that she really didn't have as much energy. But she would sit there listening in, and I would say, "Who do you think that was?" She said, "Wow! That sounds like one of your sermons down in Virginia. Oh, I miss those so much." I said, "That was Vatican II, Gaudium et Spes. That was the Catholic Church." She said, "Scott, I don't want to hear that." I said, "Kimberly, this stuff about liturgy is so exciting. I'm not certain, but I think God might be calling us to become Episcopalians." It's a halfway house. She looked at me and her eyes filled up with tears and she said, "Episcopalian!" She said, "I'm a Presbyterian, my father's a Presbyterian minister, my uncle's a Presbyterian minister, my husband was a Presbyterian minister, my brother wants to be one, and I thought about it myself. I don't want to be Episcopalian." She felt so abandoned at this moment, so betrayed.

 

저는 이것을 기억하는데 이는 더 많이 읽고 난 몇 달 이후에, 어느 날 밥에 제가 나타나서는 "킴벌리, 나는 확신하지 않지만, 그러나 내가, 하느님께서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라고 나를 부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어" 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은 절망의 표정이 갑자기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성공회신자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톨릭을 제외한 다른 것"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유아 시절부터 가톨릭인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것이 무엇같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로마에 있는] 티베르 강(Tiber)을 헤엄쳐 건너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 여러분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바로 그 공포를 무조건 모르며, 저의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듯이, 여러분은 "넓적다리의 급소를 때려야(Pope)" 할 것입니다. 이것 참, 그녀는 너무도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자가, 어떤 교수님께서, 어떤 신학자가, 어떤 친구가, 자신의 남편을 구출해줄 것을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I remember that because a few months later after reading a lot more, one night I came out and said, "Kimberly, I'm not sure, but I'm beginning to think that God might be calling me to become a Roman Catholic." This look of desperation came over her. She said, "Couldn't we become Episcopalians? Anything but Catholic." You don't know what it's like, you cradle-Catholics. You just don't know the terror that comes over you when you think you might have to swim the Tiber, you might have to "Pope", as my friends put it. Well, she was getting so desperate. She began to pray for somebody to rescue her husband -- some professor, some theologian, some friend.

 

가톨릭 신앙으로의 직접적 여행

Direct Journey to Catholicism

 

결국에 그런 일은 발생하였습니다. 저는 어느 날, 신학원 출신의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게리(Gerry)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고전들과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 있어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장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신학원에서 저와 함께 교황이 거짓 그리스도(anti-Christ)이라는 옛 프로테스탄트 신념을 고수하였던 유일한 또 다른 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에게서 우리가 보았던 모든 타협들을 반대하면서 어깨에 나란히 하여 서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밤에 전화로 저에게 한 마디 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Bouyer 신부에 의하여 저술된 책으로부터 한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는, "우아, 그것은 풍부하고 깊어. 누가 그것을 저술하였니?"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Louis Bouyer."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Bouyer? 내가 그에 대하여 전혀 들은 것이 없어. 그의 직업이 무엇인데?"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무슨 뜻이니?" 라고 말하였습니다. "글쎄, 그가 감리교 신자니?" 저는, "아니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침례교 신자니?" "아니야" "내 말은, 그가 루터파 교인이니? 이것이 뭐니, 스무 고개야? 그의 직업이 뭐니?" 저는, "글쎄, 그는 가토~~~~~ 이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것을 놓쳤어." 저는, "그는 로마 가토~~~~~이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잠깐만, 전화 연결이 나쁜 것이 틀림없어, 스코트. 나는 네가 그가 가톨릭이라고 말하였다고 생각했어." 저는, "게리야, 내가 그가 가톨릭이며 그리고 그가 가톨릭이라고 말했어, 그리고 나는 그동안 가톨릭 신자들의 많은 것들을 읽어 왔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Finally it happened. I got a call one day from Gerry, my best friend from seminary. A Phi Beta Kappa scholar in classics and New Testament Greek. He was the only other student at seminary along with me who held to the old Protestant belief that the Pope was the anti-Christ. We stood shoulder to shoulder opposing all the compromises we saw in our Protestant brethren. He talked to me one night on the phone. I read to him a passage from a book by Father Bouyer. He said, "Wow, that is rich and profound. Who wrote it?" I said, "Louis Bouyer." "Bouyer? I'd never heard of him, what is he?" "I said, "What do you mean?" "Well, is he a Methodist?" I said, "No." "Is he a Baptist?" "No." "I mean is he Lutheran? What is this, twenty questions? What is he?" I said, "Well, he's a Cath-----." "I'm sorry I missed that." I said, "He's Roman Cath-----." "Wait a second, there must be a bad connection, Scott. I thought you said he's Catholic." I said, "Gerry, I did say he's Catholic and he is Catholic, and I've been reading lots of Catholics."

 

갑자기 그것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나는 그동안 Danielou, 그리고 Ratzinger(현 베네딕토 16세 교황) 그리고 de Lubac 그리고 Garrigou-Lagrange 그리고 Congar를 읽어왔는데, 이들 모두가 풍부해, 그러니 너도 또한 이들을 읽도록 해"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속도를 줄여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스코트야, 너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을 수 있어"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게리야, 내가 너에게 이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제공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물론, 내가 그들을, 이러한 종류의 함정으로부터 너를 구할 어떤 것이든, 읽을께. 그리고 내가 너에게 다음의 책들의 제목들을 제공할꺼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반 가톨릭 책들에 대한 약 열 권의 제목들을 말하였습니다. 저는, "게리야, 나는 그들 중의 각 하나 하나를, 적어도 한 번 혹은 두 번씩, 이미 읽었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나에게 그 목록을 보내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All of a sudden it started gushing out like Niagara Falls. I said, "I've been reading Danielou, and Ratzinger and de Lubac and Garrigou-Lagrange and Congar, and all these guys and man is it rich; you've got to read them, too." He said, "Slow down." He said, "Scott, your soul may be in peril." I said, "Gerry, can I give you a list of titles?" He said, "Sure, I'll read them, anything to save you from this kind of trap. And I'll give you these titles." He mentioned to me about ten titles of anti- Catholic books. I said, "Gerry, I've read every single one of them, at least one or two times." He said, "Send me the list," and I sent it to him.

