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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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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경 [solbada] 쪽지 캡슐

2000-08-19 ㅣ No.1065

하나

밤새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날이 밝아올 무렵 비소리를 들었습니다.

열려진 창을 통해 들려오는 비소리.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 소리에 행복했지요.

잠이 들진 않았지만 그 행복을 깨기 싫어 계속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들어와 "잠꾸러기 언니야" 하여 일어나보니 오전 한가운데 있더군요.

그렇게 늦게 일어나 십자고상의 예수님께 아침 인사를 드리자니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비 덕분에 몸과 마음에 물기가 촉촉합니다.

 

두울

오늘 독서 말씀중에 기억이 남는 구절

"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사람이 죽는 것은 나의 마음에 언짢다.

주 하느님이 하는 말이다. 살려느냐? 마음을 고쳐라."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라는 하느님 말씀이 깊이 와 닿습니다.

 

세엣

오늘의 복음은 어린이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 하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는 순수하지요, 솔직하고요.

어느땐 그 마음이 되는 듯 하다가도 뒤 돌면 어김없이 재고 따지는 죄 많은 인간이 됩니다.

복음 후 묵상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계명을 잘 지켜서 선행과 공덕을 쌓아서 벌어들이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중략)  믿음의 차원에서는 언제나 은총이 공덕보다 앞서고

은혜가 선행보다 앞서는 법입니다. ’

 

부끄럽습니다.  성당에 다니면서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고 한 걸음 나아갈때마다

제 마음 속 한구석을 자리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을 조심하지만 때론 바리사이가 되어 있는 저를 봅니다.

 

 

네엣

비가 더 오기를 기다리며 오후에 산에 올랐습니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는 길인데 생각만큼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비 내리는 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시원한 바람만 불고 있었습니다.

마음에도 바람이 붑니다.  ’살랑~ 사각 사각~~ 쒸ㄱ 쒸 ㄱ~~~’

어린아이에 대한 복음을 읽은 때문인지 하느님께 떼를 썼습니다.

아니 앙탈을 부렸습니다.  

 

한적한 산길을 홀로 걸으며 에덴 동산을 걷고 있던 아담과 하와가 떠올랐습니다.

관악산이 에덴 동산은 아니지만 그런 착각이 들었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반항하는 아이처럼

’ 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알고 계시쟎아요. 제가 어디 있는지

지금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 마음이 어떤지 알고 계시쟎아요.

 제가 아직도 주님 보시기에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거 아직도 쉽게 빠지고 판단하고 단정짓고 후회하고 그러는거 다 알고 계시쟎아요. ’

 

마구 앙탈을 부렸습니다. 그저 부드러운 바람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한 번 견뎌보아라. 이겨보아라. 내가 네 옆에 있다.

제 옆에 계셨습니다.  제 옆에...

 

다섯

작년 9월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으니까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근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주님을 알게 되어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슬픔도 기쁨도...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인생길의 동반자가 되어주시니까요...

바람이 붑니다. 가을 바람이...

더위에 축 늘어졌던 몸과 마음... 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항상 제 안에 계신 주님께... 잘 모시겠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그러지 못해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주님께 저는 또 바라기만 합니다.

제 마음을 당신의 평화와 위안으로 세워주소서.  굳게 잡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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