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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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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온균 [gsbs] 쪽지 캡슐

2010-06-12 ㅣ No.7239


 

 

마재는 정약현(丁若鉉), 정약전(丁若銓. 자 天全 1758~1801), 정약종(丁若鐘, 1760~1801 아우구스티노),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요한), 정약횡(丁若鐄) 등 5형제와 그들의 누이 3명의 고향으로 한국 천주교회 요람지의 하나라고 합니다.

정씨 형제 중에 특히 초기 교회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이는 정약종 일가다. 정약종은 교리 지식에 해박하였으며, 주문모 신부에 의해 明道會 회장에 임명되기도 하였다.정약종은 그의 중형 약전이나 동생 약용보다 늦게 천주교를 수용하여 1786년경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형제들과는 달리 끝내 배교하지 않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교회활동에 헌신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형으로 순교하신 분이다.

1785년 봄, 명례방 집회가 형조에 발각되어유림에 척사통문(斥邪通文, 천주교를 배척하는 회람 형식의 글)이 돌자,사대부가의 천주교 배척 분위기가 고조되면서정씨 가문에서도 명례방 집회에 참석했던 정약전과 정약용 등이부친으로부터 엄한 추궁을 받았다.그러다가 1791년 신해박해를 계기로조정에서 정식으로 천주교 금지령이 내려지자정씨집안의 신자들은 문중으로부터 이전보다 더욱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1786년 세례 입교한 정약종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그의 식솔을 이끌고 현재의 한강 팔당댐을 건너 광주 분원으로 이주하였다.정약종의 가정은 1800년 양근 지방의 박해로 분원에서 서울로 피난하였으며,이때 정약종의 처인 유 체칠리아와 자녀인 정하상, 정정혜가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종과 그의 전처 아들인 정철상이 순교하였으며,1814년에 상경한 정하상은 1816년부터 조선 교회의 재건과 성직자 영입을 위해 노력하였다.마재에 있던 그의 어머니 유 체칠리아와 여동생 정정혜는 정하상이 서울로 간 후 충청도에서 6~7년간 거주하다가 박해를 피해 서울로 와서 치명할 때까지 10여 년간 살았다고 한다.의정부 교구에서는 이 지역을 사적지로 개발함으로써 마재 지역에서 배출된 성인과 신앙선조들을 현양할 계획으로현재의 생가터 입구 약500m 직전 우측에 경당을 신축하였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의정부 교구 마재성지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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