 

약 한 달가량 이후에, 우리는 장거리 전화 대화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킴벌리는 더 이상 흥분하게 될 수가 없었는데, 이는 드디어 한 명의 파이 베타 카파 기사(night)가 빛나는 갑옷을 입고서 그녀의 남편을 로마 가톨릭 교의(敎義)(Romanism)의 발톱들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게리는 흥분하였는데 이는 그가 이러한 자료 모두를 읽고 있으며 그리고 그는 정말로 진지하게 나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오, 훌륭해, 나는 그가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About a month later, we arranged to have a long phone conversation. Kimberly couldn't have been more excited; at last a Phi Beta Kappa knight in shining armor coming to rescue her husband from the clutches of Romanism. So she was waiting with bated breath when the conversation was done, and I told her that Gerry's excited because he's reading all this stuff and he's really taking me seriously. She said, "Oh, great, I knew he would."

 

그런데, 이것이 석달 혹은 넉달 가량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전화로, 그 다음 날 새벽 세 시 혹은 네 시까지 신학과 성경에 대하여 토론하면서, 두 시간, 세 시간, 때로는 네 시간의 장거리 대화를 하였을 것입니다. 킴벌리는 그가 저를 대단히 심각하게 대하는 것에 대하여 너무도 기뻐하고 또 감사해 하였습니다.

 

Well, this went on for three or four months. We would talk on the phone, two, three, sometimes four hours long distance discussing theology and Scripture until three or four in the morning. Kimberly was so glad and grateful for him taking me so seriously.

 

어느 날 밤에 저는 새벽 두 시 혹은 세 시에 침대로 갔으며, 그녀는 여전히 깨어 있었습니다. 조명은 꺼져 있었으나, 그러나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으며 그리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건 훌륭해"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말해 주세요." 저는, "게리가 성경으로부터 가톨릭 교회가 제시하는 모든 진리에 관하여 거의 중독되었으며 그리고 흥분되어 있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뭐라고요!" 저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으나, 그러나 저는 그녀가 바로 침대로 쿵하고 떨어져,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베개에 파묻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할 때에 저는 그것이 가라앉는 것을 거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그녀 둘레에 저의 팔을 놓을 수도 없었으며, 그녀는 틀림없이 너무도 상처를 받았으며 그리고 버림받은 것이었습니다.

 

One night I came to bed around two or three; she was still up. The light was out, but she sat up in bed and said, "How's it going?" I said, "It's great." "Tell me about it." I said, "Gerry is almost intoxicated and excited about all the truth from Scripture that the Catholic Church puts forth." "WHAT!" I couldn't see her face, but I could almost feel it sink as she just slumped back down into bed, put her face into her pillow and began to sob. I couldn't even put my arm around her; she was just so wounded and abandoned.

 

얼마 후에 게리(Gerry)는 전화를 걸어왔으며 그리고, "들어봐라, 내가 약간 겁을 먹었어. 내 친구들도 약간 겁을 먹었어. 우리는 이것을 실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해. 내가, 하버드에서 교육을 받은 장로교 신자이며 반 가톨릭 신학자인 John Gerstner 박사에게 이야기를 했어. 그는 우리가 원하는 한 우리를 만날 것이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게리, Gerstner 박사 그리고 제가, 히브리어 구약 성경, 그리스어 신약 성경, 그리고 교회 역사에 대한 공의회 문헌들을 죄다 훓기 위하여, 6시간짜리 세션을 위하여 조정하였습니다. 6시간의 종료 시점에서, 게리와 저는 이 천재에 의하여 완전하게 단단히 혼이 나게 될 것을 예상하였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발견한 바는 가톨릭 교회는 심지어 방어도 거의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오히려 한 마리의 사자(a lion)에 가까웠으며, 그리고 일단 자신의 우리(its cage)로부터 나오게 하면 이 사자는 스스로를 돌봅니다. 우리는 단순히 교회의 가르침들을 제시하였으며 그리고 성경에 있는 본문을 보여주었으며,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질문들 혹은 반대들 중의 단 한개도 그가 답변을 하였던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에, 우리는, "우와, 이것이 무엇을 뜻하니?"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 다 몰랐습니다. 가장 반 가톨릭(anti-Catholic) 신학자들이 하느님께서 한 분의 가톨릭(a Catholic)일 수 있을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 우리는 겁에 질렸습니다.

 

A little while later Gerry called and said, "Listen, I'm a little scared. My friends are a little scared. We ought to really take this seriously. I talked to Doctor John Gerstner, this Harvard-trained Presbyterian, anti-Catholic theologian . He will meet with us as long as we want." We arranged Gerry, Dr. Gerstner and me for a six hour session, going through the Old Testament in Hebrew, the New Testament in Greek, and the council documents of Church history. At the end of six hours, Gerry and I expected to be completely blown out of the water by this genius. Instead, what we discovered was that the Catholic Church almost doesn't even need a defense. It's more like a lion; just let it out of its cage and it takes care of itself. We just presented the Church's teachings and showed the text in Scripture, and we didn't feel like he had answered a single one of our questions or objections. In the end we were like, "Wow, what does this mean?" Neither of us knew. The most anti-Catholic seminarians wondering whether God might be a Catholic -- we were terrified.

