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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을사늑약 한미FTA #2]다 읽으시면 한미FTA 박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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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웅 [fullofjoy] 쪽지 캡슐

2008-09-08 ㅣ No.8369

- 요  약 -
한미FTA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논란은 주로 산업, 부문별 득실에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추진론자들의 주장은 ‘타격을 입는 분야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익이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 와중에 노동자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 주체이기보다는 하나의 ‘생산요소’로 취급돼 이같은 결론을 도출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정당한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미FTA인가’이다. 이 점에서 한미FTA가 국민의 대다수를 점하는 노동자계급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이야말로 한미FTA를 판단하는 데 핵심준거가 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한미FTA는 노동자의 고용을 심각히 위협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고용증대를 예상하지만 근거로 삼고 있는 계량분석(CGE모형을 이용한 계측)은 가정의 비현실성, 모형 자체의 한계로 신뢰하기 힘들다. 또한 외국인투자가 고용증대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정하기 어렵다. 한미FTA는 그 이름과 달리 사실상 ‘경제통합’ 협정이다. 따라서 그 고용파급력은 여러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우선 교역확대가 고용을 증가시킬 것이란 추진론자들의 주장은 IMF 위기 이후 산업적 연관이 파괴돼 ‘고용 없는 성장’ 추세가 자리를 잡았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망이다. 오히려 경제를 지배하는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제2의 고용대란이 우려된다.
정부는 ‘미국이 노동기준 강화를 요구할 것이므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미국 무역대표부나 주한상의 등이 제기하는 내용은 분명 노동시장 유연화다. 정부도 노동계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비정규직 개악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한미FTA는 고용뿐 아니라 노동조건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NAFTA 체결 이후의 멕시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 논리에 따르더라도 노동조건 악화는 불가피하며, 미국 정부와 재계의 움직임 또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무역대표부는 경제자유규역을 극찬했으며, 주한미상의는 임단협, 퇴직금과 관련해 개악을 주문하고 있다. 게다가 명백히 예상되는 교육과 의료의 시장화는 노동자의 사회임금을 떨어뜨릴 것이다. 정부는 한미FTA에 따른 사회안정망 구축에서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한미FTA는 노사간 힘의 균형추를 자본쪽에 한층 기울게 만들 전망이다. 한미FTA 이후의 노사관계는 주한미상의 정책보고서를 통해 예견할 수 있는데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노조 부당노동행위 신설, 파업 중 대체인력 투입 허용, 파업찬반투표 시점 제한 등은 노조의 조직력,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 스스로 이같은 내용이 반영된 노사관계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한미FTA는 미국 노동법 체제를 한국에 이식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렇게 봤을 때 한미FTA는 노동자에게 미증유의 재앙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한미FTA가 한국노동자뿐 아니라 미국 노동자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이란 우려다. 결국 한미FTA는 한미 양국 노동자, 농민을 희생양으로 미국계 초국적자본과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게 될 것이다.

 

한미FTA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1. 머리말

무역과 투자를 비롯한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경제단위 구성원의 후생과 복리를 증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추진 중인 한미FTA와 관련한 논의의 흐름은 각 산업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경제활동의 주체이자 복리후생의 수혜자여야 할 국민대중의 구체적인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1천5백만, 가족을 포함해 3천만에 육박해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파급효과가 간과되고 있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굳이 중남미의 경험을 빌지 않더라도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잘못된 대외경제정책은 국민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사실은 한미FTA 추진론자들이 노동자를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 주체라는 측면보다는 하나의 ‘생산요소’로 취급해 한미FTA의 효과를 따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무역자유화로 고용이 감소하거나 임금이 낮아졌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용에 미치는 여타요인을 통제하지 않고 무역자유화와 고용의 관계를 분석하면 오히려 관세율이 크게 감소한 산업일수록 고용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연구를 들 수 있다.(김우영 등 2005) 이 연구는 “무역자유화로 시장이 개방된 후에 근로자가 직장을 유지하려는 동기가 강해짐으로써 근로자의 이직과 태만을 막기 위해서 기업이 지급해야만 하는 임금이 적어지고 따라서 균형실업률과 균형임금이 낮아지게 된다.”(Hoon, 2000) 따위의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가 한미FTA 추진명분을 이런 시각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가뜩이나 ‘국민경제에 기여하지 못하는 수출증대’,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더욱 우려를 키우고 있다. 
요컨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미FTA인가’를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미FTA가 정부의 기대와 달리 산업적 효과에서 득보다 실이 크고 고용감소와 노동조건 저하, 노동기본권 후퇴, 사회복지 후퇴, 양극화 심화를 부른다면 협상은 마땅히 중단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각계각층의 우려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서도 “FTA는 세계화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남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 “자신감만 있으면 못 할 게 뭐냐” 따위의 무책임한 태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IMF 체제와 비슷한, 파괴력에서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몰고 오리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IMF 외환위기 당시 초국적 자본과 그 대변자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구제금융과 경제신탁통치를 받아들임으로써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을 자초한 바 있다. 반면 같은 처지에 놓였던 말레이시아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도 별다른 고통 없이 외환위기를 극복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미FTA가 그 이름과 달리 무역뿐만 아니라 금융과 투자 등 전체 경제영역을 포괄하는 실질적 ‘경제통합’ 협정임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그 파급력은 무역효과, 다시 말해 전반적으로 교역량이 느는 가운데 어떤 산업은 무역수지가 개선돼 득이 되고, 어떤 산업은 무역수지가 악화돼 실이 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건대 국민대중의 구체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농업을 뺀 나머지 분야를 보면 구체적 삶에 영향을 받는 국민이란 다름 아닌 노동자계급임을 알 수 있다. 한미FTA의 파급력을 이런 관점에 따라 분석할 경우 ‘노동부문’은 사실상 그 전부를 포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체 산업, 분야별 파급효과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적잖은 연구성과가 나와 있고, 그 전망은 낙관과 비관으로 엇갈리는 실정이다. 문제는 어떤 분석이든 노동자에게는 한미FTA가 커다란 고통을 안겨줄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적극 부인한다. 미국이 그동안 FTA를 통해 상대국의 노동기준 준수를 강하게 요구해왔으므로 한미FTA를 체결하더라도 근로조건 보호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리란 것이다.(관계부처합동 2006) 정부가 이같은 주장의 주요한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FTA 협정문의 노동장(Labor Chapter)이다.
미국은 그 동안 체결한 FTA에 예외 없이 노동장을 포함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결사의 권리, 단결권․단체교섭권, 강제․의무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용인할 수 있는 최저임금․근로시간․직업안전보건) 준수 노력과 무역․투자 유치와 촉진을 위한 노동기준 저하금지 등이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협정문 초안에도 17장에 노동을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 장은 노동자 권리보장이 핵심이다. 
그러나 FTA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협정이 아니다. 이 점은 협정문 전체구성을 보더라도 확인된다. 지금까지 미국이 체결한 FTA는 교역확대․투자보장을 위한 십수 개의 항목을 설정한 뒤 노동장은 ‘말석’에 배치하고 있다. 이 장은 어찌 보면 ‘환경’과 더불어 투자증진이라는 FTA의 기본방향에 배치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미국내 정치역학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은 대외협상을 추진하면서 국내절차법의 규정에 따라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 노동계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미국노총(AFL-CIO)은 이와 관련해 양 체약국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강조해왔다. 이는 두 가지 성격을 띠고 있다. 첫째는 국적을 떠나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의 추구다. 둘째는 (이 점을 더욱 주목해야 하는데)미국 노동계로서는 체약 상대국의 억압적 노동환경이 미국 자본의 해외유출을 촉진하고, 상대국의 저임금에 기반해 생산된 상품이 미국에 역수입됨으로써 자신의 고용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방어하는 측면이다. 미국 노동계의 이런 처지가 민주당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물로서 ‘무역-투자촉진’과 어울리지 않는 ‘노동권 보장’이 FTA에 반영된 셈이다. 실제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은 이 노동장이 문제가 돼 미의회 비준과정에서 부결될 위기에 놓였다가 2표 차이로 통과된 바 있다. 미국노총은 FTA와 관련해 노동권 문제를 연계하는 전략을 취해왔고, NAFTA에 대해서는 “노동권 보호장치가 포함되면 체결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NAFTA가 실제로는 미국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고용과 임금-노동조건 등에 파괴적 악영향을 미쳤음이 확인되면서 미국노총은 최근 “NAFTA를 모델로 한 현재의 FTA(current FTA model)는 받아들일 수 없다(unacceptable)”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미국노총은 실제로 미의회 공청회에 참석해 “한미FTA는 양국 노동자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며 한국정부가 ILO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비정규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 노동계의 또 다른 한 축인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 Coalition) 역시 한미FTA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춰 미국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고, 나아가 한국 노동계와 연대투쟁에 나설 경우 한미FTA 체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르자면 노동장은 사실 선언적 의미가 강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협정문은 (국제노동기준이 국내법에 의해 인정되도록) ‘노력해야 한다’(strive to)고 서술돼 있다. 또한 그 담보장치도 무역․투자의 그것과 비교해 구속력이 떨어진다. 그 절차는 ‘이의제기(Public Communication) -> 양국정부간 협의(Consultation) -> 중립기구를 통한 시정권고(Dispute Settlement Panel) ->제재조치(1,500만불 이하의 벌과금)’로 이어지는데 NAFTA의 경우 NAFTA에서는 애초 노동, 환경 관련 장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체결 뒤인 1993년 부속협약인 노동협력협약(NAALC, Agreement on Labor Cooperation)이 체결됐다. 이 협약에 적시된 ‘옹호해야 할 노동원칙’은 ①결사의 자유, 단결권 ②단체교섭권 ③파업권 ④강제노동 금지 ⑤아동 및 청소년 노동보호 ⑥최저고용기준 ⑦고용차별 철폐 ⑧양성에 동등한 임금 ⑨산재예방 ⑩산재보상 ⑪이주노동자 보호 등이다.(Lance Compa 2006)
 2005년 6월까지 34건의 이의제기가 있었지만 중립기구의 시정권고 이상으로 나아간 사례는 전혀 없다.(노동부 2006)
이처럼 한미FTA가 미칠 구체적 파급력은 겉으로 나타난 협정문을 통해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실질적 내용과 선례 등 좀 더 종합적인 고찰을 필요로 한다. 이 글에서는 이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한미FTA가 고용환경, 노동조건과 노동자생활, 그리고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고용환경

