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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사진기(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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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3-06-12 ㅣ No.1526

고장난 사진기

-신경림

 

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힌다

현상해보면 늘 바라던 것만이 나와 있어 나는 안심한다

바라지 않던 것이 보인 것은 환시였다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

내가 바라는 것만 찍어주는 고장난 사진기였음을

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하지만

그래도 그 사진기를 나는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하면서

 

 

 

왜 이렇게 버려야 할것을 미련스럽게 버리지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그렇게 지금이 좋은가요? 아니면 버릴 용기가 나지 않나요?

올바로 산다는 것은 항상 잘못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것을 제때 버리는 용기로 시작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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