 

그러는 동안에, 저는 떨어져 있는 Marquette University에 입학 지원서를 제출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계약(the covenant)에 근거하면서 교회를 학습 중이며 그리고 수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 있는, 몇 명의 정말로 뛰어난 신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제가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입학 허가 되었으며, 그리고 제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답신을 그들로부터 제가 듣기 바로 직전에, 저는 그 지역에 있는 몇 명의 사제들을 방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겁을 먹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보지 못하도록 저는 이것을 밤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사제관에 들어가는 것을 거의 비참하다고 그리고 더럽힌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앉았을 것이며 그리고 드디어 약간의 질문들을 꺼집어 내었을 것인데, 한 사람도 남김없이, 각 사제는 저에게, "신학 이외의 어떤 다른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합시다" 라고 대답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들 중의 누구도 제 질문들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의 한 분이 사실은, "당신은 개종에 대하여 생각 중이신가요? 아닙니다. 당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줄곧 우리는 그것을 못하게 말립니다. 교회를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단순히 훌륭한 장로교회의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잠깐만요, 신부님..."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저를 마이크(Mike)로 부르십시오" 저는, "알겠습니다, 마이크님, 저는 당신께 제 팔을 부러뜨리고 그리고 강제로 저를 들어오게 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고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글쎄요, 만약에 당신이 저로부터 도움을 원하신다면, 당신은 엉뚱한 사람에게 왔음에 틀림없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Meanwhile, I sent an application off to Marquette University because I had heard they had a few really outstanding theologians who were based on the covenant who were studying the Church and doing lots of good things. Right before I heard back from them that I was accepted, and I got a scholarship, I began to visit a few priests in the area. I was scared. I'd do it at night so nobody would see me. I almost felt dirty and defiled stepping into the rectory. I'd sit down and finally get some questions out and, to a man, each priest would say to me, "Let's talk about something else besides theology." None of them wanted to discuss my questions. One of them actually said, "Are you thinking of converting? No, you don't want to do that. Ever since Vatican II we discourage that. The best thing you can do for the Church is just be a good Presbyterian minister." I said, "Wait a second, Father..." "No, just call me Mike." I said, "OK, Mike. I'm not asking you to break my arm and force me in. I think God is calling me." He said, "Well, if you want help from me, you've come to the wrong man."

 

이것과 같은 세 번 혹은 네 번 혹은 다섯 번의 만남들 이후에, 저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이것을 킴벌리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당신이 풀 타임으로 학습할 수 있는, 당신이 원 출처로부터(from the horse's mouth) 그것을 들을 수 있는, 당신이 믿는 가톨릭 교회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당신이 확실히 하기 위하여, 가톨릭 학교로 가야만 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도와 준비 후에, 우리는 Milwaukee 로 이사를 갔으며, 거기서 저는 풀 타임으로 2년간 그들의 박사 학위 프로그램에서 학습하였습니다. 

 

After three or four or five encounters like this, I was confused. I shared it with Kimberly. She said, "You've got to go to a Catholic school where you can study full time, where you can hear it from the horse's mouth, where you can make sure that the Catholic Church you believe in still exists." She had a good point. So after a lot of prayer and preparation, we moved to Milwaukee where I studied for two years full-time in their doctoral program.

이들 2년 동안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하였던 학습 중에서 가장 풍부하였으며 그리고 또한 가장 풍부한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자신을, 제가 실제로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오는 공격들에 대항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방어하는 고독한 프로테스탄트였던 일부 세미나들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기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대단히 성경적이며 그리고 대단히 "계약적인(covenantal)", 요한 바오로(John Paul)의 가르침을, 저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모두에 대하여 대단히 많은 이해를 하게 하였던 몇 명의 훌륭한 신학자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정말로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실제로 두 가지가 발생하였습니다.

 

Those two years were the richest years of study I ever experienced and the richest time of prayer as well. I found myself in some seminars, though, where I was actually the lone Protestant defending the Church's teaching against the attacks coming from Catholics. It was weird. John Paul's teaching, for instance, which is so Scriptural and so "covenantal," I was explaining to these people. But there were a few good theologians who made so much sense out of it all. I really enjoyed the time. But something happened along the way, actually two things.

 

첫 째, 제가 묵주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하는 것에 겁을 먹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가 시도한다고 하여 불쾌감을 갖지 마실 것을 청원하였습니다. 저는 계속하여 기도하였으며, 그리고 제가 기도함에 따라 저는 제 마음(mind) 안에서 제가 알게 되었던 다음과 같은 바를 더 많이 제 본심(heart) 안에서 느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저는 단지 하느님의 성부로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저의 형제로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는 당신의 어머니를 저 자신의 어머니로 가지고 있습니다.

 

First, I began to pray a rosary. I was very scared to do this. I asked the Lord not to be offended as I tried. I proceeded to pray, and as I prayed I felt more in my heart what I came to know in my mind: I am a child of God. I don't just have God as my Father and Christ as my brother; I have His Mother for my own.

 

제가 가톨릭 교회에 관하여 생각 중인 것을 전해 들었던 저의 친구 한 명이 어느 날 전화를 해 왔으며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그러하듯이 너도 마리아를 흠숭하니(worsphip)?"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은 마리아를 흠숭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들은 마리아를 존경해(honor)" 라고 말하였습니다. "글쎄, 그 차이점이 무언데?" 저는, "내가 설명하도록 하마.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부로부터 사람이 되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셨을 때에, 그분께서는 법, 즉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는 윤리법을 순명할 책임을 받아들이셨어. 거기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한 개가 있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크리스(Chris), 원 히브리어에 있어, "공경하라(honor)" 라는 단어인 kabod 는, 네 부모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 즉 어떠한 영광과 명예를 네가 가지고 있든지간에 네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의미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당신의 천상 성부께 드림으로써 그리고 당신 고유의 하느님의 영광을 취하여 당신의 어머니께 이 영광을 수여함으로써 바로 이 율법을 더 완벽하게 구현하셨어. 크리스, 묵주 기도에 있어 우리가 하는 모두는 당신 고유의 영광을 당신의 어머니께 수여하시는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야. 우리는 그녀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수여해" 라고 말하였습니다.

