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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29,15에서 감람(橄欖) 의 출처와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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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9 ㅣ No.1716

1. 들어가면서

 다음은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 29,15-16, 즉, 제29장 제15-16절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성교요지_만천유고본-영성의_길_김동원신부_번역.pdf   

(발췌 시작)

제29장 그리스도를 볻받음

 

[...]

15 索騎橄欖      색기감람      나귀타고 감람 지나

16 到郇2)吹管(*)    도순취관     순나라에 이르셨네

(이상은 본문)

 

(이하는 주석)

[...]

射圍, 矢魚之戱, 見春秋隱公傳. 橄欖, 山名. 管吹, 吹菰也.

사위, 시어지희, 견춘추은공전. 감람, 산명. 관취, 취고야. 

 

감람(橄欖)은 산 이름이며 취관(吹管)(*)는 피리를 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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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郇(땅이름순) 文王이 도착했을 때에 환호하며 영접했던 고사.

       주(周)의 나라이름(현재 산서성 원의현)

 

(*) 게시자 주: 다음에 발췌된, "만천유고"에 수록된 "성교요지"의 해당 본문 사본을 보면, "吹管(취관)" 대신에, "管吹(관취)"가 있는데, 위의 본문 중의 "吹管(취관)"은, 위의 출처에 있는 글의 작성 과정에서 발생한 필사 오류(error)인, 즉, typo인 듯 하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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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번 글은, "橄欖"이라는 단어가 한문 문화권에서 1807년 경에 이르러 중국에 파견된 개신교 측 선교사들에 의하여 한문본 성경 용어로서  처음으로/최초로 창안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가 결코 아니고,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생존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문 문화권" 내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전달해 드리고자, 마련되었습니다.

 

2. 사료분석 I

2-1. (사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국고전종합DB에 대하여 "橄欖" key word로 검색한 결과를 접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한국고전종합DB/감람.htm

 

특히, 우리나라 고려 말기의 문신이었던 이색(1328~1396년)의 문집인 목은고 제18권, 제21권, 그리고 제26권 7자성구 시(詩)들에서 "橄欖(감람)"이 각각 한 번씩 시어(詩語)로서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2-2. (사실) 예를 들어, 다음은 이색의 문집인 목은고 제18권에 수록된 시 한 수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橄欖(감람)"이 한 개의 시어(詩語)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3. (사실) 다음은, 우리나라 조선 영조 때의 학자인 이익(1681~1763년)"성호사설" 중에서 "橄欖(감람)"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바의 우리말 번역문입니다. 이 단어가 또한 한 개의 시어(詩語)로서 사용됨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사작)

(이상, 발췌 끝)

 

2-4.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님(1762~1836년)"여유당전서", 第一集詩文集第十四卷○文集 題 題藏上人屏風 第一集雜纂集第二十四卷○雅言覺非 卷一 茶 에서도 "橄欖(감람)"이라는 한 개의 시어(詩語)가 사용되고 있음은, 위의 제2-1항에 안내된 한국고정종합DB 검색 결과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5. (사실) 시대적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음에 발췌된 글에서는, "橄欖(감람)"이라는 단어가 중국의 송대(宋代, 즉, 송나라 시기, 960-1279년)의 한 개의 중요한 시풍(詩風)을 나타내었다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송대_시풍_시어_감람.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전"에 주어진 "橄欖(감람)"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는데, "chinese white olive"로 불린다는 설명도 주어져 있습니다:

http://www.zdic.net/c/4/151/334579.htm

 

2-7. (사실)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중국의 명나라 이시진(1518년 - 1593년)에 의하여 1578년(만력 6년)에 완성하여, 1596년(만력 23년) 남경에서 초간되었다고 알려진, "本草綱目(본초강목)"에 주어진 한약재 "橄欖(감람)"에 대한 서술입니다:

 

출처: http://www.theqi.com/cmed/oldbook/book132/b132_34.html

(발췌 시작)

橄欖


(宋《開寶》)

