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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의 차이점에 대한 대화 -2 1035_시기vs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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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vs질투 -14 [218.55.90.*]

2014-02-07 ㅣ No.151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시기는 남의 것을 나는 가지지 못 해서 느끼는 감정이고
질투는 내가 가진 것을 남이 뺏어가서 느끼는 감정이지요.
그게 심리학에서 둘을 나누는 기준입니다.

하느님은 만물의 소유자이니 시기는 할 수가 없어요.
질투는 하시죠. 특히나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가 연인이나 부부로 흔히 묘사되니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질투하는 신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수사적으로도 자연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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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1.

1-1. 위의 ㅂ 형제님의 말씀에서, "시기"를 "질투(嫉妒, envy)"로 교체하고 그리고 "질투"를 "시기(jealousy)"로 교체하면, 형제님의 말씀은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바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영어로 정의(definition)가 되어있는 "envy""jealousy"의 의미를 정의하는 문장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지 "envy"를,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용어인 "질투(嫉妒)"로 번역하는 대신에, "시기"로 번역하고 그리고 "jealousy"를, "시기" 대신에, "질투"로 번역한 경우가 바로 위의 ㅂ 형제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가 아닌, 번역서들인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의 문헌들에서, 전후의 문맥 안에서 번역 대본의 원 문장의 의미와 동일하게 하고자 필요시에, 정확한 자구적 의미/어의에 근거한, 해당 우리말 번역문 중의 "질투"를 "시기"로 교체하고 그리고 "시기"를 "질투"로 교체하는 행위 이외의, 아무런 생각 없는 이들 두 용어들의 기계적인 교체 행위는 해당 문장의 의미를 훼손할 수도 있기에 적극적으로 삼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i) "envy"는 2자(者) 사이에서 발생하나, 그러나 "jealousy"는 기본적으로 경쟁(rivalry, emulation; 라틴어 aemulatio)의 삼각관계에서, 즉, 3자(者)사이에서, 특정 1자(者)를 타자(他者)에게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나머지 2자(者)들 사이의 경쟁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ii) "envy"는 "evil/bad jealousy"에 포함되고 그리고 "good jealousy"도 있기 때문에, "jealousy"는 일반적으로 "envy"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알기로, "심리학(Psychology)" 이라는 학문 분야는 비교적 최근인 근대 시기에, 우리나라가 결코 아닌, 유럽 지역에서 처음 등장하였다고 알고 있으며, 그리고 비록 무신론적인 면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말씀하신 "심리학" 분야에서의 "envy(게시자 주: ㅂ 형제님께서는, "질투"로 번역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는 필자와는 정 반대로, 이 단어를 "시기"로 번역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음)" 와 "jealousy(게시자 주: ㅂ 형제님께서는, "시기"로 번역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는 필자와는 정 반대로, 이 단어를 "질투"로 번역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음)" 라는 영어(English)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가 위의 말씀대로라면, 이들 영어 용어들은, 13세기 중반에 저술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주어진 "envy""jealousy" 라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와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필자가 말씀드린 바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5.htm <----- 필독 권고

 

따라서 바로 이 이유 때문에, ㅂ 형제님께서 우리말로 위에서 말씀하신 바를 영어 문장으로 말씀해 주시면, 위에서 말씀하시는 바는 그동안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말씀드려온 바와 동일하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2. 그런데, "질투(嫉妒)" 라는 한자 단어는,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시기"의 의미를 나타내는 "envy(라틴어: invidia)"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서 이미 중국의 명나라 말기에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채택이 되었고,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중국의 천주교 교리서, "칠극"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의 제2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필독 권고

 

3. 그러므로,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 "질투(嫉妒, envy, invidia)"는 앞으로도 국내의 천주교 내에서 보존되면서 계속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있는 졸글을 읽어 보십시오. 인문학 분야의 전공 교수들과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를 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9.htm <----- 필독 권고

 

"jealousy"를 자신의 느낌에 따라, (i) "시기"로 번역하는 분들과, (ii) "jealousy"를, "시기" 대신에, "질투(嫉妒)"로 번역하는 분들이 50:50 정도였다는 생각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어 보십시오.