 

A friend of mine who had heard I was thinking about the Catholic Church called up one day and said: "Do you worship Mary like those Catholics do?" I said, "They don't worship Mary; they honor Mary." "Well, what's the difference?" I said, "Let me explain. When Christ accepted the call from His Father to become a man, He accepted the responsibility to obey the law, the moral law which is summarized in the Ten Commandments. There's a commandment which reads,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I said, "Chris, in the original Hebrew, that word "honor," kaboda, that Hebrew word means to glorify, to bestow whatever glory and honor you have upon your father and mother. Christ fulfilled that law more perfectly than any human by bestowing His glory upon His heavenly Father and by taking His own divine glory and honoring His Mother with it. All we do in the rosary, Chris, is to imitate Christ who honors His Mother with His own glory. We honor her with Christ's glory."

 

두 번째 일은 제가 Marquette, Gesu 에서 지하층 성당(the basement chapel)으로 조용히 들어갔을 때에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오 미사를 드리고 있었으며 그는 이전에 미사에 참례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살짝 들어갔습니다. 저는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두 무릎을 꿇지(kneel) 않았습니다. 저는 한쪽 무릎을 꿇지(genuflect) 않았습니다. 저는 설(stand)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구경꾼이었으며, 그리고 저는 지켜보기 위하여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십 명, 오십 명, 육십 명, 팔십 명, 혹은 일백 명의 보통 사람들이 정오 미사를 위하여 그냥 거리를 떠나 걸어서 들어오는 것에, 보통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으며(genuflect), 두 무릎을 꿇고 그리고 기도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러자 종이 울렸으며 그리고 그들 모두는 일어섰으며 그리고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전에 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The second thing that happened was when I quietly slipped into the basement chapel down at Marquette, Gesu. They were having a noon Mass and I had never gone to Mass before. I slipped in. I sat down in the back pew. I didn't kneel. I didn't genuflect, I wouldn't stand. I was an observer; I was there to watch. But I was surprised when 40, 50, 60, 80, or 100 ordinary folk just walked in off the street for midday Mass, ordinary folk who just came in, genuflected, knelt and prayed. Then a bell rang and they all stood up and Mass began. I had never seen it before.

 

말씀 전례(the Liturgy of the Word)는 너무도 풍부하여, 단순한 성경 독서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 생각에, 우리가 일요일 예배에서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성경을 매일 미사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들은 성경 언어 및 이사야서에제키엘서로부터의 구절들과 흠뻑 적셔져 있었습니다. 저는 거거에 "이보세요, 장면을 잠깐 멈추세요. 제가 여러분의 기도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즈카르야이며, 그리고 그것은 에제키엘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우아, 이것은 성경이 살아나 중앙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여기가 바로 내가 속하는 곳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The Liturgy of the Word was so rich, not only the Scripture readings. They read more Scripture, I thought, in a weekday Mass than we read in a Sunday service. But their prayers were soaked with Biblical language and phrases from Isaiah and Ezekiel. I sat there saying, "Man, stop the show, let me explain your prayers. That's Zechariah; that's Ezekiel. Wow! It's like the Bible coming to life and dancing out on the center stage and saying, "This is where I belong."

 

그러고 나서 성찬 전례(the Liturgy of the Eucharist)가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사제가 축성의 말씀(the words of consecration)들을 선언하는 것과 제병(the host)을 들어 올릴 때에 지켜보았으며 그리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순간에 의심의 마지막 방울이 빠져 사라졌던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보았으며 그리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영성체를 하고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때에, 저는 글자 그대로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주님, 저는 원합니다. 저는 더 충만하게 당신과의 하나 됨(친교, 통공, communion)을 원합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저의 본심에 오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개인적 구원자이시며 주님이시며, 더구나 지금 당신께서는 저의 혀 위에 오시기를 그리하여 저의 속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그리하여 이 통공(친교, 하나 됨, communion)이 완전하게 될 때까지(until this communion is complete) 저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저의 몸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원하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Then the Liturgy of the Eucharist began. I watched and listened as the priest pronounced the words of consecration and elevated the host. And I confess, the last drop of doubt drained away at that moment. I looked and said, "My Lord and my God." As the people began going forward to receive communion, I literally began to drool, "Lord, I want you. I want communion more fully with you. You've come into my heart. You're my personal Savior and Lord, but now I think You want to come onto my tongue and into my stomach, and into my body as well as my soul until this communion is complete."

 

그리고 그것이 시작하자마자, 그것은 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일 분 혹은 이 분 동안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지 않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저는 그냥 걸어나왔으며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한 것이지? 하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저는 돌아와 있었으며,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주일 혹은 세 주일 안에 저는 낚시 바늘에 낚겼습니다(hooked). 저는 그리스도와 그리고 축성된 성체(the Blessed Sacrament) 안에 계신 당신의 현존과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이것은 매일의 원천(the source)이고 정상(the summit)이며 그리고 절정(the climax)이 되었으며, 그리고 저는 여전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And as soon as it began, it was over. People stuck around for a minute or two for thanksgiving and then left. And eventually, I just walked out and wondered, what have I done? But the next day I was back, and the next, and the next. I couldn't tell a soul. I couldn't tell my wife. But in two or three weeks I was hooked. I was head over heels in love with Christ and His Real Presence in the Blessed Sacrament. It became the source and the summit and the climax of each day, and I still couldn't tell anybody.