【釋名】

青果(《梅聖俞集》)、忠果(《記事珠》)、諫果(出《農書》)。
時珍曰︰橄欖名義未詳。此果雖熟,其色亦青,故俗呼青果。其有色黃者不堪,病物也。王禎云︰其味苦澀,久之方回甘味。王元之作詩,比之忠言逆耳,世亂乃思之,故人名為諫果。

【集解】

志曰︰橄欖生嶺南。樹似木 子樹而高,端直可愛。結子形如生訶子,無棱瓣,八月、九月採之。又有一種波斯橄欖,生邕州。色類相似,但核作兩瓣,蜜漬食之。
詵曰︰其樹大數圍。實長寸許,先生者向下,後生者漸高。熟時生食味酢,蜜漬極甜。
曰︰按《南州異物志》云︰閩、廣諸郡及緣海浦嶼間皆有之。樹高丈餘,葉似櫸柳。二月開花,八月成實,狀如長棗,兩頭尖,青色。核亦兩頭尖而有棱,核內有三竅,竅中有仁,可食。
頌曰︰按︰劉恂《嶺表錄異》云︰橄欖樹枝皆高聳。其子深秋方熟,南人重之,生咀嚼之,味雖苦澀,而芬香勝於含雞舌香也。有野生者,子繁而樹峻,不可梯緣,但刻根下方寸許,納鹽入內,一夕子皆自落,木亦無損。其枝節間有脂膏如桃膠,南人採取和皮、葉煎汁,熬如黑餳,謂之欖糖,用泥船隙,牢如膠漆,著水益乾也。
時珍曰︰橄欖樹高,將熟時以木釘釘之,或納鹽少許於皮內,其實一夕自落,亦物理之妙也。其子生食甚佳,蜜漬、鹽藏皆可致遠。其木脂狀如黑膠者,土人採取, 之清烈,謂之欖香。雜以牛皮膠者,即不佳矣。又有綠欖,色綠。烏欖,色青黑,肉爛而甘。取肉捶碎乾放,自有霜如白鹽,謂之欖醬。青欖核內仁乾小。惟烏欖仁最肥大,有文層疊如海螵蛸狀而味甘美,謂之欖仁。又有一種方欖,出廣西兩江峒中,似橄欖而有三角或四角,即是波斯橄欖之類也。

【氣味】

酸、甘,溫,無毒。
宗奭曰︰味澀,良久乃甘。
震亨曰︰味澀而甘,醉飽宜之。然性熱,多食能致上壅。
時珍曰︰橄欖鹽過則不苦澀,同栗子食甚香。按《延壽書》云︰凡食橄欖必去兩頭,其性熱也。過白露摘食,庶不病 。

【主治】

生食、煮飲,並消酒毒,解 鮐魚毒(《開寶》)。嚼汁咽之,治魚鯁(宗 )。
生啖、煮汁,能解諸毒(蘇頌)。開胃下氣,止瀉(大明)。生津液,止煩渴,治咽喉痛。咀嚼

【發明】

志曰︰ 鮐魚,即河豚也。人誤食其肝及子,必迷悶至死,惟橄欖及木煮汁能解之。其木作舟楫,撥著魚皆浮出,故知物有相畏如此者。
時珍曰︰按《名醫錄》云︰吳江一富人,食鱖魚被鯁,橫在胸中,不上不下,痛聲動鄰裡,半月餘幾死。忽遇漁人張九,令取橄欖與食。時無此果,以核研末,急流水調服,骨遂下而愈。張九云︰我父老相傳,橄欖木作取魚棹篦,魚觸著即浮出,所以知魚畏橄欖也。
今人煮河豚、團魚,皆用橄欖,乃知橄欖能治一切魚、鱉之毒也。

【附方】

新四。

初生胎毒︰小兒落地時,用橄欖一個(燒研),朱砂末五分和勻,嚼生脂麻一口,吐唾和藥,絹包如棗核大,安兒口中,待咂一個時頃,方可與乳。此藥取下腸胃穢毒,令兒少疾,及出痘稀少也。(孫氏《集效方》)
唇裂生瘡︰橄欖炒研,豬脂和塗之。
牙齒風疳膿血有蟲︰用橄欖燒研,入麝香少許,貼之。(《聖惠方》)
下部疳瘡︰橄欖燒存性,研末,油調敷之。或加孩兒茶等分。(《乾坤生意》)

