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부끄러운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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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angelori] 쪽지 캡슐

1999-02-09 ㅣ No.133

1박2일로 짧게 청년피정을 다녀온 전례부 오리입니다. 후배님들한테야 '피정 꼭 같이 가자아..안가면 주그!!'하고 허세도 부렸습니다만(물론 술김에..) 사실은 말이죠... 꼭가야할것같음 1% +가줘야함 90%+ 가볼꺼나? 9% 로 겨우.....-_-;; 뒤늦게 도착한 수녀원 정문의 그 적막하고 스산함에 질려 땡땡이를 쳐볼까 하다가 같이간 후배님들이 무서워 일단 들어섬... 성당안에서 촛불 하나 딸랑 켜놓고 에브리바디 저마다 몸을 흔들어대가며 주문을 외는 소리에 바리~ 도망침...기본 등빨과 몸집이 있다보니 도망가는데 필요한 갖은 소음에 놀래나온 부제님에게 붙잡힘...끌려 들어감... (※주문외는 소리 : 알고보니 각자 마르코복음을 통독하는 소리였다고 함. 하지만 모르는 사람한텐 거의 뽕먹은 광신도 나들이 소리와 버금갔었음) 게다가 '배고파요''화장실 가고 싶어요''졸려서 죽을래요'같은 생존과 직결되는 말이거나 '언제 올까여?''어데로 가면되여?''이거 어케해여? 등의 의사진행발언을 제외한 모든 잡담들 (나의 거의 모든 TALKING ABOUT인디..)을 금한다고 하니.저같은 울트라나일롱날나리 신자에겐 왜 피정직전 아프지도 않는 사랑니를 쌩!으로 뽑고 드러눕지 못했나하는 눈물이 앞을 가립디다... 겨우 따뜻한 성당으로 왔다는 생각이 채 가시기전 수녀님이 상본하나 쥐어주고 다시 밖으로 내쫓음.. 언제 불러줄지 모르겠으나, 여튼 불러줄때까지 밖에서 혼자 상본하나로 묵상할것을 강요(?)함... (※수녀님은 사실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으나 그 몸매에 그렇게 분위기잡고 얘기하면 거의 그렇슴) 투덜거리며 밖으로 쫓겨나와 그제서야 펴본 상본에는.... . . . . . .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에페 2:14" 숨이 조금 가빠오고 조금은 손도 떨렸던 것같습니다...욕지기가 올라오듯 뭔가 속에서 치밀고 어지럽고... 생활에 묻혀서 한참간을 잊고 살았고, 그도 날 잊고 살것이 분명할듯한 옛연인에게서의 갑작스런 편지.. 바로 그런 느낌....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왔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지금 내삶의 전체를 꿰뚫고 가장 절실한 위로를 건네는 그... 언제였던가..오래전 그렇게 그를 사랑했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아직까지 나를 잊지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고맙고..감사했습니다. 쓸데없는 말에 나날이 경박해지고, 생활에 찌들여서 그를 사랑했던 예전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수없을것을..하는 생각에 그저 부끄러웠습니다. 매일같이 화가나고, 불안하고, 조급해지고 하던 모든 내생활이 혹시 그를 잃고 살아왔기때문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 갑자기 짜증이 났습니다. 피정이랍시고 수녀원엘 왔더니 그 시간이나 분위기나, 여러사람들의 눈도 있고하니, 생전 생각안하고도 잘 살아왔으면서..기도니 어쩌니하면 유난히 닭살스러워하고 줄행랑을 치기 일쑤인 주제에...분위기 잡아볼라구 무던히 혼자 애쓰는구먼~~ 하는 생각에요.. 그리고 화도 났습니다. 예전일이지만,내가 그를 어떻게 사랑하고 따랐는지 알면서... 그 언제가부터 얼마나 그를 잃고,또 때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힘들었는지도 알거면서.. 그를 잊어버리고 찌들었건 말건 나름대로 씩씩하게 잘 사는데 왜 갑자기 나를 다 이해하고 아는척하는 위로를 건네는건지.... 저녁시간 내내..그 아름다웠던 떼제기도시간에도.. 어떻게 그를 만났고,그와 함께있는 시간이 얼마나 설레었으며,그와 하루의 모두를 나누었던 얘기들이 얼마나 즐거웠고....하는 기억들이 파편처럼 떠올라 오히려 괴로왔습니다. '사랑'이라는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한때 내가 그처럼 사랑했던 연인에게 자유롭게 말을 건네고 자신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상처받고, 오히려 남까지 걱정해가며 용서를 바라고 비는 이들의 말을 들을때는 부러움과 질시에 거의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까지 버려둔것인지,그렇게 나를 잘 아는 그가 왜 먼저 나를 돌이켜 세워주지 않는건지,뭐라도 좀 확실한걸 보여주던지 아니면 그저 숨쉬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계속 옆에 있다고 느끼게 해주던지...왜 아무말도 없이 있다가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가.. 그렇게요... 막 원망도 하고 한번 대차게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거냐고..이제 별로 의욕도 없고 힘도 없고 그냥 남들하는 생활하기에도 벅찬 지경이니까..혹시 아직도 그렇게 사랑하고 있고 위로도 해줄 힘이 남았다면..제발 나 좀 다시 어떻게 좀 해봐달라구요... 후배님들 눈도 있고...그냥 혼자서 했어야 될 얘기인데...노래소리에 잠시 취했었나 봅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 시간.. 입을 열어 큰소리로 그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있더이다.... . . . 고해성사를 볼까도 했지만 아직..그럴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제곁에서 내원망을 들어주고 용서해줄거란 확신이 들기전에는 무의미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깨지지 못하고 답을 제게서 찾으려 하기 때문일까요?? 미련함일수도 있고 교만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이제 다시 돌이켜 볼겁니다. 그와 어떻게 만났었고, 내게 그가 어떤 연인이었는지..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습관처럼 그의 집을 오가고 그집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이제 줄어들겁니다. 좀 늦은감은 있지만 제가 하는 일에 이유는 찾아야겠지요. 그리고 이번 피정을 통해서 어느정도 확신도 생겼습니다. 그 이유를 제대로 찾을수도 있을것 같다는요.. 그의 편지...받을수 있게 해주셔서.. 즐겁고 고마왔던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마음껏 원망할수 있게 해주셔서.. 청년피정을 준비하신 분들과 피정에서 만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以上 전례부 안젤라+오리(ANGELORI)의 피정후기임다,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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