 

그런데 어느 날 게리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그동안 스스로 수 백권의 책들을 읽어 왔습니다. 그는, "레슬리(Leslie)와 나는 1986년 이번 부활절에 가톨릭 신자들이 되기로 결정하였어" 라고 알려주기 위하여 전화하였습니다. 저는, "자, 잠깐 멈춰라, 게리야. 너는 내가 참가하는 것을 막기로 되어있었는데, 이제 너는 나를 두들겨 패어서 식탁에 데려가려고 생각하는거야? 이것은 공정하지(fair) 않아"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들어봐라, 스코트야, 나는 네가 어떤 반대들과 질문들을 여태 남겨 놓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의 것들 모두는 답해졌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나도 마찬가지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글쎄, 이봐, 나는 캐묻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Then one day Gerry called me on the phone. He'd been reading hundreds of books himself. He called to announce, "Leslie and I have decided that we're going to become Catholics this Easter, 1986." I said, "Now wait a second, Gerry. You were supposed to stop me from joining; now you think you're going to beat me to the table? This isn't fair." He said, "Listen, Scott, I don't know what objections or questions you've got left, but all of ours are answered." I said, "So are mine." He said, "Well, look, I'm not going to pry."

 

제가 전화를 끊었을 때에, 저의 경우에 있어 순명(obedience)을 늦추는 것이 거의 불순명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저에게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Mary)에 대하여, 교황(Pope)에 대하여, 심지어 1코린토 3,15과 뒤따르는 절들로부터 연옥(Purgatory)에 대하여, 성인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저의 형제들과 자매들로서, 성경에서 이미 너무도 분명하게 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제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느님의 가족이 가톨릭 신앙 모두에 대하여 이해를 하게하는 주 개념(the master idea)인가를 설명하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이시며, 교황은 영적 아버지이시고, 성인들은 형제들과 자매들 같으며, 성찬례는 가족 식사이고, 축일들은 기념일들 및 생일들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가족입니다, 저는 한 명의 고아가 아니며, 그리고 저는 가족(home)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께, "당신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요? 게리는 참가하려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요?"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주객을 전도시키셨으며 그리고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건 쉽습니다. 저는 가족에게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의 주님을 성찬례에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나는 너를 막고 있지 않아" 라고 말씀 중이시다는 느낌을 그냥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두게 하기를 원하였던 한 사람에게 제가 말을 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When I hung up the phone, it occurred to me that delaying obedience for me was becoming almost like disobedience. God had made it so clear in Scripture on Mary, on the Pope, even on Purgatory from 1 Corinthians 3:15 and following, on the saints as God's family, as my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I was explaining to friends of mine how the Family of God is the master idea which makes sense out of all the Catholic faith. Mary's our mother, the Pope is a spiritual father, the saints are like brothers and sisters, the Eucharist is a family meal, the feast days are like anniversaries and birthdays. We are God's family. I'm not an orphan; I've got a home. I'm just not there yet. I began to ask the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Gerry's going to join. What do you want me to do?" And the Lord just turned the tables and said, "What do you want to do?" I said, "That's easy. I want to come home. I want to receive our Lord in the Holy Eucharist." And I just had this sense that the Lord was saying to me, "I'm not stopping you." So I thought, I'd better talk to the one person who wanted to.

 

그래서 저는 아래층으로 내려갔으며 그리고 저는, "킴벌리, 당신은 게리와 레슬리가 무엇을 하기를 계획하고 있는지 결코 추측하지 못할 것이야" 라고 말하였읍니다. "뭐라고요?" 그녀는 바로 이 순간에 희망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들은 1986년 이번 부활절에 가톨릭 신자들이 되고자 해" 그녀는 저를 바라보았으며 그리고 통찰력과 함께 -- 그녀는 저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며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저를 사랑합니다 -- 그녀는, "그래서요? 그것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데요? 당신은 빨라도 1990년까지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약속을 저에게 하셨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래, 당신이 그것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네, 그래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어.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 라고 느꼈다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을 것이야" "안되요, 안되요, 안되..." "당신이 그것에 대하여 기도해 줄래?" "스코트, 당신의 약속들로부터 멀어져 영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요." 저는, "그러나 킴벌리, 당신은 이것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고, 당신은 이것을 읽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당신은 이것을 논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러나 나에게 있어 하느님께서 너무도 분명하게 만들어 놓으신 어떤 것에 대한 순명을 늦추는 것이, 불순명이 되고 있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킴벌리가, 나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에게 제가 불순명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거나 혹은 불순명하도록 압력을 결코 가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하게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하여 기도할께요, 그러나 저는 제가 배신을 느끼며, 제가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제가 저의 삶에 있어 이렇게까지 외롭다는 것을 결코 느끼지 않았음을 당신께 말해야만 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하였으며,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녀를 축복하였으며, 그녀는 돌와와 "이것은 저의 삶에 있어, 저의 혼인에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제가 하기를 원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So I went downstairs and I said, "Kimberly, you'll never guess what Gerry and Leslie are planning to do." "What?" She had already given up hope at this point. "They're going to become Catholics this Easter, 1986." She looked at me and with insight -- she knows me so well and she still loves me -- she said, "So what? What difference does that make? You gave me your personal promise that you wouldn't join until 1990 at the earliest." I said, "Yeah, you remind of that; that's right, I did. But I could be dispensed from that if you felt..." "No, no, don't...." "Would you pray about it?" "Don't spiritualize away your promises, Scott." I said, "But Kimberly, you don't want to hear this, you don't want to read this, you don't want to discuss it. But for me to delay obedience to something that God has made so clear, it becomes disobedience." I knew Kimberly loved me enough to never allow me or pressure me to disobey my Lord and Savior. She said, "I'll pray about it, but I have to tell you, I feel betrayed. I feel abandoned. I have never felt so alone in my life. All my dreams are dying because of this." But she prayed, and God bless her, she came back and she said, "This is the most painful thing in my life, in our marriage, but I think it's what God wants me to do."