(이상, 발췌 끝)

 

2-8. 따라서, 지금까지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이 글의 결론 1) "橄欖(감람)"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나무" 혹은 "이 나무의 열매"를 나타내는 단어가,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생존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문 문화권" 내에 한 개의 중요한 시어(詩語)로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橄欖(감람)"라는 한자 단어가 중국 본토에서, 1807년 경에 와서야 중국에 처음 파견되었던 개신교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창안된,  중국 개신교 측의 고유한 번역 용어가 결코 아님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 사료분석 II

3-1. (사실) 다음은 1623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직방외기", "유럽총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여기에, "阿利襪(아리말)" [즉, "아리와", 즉, "올리브 (나무 열매)"]"阿利襪油(아리말유)"[즉, "아리와유", 즉, "올리브유"]라는 음역된(transliterated) 용어들과,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께서 "작방외기"를 저술하기 전에 한문 문화권 내에서 중국의 송대(宋代, 즉, 송나라 시기, 960-1279년)의 중요한 시풍(詩風)을 나타내는 한 개의 시어(詩語)로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예를 들어, 한약재(韓藥材)로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감람나무의 열매를 나타내는] "감람(橄欖)"이라는 용어가 "직방외기" 본문 중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부분에 대한 우리말 번역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23_직방외기_권2_유럽총설&에스파냐_번역문.htm

 

(발췌 시작)

술은 모두 포도를 빚어서 만들며, 다른 것을 섞지 않는다. 그 술은 오래 두어서 수십 년 동
안 묵혀두는데, 아들을 낳은 해에 술을 빚어서 아이의 나이 삼십에 이르러 장가들 때에 그
것을 쓰 면 술맛은 더욱 좋다. 여러 가지 술의 종류는 같지 않은데, 포도가 없는 곳에서는
간혹 소맥으 로 술을 빚기도 한다.

그곳에서 나는 기름으로 맛이 좋고 여러 모로 쓰이는 것을 올리브(阿利襪)14)라 한다. 이것은 나무의 가지 맨 끝에 열리는 과일인데, 익은 뒤에는 곧 모두 기름이 된다. 그것은 싹이 돋아나올 때, 매우 왕성하고 또 쉬이 자라서 평지나 산등성이에 모두 씨앗을 심을 수 있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은 법으로 심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 올리브는 음식의 고상한 맛을 최고로 풍요롭게 하여 그것을 먹을 때 입안에 침을 감돌게 하는데, 그것의 맛은 감람(橄欖)15)이나 마금낭(馬金囊)16)보다 낫다. 그 씨는 또 숯을 만들 수 있고, 침전물로는 덩이소금을 만들 수 있으며, 잎으로는 소나 양을 먹일 수가 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산은 보리와 밀을 쌓아 두는 것이 첫째이고, 포도주는 그것에 다음가고, 올리브 기름은 또 그 다음가는 것으로 여기며, 소와 양을 기르는 것을 맨 아래로 여긴다.

그 나라들의 생활 습속에 술이 많지만, 다만 모이는 손님들은 술을 권하는 것을 예의로 여
기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취해서 잘못을 저지른 이는 평생동안 욕을 보게 된다.

酒悉以葡萄釀成, 不雜他物. 其酒積至數十年, 當生子之年釀酒, 至兒年三十娶婦時用之, 酒味愈美. 諸種不同, 無葡萄處, 或用牟麥釀之.

其膏之類, 味美而用多者曰阿利襪. 是樹頭之果, 熟後卽全爲. 其生最繁, 又易長, 平地山岡皆可栽種, 國人以法制之. 最饒風味, 食之齒頰生津, 在橄欖馬金囊之上. 其核又可爲炭, 滓可爲桀, 葉可食牛羊. 凡國人所稱諡産, 蓄大小麥第一, 葡萄酒次之, 阿利襪油又次之, 蓄牛羊者爲下.

其國俗雖多酒, 但會客不以勸飮爲禮. 偶犯醉者, 終身以爲垈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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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올리브(阿利襪): 올리브(olive)에 대한 음역. 

