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성가의 참맛: 최은영 스텔라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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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3-06 ㅣ No.3174

[성가의 참맛] 최은영 스텔라의 <예수>

 

 

눈부시게 빛나던 그 모습 뒤로 하고 고난의 그 길로 내려가시네

차디찬 군중에게 못박혀 죽으시며 이들을 용서하라— 기도하시네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들과의 실랑이가 한창인 나날입니다. 유치원생 티는 벗었지만, 아직도 엄마 곁에서 잠들고 싶은 마음과 갓 태어난 막내 여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스스로와의 약속 사이에서 매일 밤 고민하고 갈등하며 울고 웃습니다. 아이들과 약속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약속이란 것은 꼭 지켜야 한다고 말이지요. 물론 ‘넌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며 살고 있냐?’는 양심의 날카로운 질문엔 마음이 뜨끔하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며 애써 속으로 답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사순시기. 머리에 재를 받으며 이번에야말로 주님께 합당한 봉헌을 드리자고 자신과 약속합니다. 하지만 유혹들은 너무나 달콤하고, 올해도 주님과의 약속은 흐지부지 넘어가 버릴 것만 같습니다.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데 부활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나 하는 얼룩진 마음을 고해소에서 조심스레 꺼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빛처럼 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다고, 주님은 특별한 분이니 여기에 초막을 지어 거룩한 예언자들과 함께 이 영광을 계속해서 누리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놀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땅바닥에 엎드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호통이나 짜증을 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애와 사랑, 애정이 가득한 한마디를 들려주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이웃은 물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또 이를 말과 행동으로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었던 한 사람. 나아가 당신께 주어진 사명, 곧 구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쓴 잔을 기꺼이 마셨던 희생의 정신에서 느껴지는 그의 진한 인간성(humanism)이 모든 묵상이 포근하고 상냥하게 차곡차곡 담긴 성가, 바로 최은영 스텔라의 <예수>입니다.

 

인생은 수많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꿈, 희망, 명예, 소유, 욕심… 우리는 발자국(footprint)을 남기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어딘가에 또 123층짜리 초막을 지으며 그 안을 꾸역꾸역 채워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말해야 합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비운 뒤에는 불안, 걱정, 초조함보다는 인내와 사랑으로 채우자고 말입니다. 이번 사순시기, 한번 ‘예수님처럼 비워내는 삶’을 약속하고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예수— 예수— 초막을 헐어 날 비우라 하시네

예수— 예수— 사랑으로 날 채우라 하시네

 

[2023년 3월 5일(가해)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4면, 까뮤(이새론 안토니오, 최슬기 마리아, 고윤서 마리스텔라, 이운형 마리아, 김구환 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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