(1) 일자리 10만개 창출?

정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한미FTA가 국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단기감소, 중장기 10만증가’로 전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득증대에 따른 자본축적, 구조조정에 따른 효율성 증대, 경쟁을 통한 산업경쟁력 향상이 이루어질 경우 중장기적으로 GDP 2%성장과 10만 고용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량연구는 전제된 가정, 계량모형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등이 실시한 계량연구 결과가 KIEP의 그것과 다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한미FTA 추진론자들은 또 다른 낙관적 가정을 덧붙이는 방법으로 효과를 계속 부풀려 최대 55만명 창출을 추산해냄으로써 조작시비가 일기도 했다.

[표1] 한미FTA가 한국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KIEP]
구분           단기(정태)효과        중장기(동태)효과
농업              - 30만 명                      - 38만 명
제조업           + 4만 명                     + 20만 명
서비스업     + 17만2천 명              + 28만8천 명
총계                - 8만5천 명               + 10만4천 명


KIEP의 연구는 잘 알려져 있듯 CGE(일반균형연산)모형을 이용한 계측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완전경쟁시장, 시장의 안정상태, 거시균형조건, 생산요소의 자유롭고 완전한 이동 등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에 기초해 있다. 예컨대 무역 비교열위 산업이 퇴출되면서 발생하는 유휴 자본, 노동, 토지 등의 생산요소가 자유롭고 비용 없이 비교우위 산업으로 완전히 이동한다는 가정을 들 수 있다. 계량모형 자체도 또한 데이터를 무리하게 그룹화하는 등 현실적 예측력에 한계를 지닌 것으로 지적된다.(이해영 2006)
사실 KIEP 계량연구가 전제하고 있는 ‘원활한 노동공급’은 극히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은 산업간 이동을 통해 해소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습득 등 장기간의 노력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장기실업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해당산업과 연계된 지역경제와 연관산업에 타격을 주어 고용감소 효과를 부르게 될 뿐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로까지 파급될 수 있다. 
한편 KIEP는 서비스업에서 17만 2천명의 고용증가를 예측해 다른 산업의 실업인구를 흡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서비스 산업의 현실에 비춰 크게 과장된 것이다. 노동력 등 생산요소 이동이 완전하고 자유로우며 비용이 없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KIEP의 예측은 경제와 노동시장의 현실에 애써 눈을 감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이론적(공론적!) 분석일 뿐, 실제로는 IMF 위기에 이어 제2의 고용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2) 경제환경 변화에 대한 총체적 검토

이미 살펴본 대로 한미FTA는 경제통합에 준하는 협정이다. 따라서 그 파급효과를 분석하는 데는 무역 관련 지표 뿐 아니라 투자환경과 산업구조, 유사한 환경변화가 몰고온 과거의 경험 등이 총체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정부는 ‘FTA 체결로 무역장벽이 사라지면 교역량, 특히 수출이 늘어나 생산증가 효과를 가져 오고 자연스레 고용도 늘어날 것’이라는 ‘단순한’ 주장을 펴고 있다. KIEP도 홍보책자를 통해 “쌀을 개방품목에서 제외할 경우, 한미FTA로 인해 중장기적으로(7~10년에 걸쳐)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은 7.21%(326억 달러), 후생수준은 6.6%(263억 달러) 증가하고, 국내의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일자리도 약 52만 개의 추가적인 일자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 보이고 있다.(KIEP 2006)
그러나 교역확대가 고용증대로 이어진다는 명제는 이미 ‘신화’가 된 지 오래다. IMF 경제위기 이전에는 그나마 수출신장이 고용증대로 이어질 수 있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1993년 0.711을 정점으로 2005년 0.507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이는 수출이 늘더라도 국내산업의 전후방연관효과가 급감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2005년 수출이 유발한 취업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그림1]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 변화 추이 [KDI, 무역협회]


IMF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사회는 외자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해외자본의 국내기업 M&A 이후 나타난 또 한 번의 구조조정으로 사상초유의 ‘고용대란’에 휩싸였다. 나아가 정부의 실업률 공식통계에서도 확인되듯 그 여파는 지금도 가시지 않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표2] IMF 전후 연도별 실업률 추이(%)[통계청]


요컨대 IMF 위기를 계기로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 경제원리가 급속히 이식됨으로써 수출이 늘고,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추세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실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이식은 ‘자발적 수용’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국가주도 발전전략이 군부독재와 뒤섞여 인식되면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 확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한 것이 미국 유학파 학자, 관료들임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육을 점차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 특히 2년간의 ‘고급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미국에 보내진 고위관료들은 대부분 이전의 직무로 복귀했다.(신장섭 등 2004) 신장섭 등(2004)에 따르면 1987~97년 미국 대학의 경제학박사 학위 수여자의 9.7% 이상, 91~94년엔 10% 이상이 한국인 이름이었다. 전세계의 한국인구 비중이 0.75%임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수치다.

이렇듯 미국에서 이식된 신자유주의 원리의 핵심이 바로 주주자본주의다. 주주자본주의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이정환 2006, 중심) 참조
 기업의 수익이 투자확대와 고용창출보다는 배당극대화에 투여되는 것이다. 경영전략은 주가상승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 전략이란 기업의 성장이나 사회적 책임보다는 당장의 주주배당을 위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건비를 포함해 비용요소를 줄일 수 있으면 다 줄인다. 이것이 주주들의 요구이고, 그래야 주가도 오른다. 
한미FTA로 미국계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 이같은 경영전략은 더욱 일반화될 것이고, 산업 전반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대량실업, 고용불안을 부를 게 뻔하다.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외국인 투자비중은 92년 4.9%에서 2005년 39.7%로 급증하고 있고 특히 미국자본의 비중이 매우 높다. 1997~2005년 전체 순유입자자금의 58.1%가 미국자본이며, 2005년 현재 증권거래소 상장주식의 50%를 미국이 소유하고 있다. 한국은행. 국가별 증권투자자금 순유입동향/ 국적별 유가증권시장 상장주식 보유현황(2005년말 기준).
 
이런 추세에 비춰 한미FTA가 미국계자본의 국내유입을 더욱 촉진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본시장 개방과 투자 관련 규제철폐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는 지난 2월 협상개시와 관련해 미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한국내 미국 투자자에게 미국법에 상응한 투자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한국정부 제소권 부여와 재판관할권을 미국 기업이 요구하는 곳에 두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 5월 협상초안을 발표하면서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개방’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협상도 하기 전에 ‘4대 현안’이라는 협상 카드를 포기한 한국정부가 끝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같은 협상초안에는 ‘투자자유화를 통한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 ‘금융개방 기조 유지’ 등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외국인투자의 고용창출 효과