15) 감람(橄欖): 아시아 열대 지방에서 야생하는 상록 교목.
16) 마금낭(馬金囊): 식물의 이름으로 보이나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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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내용 교체 일자: 2016년 8월 22일] 

3-2. (사실) 그리고 다음은 1635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 "천주강생언행기략", 6권9, "입도성발탄" [주: 예루살렘 입성 복음 말씀인 루카 복음서 19,28-44] 전문인데, 본문 중에서 "阿利襪山(아리말산)" 이라는 산명(山名)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천주강생언행기략_권6_9_입도성발탄_121-122.htm

(발췌 시작)

권6_9_입도성발탄_121-122 (루카 복음서 19,28-44) [백법열 = 벳파게] [아리? = 올리브]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 2016년 8월 22일에 교체되기 이전의 바로 위의 자리에 있었던 본문은, 다음의 발췌된 바에 있는 파란색의 권5_1_성지예의첨례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올리브 산이 "阿理瓦山(아리와산)"으로 표기된, 1636년에 초간된 쥬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한문본 "성경직해"에 서술된 예루살렘 입성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21,1-9이었으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이벽 성조께서 "성교요지"를 작문하시기 전에 이 한문본 "성경직해"를 또한 입수하여 이미 학습하셨을 수도 있음을 추정하나(presume), 그러나 그러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오로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혹시라도 이벽 성조께서 "성교요지"를 작문하시기 전에 한문본 "성경직해"를 입수하여 학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을 한 개의 의문으로서 제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러한 의문 제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하여, 훨씬 더 확실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위의 본문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권5_1_성지예의첨례_275-279 [마태오 복음서 21,1-9(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입성 복음 말씀)] [주: 각주에서 마태오 복음서 20 이라고 잘못 안내되어 있음]

(이상, 발췌 끝)

[이상, 2016년 8월 22일자 내용 교체 끝]

 

3-3. (사실) 다음은,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개신교 측의 로버트 모리슨 목회자에 의하여 1814년에 중국 본토에서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개신교 측의 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 21,1-9를 발췌한 것입니다. 올리브 산을 말할 때에, "감람산"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아리와지 산"이라고 번역하였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출처 1: http://www.streetpreaching.com/morrison/morrison_chinese_bible_1823.htm

출처 2: http://www.streetpreaching.com/morrison/40Matt.pdf 

https://bible.fhl.net/new/ob.php?book=36&chineses=40&chap=21&sec=1 [(2024-01-15) 새 출처]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3-4 (사실)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1853년에 출판된 개신교 측의 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 21,1-7을 발췌한 것입니다. 드디어, "감람산"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nla.gov.au/nla.obj-49367608/view#page/n37/mode/1up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이 글의 결론 3) 따라서, 중국에 파견되었던 개신교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이미 "한문 문화권"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따라서 위에서 이미 확인하였듯이, 아무리 늦더라도. 아레니 신부님에 의하여 "직방외기"가 초간되었던 1623년 이후의. 중국에 파견되었던, 가톨릭 사제들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셨던, 세속의 용어인 "橄欖(감람)"이라는 나무 이름 혹은 나무의 열매의 이름을 차용(借用)하여"올리브 산""감란산"으로 번역되기 시작한 시점은, 아무리 빠르더라도, 1814년과 1853년 사이의 어느 시점임을, 아마도 개신교 측의 한문본 신약 성경 대표본의 첫 출판 시점인 1852년 이후일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4) 따라서,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 한 4자성구 본문 에 대하여, "감람"이 산 이름을 말한다는 한문 각주를 붙인 각주자는 아무리 빠르더라도, 1814년과 1853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아마도 1852년에 첫 출판된 것으로 알려진 개신교 측의 한문본 신약 성경 대표본을 학습하고서, 이 각주를 붙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 이 글의 결론들

 

4-0. 위의 항들에도 이 글의 결론들이 있습니다.

