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동성당 게시판

신학생이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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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욱 [asinusdei] 쪽지 캡슐

2000-05-29 ㅣ No.1318

  +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송영욱 프란치스코 신학생이 글 올립니다.

신학교의 축제가 끝나고 처음으로 게시판을 보았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할만큼 많은 글들이 올랐군요.

신약성서 이어쓰기가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 그리고,

이선호 사무엘 학사님의 글 등. (아예 도배를 하셨더군요...)

 

 

 제가 오늘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축제때 많은 분들이 오시지 않았다고 서운했다거나

섭섭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알죠? 저 겸손한 거!

 

 

 또한 오시지 못한 분들께 저의 눈부신 활약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예요.

 

 알죠? 저 겸손한 거!

 

 

 단지 여러 분들께 축제가 무사히 끝났음을 알리고

또한 여러분께 안부를 전하며 같이 기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 올리는 겁니다. (^^;)

 

 

 

 축제 마지막 날, 저는 축제에 오신 분들께 장애인들이

만든 물품을 판매하는 자리에서 천사 모양의 초를 하나 사서

선물해 드렸지요. 초를 받으신 분들은 초가 너무 예뻐서

켜기가 아까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서 저는 후에 곰곰히 그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초! 초는 스스로 자신을 태움으로써 세상에 빛을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세상에 광명을 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초를 많이 사용합니다. 아시죠?

지금도 성당에서 타고 있는 부활초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너무나도 많지만, 저는 그 분들 중에서도

어머니들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보내십니다.

그러기에 처녀 시절에 가졌던 매끄러운 손은 거칠어지고

매끈했던 이마에도 주름살이 생기지요. 자식이 생기기 전에는

천사같던 모습이 마치 타다만 초인양 추하게 변합니다.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어떠셨을까요? 대부분의

성화에서는 마리아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성모님의 모습을

항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분의 얼굴은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으리라고 추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모님은 시골이 아낙네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거칠은 피부에, 거무스르한 얼굴. 바로 우리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그 분의 외모는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아름다우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예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고, 그 분의 거친 피부는

그러한 희생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막 핀 꽃이 아니라, 오랜 풍상을 견디어 열매를

맺은 후 떨어지는 시든 꽃 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직 타지

않은 초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 주어 불을 타게 한

후 못난 모습으로 사그러져 가는 초 입니다.

 다음에 본당에 나가면, 그 분들에게 선물한 초가 여러번 불을

타게 하여 처음의 모습을 잃은, 그런 초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한 초가 아름다운 초입니다.

 오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 성월이 다 끝나가는 이 때,

늦으나마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p.s 어머니. 지금 저는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기에 직접 찾아가

 손 한번 잡아드리며 인사를 나눌수가 없군요. 그러나

 당신께서는 아실 겁니다. 저희 신학생의 효도가 무엇인지.

 비록 얼굴은 뵈올 수 없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드릴 수

 없어도, 주님 안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어머니의 자식, 영욱이를 포기하시는 대신, 어머니께서는

 신학생을, 더 나아가 사제를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저희 가족을 생각하며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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