결국 한미FTA가 체결되면 ‘외자유치’를 기치로 미국계 자본에 문호가 활짝 열리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한미FTA Q&As>라는 자료를 통해 ‘외국인 투자 증대 등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크게 제고시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2000~2005년 외국인투자로 생겨난 일자리가 53만명으로 전체취업자 증가규모(256만명)의 20%에 이른다’는 연구결과(조용수 2006)를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는 고정자본형성표 및 고용표를 이용해 외국인직접투자(FDI)의 고용창출 효과를 추정하고 있는데 자영업자와 가족무급종사자 14만명(이들 상당수는 피고용 상태에서 퇴출된 인력일 것이므로 실제로는 고용감소에 해당한다!)을 빼면 39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 계량연구 또한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 이 추계에서는 연구자 스스로 인정하듯 ‘다소 비현실적이긴 하나 FDI 모두가 국산자본재를 이용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둘째, FDI 가운데 인수합병형(M&A)은 제외하고 사업장 설립형(Greenfield)만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이는 고용영향평가에서 플러스 요인만 취하고 마이너스 요인은 버린 셈법이다. 왜 그런가.
FDI의 투자형태를 살펴보면 사업장 설립형의 비율이 급속히 줄어드는 대신 인수합병형의 비중이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다. 2005년의 경우 M&A 투자가 절반에 육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업장 설립형 FDI는 당연히 고용증대를 가져온다. 반면 M&A형의 경우 과거 경험에서 알 수 있듯 구조조정을 내세운 감원유발 효과가 더 높다. 심지어 매각(M&A)을 앞두고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인수자본 역시 주가상승을 위해 다시 구조조정에 나서고… 결국 이 연구는 M&A형 FDI의 고용감소 효과를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표3] 투자형태별 외국인직접투자 동향(%)[산업자원부]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M&A
10.0     16.7     15.7    14.1    16.9     23.2    31.3    48.2     45.6    Greenfield
90.0     83.3     84.3     85.9   83.1     76.8    68.7    51.8     54.4


이 연구는 또한 경쟁력 비교열위에 있는 국내 동종기업 퇴출에 따른 실업도 반영하지 않았다. 나아가 외국인투자 가운데는 FDI보다는 증권투자 등 포트폴리오투자의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외국자본의 포트폴리오투자가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성 투자임은 상식이다. 이 경우 주주자본주의가 더욱 증폭돼 관철된다. 국내외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것처럼 구조조정(감원!)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98~2004년 한국 50대 기업의 매출은 118% 늘었지만 고용은 오히려 0.4% 줄었다.
한편, 직접투자라 해도 M&A의 경우 론스타 사태에서 알 수 있듯 단기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내에 유입되는 초국적자본의 관심사는 오직 ‘최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내는 것’일 뿐 한국경제 발전이나 고용창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나마 미국의 ‘BIT 2004년 모델’ 미국이 체결하는 FTA를 경제통합협정으로 만드는 핵심기재가 바로 양자투자협정(BIT) 표준안이다. 미국은 NAFTA를 비롯해 호주, 요르단을 비롯한 중동국가들과 맺은 FTA에 이 표준안 내용을 관철해왔다. 한미FTA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2004년 모델(BIT 2004)은 그 내용이 더욱 강화돼 주목을 요한다. BIT 모델 자체가 ‘투자’ 대상을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모든 영역으로 확대한 것인 데다가 2004년 모델은 ‘자산’개념으로까지 확장했고, 적용대상을 공기업과 그 종사자, 지자체까지 넓혀놓았다. BIT 2004는 이를 통해 초국적 자본이 민간영역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투기적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에 근거해 한미FTA가 체결되면 외국자본의 이같은 폐해를 규제할 근거도 사라진다.
BIT 2004 가운데 고용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이행의무(performance requirements) 부과금지’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자면 FTA 체약국은 기술이전, 현지생산품 사용의무(예컨대 스크린쿼터) 등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나아가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도 어렵게 된다. 또한 미국계 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 ‘고용승계’, ‘단체협약 승계’, ‘내국인 일정비율 고용’ 등의 의무 역시 이 조항을 위배되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이해영 2006)
BIT 2004에 고용승계, 단협승계 등이 이행의무로 명기돼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투자자의 이해를 보장하는 다른 조항들과 결부돼 협정위반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수용(Expropriation)금지’ 조항이 이에 해당하는데 BIT 2004는 부속서를 통해 ‘간접수용’이란 개념을 크게 확장시켜 놓았다. 이에 따르자면 ‘투자의 경제가치에 역행하는 효과’, ‘투자 기대에 개입’ 등 경우에 따라선 입법, 행정, 사법 차원의 대다수 규제조치가 투자자 이익침해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투자분쟁으로 규정되고, 투자자는 상대국 정부를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 등 국제적 분쟁해결 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피소된 정부는 천문학적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예컨대 미국계 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고용․단협승계 현행 국내법은 인수합병 등 기업변동시 고용․단협승계에 대해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아 이들 문제는 법원의 판결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여기서 BIT 2004의 ‘협정당사국(Party)’이란 행정기구는 물론 입법, 사법부까지 포괄하는 것이어서 사법적 판결 역시 국제적 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가 노사갈등 현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법원이 이에 대해 승계를 명할 경우 미국자본은 이를 ICSID에 제소할 수 있고, “한국법원의 판결이 투자이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경우 ICSID가 분쟁사안에 대해 내린 이전의 판정들에 비춰 한국의 패소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렇게 봤을 때 외국인투자 가운데 고용을 창출하는 형태는 사업장설립형 FDI뿐이고, M&A형 FDI나 포트폴리오투자는 오히려 고용감소 요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04년말 현재 전체 외국인투자 가운데 증권투자 비중이 51.1%에 이르는 반면 직접투자는 21.0%에 불과하고, 기타투자는 27.9%이다. 한국은행. 2005.9. ‘2004년말 국제투자대조표(IIP) 편제결과(잠정)’.
 [표5]에서 보이듯 같은 시기 직접투자 가운데 M&A형은 48.2%, 사업장설립형은 51.8%다. 결국 기타투자(27.7%)를 뺀 전체 외국인투자 가운데 15%가 고용을 창출하는데 비해 나머지 85%는 반대로 고용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4)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확산

앞의  [표3]에서 볼 수 있듯 IMF 위기 당시 7%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1999년을 고비로 회복추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체감실업률은 정부 통계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높은 게 사실이다. 이는 불완전취업자가 상당수 취업자로 분류되는 통계작성상의 문제점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완전취업의 증가는 비정규직 확산이라는 이슈를 이 사회에 제기했다.
2005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의 56.1%인 840만명에 이르고 있다. 통계청이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시작된 2000년 8월부터 비정규직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2000년 58.4%, 2001년 55.7%, 2002년 56.6%, 2003년 55.4%, 2004년 55.9%, 2005년 56.1%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김유선 2005) 그 이전까지는 ‘경제활동 인구조사’의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를 합한 규모를 통해 비정규직 증감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림2] 연도별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추이 [통계청/부가조사 분석]

주: 1999년 이전은 <임시직+일용직> 비율임.
 
눈여겨 볼 것은 전체 실업률이 회복추세로 돌아선 1999년부터 비정규직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2000년 이후의 취업자 증가분이 대부분 비정규직 고용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IMF 위기를 계기로 전 산업부문에 급속히 확산된 노동시장 유연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한미FTA가 IMF 위기 이후 몰아친 구조조정 신드롬을 더욱 증폭된 형태로 재연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미국은 그 동안 FTA 노동장(Labor Chapter)에 노동시장 유연화 관련 사항이 아니라 국제노동기준 준수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켜왔으므로 한미FTA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한미FTA Q&As)
물론 정부의 기대처럼 FTA 협상테이블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하게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노동장은 앞서 살펴본 대로 실제적 구속력을 갖기 보다는 선언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FTA는 역내 무역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협정이지 고용문제가 핵심적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이른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투자장벽으로 보는 미국식 관점이다. 정부도 같은 자료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미FTA 체결 이후 유연화된 노동시장 환경에 익숙한 미국 기업들의 국내진출이 증가할 경우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미FTA 협상을 주도할 미국 무역대표부는 무역장벽보고서(NTE)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OTC)에 의거 매년 발표하는 연례보고서. 미국 업계의 의견 등을 기초로 작성해 3월말 발표. 올해 보고서는 62개 주요교역국을 상대로 무역․투자 장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주요현안으로 중국의 취약한 지적재산권 보호, EU의 에어버스 보조금 지급, 일본의 쇠고기 수입중단 등을 언급하고 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10개 분야 25쪽 분량으로 농산물, 지적재산권, 투명성, 보조금, 스크린쿼터, 의약품, 자동차, 통신 등 미국측이 문제 삼아온 통상현안과 관련, 1년 동안의 진정상황을 평가하고, 지속적 협의가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내용은 수출보조금 지급(반도체, 제시산업), 지방정부․공기업의 건설분야 양허하한선 하향조정(정부조달),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 완화(서비스분야), 혁신적 신약 가격산정․급여절차 투명성 개선, 약가재평가 제도에 대한 우려, 통신산업 추가개방․외국인 지분 확대 필요성 등이 눈에 띈다. 특히 '투자장벽' 분야의 노동시장 관련 언급이 주목된다. 이 보고서가 추가적인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 내용은 ①연금 활용성 확대 ②노동자 채용과 해고의 유연성 강화 ③실업수당 확대적용 ④비자 규정 완화 ⑤직업교육과 직업소개 기능 강화 ⑥노동쟁의 감소 ⑦규제의 투명성 개선 등이다. USTR가 FTA 협상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NTE보고서는 미국의 협상방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눈여겨봐야 한다.
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를 줄기차게 제기해왔으며, 2006년 보고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FTA 협상테이블에서 ‘국제노동기준 준수’를 요구하는 것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압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자국 투자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이지 다른 나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호해주는 ‘자선단체’가 결코 아니다. NTE 보고서에 함께 언급된 실업수당 확대적용, 직업교육과 소개기능 강화 등도 얼핏 보면 한국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촉구한 것 같지만 사실은 노동유연화에 따른 보완대책을 마련함으로써 노동자의 반발요인을 제거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또한 한미FTA 협상에서 ‘경쟁’의 기치 아래 공기업 사유화를 주요하게 제기하는 한편 경쟁의 제도화를 위해 협의(간섭)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USTR, 대의회 서한) 이 대로라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공기업마저 미국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민영화 이후 2003년까지 무려 1만7천여명이 구조조정 당한 KT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그 폐해가 어떨지는 자명하다.
나아가 한국에 진출한 미국자본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구하고 있다. 즉 “경영진이 사업의 필요에 따라 근로자를 고용, 해고, 이전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시장과 현지시장의 수요변동과 경쟁압력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리해고 요건완화를 주문하는 한편 해고예고 기간도 현행 60일에서 30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주한미상의 등 2005)
한편, 정부는 “한미FTA 체결로 비정규직이 증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하며 “자동차산업의 생산증가,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한미FTA Q&A)
이는 사실 자가당착이자 기만적 태도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계의 거센 반대 속에서 현재 비정규직 개악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입법안이 끝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가뜩이나 전체의 절반을 웃도는 비정규직 고용은 제한이 풀리게 돼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입법을 하겠지만 한미FTA를 체결하면 비정규직이 늘지 않는다’는 앞뒤가 안 맞는 얘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비정규직 개악입법은 한미FTA를 앞두고 미국의 노동유연화 요구를 의식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증가를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공공부문이었다. 즉 지난 2년 동안의 비정규직 증가율은 광공업이 3.0%, 민간서비스업 4.9%, 농림어업건설업 0.8%였던 반면 공공서비스업은 5.0%였다. 정부행정은 2.7%, 교육서비스는 5.5%, 보건사회복지사업은 6.7%다.(김유선 2005)

