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나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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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7-12 ㅣ No.398

사소한 일에 분개 하는가... 비가 개인 아침에 기분 좋게 출근을 서둘렀다. 5호선에 올랐는데 평소보다 사람도 좀 적은 편이었고 괜찮았다. 근데 한 여자가 느긋한 자세로 화장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달려가 하니의 하니가 머리가 조금 잘린 것 같다고 해야하나 베티의 머리가 좀 자란 정도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 머리에 반짝이는 핀을 꽂은 여성은 적어도 이십대 중반은 넘긴 듯 보였다. 세련되지 못한 차림의 여성은 정성들여 눈썹을 그리더니 입술 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마주앉은 사람은 아랑곳 없이 화장을 하던 여성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고 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여 주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온갖 외제 브랜드 화장품을 꺼내고는 마침내 눈화장까지 하려는 기세더니 좀 멈칫하고 다시 가방에 넣길래 거기까지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성은 다시 다른 케이스를 꺼내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여위어 보이기를 바라는지 볼 주위에 커다란 솔을 문질러댔다. 콧등도 문지르고 광대뼈도 문질렀지만 솔직히 별 차이를 보일 수가 없는 그녀의 동그란 얼굴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있는 사람도 없이 뻥둘린 공간에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여유가 어이 없었다. 그녀가 지하철을 타고 있는 것인지 내가 그녀의 안방에 들이닥친 것인지조차 혼돈될 지경이다. 이따금씩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꽃단장을 하는 여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사람들한테도 화가 난다. 화장은 여자에게는 몸단장이고 치장이다. 세수를 하고 손톱을 자르는 일과도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일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까지 치장을 하고 달려가서 예뻐진 얼굴을 보여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면 좀 덜 자고 집에서 마칠 일이다. 그럼 볼에 어두운 색을 문지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홀쭉해진 볼도 보여줄 수 있다. 화장을 한 여자는 예쁘지만 화장을 하고 있는 여자는 추하다. 그렇게 무례한 여자는 더욱 추하다. 가끔씩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해야한다는 사실이 참 싫어질 때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무례한 여자를 보거나 껌으로 마술을 부리며 엄청난 소리를 내는 사람을 만날 때이다. 삶아 빨아 눈이 부시게 하얀 양말을 신고 세련된 샌들을 신은 여성 혹은 남성을 볼 때도 싫다. 난 그건 무좀이 있는, 운전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패션인 줄로만 알았었다. 에스칼레이터를 걸어내려 가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귀가 아프도록 울려대는 자신의 뒷급 소리 하나도 단속 못하는 사람을 봐도 싫다. 내가 까탈스럽다고? 물론이다. 까탈스럽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무례한 사람으로 찍히고도 인식조차 못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피해 안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가 나 자신이 안타까운 것은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해서 그런 사람 때문에 기분을 상해 아침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이다. 좀 조심하면서 살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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