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11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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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10-26 ㅣ No.72

아일랜드의 꼰칠리움 방문 -


서울 세나뚜스 윤병길 지도신부와 팽종섭 단장 등 간부들은 한번씩 농담삼아 ꡒ아일랜드 한번 가볼까요?ꡓ 했었다. 그런데 그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여섯 사람이 가정과 직장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한마음이 되어 정말로 떠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인천공항에서 8월 10일 만날 시각을 정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공항에서 만나 우리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며,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일랜드에서 레지오가 설립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평신도 단체의 대표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에 오르면서, 레지오 단원 생활 중에 가장 보람 있고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되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암스테르담 공항을 거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졌다. 12시간 여를 비행한 셈이다. 떠날 때는 한여름 날씨에 맞는 옷을 입었는데,  모두들 늦가을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물로 보냈던 짐을 챙기고 나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이들을 열심히 찾아 본다. ꡐ우리를 찾는 일행과는 무슨 표시로 만날 수 있으려나?ꡑ

마지막 출구에 이르니 「레지오 공인 교본」을 들고 있는 두 분이 보였다. 단원 암브로시오 형제와 글라라 자매였다. 성모님의 파견 명령을 받고 당도한 우리를 위해 또 다르게 파견된 이의 증표를 보니 뜨거운 형제애가 느껴졌다.

그분들은 우리를 승용차로 숙소에 안내했는데, 공항에서 15분 정도의 거리로 가까웠다. 여장을 풀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라운지에 모여 컵라면과 와인으로 파티를 열었다.

아일랜드에서의 첫날 밤, 검약하는 생활습관 때문인지 실내 온도를 낮게 하여 새벽잠을 설쳤지만 공기는 더할 수 없이 맑아 피로가 회복되어 몸과 마음이 상쾌한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고는 10시에 미사를 봉헌하며 성무일도를 바쳤다. 지도신부께서 ꡒ여행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으나 우리는 ꡐ레지오 순례자ꡑ로서 레지오가 시작된 본고장에 온 만큼 세계 각국의 흐름을 읽고 레지오 역사에 관련된 자료들을 통하여 보고 배우는 시간이 되도록 하자ꡓ고 하셨다.

14시에 꼰칠리움 사무실을 방문하였는데, 정원이 있는 아담한 단층 건물로 85년의 레지오 역사를 증명해주는 육중한 방명록이 방문자들을 맞는다. 차례로 서명하고 캐서린 자매의 자상한 설명에 따라 여러 가지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첫 주회합 때 제대차림의 소박하고 정갈한 모습, 창설자 프랭크 더프(1889~1980) 형제의 대형 초상화, 고운 한복 차림의 한국 성모상과 세계 각국의 특징을 살려 표현된 갖가지 성모님 상을 보니 신비롭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꼰칠리움 사무실 좌우에는 꼰칠리움에서 운영하는 행려자․알콜 중독자 보호소인 ꡐ샛별ꡑ 남성 무료 숙식소와 미혼모․고아․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ꡐ천상의 모후ꡑ 여성 무료 숙식소가 있었다. 천상의 모후 숙식소 2층에는 프랭크 더프가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오랫동안 기도했다는 성당이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프랭크 더프 생가에 가보았다. 아담한 2층 집으로 벡실리움 모양의 화단이 인상적이었다.

1층에 응접실과 서재가 있었는데 그 벽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창설자의 삶의 모습과 근면하고 성실한 아일랜드 국민성을 읽을 수 있는 자료가 특히 많았다. 프랭크 더프가 사용했던 문구류, 각종 성구, 레지오의 기초를 다지는 각종 메모지와 수첩들, 즐겨 타고 다녔던 자전거, 옷장, 하느님 품으로 가실 때까지 사용하신 침대 등을 보면서 레지오의 심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이 일었다. 성모님의 구원사업 돕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레지오를 창설해 나가면서 사용했던 자료들, 그리고 그 자료를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는 꼰칠리움 간부들의 정성에서 참된 레지오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벽에는 예수 성심상이 걸려있는데, 그는 이 상본 앞에서 늘 기도하였다고 한다. 프랭크 더프 형제가 하느님 곁으로 갈 때까지 사용했던 침대에 둘러서서 더프 형제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ꡐ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훗날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ꡑ 깊은 묵상에 잠겼다.


둘째 날 11시에 통신원 페트릭 페이 형제와 한 자매가 더블린 시 글라스빈에 있는 프랭크 더프 묘소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였다. 묘소에 헌화하고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와 추모 기도를 바쳤다. 그곳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이어져 아름다운 꽃들이 놓여있는 것으로 생전 그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12시에 묘지를 떠나 피닉스 공원을 둘러보았다. 대통령궁과 각국의 대사관과 공관이 위치한 대공원, 수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문하셨을 때는 백만 명이 모여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인구의 4분의 1이 참례한 큰 행사였던 것이다.