3. 노동조건과 노동자 생활

(1) 빈곤의 악순환

서두에서 지적했듯 경제활동은 궁극적으로 경제주체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교역과 투자증대를 통해 경제규모가 커진다고 하더라도 실업이 양산되거나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근로계층의 소득수준이 떨어진다면 진정한 발전이라 보기 어렵다. 노동자의 삶의 질은 앞서 살펴본 고용환경 외에 임금과 노동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다면 한미FTA는 노동자의 임금상승과 노동조건 향상에 기여할 것인가. 불행히도 그 대답은 비관적이다.
미국과 함께 NAFTA를 맺은 멕시코의 경험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된다.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 경제구조는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미국시장 지향의 노동집약적 생산기지로 변모했다. 1994년 이래 모두 1,400억 달러의 외국인투자를 유치했으나 중소기업 등 전통산업과 제대로 연계되지 않아 생산증가가 내수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외의존도는 80%로 치솟고,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90%가 넘는 금융업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또한 내수용 제조업, 중소기업, 농업 등이 대거 도산하고 시장에서 퇴출됐다.(민주노동당 2006)
그 결과 실업률은 9.7%에서 15.1%로 증가했고,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아래 표는 멕시코의 국내총생산과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어도 고용사정과 노동조건은 오히려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GDP        생산성     고용     노동비용     실질임금
44.5%     45.1%    -0.3%     -29.9%         -7.9%
[표4] 1993~2000년 멕시코 제조업 경제지표(연평균) [OECD]

실제로 오늘날 멕시코의 실질임금은 NAFTA 체결 당시보다 낮은 수준이다. 물론 그 원인을 전적으로 NAFTA에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NAFTA 체결로 수출과 해외직접투자가 급증했음에도 노동자들의 임금과 생활수준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같은 현상은 아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NAFTA 발효 뒤 생산성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Sandra Polaski 2006)

[그림3] 멕시코 제조업 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1993=100)

자료: EIM, BIE 등(Sandra Polaski 2006에서 재인용)

미셸 초스도프스키는 이를 ‘저임금노동의 경제’로 이름 붙였다. 노동비용 최소화는 소비시장의 확대를 제약하고, 전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이 빈곤화됨에 따라 구매력이 심각하게 축소된다. 이에 따라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소득수준 저하, 생산 위축으로 범세계적 생산과잉과 소비수요 감소를 초래한다. 이런 체제 아래서 세계적 기업과 무역회사들은 개도국의 생산기반을 파괴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미셸 초스도프스키 1998)
이는 IMF 체제의 작동 메카니즘에 관한 언급이지만 NAFTA 체제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래 [표]에 보이듯 체약국 세 곳 모두 생산성 증대 속에서도 임금수준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생산잠재력은 증대되었으나 산업이전을 통한 생산확대 자체가 지출의 축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미국형’ FTA인 한미FTA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멕시코        미국        캐나다        생산성
45.1%      44.4%       13.2%      노동비용

-29.9%    -15.2%      -10.9%
[표5] 1993~2000 NAFTA 3국 제조업생산성 및 노동비용 증가율(연평균) [OECD]


(2) 근로조건 저하는 없다?

정부는 한미FTA 체결로 경쟁력 우위부문과 열위부문간 임금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임금 등 근로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한미FTA Q&As) 임금수준은 기본적으로 노동생산성, 노동력의 수요공급, 노사의 협상력 등에 의해 결정되는데 한미FTA가 이런 요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과연 그럴까? 노동생산성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른 두 요인은 명백히 한미FTA의 영향권 아래 있다.
우선 노동력의 수요공급 측면. 정부도 인정하듯 한미FTA는 농업의 파탄을 피할 수 없게 할 것이다. 농토에서 떨려나온 수십만의 이농행렬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노동시장으로 몰려든다. 이들은 기왕의 실업인구와 더불어 거대한 산업예비군 층을 형성한다. 즉, 노동력이 과잉 공급되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이 떠받드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르자면 노동력의 가격, 임금수준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 과잉노동력이 조기에 해소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임금억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이농인구의 특성에 비춰 이들이 조기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으로 노사의 협상력 측면. 여기서 협상력이란 다름 아닌 노사의 역관계를 뜻한다.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힘의 균형추는 자본쪽으로 더욱 기울게 된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NTE보고서에 나온 대로 노동쟁의 감소, 즉 노동운동 억제를 촉구할 것이고, 미국자본은 주한미상의 정책보고서 내용처럼 노동사건 민법관할로 변경, 대체근로 허용 등을 요구할 것이다. 이들의 주문이 현실화되면 노동의 협상력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정부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한미FTA가 노동조건에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아래 그림에서 나타나듯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급격히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지고 그 추세가 유지된다는 것은 성장과실이 노동자에게 과소분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림4] 노동소득분배율 추이; 전산업-제조업 [한국은행]


주한미상의는 좀 더 직접적으로 임단협 계약기간 연장, 퇴직금제 폐지(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 전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계 투자기업은 자국정부와 경제단체의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애초 유일한 투자목적인 이윤창출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이에 맞서 노조가 노동조건 개선투쟁에 나선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바로 구조조정, 사업장이전 위협이다. 이 무기의 위력은 미국에서 이미 확실히 검증된 바 있다. 

(3) 한미FTA 세상 미리보기

한미FTA가 체결되면 노동자에게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미답의 세계인만큼 그것이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는 그걸 체험해 볼 수 있는 세계가 따로 있다. 경제자유구역이 바로 그곳.
경제자유구역은 ‘경영환경과 생활여건 개선을 통해 외국인투자를 촉진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일부 지역을 지정, 추진되고 있다. 지난 2002년 제정된 경제자유구역법은 이 구역 안에서는 주휴 및 생리휴가 무급화, 월차휴가 폐지, 장애인 의무고용 면제, 파견노동대상 확대 및 기간연장 등 놀랄 만큼 열악한 노동조건이 ‘법으로’ 보장되고 있다. 이윤창출이 최대의 투자목적인 외국자본으로서는 천국인 셈이다. BIT 2004에 따라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에 투자한 미국계 기업은 ‘경제적 치외법권’을 누리게 되는데 경제자유구역은 그 특권이 노동자에게 어떤 반대급부를 던지게 되는지 보여준다. 지금은 이 자유구역에 국한된 외국자본의 ‘특권’이 한미FTA 체결 이후 전체 미국계 기업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미국 무역대표부가 이 경제자유구역에 대해 “더욱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경제적 필요에 화답하는 환경조성에 중대한 진전이며, 외국인 투자장벽 해소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USTR 2006) 미국 무역대표부는 특히 노동 유연화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한편 한미FTA는 여성노동자에게 더욱 가혹한 피해를 안겨줄 것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을 지속적으로 민영화해 여성들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과 무권리 상태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들이 바로 비서, 타자원, 관련 사무원들이다. 결국 노동시장 유연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곧 여성노동자다.
멕시코 수출자유무역지대인 마낄라도라 섬유산업 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이들은 열약한 노동환경, 저임금, 노조가입 포기 등을 받아들여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멕시코와 인접한 중미지역의 경우 임신여부 테스트를 거쳐 채용하고, 임신한 여성은 해고됐다.
여성고용 확대는 정부차원의 지원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고용할당제 등의 조치는 점차 폐지되거나 실시가 어려워 질 것이다. 미국식 FTA는 정부의 이런 노력을 전면 부정하기 때문이다. 즉, 보조금, 원조, 지원금이 책정되는 것은 금지될 것이다. 그 혜택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동등하게 돌아가지 않는 한 차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소비의 양극화