 

4-1. (이 글의 결론 5) 지금까지 이 글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송대(宋代, 즉, 송나라 시기, 960-1279년)의 중요한 시풍(詩風)을 나타내는 한 개의 시어(詩語)"橄欖(감람)"을, 또한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올리브 산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의 작품인 "성교요지" 본문 중에서 차용(借用)함으로써, 사고에 있어서의 다음과 같은 관념들의 연상의 한 과정(a process of the association of the ideas)을 거쳐서, 당대의 국내의 유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를 위한 특별한 용어로서 사용하셨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 유학자로서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는 송대(宋代, 즉, 송나라 시기, 960-1279년)의 잘 알려진 시어(詩語)"橄欖(감람)"을 매우 잘 알고 계셨다. 이를 위하여, 위의 제2-1항부터 제2-5항까지 꼭 참조하라.

 

(ii)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는,

 

(ii-1) "阿利襪(아리말)" 이라는 나무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위의 제3-1항에 발췌된, 1623년에 초간되었고 그리고 1629년에 출판된 "천학초함""리" 편에 포함된,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직방외기", "유럽총설"을 읽고서, 아레니 신부님에 의한 "'올리브(阿利襪)나무 열매'의 입 안에서의 맛이 '橄欖(감람)나무 열매'의 그것보다 더 낫다"는 설명을 이벽 성조께서 읽으셨고, 그리고 또한,

 

(ii-2) "阿利襪山(아리말산)" 이라는 산명(山名)이 사용되고 있는, 위의 제3-2항에 발췌된, 1635년에 초간된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 "천주강생언행기략", 6권9, "입도성발탄"(루카 복음서 19,28-44)을 이벽 성조께서 읽고서,

 

(ii-3) "올리브 나무 혹은 이 나무의 열매"를 말하는, "阿利襪(아리말)"이라는 음역 단어 대신에"橄欖(감람)"이라는 송대(宋代, 즉, 송나라 시기, 960-1279년)의 잘 알려진 시어(詩語)를, 자신의 4자성구 시(詩)인 "성교요지"에서, 4자성구 표현 "到郇管吹"와 함께, 바로 이어지는 문맥 안에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문채(文彩)나게 묘사하고자, 이벽 성조께서 사용함으로써,

 

(ii-4) 마태오 리치 신부님보유론적(補儒論的) 적응주의 선교 방식을 따르는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 방식을 더욱 더 발전시키셨고,

 

(ii-5) 바로 이러한 접근 방식은 1779년 천진암 강학회에서 드디어 그 열매를 맺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ii)(이 글의 결론 6) 더 나아가, "한문 문화권" 내에서 세속의 송대(宋代, 즉, 송나라 시기, 960-1279년)중요한 시풍(詩風)을 나타내는 한 개의 시어(詩語) "橄欖(감람) 한문 문화권의 그리스도교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서 최초로/처음으로 도입한 분은, 1807년 혹은 그 이후에 중국에 처음 파견되었던 개신교 측의 선교사들이 아니라, 1778년 경에 이 용어를 자신의 저술인 "성교요지"의 본문에서 이미 사용하신 이벽 성조(1754-1785년)이시다.

 

(iv) (이 글의 결론 7) 다른 한편으로, ‘그 때 이벽은 비밀리에 성서를 읽고 있었는데, 이승훈은 이를 몰랐습니다. 계묘년1783에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게 되자, 이벽이 그에게 은근히 부탁하여 말하기를(時李檗密看聖書 而承薰不知 癸卯隨父入燕 李檗密托曰)’ 라고 황사영백서에 서술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승훈이 몰랐던, "협의(狹義)의 성서(聖書)"[즉, 성경(聖經), Sacred Scriptures)1635년에 초간된 아레니 신부님"천주강생언행기략"이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2. 이 글 이전에,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성교요지"를 작문하시기 전에, 중국 에 선교사로 파견되신, 예수회 소속의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천주강생언행기략" 및 "천주강생인의"를 입수하여 이미 학습하셨음을 입증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작성된, 졸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3.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5.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4-2:

(1)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17-18세기에 연행사를 통하여 조선에 유입된 천주교 서적들 가운데 당시에 조선의 유학자(儒學者)들이 직접 본 것으로 파악되는 중요한 서적들 중에는, 1629년에 초간된 "천학초함" 뿐만이 아니라, 1635년에 초간된 "천주강생언행기략", 1636년에 초간된 한문본 "성경직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가톨릭대사전/1637-1893_연행사.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8월 26일]