오후 1시에 꼰칠리움 본부에 있는 아담한 ꡐ천상의 모후ꡑ 성당에서 윤병길 지도신부의 집전으로 미사를 드렸다. 이곳은 더프 형제의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이라고 한다. 세나뚜스의 발전과 레지오 단원들의 가정을 위하여 은총을 청하는 미사로 윤 신부님은 ꡒ묘소 참배를 하면서 느낀 점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미래의 영광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추진하려는 사업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믿고 기도드리자ꡓ고 하셨다.

오후 3시에는 꼰칠리움 단장 토미 멕케이브 형제와 전․현직 간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꼰칠리움 직속에는 275개 그룹(세나뚜스 84, 레지아 51, 꼬미씨움 55, 꾸리아 75, 쁘레시디움 10)이 운영되고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세나뚜스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발전 방향, 꼰칠리움에서 서울 세나뚜스에 바라는 방향 등 레지오 현안 전반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한국에서도 프랭크 더프 형제의 탄생일(6월 7일)과 선종일(11월 7일)에 기념미사를 봉헌해 주기를 희망하였고 일부 서면 질의 내용은 토의를 한 후에 답을 보내주기로 하였다.

저녁식사에는 꼰칠리움 지도 비드 맥그리거 신부가 함께하여 즐겁고 깊은 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19시에 마이러 하우스를 방문하였다. 최초 쁘레시디움 주회합이 열렸던 장소와 창설 당시 마리아의 신심에 대하여 깨닫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곳이다. 처음부터 매춘부들에게 새로운 삶을 권유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집집마다 방문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방문자는 누구나 입구에 있는 실물 크기의 예수성심 상에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으며, 지금도 주회합을 하는 장소로 사용한다고 한다.

평신도인 레지오 단원들의 활동에 대하여 교구에서조차 처음 9년 동안은 오해와 비판을 하고 심지어는 적대감까지 나타내어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교구에서 쫓겨난 것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창설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를 바쳤다.    

       

셋째 날 아침 7시에 성모님 발현지인 녹(Knok) 성지에 가기 위해 대형택시에 여장을 싣고 출발하였다. 나반(Naban)에 도착하니 골롬반 외방선교회 마 브렌던 멕케일 신부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우리말에 능통하신 아일랜드 신부님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 여행의 즐거움이 한층 더해졌다. 마 신부님의 주선으로 나반 꾸리아 성지순례단과 합류하여 버스로 2시간 동안 이동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리니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12시 조금 지나 성지에 도착하였다. 녹 성지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ꡐ침묵 가운데 평화ꡑ를 강조하시고 ꡐ침묵과 명상을 가지라ꡑ고 이르셨다고 하며,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다녀가신 곳이다.

윤병길 신부의 주도로 ꡐ십자가의 길ꡑ 기도를 바치고,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성모님 발현 성당을 돌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15시에 원형 대성당에서 윤병길 지도신부와 20여 명의 사제가 공동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강복에 이어 성모상을 모신 행렬을 따라갔다. 성모상을 앞세우고 3,000여 명의 신자들이 뒤를 따라가며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는데,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힘들게 행진에 참여하여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여름에만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에만 성모상 행진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기후 변화가 특히 심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는 아일랜드 서쪽 지방 녹 성지에서 이처럼 맑은 가을 날씨에 성모님 행진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우리를 안내해주시는 나반지구 꼬미씨움 부단장과 단원들의 정성어린 도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20시 즈음에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달간 공원(Dalgan Park)에 도착하여 마 신부님의 안내를 받았다. 간단한 다과와 와인을 나누며 준비한 여정에 대하여 대화를 하였다. 건축된 지 250년 된 수도회 건물에서 잠을 청하려니 감회가 깊었다. 250년 긴 세월 동안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수많은 길손이 머물다 간 석조건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피와 땀과 목숨까지 바쳤을 수도자들의 삶의 모습이 구석구석 서려 있어 과거의 소중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넷째 날 10시에 지미, 프란치스코, 크리스티 등 레지오 단원 네 사람과 함께 승용차 2대에 분승하여 이동하면서 ꡐ프랭크 더프ꡑ의 할아버지가 사셨던 집을 방문하고, 레지오 단원이 준비한 융숭한 점심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툴라모아에 있는 ꡐ알피 램ꡑ의 생가를 방문하였다. 이 집은 ꡐ알피 램ꡑ(남미 대륙에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를 전파)이 1953년 남미에 선교사로 나가기 전까지 살았던 집으로, 사용했던 생활용품을 잘 보존하고 있었고, 선배 단원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으며 지금도 쁘레시디움 주회합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ꡐ알피 램ꡑ이 사용했던 의자에 앉아 여행일지를 기록하고, 시복시성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드렸다. 15시에 빌르첵스 유물 전시관을 견학하고 봉사해준 단원들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대형택시를 이용하여 킬케니 시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저녁식사 후에 꼰칠리움 직속 꾸리아 내의 ꡐ병자의 도움ꡑ 쁘레시디움 단장과 단원들을 호텔 로비에서 만나 대화를 가졌다. 회의록을 보니, 큰 노트에 주회합의 진행 내용을 서술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행정적으로 발전한 듯한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10시에 미사를 봉헌하면서 도움을 준 많은 분들을 위하여 기도드렸다.