정부와 한미FTA 추진론자들은 ‘관세철폐에 따른 후생효과’를 내세운다. 다시 말해 관세가 없어지면 질 좋은 수입제품을 좀 더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살펴봤듯 한미FTA 여파로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노동조건이 악화될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전반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밥맛없다는 사실이 알려져 처지곤란이 된 미국쌀 ‘칼로스’를 국산쌀보다 싼값에 살 수 있게 된 것이 ‘후생증대’는 아닐 것이다. 
물론 후생증대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계층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산 고가품, 사치품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부유층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IMF 위기 당시에도 “이대로!”를 외쳤던 이들의 소비행태가 다시 나타나지 말란 법 없다. 무역자유화에 따른 이같은 소비의 ‘재구성’은 소수계층을 겨냥한 사치성 내구소비재 수입품이 물밀듯 밀려오는 ‘고소득 소비’를 증대시키는 게 특징이다.(미셸 초스도프스키 1998)
이같은 소비의 양극화 현상은 이른바 ‘사회적 위화감 조성’을 넘어 노동자를 비롯한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그 배경에도 역시 한미FTA의 작동메카니즘이 도사리고 있다.

(5) 의료비
먼저, 보건의료 영역에 미칠 파급력을 살펴보자. 한미FTA는 우선 다국적 제약회사에 유리한 ‘의약품 상환가격 정책’을 관철함으로써 의약품비용 지출을 늘리게 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악화로 이어져 보장성 확대를 가로막고 보험료를 인상시킨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가입자가 공보험(국민건강보험)과 사보험(미국식 개인보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쟁적 시장분할, 보험료 액수에 따라 이용하는 병원이 달라지는 보험사-병원 자유계약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함께 투자(이윤창출!) 목적의 영리법인 병원 허용도 요구하는데 이 경우 국내병원에도 적용된다.
의료체계가 이렇게 바뀌면 부유층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좇아 첨단영리병원과 연계된 개인건강보험으로 옮겨갈 것이다. 고액보험료 납부자들이 이탈한 국민건강보험은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부유층은 고액의 사적건강보험에 가입해 첨단의료기술의 혜택을 받는 반면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들은 적잖은 보험료를 내고도 지금보다 보장성이 낮은 사적보험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적보험에 가입할 여력도 없는 저소득층은 유명무실한 국민건강보험에 남아 얼마 남지 않은 공공의료기관을 떠돌게 된다.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전국민이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모든 병원은 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체제다. 돈이 없어 건강을 잃고, 심지어 생명까지 포기해야 하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를 통해 이윤의 논리가 지배하는 미국식 의료제도가 도입된다면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은 크게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폭 오른 의료비 때문에 가계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6) 교육비
한국의 교육기관은 현재 비영리법인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서는 외국교육기관에 대해 영리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 교육기관이 한국에 들어오고자 하는 목적은 다름 아닌 돈벌이에 있으므로 영리법인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들어올 이유가 없다.
한편 정부는 “초중등교육은 한미FTA 협상대상이 아니다”며 “교육개방은 대학 및 성인교육을 중심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영리법인 허용은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제자유구역 등 각종 특구에서는 이미 모두 개방된 상태다. 따라서 정부의 이같은 언급은 한미FTA를 통해서는 개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따라서 한미FTA 협상에서는 미국 영리 교육기관의 국내진출 허용이 핵심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영리행위를 인정해주면 응당 국내 사학자본들도 형평성을 이유로 규제철폐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4년제 대학이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지만 ‘본교 진학자격’을 내세운 교육과정을 개설할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영리기관의 성격상 비싼 등록금을 부과할 게 뻔하다. 노동자들이야 어차피 여력이 없으니 ‘그림의 떡’이라 치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미FTA를 통해 대학교육이 개방되면 국내 대학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대학에는 정부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내국민대우’ 조항에 따르자면 이는 한국에 들어온 미국대학에 대한 차별대우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조금은 폐지가 불가피하고, 지금도 비싼 국내 대학의 등록금은 더욱 치솟게 된다.
결국 노동자 등 저소득층의 자녀는 ‘돈이 없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져 교육 또한 양극화될 것이다. 혹 무리를 해서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경우 가계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한국사회는 흔히 ‘학벌’사회로 규정되는 현실이 상징하듯 가뜩이나 교육(학력)이 사회적 지위를 규정하는 핵심적 요인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학력이 성공적 사회진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로 인식되고,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계급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더욱 확대한다면 ‘가난의 대물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교육기회 불평등 실태에 대해서는 김왕배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2001, 한울) 참조
 

(7) 사회안전망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 추진의 필요성과 기대효과를 주장하는 논리 속에는 대부분 가정과 단서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앞서 살펴본 대로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결과 또한 비현실적인 가정들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숱한 가정 자체가 이미 현실성이 떨어짐은 이미 살펴본 바이고, 정부 스스로 단서를 달아 털어놓는 내용은 진실의 일단을 보여준다 하겠다.
예컨대 ‘다만, 단기적으로 경쟁력 열위 부문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어 실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경쟁력 우위-열위부문간 임금격차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유연화된 노동시장 환경에 익숙한 미국 기업들의 국내진출이 증가할 경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따위가 그것이다.(이상 <한미FTA Q&As>)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현실로 이어질 것들이고,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정부 스스로도 이를 의식했음인지 ‘한미FTA를 통해 어려움을 겪는 계층․기업’에 대한 나름의 보완․지원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미FTA를 강력히 추진하는 처지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접근방식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이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보면, FTA가 성장을 촉진시켜 사회안전망 확보 여력을 확충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요는 협정 발효 이후 그 성과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마치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그거야 한미FTA의 성과를 확신하는 데서 비롯된 태도라 치자.
그렇다면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저소득층 사회보험 확충, 재산형성 지원, 직업능력개발 지원 등 사회안전망 확충대책 강구(임금격차 확대 대책), 현행 고용보험제도를 활용한 실업급여지급 및 재취업을 위한 능력개발 지원(단기실업 대책), 특화된 전직․재취업 지원방안 강구(추가 실업자 대책) 등이 정부가 제시한 해법이다. 결국 현행 사회안전망 활용 외에 ‘특화된 지원책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재삼 다짐한 것이 대책의 전부다. 새롭고, 구체적인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단 하나, 새로운 대책을 마련했는데 지난 4월6일 국회를 통과한 <제조업 등 무역조정 지원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FTA 체결로 피해를 입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해당 노동자의 전직․재취업을 지원하는 게 이 법의 제정취지다. 먼저 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보면 무역조정 정보제공, 상담지원, 원부자재 구입․기술개발․설비투자․입지확보․인력훈련 소요자금 융자지원 등 꽤 실질적인 대책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피해 노동자에 대한 지원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전직 등에 필요한 정보제공과 상담. 둘째, ‘고용정책기본법’ ‘고용보험법’을 활용한 전직․재취업 지원. 셋째, 전직․재취업 관련 사업 시행자 지원. 이것이 전부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새로운 내용은 아무리 법조문을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구색이나 갖춘 수준인 셈이다.(국회 2006. 4) 
그런데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무역조정 지원법>을 비롯해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협정체결의 명분을 얻기 위한 정치적 처방이자, 현실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굳이 FTA가 아니더라도 예상되는 무역피해 관련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 내용은 피해를 입기 전에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피해 노동자에 대해서도 실효성 없는 형식적 지원이 아니라 보상 차원의 충분한 지원과 실질적인 사회안전망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민주노동당 2006) 


