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약현성당 게시판

드러운 성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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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3-01-16 ㅣ No.1142

어렸을때 저는 싸움꾼이었습니다. 지금이라고 성질이 안드러운 것은 아니지만 옛날 어렸을때는 지금 생각해도 낯이 뜨거울 정도로 못된 짓을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싸움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도 많이 싸웠고 학교 친구들과도 그랬고 더더군다나 형제들과는 거의 매일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동생이나 누나와 싸울때였습니다. 동생과 싸우면 형이 되가지고 동생 때린다고 어머니께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고, 누나와 싸우면 동생이 손위사람에게 순종하지 않는다고 또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무슨 일때문인지 누나와 정말 피터지게 싸웠습니다. 누나는 싸우다가 비짜루를 들었고, 저는 두 주먹을 불끈지고 악의 무리와 싸운다는 생각으로 비짜루와 맞섰습니다.

 

잘못해서 비짜루에 주먹이 맞을때면 정말 악소리가 저절로 나고, 주먹이 부러진 것 같이 아팠지만 싸나이 자존심에 아픈소리도 못내고 이를 악물고 누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아, 무지막지하게 남자가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오해마십시오. 저와 누나는 9살 차이입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였고 누나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때 누나의 키가 저의 2배 정도라고 기억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휘두른 주먹은 대부분 비짜루가 아니면 누나의 허리정도 밖에는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보다 훨씬 작았던 제가 아무리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도 그렇게 누나가 아파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긴 저는 혼자 억울해서 많이 울었는데 그 억울함은 제가 누나를 한대도 제대로 맞히지 못해서 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다가 어머니께 역시나 걸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어머니는 너무나 화가나서 수도가에 있던 물호스를 빼들고서는 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싸움의 원인은 누나에게 있었고, 그래서 저는 잘못도 없이 맞는다는 생각에 너무나 억울해서 더 어머니께 대들었습니다. 대들면 대들수록 매는 더 강해지고, 맞는 시간은 더 길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누나가 어머니를 말릴 정도였겠습니까? 어린 시절 저에게 악의 무리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누나가 저를 생각해줄 정도였으니 그날의 시련이 얼마나 컸던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겁니다.

 

그렇게 맞은 저는 너무 억울해서 도저히 집에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저는 줏어온 자식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방을 뛰쳐나와 마당을 가로질러가서 김치독이 묻혀 있는 곳 위에 세어놓은 눈 막는 지둥의 기둥을 붙들고 차갑게 빛나고 있는 달을 보면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가출의 결과요?

 

추워서 나가다가 그 장독대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날의 사건은 제 기억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억울해서요.

그리고 몇년이 지난 뒤에 왜 저만 그렇게 맞고 살았는지 알게되었습니다. 누나는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어머니는 계모에 불과했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나이 많은 누나와 싸울때 어머니는 절대 제 편을 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요즘의 복음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알게 되다가 믿는 것은 어쨌든 믿음을 전제로 두고 아는 것보다 못한듯 합니다.  

어머니께 대한 믿음이 먼저 전제되어 있었다면 그때 알지 못했더라도 그렇게 서럽지 않았을텐데.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믿음이 먼저 깔리지 않았기에 저는 아직도 그렇게 어머니가 살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러운 성질때문인지 이렇게 나이가 먹어가면서도 안다는 것만 커가고 믿음의 깊이는 여전해서 어머니와도 별로 나아지는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가면서도 별반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 우리 삶에 매를 드시는 그분의 속마음을 좀 더 헤아리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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