      

닷새째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고 아침을 먹은 뒤 단원인 댄 형제․브리다 자매 부부와 가이드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킬케니 시내의 고궁, 유적지, 유서 깊은 성 도미니코 수도원 성당, 관광객을 위한 상가를 둘러보았다. 킬케니 성은 옛날 잉글랜드와 전쟁할 때 끝까지 항전하여 승리했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12시에 동정 성모의 섬(Our Ladyꡑs Island)을 향해 출발하였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니 한기가 느껴졌다. 1169년에 건축된 성당에서 주교님과 사제단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악천후에도 성당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신자들이 모여 들었다. 제대 앞 자리에 간신히 끼어 참례하였는데 성혈까지 영하는 은혜를 받았다. 평화롭고 소박한 미사를 마치고 로슬레이 역에서 더블린 역까지 해안선 기차여행을 하였다. 학생들이 방학 중이어서 한산한 기차에 한 칸을 전세낸 듯 사랑방 좌담을 해가며 이국의 풍경을 즐겼다. 마치 우리나라의 동해북부선을 타고 정동진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블린 역에 닿으니 이슬비가 내리는 초저녁이었다.

택시로 더블린 외곽 주택가에 있는 교민 이 마리 비안카 자매의 댁에 도착했다. 며칠 동안 아일랜드 식사로 어려움을 겪던 우리는 오래간만에 한식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위해 공부방까지 내놓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사 중 이 가정과 가족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엿새 째에는 유명한 셀리켑 산 관광을 위하여 9시 30분에 출발하였다. 한인 천주교회의 한만삼(요셉) 신부와 주 이냐시오 형제의 안내와 봉사를 받으며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산에 오르고 있었다. 편평하게 보이는 산에 오르니 원시림처럼 우거진 삼림과 지리산 비래봉의 철쭉꽃을 연상케 하는 작고 붉은 꽃의 군락으로 이루어진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발아래 굽어보이는 기네스 별장과 호수, 산 전체가 토탄으로 이루어져 있어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ꡐ기네스 맥주ꡑ 색깔인 검은색이었다. 이국의 정취가 한층 느껴져 타국에 와 있음이 실감났다.

산 아래로 내려와 그랜달로그 유물전시관과 유적들을 살펴보고 호수까지 뻗어있는 산책길을 걸으며 조용한 유원지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았다. 한 신부님께서 베푸신 점심을 먹고 나서 동쪽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달키 해변 등을 관광하고 한인 성당에 닿았다. 며칠 전 꼰칠리움 간부와 대화 때에 통역을 도와주셨던 이은숙 수녀를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한 신부님께서는 외방선교로 아프리카로 가실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가신다고 하니 많은 기도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의미 깊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곳 특산물인 토탄으로 제작한 십자고상을 선물로 주셨다.

작고 아담한 성당에 들러 감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ꡒ이곳을 찾게 되는 많은 한국인들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 마음의 평화를 이루길 바랍니다ꡓ라고 기도드렸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민박 가정으로 돌아와 미사를 드렸다. 지도신부께서는 강론에서 ꡒ용서를 하면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사막을 찾아온 순례자가 추장에게 ꡐ이곳에는 무엇이 있습니까?ꡑ 하고 묻자 추장은 ꡐ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ꡑ라고 하였다고 한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ꡓ고 하셨다.

아시아 담당 통신원 페트릭 페이가 지난해 개최되었던 ꡐ서울대교구 레지오 도입 50주년 기념행사ꡑ 내용이 실린 잡지를 가져왔다. 그 내용을 보면서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를 내일이 ꡐ50주년 신앙대회ꡑ 1주년이 되는 날이란 걸 새삼 인식했다. 지도신부, 다섯 간부, 준비위원과 열심히 기도해주신 6만여 단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치른 레지오 도입 50주년 행사와 이 여행이 너무나 신비롭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들만의 결정이 아니었고 미리 계획하시고 마련해 주시는 분이 계신다고 생각하며 감사를 드렸다.    

윤병길(세례자요한) 신부의 열정어린 지도와 팽종섭(그레고리오) 단장을 중심으로 다섯 간부가 한마음이 되어 봉사한 3년의 결실로 레지오 마리애의 발상지 아일랜드를 방문하여, 꼰칠리움의 전․현직 간부들이 서로 도우며 사랑으로 어우러져 봉사하는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확신이 서고, 독신으로 생활하면서 한평생을 하느님 사업에 종사하는 이곳 단원들의 수도자 같은 삶에서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여행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덕택으로 이루어졌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아일랜드 여행을 통하여 보고, 배우고, 확인하고, 느낀 모든 내용이 한국 레지오 마리애 발전을 위하여 쓰이도록 마련해주신 주님 은총에 감사드린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진첩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꺼내어 보며 더욱 열심히 성심껏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_한관섭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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