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아버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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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현 [imjoseph] 쪽지 캡슐

1999-08-28 ㅣ No.929

†. 찬미예수

 

  안녕하세요?  제기동 식구들....

 

  어제 저희 아버지께서 30여년간 몸담고 계셨던 교직에서 물러나신 날이었습니다.  다른말로 퇴직이라고 하죠.

 

  그 학교에서는 총 4분의 선생님께서 교단을 떠나셨습니다.  그 식장에 참석을 했을 당시에는 그냥 무덤덤했고, 어차피 결국은 지나쳐야할 통과의례로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기분이 그렇지 않네요.

 

  식이 끝나고, 현직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처음 몇 달 동안은 마음의 평안을 못찾으셔서 방황(?)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를 좀 바쁘게 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라고 말이죠.

4남매 중 위로 셋(형1, 누나2)은 모두 출가를 하고, 저만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남은 아들녀석이 부모님 특히 아버지 속을 많이 썪여 드렸죠.  거의 최근 한달 동안은 저와 말씀도 안나누셨기에, 지금의 저의 심경은 왜 전에 잘 못해드렸을까 하는 후회만이 앞섭니다.

 

  그런데, 어제 아버지께서 평소보다 많은 말씀을 제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제게 하셨던 행동에 대한 사과라도 하듯이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형, 누나들과는 달리 집에서 무척 무뚝뚝했기에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평일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같이 계십니다.  어머니는 성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하시기에 아버지 혼자서 계실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먼저 말씀드린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제 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빨리 그런 생활에 적응을 하실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거리로는 가까이 있지만 마음으로 멀어져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마음 상하셨던 기억들을, 사소한 것으로 채워 나가야 겠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학기, 새로운 계절에 대한 계획을 세우실 때, 당신의 천직에서 물러나신 아버지께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당신께 하기 힘든 말씀을 글로 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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