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5주일(가해) 요한 11,1-45; ’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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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3-28 ㅣ No.4197

사순 제5주일(가해) 요한 11,1-45; ’20/03/29

 

 

 

 

 

사순 제5주일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전통에 따라 오늘부터 성전의 모든 성상들을 자주색 천으로 가립니다. 십자가는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거행을 마칠 때까지, 성화상들은 파스카 성야 예식을 시작할 때까지 가려 둡니다. 십자가를 가리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고 계심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자색 천으로 가려진 휘장 뒤에서 우리를 위해 수고수난하시는 주님을 기억합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 보이지 않는 신비를 바라봅니다. 휘장 뒤에 가려진 어둠 속에서 예수님의 신비와 권능이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의 희생제사를 봉헌하게 되실 주님의 거대한 사랑의 역사를 기대라도 하듯이 휘장을 멍하게 바라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는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의 대표적인 어둠 속에 갇힙니다. 그리고 그 어둠에 갇힌 라자로의 주변인들, 특히 가족인 마리아와 마르타는 커다란 슬픔에 잠겨 심히 아파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즉시 달려가시지 않고, 라자로가 그 병에 완전히 갇혀 죽을 때까지, 그리고 마치 그 가족들의 슬픔이 깊어질 수 있을 만큼 깊어질 때까지를 기다리시기라도 하듯이 뜸을 들이셨다가 라자로를 찾아가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요한 11,4)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을 찾았을 때 이미 라자로는 죽어 무덤에 묻혔고, 그 가족은 눈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 한계 상황에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한탄하듯 하소연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21)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곁에 계셨으면 하느님께 기도하여 자기 오빠를 죽지 않게 해 주셨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빠 라자로가 죽은 후에야 도착하신 예수님께 아쉽고 야속한 마음을 담아 하소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르타의 원망에 대해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23) 주님께서는 마르타가 그저 사람이 죽기 전에, 사람의 살아 생전에 병에서 구해줄 수 있는 의사이거나 예언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예수님을 의사나 예언자를 넘어서는 우리 삶의 주인으로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을 주님으로까지 믿지 못하고, 그저 사람이 그 생을 다하고 죽은 후, 마지막 날 하느님의 심판 때에 죽은이들이 다시 살아나리라고 했던 유다교의 믿음에만 충실한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4)라고 대답합니다.

 

주님께서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마르타에게 재차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25) 그리고 물으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26)

 

그제서야 마르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되고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

 

그러나 아직 다른 이들은 주님을 믿지 못하고, 라자로의 죽음만을 안타까워하며 울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33)고 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보여주시기라도 할양으로 그들에게 묻습니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34) 그들은 절망적으로 대답합니다. “주님, 와서 보십시오.”(34)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답답해서 그런지, 라자로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동하셔서 그런지, 사랑하는 라자로가 죽음에 갇혀 무덤에 묻혀있는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그런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36)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엉뚱하게도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주실 수는 없었는가?”(37)라고 하며 빈정거리듯 말합니다.

 

복음사가는 반신반의하며 친지가 죽었다는 사실에만 몰두하여 전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들의 대응을 바라본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38)라고 적고 있습니다. 급기야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라”(3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머리와 말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라고 고백했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아니 현실에서 그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자신의 오빠를 다시 살려주시리라는 사실을 상상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믿지 못하는 마르타가 예수님을 제지합니다. “,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39)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면서도 부드럽고 강력하게 마르타를 일깨워 주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40) 드디어 사람들이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치웠습니다.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머리와 말로만 예수님을 믿고 있는 마르타와 추종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다 죽고 난 저 마지막 날, 심판의 날, 부활의 날 때가 되어야만 이루어질 뿐이지 과학적 진리라고 하는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재생의 신비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그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 표징을 보이는 것이오니 아버지께서 들어주십사 하고 청합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41-42) 아버지의 응답에 힘입어, 아니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해 있는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권능에 힙입어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라자로야, 나와라.”(43)

 

그러자 죽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서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그러자 아직도 그를 묶고 있는 수의들을 걷어 내어 주라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를 풀어 주어 걸어 가게 하여라.”(44) 그제서야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 그리고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라자로를 문상 왔던 친지들과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같이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휘장 너머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상 제사를 준비하고 계신 주님께서, 라자로를 살려주신 그 은총으로 우리 인류사회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둠과 죽음의 행진에서 풀어주어 걷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라자로야, 나와라.”(요한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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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32&id=162687&Page=14&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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