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4주간 화요일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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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3-23 ㅣ No.4188

사순 제4주간 화요일 3/24

 

우리는 가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면서, 정상적인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가 하며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가끔 이러 저러한 다른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는 해도 나중에 정상적이 아닌 이러 저러한 방법으로 말미암아 부작용이 생겨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또 다른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사람이 나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는 벳자타라는 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출렁거릴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이가 치유된다고 하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앓는 이는 그 전설을 확실히 믿고서는 그 기회를 노리고 노력했었지만, 번번이 그가 못에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가.”(요한 5,7)는 바람에 자신이 치유되지 못한다고 여기고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가 그에게 묻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6) 그러자 그는 위와 같이 자신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정을 아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믿고 있는 치유의 방법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하는 논쟁을 벌이시거나, 그 전설 대로 물이 흔들릴 때 그를 들어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지 않으시고,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8)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9)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물이 흔들릴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을 고쳐주시는 분도 주 에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라도 하듯이,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과는 별개로 전혀 다른 방법대로 그를 구하십니다.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르지만, 비정상적인 방법이 판을 치고 정상적인 방법을 쓰는 사람이 조롱거리가 되는 이 시기에 정상적인 방법을 고집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자조적으로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것인지? 원래 비정상적인 것인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면, 비정상적인 방법을 쓰면서 이루었을 때 정상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내가 쓰고자 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단순한 참고사항이며 지원이며 다른 방법인지 아니면 부정이요 범죄인지?

내가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방법을 쓰면 정작 이루어지는지?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해 주시는 분은 누구신지?

주 예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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