 

5. 그리고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i) "시기(jealousy)" 에는 "하느님의 시기(divine jealousy)"(2코린토 11,2)처럼 "[윤리적으로] 선한 시기(good jealousy)" 도 있고 그리고 로마서 1,29에서처럼 "[윤리적으로] 악한/나쁜 시기(evil/bad jealousy)"도 있기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2코린토 11,2에 대한 해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ii) "질투(嫉妒, envy, invidia)"는 항상 "나쁜 시기(bad jealousy)"에 포함되므로,(**)

 

"질투(嫉妒, envy)""시기(jealousy)"와 함부로 동일시하면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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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에 대하여서는, 2코린토 11,2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해설로의 안내가 주어진 다음의 글의 제7-4항과 그곳의 게시자 주 7-4를 읽도록 하라:

 

(**) 게시자 주: "질투(嫉妒, envy, invidia)"가 가톨릭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 분야에서, 일곱 개의 죄의 우두머리들을 말하는, 다음의 칠죄종들 중의 한 개임을 상기하라:

http://liturgia.kr/?p=4091 <----- 필독 권고

[가톨릭전례학회 홈페이지 제공의 조영대 신부님(전례학 전공 교수 신부님)의 글]

----- 

 

6.
6-1. "새 번역 성경" 의 구약과 신약 본문에서, 칠십인 역(LXX) 구약 성경을 경유하여 동일한 그리스어 어근(root)을 가지는 단어(영어로 "jealousy"로 번역됨)를 구약 본문에서는 "질투(嫉妒)" 로 번역을 하고, 그러나 신약 본문에서는 "시기"로 번역한 것은, 원 용어의 자구적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의 당연한 요건인 일관성 유지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으며,

 

6-2. 그리고,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예를 들어, "envy(invidia)"를, 모두 "질투(심)"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임의적으로 "질투(심)"(앞부분인 제391항제412항) 혹은 "시기(심)"(뒷부분인 제2583-2540항)으로 번역한 것은, 원 용어의 자구적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의 당연한 요건인 일관성 유지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7.
7-1.
다음의 주소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질투"를 검색한 후에, "질투" 글자를 다시 한 번 더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3개의 설명들이 나옵니다:

 

(발췌 시작)
질투(嫉妬)
「명사」

「1」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강샘ㆍ모질03ㆍ투기06

「2」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3」『가톨릭』칠죄종(七罪宗)의 하나.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일을 이른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민감한 사안의 경우에 발췌를 할 때에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되도록 전문을 발췌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시기(猜忌)"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시기(猜忌)

「명사」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함.

(이상, 발췌 끝)

 

7-2. 그런데, "새 번역 성경"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은 모두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의 번역서들이므로,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위의 「3」항의 설명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즉, 번역서들인 우리말본 "새 번역 성경",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에서 차용 번역 용어로 사용 중인 "질투"의 의미는, 마땅히 위의 「3」의 설명/의미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즉,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가톨릭』칠죄종(七罪宗) 중의 한 개인 "질투(嫉妒)"의 의미를 마땅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7-3.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은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라는 문장 중의 "질투하는" 이라는 표현에, 위의 제7-1항의 표준국어대사전 「3」에 주어진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을 대입하면, 이 문장은 "하느님은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하느님이다" 가 되는데,

 

그런데 하느님보다 "우월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기나 합니까???

 

따라서, 탈출기 20,5는 "하느님은 시기하는 하느님이다"로 마땅히 번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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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위의 문장이 성경 본문이므로, 이 문장에서의 "시기하는"의 의미도 오로지 세속의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에 의존하면 아니 됩니다.

 

이렇게 오로지 세속의 우리말 국어사전과 국내의 한자자전에 주어진 "질투" 와 "시기"에 대한 설명에만 의존하여,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로서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이들 차용 번역 용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문제임을 위의 7-3항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일부 성직자들께도 말씀들을 드리면서, 바로 이러한 문제점들의 해결을 위하여 말씀드려온 그동안의 필자의 글들은, "신뢰할 수 있는 문헌들에 근거하여 고찰한 바를 기록으로 남기는 글들"이자 또한 여러분들께 "보고를 드리는 글들"이지, 결코 논쟁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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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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