 

1986년의 바로 그 부활 전야(the Easter vigil)에, 그녀는, 제가 성사적 그랜드 슬램(sacramental grand slam)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조건부 세례(conditional baptism), 첫 고해성사, 견진성사 그러고 나서, 하느님께서 들어 올려지시는, 영성체를 모셨던, 부활 전야 미사에 실제로 저를 동반하였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에 저는 그녀의 울음을 느꼈으며, 그리고 저는 그녀를 제 팔로 감쌌으며 그리고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보아라, 킴벌리에 대한 자네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내가 자네에게 요청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그녀를 자네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 보다 내가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네의 사랑 때문에 자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자네가 그녀를 사랑하기를 내가 원하는 정도까지 많이 그녀를 사랑할 굳셈을 자네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야. 자네에게 부족한 바를 내가 영성체에서 자네에게 줄 것이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러시다면, 그것을 그녀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해 주십시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내가 머지 않아 그렇게 할 것이니, 자네는 이제 그만 뒤로 물러가거라(back off). 자네는 성령이 아니며, 따라서 자네는 그녀의 본심을 바꿀 수 없네" 라고 말씀하실 때에 저는 느리게 다가오는 다음과 같은 평화의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 며칠들 그리고 그 다음 몇 주들 및 몇 달들에 걸쳐 그녀는 여전히 흥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힘들었습니다.

 

That Easter vigil of 1986, she actually accompanied me to the vigil Mass where I received my -- what I like to call my -- sacramental grand slam: conditional baptism, first confession, Confirmation and then, God be raised, Holy Communion. When I came back I felt her crying, and I put my arm around her and we began to pray. The Lord said to me, "Look, I'm not asking you to become a Catholic in spite of your love for Kimberly, because I love her more than you do. I'm asking you to become a Catholic because of your love. Because you don't have the strength to love her as much as I want you to love her, I'll give you what you lack in Holy Communion." I thought, "Well, try to explain that to her." And I had this sense of peace slowly come when He said, "I will in due time; you just back off. You're not the Holy Spirit; you can't change her heart." The next few days and the next few weeks and months she still wasn't interested. It was hard.

 

저는 아래 Juliet 에서 거기에 있는 대학에서 몇 년 동안 가르치는 직업을 결국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사하기 직전에 주님께서 하신 어떤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우리느 세 번째 아기인 한나(Hannah)를 가졌습니다. 한나를 임신하였을 때에, 저는 실제로 겁을 먹었습니다. 수많은 이유들 때문에 겁을 먹었으나 그러나 킴벌리가 오로지 4개월 임신이었을 때인 어느 일요일 아침에 제가 겁을 먹었듯이 그렇게도 크게 겁을 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교회에서 마지막 찬송가의 마지막 절(stanza)을 노래하면서 서 있었는데, 그녀가 저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녀는 마치 유령처럼 창백하였으며 그리고 그녀는, "제가 좋게 느끼지 않아요, 제가 지금 하혈 중이에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주저 앉았으며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마침 성전(sanctuary)을 떠나기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신자석에 누었습니다. 저는 당황하였습니다. 저는 무엇을 하여야 할 지 몰랐으며, 그리고 그녀는 유령처럼 창백하였습니다. 저는 공중 전화로 쫒아갔습니다. 저는 우리의 산부인과 의사(O.B.)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글쎄요, 우리는 Marmion 박사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주말이기에 그가 도시를 떠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를 호출해 주시겠어요?" "우리는 그를 호출할 것이며 그리고 만약에 그가 주위에 있다면 그는 답신 전화를 할 것입니다." 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성 제라르도(St. Gerard Majella)(*)에게, 모두에게,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그 순간에 청원하였습니다. 십 초 혹은 아마도 십오 초가 지났을 것이며 그리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으며 그리고 "여보세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스코트이세요?" "그렇습니다" "여기는 Marmion 박사입니다." 저는, "패트(Pat, Patrick)님, 당신은 어디에 계시는지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당신은 어디에 계시는지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저는 지금 도시 밖 이 특정 자치구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디라고요" "바로 이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 어디에 당신이 있는지요?" "저는 바로 성전 밖 공중 전화 옆에 있습니다." 그는, "이것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바로 그 교회를 우연하게 방문 중입니다. 저는 지하층에서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곧 바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사 혹은 오 초, 아마도 팔 초 안에 계단들을 달려 올라왔습니다. 그는, "그녀가 어디에 계시는지요?" 저는, "여기에 그녀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달려가서 그녀에게 응급 처치 도움(administering help)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차에 탔습니다. 우리는 (고맙게도) 성 요셉(St. Joseph) 병원으로 질주하였고 킴벌리의 목숨은 구해졌으며, 아기의 목숨도 구해졌고, 그리고 결국에 한나는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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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성 제라르도(St. Gerard Majella)는 출산을 예상하는 임산부들의 수호 성인이다. 이 성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1. http://info.catholic.or.kr/saint/view.asp (굿 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성인 정보)
2. http://www.catholic.org/saints/saint.php?saint_id=150 (Catholic Online 제공의 가톨릭 성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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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ended up taking a job down in Joliet teaching for a few years at a college there. Right before we moved something happened which the Lord did. We had a third baby, Hannah. When Hannah was conceived, I was really scared. Scared for lots of reasons but never so scared as I was one Sunday morning when Kimberly was only four months pregnant. We were standing in her church singing the last stanza of the last hymn, and she turned to me. She was white as a ghost and she said, "I don't feel good, I'm hemorrhaging." She sat down and laid in the pew while everybody just began to leave the sanctuary. I panicked. I didn't know what to do; she was white as a ghost. I ran to a pay phone. I called up our O.B. I said, "Where is he?" "Well, we don't know where Dr. Marmion is. It's the weekend and he might be out of town." "Could you page him?" "We'll page him and he'll call back if he's around." I hung up. I was in a panic. I began to pray to St. Gerard, to everybody. I just asked the Lord Jesus Christ to help us. Ten seconds, maybe fifteen went by and the phone rang. I picked it up and said, "Hello." "Scott?" "Yes." "Dr. Marmion here." I said, "Pat, where are you?" He said, "Where are you?" I said, "I'm outside the city in this particular borough." "Where?" "At this church." "Where in the church are you?" "I'm right outside the sanctuary by the pay phone." He said, "This is unbelievable. I just happen to be visiting that church this morning. I'm calling from the basement. I'll be right up." He ran up the stairs in four or five, maybe eight seconds. He said, "Where is she?" I said, "There she is." He ran over and began administering help to her. She got in the car. We sped off to (thankfully) St. Joseph hospital and Kimberly's life was spared, the baby's life was spared, and eventually Hannah was born.