5. 산업․부문별 영향분석

(1) 제조업

한미FTA가 제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자나 유관기관에 따라 전망이 엇갈리는 실정이다. 무역협회의 경우 전반적으로 단기적인 수출증대, 장기적으로는 외국인투자 확대와 산업․제도의 선진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섬유․의류, 전자, 고무제품, 신발, 모자, 가죽제품 등은 수출증대, 석유화학은 수입증대를 예상했다.(무역협회 2006) 섬유산업연합회도 섬유․의류에 대한 고관세가 철폐될 경우 수출증대를 예상하며, 특히 섬유업체가 전체 입주업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한 개성공단 제품이 역내산(한국산 원산지)으로 인정될 경우 큰 폭의 수출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자동차공업협회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국산차의 대미수출이 크게 증가하기보다는 현상유지를 전망하며 현지생산 활성화에 따른 부품수출 증대를 기대하는 정도다. 이를 종합할 때 제조업에서는 일정한 수출증가를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제조업 낙관론’은 근거가 희박함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미FTA가 제조업의 교역‘규모’를 키우겠지만, 수출효과는 크지 않고 수입이 급증함으로써 비교열위 업종의 대량도산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비교우위 품으로 꼽히는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섬유의류 분야조차 실제로는 수지가 악화되거나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분석된다.(백일 2006)
자동차의 경우 약간의 관세인하 효과를 보겠지만 ①한국의 대형승용차 시장 급증 추세 ②대형 미국 부품업체에 의한 시장대체 ③일제 중형승용차 우회수입 ④취약한 소유구조에 따른 적대적 M&A 가능성 등으로 오히려 엄청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 최악의 경우 현대․기아차가 M&A로 이어질 경우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아시아 생산기지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섬유의 경우 관세율 인하로 단기적 수출증가 효과가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령 미국-중국FTA가 체결될 경우 그 효과는 간단히 증발해버릴 것이다. 특히 기대를 걸고 있는 개성공단 제품의 역내산 인정이 미국측의 완강한 태도로 불투명해진 형편이다. 설령 그것이 관철된다 하더라도 남한의 고용증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개성공단 입주(예정)업체는 노동집약적 성격이어서 오히려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만큼의 남한내 고용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섬유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조업의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탓이다.
제조업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은 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전 지역은 중국 등 아시아권에 집중돼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비용(인건비)절감이 주된 목표임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고용창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역수입이 늘어나면 국내 생산기반을 잠식해 오히려 고용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노동집약형 업종뿐 아니라 전자통신장비업, 수송기계 등 핵심제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급증해 관련 납품․협력업체의 동반이전을 현상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한미FTA가 이같은 산업공동화를 극복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화의 대처방안으로는 인건비 절감을 특징으로 하는 저진로 전략(low-road strategy)보다는 고기술-고품질-고부가치를 추구하는 고진로 전략(high-road strategy)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의 참여를 바탕으로 수출금융지원, 기술력 향상을 위한 재정․기술적 지원, 부품업체 활성화를 위한 설비투자 지원, 완성차업체의 글로벌소싱 배제․국산부품 활용도 제고, 완성차업체의 총투자액․투자내역 공개로 이행상황 점검 등의 정책이 요구된다.(조돈문 등 2005) 그러나 한미FTA의 내국민대우․최혜국대우(national and most favored nation treatment)조항 BIT 2004는 외국인투자에 대해 ‘자국민 혹은 자국 기업과 동등한 대우’(내국민대우)와 ‘제3국 기업(국민)과 동일한 대우’(최혜국대우) 중 가장 유리한 대우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외국기업이라 하더라도 투자에서만큼은 ‘한국인’, ‘한국기업’ 대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조항은 실제 적용과정에서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예컨대 정부가 전략적 필요에 따라 특정산업의 국내기업을 지원할 경우 이는 (내국민대우를 받는)미국투자기업에 대한 차별대우로 간주된다. 결국 (미국기업에도 같은 지원을 하거나) 지원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또한 국영기업의 재화․용역 공급에도 적용투자에 같은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개방유보리스트에서 제외된)공기업 투자에 대한 외국인(이 때는 한국인이 된다) 49% 지분제한 등은 의미가 없어져, 관련 법조항은 폐지돼야 한다. 이는 결국 외국자본에 의한 공기업 사유화의 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기업의 공적 기능은 사라지고 이윤추구 논리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조항은 이행의무 부과금지 등과 결부돼 외국투자기업에 일종의 치외법권 지위를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 이행의무 부과금지 조항은 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미FTA는 나아가 직접적인 고용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제조업 분야의 외국인투자는 과거의 합작․공장설립 형태에서 M&A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앞서 살펴본 M&A형 투자의 고용감소효과는 제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자동차부품 업계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다국적 부품회사의 M&A가 급증했고, 주로 대기업 계열사나 300명 이상의 중대형업체에 집중됐다. 만도의 경우 인수자본인 선세이지가 2003년 두 차례 유상감자로 2010억원, 2004년엔 60%에 이르는 파격적 배당성향으로 364억을 챙긴 뒤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이다.(이정환, 2006) 반면 노동자들은 M&A 직후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800여명이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돼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이런 식의 ‘구조조정’으로 1992년 189,721명에 이르던 자동차부품업종 고용인원은 2003년 142,261명으로 25%나 줄어들었다. 매틀린패터슨의 투기행각의 제물이 된 브라운관 제조업체 오리온전기의 사정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판국에 한미FTA 체결로 미국계 자본에 투자의 문이 활짝 열리면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게 틀림없다.
 
(2) 공공부문

한미FTA는 한동안 주춤했던 공공부문(공기업) 사유화를 결정적으로 굳힐 전망이다. 그렇잖아도 공공성이 강한 주요 공기업들은 현재 사유화 절차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 분야는 1998년부터 미국의 집요한 압력으로 매각이 기정사실화 돼 있는 상태다. 정부는 그동안 오직 매각을 위해 발전5사를 한국전력에서 떼어냈고, 철도는 공사와 공단으로 분리했다. 가스공사의 직도입권은 내외 초국적자본에 내줬다. 상하수도 역시 민간위탁을 통해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정부가 협정문 초안을 발표하며 ‘단계적 개방’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립서비스로 그칠 공산이 크다. 미국의 최근 움직임을 볼 때 정부 방침은 사실상 ‘활짝 문을 열 준비’라고 볼 수밖에 없다.
BIT 2004에 따르면 미국은 포괄주의(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미국측은 한미FTA 협상을 통해 ‘경쟁’의 기치 아래 공기업 사유화를 주요하게 제기하는 한편 경쟁의 제도화를 위해 협의(간섭)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USTR, 대의회 서한) 이대로라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위에서 열거한 공기업마저 미국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공공부문의 사유화 자체가 해당 서비스의 공공성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점이다. 사유화의 폐해는 캘리포니아 정전사태 등 이미 전세계에서 수도 없이 확인된 사실이고, 국내에서도 열병합발전소 사유화에 따른 안양․부천지역의 전기요금 급등(30~40%), 포항 도시가스 요금의 폭등(12%) 등의 소비자 피해를 겪고 있다.(송유나 2006)
이런 상황에서 BIT 2004를 포괄하는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요금인상을 제한하는 법령을 제정할 경우 이는 ‘이행의무 부과금지’ 조항에 위배되는 것이며, 상수도 보급과 노후설비 교체를 위해 지자체를 지원할 경우 ‘내국민대우’ 조항에 저촉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국영화하거나 다른 방식의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BIT 2004에는 이런 조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후퇴금지’(이른바 ‘미늘톱니’)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당분야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호주 빅토리아주는 전력회사 민영화에 앞서 ‘매각가치’를 높이기 위해 2만명에 이르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해 8천명으로 줄였다. 영국 브리티시에어웨이의 경우 민영화에 앞서 적자노선을 폐기하고 노동자수를 5만8천에서 3만5천으로 감원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통신(현 KT) 사유화 과정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감원과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유화 이후 빚어진 고용불안과 노조탄압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한미FTA 협상에서 유보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부문의 미래는 이처럼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사회공공성 영역인 교육과 의료분야의 경우 앞서 살펴본 상품화에 따른 비용부담 폭증도 문제지만 해당부문 노동자들의 고용, 노동조건에도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 그 핵심적 배경에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시장화, 상품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선 교육분야. 교육시장이 개방될 경우 ‘대국민대우’ 조항에 따라 국내대학의 영리법인화가 불가피하게 된다. 더욱이 국내대학 스스로 한미FTA 체결 이전에 영리법인 설립 등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교육보다는 ‘영리’의 논리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다름 아닌 수익을 내기 위한 ‘경영’체제의 도입이다. 효율과 생산성 향상을 내세운 노동강도 강화는 불을 보듯 뻔하고, 각종 평가를 빌미로 교원노동자 사이의 경쟁은 격화될 것이다. 그 귀착점은 다름 아닌 구조조정이다.
또한 외국학교에서 시작되는 교원자격 유연화는 필연적으로 국내학교로 확대된다. 지금도 법정교원을 확보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 교원으로 대신하는 실정인데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이철호 2006)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주식회사인 병원은 ‘환자의 건강’이 아닌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된다. 이윤을 늘리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릴 게 뻔하다. 나아가 현재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병원의 줄도산, 그에 따른 대량실업을 피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간호사의 대미진출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이나 고용의 질에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한편 건설업의 경우 현재 줄줄이 매각이 예정된 대우건설(업계2위), 현대건설(업계1위), 쌍용건설 등에 대해 미국계 자본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지만 만약 이들의 인수가 현실화될 경우 과거 건설회사 M&A 사례에서도 나타났듯 구조조정 메카니즘이 작동된다고 봐야 한다.
한미FTA에서 또 하나 관심사는 건설부문 정부조달이다. 미국측은 이와 관련 건설공급계약에서 미국기업이 입찰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USTR, 대의회 서한) 이 경우 이행의무 부과금지 조항을 들어 하도급 보호장치 등의 철폐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자본력을 지렛대로 한 저가수주 공세를 통해 건설현장 투입인력이 감소되는 효과를 부르게 될 전망이다.
미국측의 요구가 관철돼 미국 유력업체가 국내공사에 참여할 경우 중소 건설업체와 설계, 엔지니어링 업체는 몰락하거나 미국 업체의 하청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강호연 2006)
이 경우 현장 기능직에는 직접적 영향이 적을 것으로 보이나 전반적 구조변화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설계, 엔지니어링 등 기술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의 건설노동자는 공사별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노동조건이 크게 악화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3) 금융부문

