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모든 성인의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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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8-11-02 ㅣ No.567

 

1. 가톨릭교회는 11월의 첫날에 모든 성인(聖人)의 대축일을 지냅니다. 계절상으로 11월은 겨울의 문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겨울은 모든 생물들이 성장을 멈추는 계절로서 우리에게 죽음을 연상시킵니다.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모든 성인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 죽음과 연관된다고 하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는 지상에서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천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인간 모두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갖고자 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를 앞서 신앙의 길을 걷고 완성에 이른 성인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세 가지 점에서 성인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로 다가옵니다.


2. 첫째 그들의 기도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가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초 세기부터 성인들의 통공을 믿어왔습니다.  교회의 지체들, 곧 천국에 있는 이들, 지상에서 순례 여정에 있는 이들, 연옥에서 단련 받고 있는 이들이 서로 연대를 맺고 있다는 것을 믿어왔습니다. 이런 연대 속에서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는 이들이 아직 지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전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왔습니다. 나의 부모나 친척, 친지 등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준다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도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2001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포천중문의대와 미국 컬럼비아대 산부인과 연구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연구 내용은, 1998-99년 서울 강남차병원에서 불임치료 중이던 199명의 사진을 환자 몰래 미국, 캐나다, 호주의 각기 다른 기독교 종파 신자들에게 주고 이들이 임신에 성공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두에 이 그룹과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 환자 그룹의 임신 성공률을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책임자는 “연구 결과가 ‘황당해’ 발표여부를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두 그룹 사이의 차이가 명백해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기도를 받은 불임 환자의 그룹은 그렇지 않는 그룹보다 2배의 성공 확률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과거에도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기도가 심장병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었다고 덧붙습니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의 기도도 분명히 효과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성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자신의 초라하고 왜소하게 보일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성인들을 든든한 ‘빽’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든든해질 것입니다.


3. 두 번째, 모든 성인들은 그들의 삶으로서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가 됩니다. 성인들의 삶은 각양각색이지만, 실상은 한 가지 방향입니다. 즉, 하느님을 오롯이 섬기면서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인 행복선언(마태 5,1-12)에서 언급된 이들처럼, 성인들은 하느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난했고,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온유하였고, 옳은 일에 목말라했고, 자비를 베풀며,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까지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세상에서는 손해보고 바보 취급받는 삶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삶을 꺼려합니다. 하지만 성인들을 통해서 이런 삶이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그분들이 우리에 앞서서 먼저 이런 길을 가셨기에 우리 역시 기꺼이 그 길을 뒤따라 갈 수 있습니다.


4. 세 번째, 성인들은 그들의 약점과 불완전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가 됩니다. 성인들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이 약점과 결점을 지닌 분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 배반하는 약함을 보였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했던 아름답지 못한 전력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또한 성인들 중에는 한 성질 하는 분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들 들어서 예로니모 성인 축일의 찬미가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사나운 사자 마냥 날카롭게 진리의 원수들을 변박하셨네.” 진리에 대한 열성 때문에 진리에 거스르는 사람들에게는 사자처럼 사나웠다는 말인데, 이런 표현을 통해서 예로니모 성인의 성질이 대단했던 것이 아니었나 추측하게 됩니다. 아무튼 성인들 중에는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열정이 너무 뜨겁다 못해서 주위 사람들을 거의 태울 정도까지 가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인 밑에 순교자 나온다.”는 농담이 생긴 것 같습니다.

 

성인들이 우리와 똑같이 약점과 모난 성격을 지니고서 완덕의 길로 정진했다는 생각하면서, 약점과 결점이 많은 우리 역시 아주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훌륭한 목수는 나무의 재질과 결, 옹이까지도 살려서 좋은 가구를 만들 듯이, 하느님은 한 사람의 특성뿐만 아니라 약점까지도 존중하면서 완성에로 이끄십니다.

 

초보자가 산에 오를 때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결 수월하게 등산을 할 수 있습니다. 성인들은 신앙의 산길을 인도해주시는 분들입니다. 우리에 앞서 신앙의 길을 간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약한 우리의 기도에 힘을 보태주는 그분들의 전구에 감사드리고, 그분들의 삶과 고난에서 위로를 얻으며, 그분들의 인간적인 약점과 결점을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합시다.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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