 

저는 주님께서는 너무도 우리에게 그리고, 제가 알아차렸던 것보다 더 많이 부서져 있었던 것같은, 우리의 혼인에 매우 더 가까이에 계신다는 바로 그러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저는 "우리는 새로운 아기와 함께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요?" 라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킴벌리는 한나가 태어나기 직전에 저에게 다가왔으며, 그리고 그녀는, "제가 왜 그런지 정확하게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주님께서 한나가 화해의 아이(a child of reconciliation)가 될 것이라고 제 마음에 새기셨어요. 저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신하지 못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껴안았으며 그리고 우리는 이에 관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I just had this sense that the Lord was so much closer to us and to our marriage which seemed more broken down than I realized. I began to pray, "What are we going to do with a new baby?" Kimberly approached me right before Hannah was born, and she said, "I'm not sure exactly why, but the Lord has impressed upon me that Hannah is to be a child of reconciliation. I'm not sure what it means." We hugged and we began to pray about it.

 

한나가 태어난 이후에, 킴벌리는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제가 그 이유를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저는 주님께서 제가 한나를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시키는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뭐라고!"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 세례 예식(baptismal liturgy)을 마쳤습니다. 저를 불러들였던 사제이신, Bruskewitz 몬시놀님은 바로 신심 깊은 사람의 가장 고귀한 왕자이십니다. 그는 지금 Lincoln 의 주교이시며 그리고 그는 이 사적 전례를 너무도 잘, 너무도 전통 및 성경으로 채워지도록 하셔서 이 예식을 절반 정도 진행하여 그가 전례 예식서 기도문들 중의 하나에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라고 하셨을 때에, 킴벌리는 거의 자신의 신발들로부터 뛰어 나왔습니다(jumped out of her socks). 그녀는, "알렐루야! 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아닙니다, 저는 가톨릭들이 바로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After Hannah was born, Kimberly approached me. She said, "I'm not sure why, but I think the Lord wants me to have Hannah baptized in the Catholic Church." I said, "What!" She said, "I'm not sure but yes." We went through this baptism liturgy together. Monsignor Bruskewitz, the priest who brought me in, is just the noblest prince of a godly man. He's now Bishop of Lincoln and he did this private liturgy so well, so filled with tradition and Scripture, that half way through it when he said, "Alleluia, alleluia," in one of the liturgical prayers, Kimberly almost jumped out of her socks. She said, "Alleluia! Oh, I'm sorry." He said , "No, I wish Catholics would do that; this is good."

 

세례라는 바로 이 전례 경축에 대한 하나의 결과물로서, 그녀는 세례 예식을 사진찍었으며 그리고 이것을 그녀의 가족 및 친구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이러한 토론들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읽기 및 기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단지 더욱 더 뒤로 물러나기 위하여(back off) 노력하였습니다.

 

As a result of this liturgical celebration of baptism, she photocopied the baptismal liturgy and sent it to her family and friends. But she still wasn't ready to go into these debates. She began to read and to pray. I just tried to back off more and more.

 

로마에 있는 바티칸으로의 여행

Trip to the Vatican in Rome

 

저는 한 가지를 삽입하고 싶습니다. 제 아버지는 바로 작년(1990년) 12월에 돌아가셨는데, 그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신 분이셨습니다. 1월달에 저의 장인께서, 장인과 그리고, 동 유럽으로 유출 중인 노골적인 도색 영화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매우 작은 집단이, 세미나 및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사적 알현을 위하여, 바티칸으로 가는 데에 저를 초청하셨습니다. 장로교 사역자이신 저의 장인께서 제가 교황을 만나도록 초청하신다? 저는, "그러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달에 저는 이 작은 집단 안에서 교황님과 만났을 뿐만이 아니라, 그리고 저는 또한 7:00 시에 있는 금요일 아침 미사를 위한 교황님의 사적인 경당에서 교황님께과 인접해지도록 초청을 받았습니다. 저는 교황님으로부터 단지 몇 발짝 떨어져 있었으며 그리고 저는 그가 기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교황님께서, 그 책임들 모두를 지고 있는 교회의 무게를 자신의 본심(heart)에 거두어 들이시고는, 자신의 머리를 자신의 손들로 감싸고 기도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읍니다.

 

I want to insert one thing. My father passed away just last December (1990), the man who taught me to love calling God "Father". In January my father-in-law invited me to join him and a very small group of people who are battling hard core pornography which is spilling into Eastern Europe over to the Vatican for a colloquium and a private audience with Pope John Paul II. My father-in-law, the Presbyterian minister, inviting me to meet the Pope? I said, "Yes." So last January I not only met with the Pope in this small group, but I also was invited to join him in his private chapel for Friday morning Mass at 7:00 a.m. I was just a few feet away from him and I felt him praying. You could hear him praying with his head in his hands, carrying the weight of the Church with all of its burdens in his heart.