금융서비스의 경우 OECD 가입과 IMF협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개방된 상태다. 그 결과 한국 금융산업은 사실상 외국자본의 지배를 받는 처지가 됐다. 은행권의 경우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지주를 포함해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웃돌고 있다. 한미FTA는 여기에 더해 아직 개방되지 않은 예금과 보험상품의 국경간 공급(Cross-border supply)을 허용하고, 신금융상품을 포함해 금융투자상품 허용범위를 현재의 열거주의(포지티브)에서 포괄주의(네거티브)로 전환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비록 협정문 초안에서 ‘국경간 거래는 열거주의 개방방식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이 협상과정에서 관철될 지는 미지수다. 반면에 재경부는 지난 2월 이미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 입법추진 계획을 밝혔고, 보험산업 규제개혁도 추진할 것으로 보여 이미 사전정지작업에 나섰다는 분석이다.(사무금융연맹 2006a,b) 
문제는 BIT 2004에 입각해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정부는 투기자본을 규제하거나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미FTA 금융부문 협상에서 시장‘개방’보다는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완화․철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무역대표부(2006년 무역장벽보고서)는 ①보험과 은행시장에서 우체국 특혜 폐지 ②우리은행과 한국산업은행 민영화 ③외국계 금융기관 지점 본점자본금 사용 허용 ④외국계 금융기관의 신상품, 신금융서비스 도입 사전승인 폐지 ⑤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외환거래나 파생상품거래 제약 폐지 ⑥학교, 고기 도매업, 정부소유기업, 미디어(정보통신, 케이블 및 위성방송 등)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 폐지 ⑦노동시장 문제 해결 및 노사분쟁 축소, 규제 투명성 강화 등 ⑧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서비스 민영화 등을 제기하고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2005년 정책보고서)도 ①더욱 개방화된 겸업주의 금융시스템으로 전환(은행, 증권, 보험 부문간 장벽 축소, 제거) ②금융시장내 공정한 경쟁과 기회 보장(우체국, 농협, 축협, 수협 등 준 국영금융기관에 민간기업과 같은 대우) ③열거주의 규제에서 포괄주의 규제한경으로 전환 ④더욱 개방적인 글로벌 영업기준으로 전환(지침, 관행의 형태의 금융감독원 통제 제거) ⑤금융부문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⑥세제 단순화․예측가능성 증대(세율․과표 축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미FTA를 통해 이같은 요구가 관철돼 투자상품이나 펀드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면 국내 금융투자회사가 외국 거대금융자본과 경쟁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초국적자본의 M&A,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덩치를 키우기 위한 국내자본 간의 M&A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특히 국내자본이 은행 민영화에 참여할 여력은 없는 실정이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월가의 사모펀드들은 군침을 흘리고 있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은행 장악은 필연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당기순이익을 크게 웃도는 고액배당, ‘무상증자->유상감자’ 방식의 강탈에 가까운 투자금 회수와 이윤확보로 이어질 게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비정상적 구조조정(대량감원), 건전한 노사관계․기업문화 파괴(노조탄압, 임단협 무시), 비정규직 양산, 극단적 연봉제 도입 등도 예상된다.(이종탁 등 2006)
이같은 우려는 뉴브리지(제일은행), 칼라일(한미은행), BIH(브릿지증권), 론스타(외환은행)등이 저지른 사상초유의 자본금 ‘약탈’로 뒷받침된다. 단기간에 이루어진 이들의 탐욕스런 투자금 회수, 차익 실현으로 해당 금융기관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 됐다. 이 와중에 구조조정 명목으로 8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줄어든 브릿지증권을 비롯해 금융노동자들이 대거 감원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미FTA는 이같은 구조조정의 광풍을 금융권에 재현시킬 것이다. 최악의 경우 증권노동자 3분의 2이상이 퇴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이정환 2006)
한편 새로 도입될 판매권유자(가정방문 금융상품 영업사원) 제도는 보험설계사의 경우처럼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할 것이고, 이는 다시 구조조정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4) 통신 미디어

스크린쿼터 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 무역대표부와 업계는 방송법에 규정된 외국산 방송프로그램 편성쿼터 완화와 방송사 소유금지 및 지분제한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관철될 경우 방송은 시청률 무한경쟁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상업화로 치달을 게 분명하다. 이는 사회여론과 문화의 다양성을 심각히 훼손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한다.
한미FTA가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부문 노동자, 제작자들에게는 미칠 파장이 그것이다. 미디어의 공적 기능은 이윤추구 논리에 짓눌리고, 이들은 무한경쟁의 희생양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노동강도가 크게 강화됨은 물론 경쟁에서 밀린 부문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일상화돼 실업으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같은 노동자의 위기는 공공성의 위기로, 급기야 민주적 사회체제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통신부문도 한미FTA의 습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와 업계는 기간통신사업 외국인 소유지분 49% 제한 폐지, 기술표준 민간사업자 자유선택, 지배사업자 의무 축소 등을 강력히 압박하고 있다. 국내 보수언론도 여기에 편승해 겸업금지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정보통신부가 방송과 통신의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폐지다. 현재 기간통신사업체(유무선, 전용회선, 초고속 인터넷 사업에서 망을 보유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업체)의 경우 외국인 주식 보유한도를 49%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나라도 마찬가진데 통신사업의 중요성, 서비스의 공공성, 국가안보 등 때문이다. 미국 또한 유선사업자는 개방돼 있지만 20% 이상을 외국이 보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한미FTA 협상에서 통신사업이 개방 유보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으면 ‘내국민대우’ 조항에 따라 지분제한은 철폐돼야 한다. 이는 미국 거대자본의 M&A에 길을 닦아주는 것이고, 산업발전과 고용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관련 내용은 IT연맹 정책실의 연구에 기초한 것이다.
 
실제 KT의 경우 민영화 이전에는 설비비 투자가 매출 대비 34.1%였으나 민영화 이후(외국인 지분 49%)에는 15.3%에 불과하다. 반면 여기서도 주주자본주의 원리가 작동해 단기수익 위주 경영으로 치달아 엄청난 고배당과 함께 인력구조조정이 단행돼 민영화 이후 2003년까지 무려 1만7천여명이 내쫓겼다. 하나로 텔레콤 역시 2003년 뉴브리지 자본이 경영권을 확보한 후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감자를 통해 분사나 M&A설을 유포하는 등의 경영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49% 지분한도가 유지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분한도가 폐지될 경우 그 폐해는 상상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뉴질랜드  텔레콤의 경우 1990년 민영화 이후 미국의 Ameritech, Bell Atlantic(현재 Verizon)이 대주주가 되었는데, 당시 1만5천여명이던 정규직 노동자는 10년 뒤인 2000년엔 2천명으로 줄었고, 회사는 투자를 회피해 교환기마저 임대해 쓰는 형편이다. 나아가 오지나 낙도 주민들에게 비싼 설치비와 요금을 부과하는 등 서비스의 보편성, 공공성이 무너졌다. Verizon사는 결국 회사가 고사 위기에 처하자 주식을 매각하고 자본을 철수하고 말았다.

(5) 민간서비스

금융과 공공부문 이외에 흔히 ‘민간서비스’로 불리는 분야(산업대분류로는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는 종사자가 600만을 헤아리지만 한미FTA의 파급력과 관련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분야는 이미 완전 개방된 상태고, 미국 자본의 대한국 전체투자액(1962~2004년 누적) 가운데 23.3%(도소매18%, 음식숙박5.3%)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서비스업 가운데서도 금융 및 보험업(14.2%)보다 높은 수준이다. 산업자원부. 미국의 산업별 대한 투자동향(1962~2004년 누적치)
 더욱이 아래 표에서 나타나듯 이 분야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1/4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기 가스 수도             건설업     도소매 음식숙박업        운수 창고 통신업     금융 보험 부동산업      기타 서비스업
한국       100                          100                    100                                  100                               100                              100
미국       89.1                         147.9                 371.3                               186.5                           176.9                           167.3
[표6] 서비스 분야별 노동생산성 비교(2000년, 구매력평가 기준)[OECD, 한국생산성본부]
주: KIEP 등(2006.5)에서 재인용