(2) 다음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아레니 신부님의 또다른 저서인, "예수언행기략" 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가톨릭대사전/1635-1649_예수언행기략.htm <----- 필독 권고

 

"천주강생언행기략" 은,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9월7일] 1782년(정조 6년)에 규장각에서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으로 이봉(移奉)된 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상, 2016년 9월7일자 내용 추가 끝],(#2) 아무리 늦더라도 1782년 이전에 연경 혹은 북경을 왕래하였던 연행사(燕行使)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되어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들여다 본 바에 의하면, 바로 이 "천주강생언행기략" 은,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서 성자(즉,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의 아드님)의 강생에 대한 예언들이 언급된 구약 성경의 본문들을 다루는, 아레니 신부님의 또다른 저서이며 또한 1640년에 저술된, "천주강생인의" 와, 그 내용에 있어, 한 질(帙)(one volume)을 이루기에,(#3) 동일한 저자에 의하여 출판된 바로 이 "천주강생인의"또한 아무리 늦더라도 1782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되어 일부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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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지금 바로 이 제(2)항에서 지적하는 바는, 지난 2015년 10월 30일에 다음의 졸글[제목: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출처와 다산의 심心 글자의 의미 외], 제3-2항에 추가된 내용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9.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다음에 발췌된, 서지학자(書誌學者) 배현숙의 1984년 논문 [제목: 조선에 전래된 천주교 서적, 한국교회사논문집 I, 1984년, 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의 각주를 보라. "천주강생언행기략"이 포함된 27종의 서학(西學) 책들이 정조 6년(1782년)에 규장각 책고(冊庫)에서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으로 이봉(移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84_배현숙_조선에_전래된_천주교_서적.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3) 게시자 주: 또한,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저작 장소와 시기(後著作(1):1625-1637年)를 또한 참조하라:

 

출처: http://www.ces.org.tw/main/fcrc/fcrc_wksp/wksp-1d.htm

(발췌 시작)

 

(二)入後著作(1):1625-1637年

 

 艾儒略入後到崇禎十二年(1637)教案發生,這十年之間是他出書最多的時期,總共出版了十五種書,分別是《性學述》、《三山論學紀》、《滌罪正規》、《悔罪要旨》、《耶聖體禱文》、《萬物原》、《揚淇園園先生事蹟》、《彌撒祭義》、《利西泰先生行蹟》、《幾何要法》、《出像經解》、天主降生言行紀略》、《天主降生引義》(주: 1640년에 저술됨)、《西方答問》、《聖夢歌》。其中對中國思想的辯駁的《性學述》、《三山論學紀》與《萬物原》三本書最在1628年之前便已完成,在此之前楊廷筠閑居在杭州家中,張擔任杭州諭,透過他們的助,艾儒略得以對中國思想做系統且深入的理解。其餘書籍則說明天主教教義、禮儀之書與彌撒程序中所需的小冊子和人物傳記,而這十二年正好是艾儒略在福建地區傳最有成果的時期。

 

[...]

 

著作比較圖

1635

  

53

 

《出像經解》《天主降生言行紀略》《天主降生引義》出版,留居泉州。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017년 10월 12일) 바로 위의 출처에서 발췌된 바에서, "천주강생인의"가 1635년에 저술/저작되었음이 한 개의 명백한 오류(an obvious error)임을 지적하는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2.htm 

 

왜냐하면, "천주강생인의" 하권 제14쪽 앞면의 마지막 열(column)과 뒷면의 첫 번째 열에서 "천주강생인의"의 저술 시점이 1640년임을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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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16년 8월 26일자 내용 추가 끝]

 

이벽 성조께서는 찬미받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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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10시간 (여기에는, 2015년 8월 초부터 석 달 이상의 기간에 걸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던, 핵심 문헌들의 조사, 확보된 자료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유관 자료들의 손쉬운 추출 및 활용을 위한 여러 단계들을 거친 기초 작업 등은 당연히 제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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