 

교황님께서 미사 성체의 신비들을 경축하실 때에, 저는 한 개의 결심을,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결심들을 하였습니다: 날마다 미사에 더 깊숙히 참가하고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교황님께서 기도하셔야만 하는 바로 이 교역(ministry)에 참가하겠다는 결심. 그러나 이 두 번째 결심은, 우리의 성부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 자신들을 하느님의 가족으로 알게 하시고자,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거룩한 성찬례(the Holy Eucharist)와 함께 식탁 주변에 있는 우리를, 당신 고유의 자녀들인, 하느님의 가정으로서 알게 하시고자, 한 개의 놀라운 가족(an incredible family)과 함께, - 즉 우리 고유의 영적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우리의 천상 성부를 경배함에 있어 우리 모두를 인도하시는 안내자이시며 영적 아버지 같은 존재이신 교황님과 함께, 형제들과 자매들로서의 성인들과 함께 -,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이미 돕고 계시는지에(has graced us)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저의 형제들 및 자매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특전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이 얼마나 큰 은총을 당신께서 베풀어 주시는지!

 

As he celebrated the Mysteries of the Holy Mass, I made a resolution, actually two of them: to enter more deeply each day into the Mass and into this ministry that he has to pray for him. But the second resolution was to share with my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about our Holy Father, and how Christ has graced us with an incredible family, with the Blessed Virgin Mary to be our own spiritual Mother, with Pope John Paul II to be a guide and a spiritual father-figure to lead all of us in worshipping our heavenly Father, with saints as brothers and sisters, to know ourselves as God's family, but most of all, with the Holy Eucharist to know ourselves around the table as a household of God, His own children. What privileges we have; what graces He's given!

 

(이상 끝). 

 

번역자 주:

1. 위의 우리말 번역은 초벌 번역이며, 더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하여, 나중에라도 일부 문장들이 교정될 수 있습니다.
 
2. 애초에 저의 개인적 시간 관계로 그리고 전체 내용 이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생략한 전반부의 일부 부분들도, 나중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우리말로 번역을 해서 제공해 드릴 생각입니다. 
 
3. 위의 글은, 장로교 목회자의 딸이기도 한, 스코트 한 박사의 아내인 킴벌리 자매님께서 여러 명의 자녀들을 낳아 양육하고 있는 과정에서, 장로교 신학자이며 목회자 였던 남편의 가톨릭으로의 개종으로 인하여 겪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 및 육체적 고생을 고백하고 있는, 참으로 깨끗한 영혼을 가진 한 여성의 고뇌에 찬 외로움의 글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4.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킴벌리 자매님의 글까지 읽으셔야 위의 글에서 스코트 한 박사가 자신의 아내에 관하여 어떠한 심정을 사실은 고백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5. 위의 글의 뒷 부분으로 가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외짝 교우들께서 겪으실 마음 고생에 다소나마 위로를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 킴벌리 자매님의 글도 언젠가는 우리말 번역을 해서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6. 오늘(2011년 2월 12일) 새벽에 위의 제4항에 안내된 킴벌리 자매님의 글을 처음으로 읽고는, 킴벌리 자매님의 부친께서,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시는, 훌륭하신 장로교 목회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딸에게 가르쳐 준 다음의 기도가 킴벌리 자매님을 지켜준 바로 그 기도였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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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으며 그리고 그는, "킴벌리, 너는 날마다 내가 다음과 같이 하는 기도문을 기도하니: '주님, 당신께서 제가 가기를 원하시는 곳 어디든지 제가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가 말하기를 원하시는 것 무엇이든지 제가 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 무엇이든지 제가 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가 그만 두기를 원하시는 무엇이든지 제가 그만 두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저는, "아녜요, 아버지, 요즈음에 제가 그 기도문을 기도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왜 하지 않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제가 그 기도문을 기도하면, 그것은 제가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어야만 할 것을 뜻하는데, 저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킴벌리, 넌 이것이 네가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느냐 혹은 되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되심에 대한 질문임을 알아. 어디로 네가 갈 것이다 혹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 말하는 네가 도대체 누구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서 너에게 나무란다. 바로 그 기도문을 기도하도록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하거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One day my father called and he said, "Kimberly, do you pray the prayer I pray everyday: 'Lord, I will go wherever you want me to go. I will say whatever you want me to say. I will do whatever you want me to do. I will give away whatever you want me to give away'?" I said, "No, Dad, I don't pray that prayer these days." And he said, "Why not?" I said, "Dad, if I pray that prayer, that means I'm going to have to become a Roman Catholic. I will not become a Roman Catholic." And he said, "Kimberly, you know this is not a question of whether or not you are going to become Roman Catholic. This is a question of the Lordship of Jesus Christ. Who are you to say to Jesus Christ where you will and won't go?" He said, "I rebuke you as a brother in Christ. You pray for the grace to pray that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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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끝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모르다 보니, 국내의 개신교측에서 이런 저런 오해들을 하고 있는 것들이 좀 있다는 생각이며, 이번에 제가 번역하여 올려드린 바로 이 글이, 죄인인 우리들의 오로지 인간적 무지와 편견 때문인, 이러한 오해들을 불식시키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추가 참고 자료들:

(1) http://www.lazyboysreststop.com/hahn.htm 
(개신교 신자가 스코트 한 박사의 개종을 비난하는 일종의 요약 글로서, 이 글을 들여다 보면, 특히 위의 글 중에 등장하고 있는, 장소, 인명, 대학 등에 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음)

(2) http://www.preaching.com/sermons/11563997/page-5/ 
(다음은 개신교측의 설교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코트 한 박사의 장인이신 Jerry Kirk 박사의 기도문임)
 
Jerry Kirk, President of the National Coalition Against Pornography, often proposes this prayer for Christians:

 Lord, I will be whatever you want me to be.

Lord, I will go wherever you want me to go.

Lord, I will do whatever you want me to do.

Lord, I will say whatever you want me to say.

Lord, I will give away whatever you want me to give away.

(3) http://www.catholic-pages.com/church/splendour.asp 
(The Splendour of the Catholic Church, by Scott Hahn)
위의 글의 마지막에서 언급한 로마 방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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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대단히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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