한미FTA 추진론자들은 이를 근거로 ‘한미FTA를 국내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1996년 유통시장 전면개방 이후 국내 유통업체들이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의 유력업체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고, 더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KIEP 등 2006.5)
그러나 최근 한국시장을 철수하거나 철수를 결정한 이들 두 대형할인점 사례에 ‘경쟁력 강화’ 논리를 들이대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내외 언론은 이들의 ‘실패’를 ‘현지 부적응’이나 ‘한국재벌의 시장지배력’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 1, 2위를 자랑하는 초국적 유통자본이 처음부터 한국시장에서 맥을 못 췄다는 것인데 이를 ‘국내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억지논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들 초국적 유통자본의 국내투자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월마트의 경우 세계 1위 업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악명을 떨치고 있다. 동종업체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저임금, 수당 없는 시간외근무 강요, 열악한 기업복지, 성차별 등이 그것이다. 특히 월마트의 ‘무노조 원칙’은 유명하다. 월마트는 나아가 거래업체에 턱없이 납품단가 인하를 종용해 연쇄적으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거나 문을 닫게 만들기도 한다.(이정환 2006) 열악한 노동조건, 강압적 노무관리라면 까르푸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노동자 감시 등 비인간적 대우, 7년 동안이나 노조 불인정 등은 월마트와 닮은꼴이다.
단지 이들의 투자가 고용창출에 기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같은 폐해에 눈을 감아도 되는가. 국내기업에도 적용되는 것이지만 대형할인점의 고용효과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대형할인점이 들어설 경우 해당 상권의 중소유통업체나 재래상인, 영세소매업자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최악의 경우 실직으로 내몰리게 된다. 고용창출의 이면은 바로 대량실업인 셈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대형할인점 설립이나 영업 규제 등의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된다.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 ‘간접적 수용’으로 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형할인점이 늘리는 일자리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사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할인점 또한 고용, 노동조건, 노사관계에서 사정이 엇비슷한 실정이다. 물론 이 모든 책임을 민간서비스 시장개방에 돌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유주의 확산을 촉진한 중요한 계기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미FTA는 이같은 추세를 더욱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6. 맺음말

한미FTA는 ‘세계화시대 개방 불가피론’, ‘미국시장 선점론’에서 시작해 ‘외부충격 효과에 의한 경쟁력강화론’,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론’에 이르기까지 추진력을 키워왔다. 이에 대해 강력한 비판론이 제기되면서 분야별, 나아가 전반적인 득실을 따지는 치열한 논쟁국면으로 진입한 상태다. 애초 장밋빛으로 칠해졌던 한미FTA의 미래상은 논란이 이어질수록 조금씩 본색이 드러나고 있는 양상이다.
관심의 초점은 추진론자들이 계량연구를 통해 추산해낸 ‘낙관적’ 손익계산서에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들이 도출해낸 ‘검은색’ 숫자는 숱한 가정이 전제돼 있고, 게다가 적잖이 비현실적이어서 지금으로선 입증이 불가능한 가설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미FTA는 각 분야별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계산해서 진퇴를 결정할 문제인가.
물론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실이 되더라도 추진할 일이 있고, 득이 크더라도 추진해선 안 될 일이 있는 법이다. 요는 서두에서 밝혔듯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미FTA인가’를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명분은 패배주의(불가피론), 조바심(선점론), 도박(외부충격 효과론), 망상(동북아론)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을 수 없다. 이는 한미FTA가 호혜적 경제협력이나 다수 국민의 복리증진 등을 지향하는 진보적 구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살벌한 논리가 난무한다. 그러나 진정한 경제발전이라면 노동자를 비롯한 다수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 맞춰져야 한다.
정부의 예상처럼 관세철폐, 비관세장벽 완화로 일부 산업분야의 교역조건이 개선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그렇다고 노동자의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기업의 채산성이 호전돼 지불능력이 커졌다 해서 곧장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교역조건이 개선되는 산업분야의 경우 고용증대 여지도 커지는 반면 피해를 보는 분야의 경우 고용사정이 나빠져 전체적으로는 고용환경이 개선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미FTA는 무역뿐만 아니라 금융과 투자 등을 포괄하는 사실상의 경제통합협정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미칠 파급력 또한 총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고용환경, 노동조건과 노동자생활, 노사관계로 나눠 살펴봤다. 그 결과 고용환경에서는 주주자본주의 확산에 따른 구조조정 일상화, 외국인투자의 고용감소 효과, 노동시장 유연화 확산 등으로 IMF 위기 당시를 뛰어넘는 고용대란 우려가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조건의 경우 대량실업에 따른 산업예비군 증가, 노동의 협상력 저하, 사회복지 축소에 따른 소득감소 효과 등으로 삶의 질이 크게 위협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관계에서도 엄격한 ‘경영권’ 보호를 특징으로 하는 미국식 노사관계 법제의 이식, 단체행동권의 제약 등으로 노사간의 역관계가 더욱 자본쪽으로 기울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거센 반대 속에 강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개악입법과 노동기본권을 송두리째 박탈할 것으로 우려되는 노사관계 로드맵이 한미FTA와 ‘한통속’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이렇듯 한미FTA로 한국 노동자․민중의 삶이 파괴된다면 그 반대급부는 미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다. 10여년 NAFTA 체제의 경험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 시민단체 Public Citizen‘북미자유무역협정 10년 시리즈-북미자유무역협정 10년의 기록(The Ten Year Track Record of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진보평론> 23, 25호에서 재인용. NAFTA와 관련한 이후의 서술은 주로 이 글에 근거한 것임.
 
미국에서는 NAFTA 10년 동안 30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제조업 부분의 6분의 1―가 사라졌다. 고임금에 연금을 지급받던 제조업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임금이 23~77% 적은 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연금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다. NAFTA는 미국인의 75%를 차지하는 대학졸업 미만의 인구가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에 변화를 줌으로써 수백만 미국 가계의 경제적 안정을 파괴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는 2000년까지 NAFTA로 인해 미국에서 이미 766,000개의 일자리와 고용기회(NAFTA의 공장 이전 인센티브가 없었다면 존재했을 일자리)가 상실되었다고 분석했다.
고용뿐만이 아니라 노동조건과 노동기본권도 크게 악화됐다. 1946년에서 73년까지, 중간임금은 80%가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활동의 몫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년 전보다 두 배 증가했음에도 1973년에서 2000년도까지 미국의 중간 임금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 배경에도 NAFTA가 자리하고 있다.
NAFTA 발효 이후 생산시설을 멕시코로 이전하기가 쉬워지면서,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및 연금 인상요구에 대해 생산시설 이전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노동자들이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할 때는 그러했다. 코넬 대학교의 연구에서 400개의 노동조합 인정 캠페인을 조사했는데, 이동가능한 산업(제조업, 통신업, 도매/유통 등)에서 공장이전 협박은 68%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장폐쇄 협박이 있었던 곳에서 18%의 고용주들은 만약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면 다른 국가, 특히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직접적으로 협박했다. 이 연구에서는 NAFTA이전에 비해서 NAFTA가 효력을 발휘한 이후에 공장 이전협박이 증가했고, 이런 협박이 없었던 캠페인(51%)에 비해 폐쇄 협박이 사용된 캠페인에서 노동조합의 성공 비율(31%)은 낮았다.
농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5~2002년 미국에서는 38,310개의 농가가 사라졌고, 정부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미국 농민들은 힘든 삶을 꾸려야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00~2005년 76%의 농가는 가계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NAFTA가 잘 알려진 대로 멕시코 경제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미국 노동자와 농민 또한 그에 필적하는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재앙’의 맞은편에서 반대급부를 챙기는 부류가 없을 수 없다. 소규모 농민들이 땅에서 손을 떼는 대신 소수의 거대기업농이 세계적으로 사상최대의 시장점유율을 장악했다. Cargill, ADM, ZenNoh 3개 기업이 미국 옥수수의 80% 이상을 수출했다.(이는 1990년보다 9% 올라간 것이다). 4위권 안에 드는 닭 관련 기업이 미국 가공생산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Tyson Foods는 육류포장업체인 IBP와 합병해서 소, 돼지, 닭 생산관련 세계 최대기업이 되었다. 또한 무역자유화로 대학학위가 없는 미국 노동자들이 12.2%에 해당하는 임금손실을 입은 사이에 미국기업의 이윤은 1990년대에만 88% 상승했고, CEO의 보수는 463% 상승했다.
이러한 NAFTA의 10년 결산서는 한미FTA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미FTA는 한미 양국 노동자 농민을 희생양으로 미국계 초국적자본과 (이미 초국적자본의 반열에 들어선)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게 될 것이다.
‘누구를 위한 한미FTA인가’라는 물음의 답은 이렇듯 다수국민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정부와 한미FTA 추진론자들은 매우 기술적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산업, 분야별 득실을 따지는데 몰두하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타격을 입는 분야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익이니 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반대투쟁은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친다. 내부분열은 대미 협상력을 떨어뜨려 전체 국익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이다.(한미FTA 바로알기 2006) 이거야말로 적반하장이자 진실왜곡이다. 진실은 노무현 정권과 추진론자들이야말로 다수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극소수 내외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계급이기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정작 내부 분열을 부추기는 세력 또한 이들이다. 이들은 “피해가 예상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득이니 보조를 맞춰 반대세력을 제압하자!”고 속삭인다. 만약 노동자 민중이 이들의 선동에 장단을 맞춰 산업, 부문별 득실을 따져 행보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재앙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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