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5동성당 게시판

[장례미사] 은퇴한 신부님의

인쇄

최두호 [Armoo] 쪽지 캡슐

2004-01-26 ㅣ No.2739

 2004년 1월 26일 월요일 오전 10시

 우연히 은퇴한 김정진 바오로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구할 것이 있어 명동에 나갔다가,  명동 성당 근처에서 추위를 면하려

 1,000원에 4개짜리 황금 붕어빵을 사서 입속에 하나 넣고 발길을 돌려

 성당 앞 뜰로 들어서니 지하 소성당 근처에 하얀 제의를 입은

 수십명의 신부님들이 장례미사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었고

 봉사자들이 선종하신 신부님의 약력이 담긴 상본을 나눠주고 있었다.

 

 명동 대성당은 큰 성전이긴 하지만

 내부는 길다랗게 3렬 종대를 이루고 있어 중앙 좌석은 괜찮지만,

 좌 우 좌석은 커다란 기둥들이 가리고 있어 제대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좌 우 기둥에 대형 칼러 모니터를 여러대 설치하여

 양쪽에서도 제대를 볼 수 있게 했다.

 

 중앙 약간 뒤쪽 좌석에서 주위를 둘러 보니 멀리 제대가 보이고,

 좌 우 좌석은 약간 비어 있었으나  선종한 신부님이 은퇴전에 계셨던

 여러 본당에서 여러 대의 버스를 타고 온 신자들과

 100 명이 넘어 보이는 수녀님들로 대성당 좌석의 3분의 2는 차 있었다.

 

 10시 정각 시작성가 521번 ’고통도 없으리라’ 와 함께

 십자가를 앞세운 흰색 제의의 100 여명의 신부님들과  주교님들

(나중에 보니 주교 모자를 쓰신 분이 여섯 분 - 다른 교구에서도 오신 듯),

 교구장님이신 정진석(니꼴라오) 대주교님과

 빨간 모자를 쓰신 추기경님의 뒤로

 영정과  젊은 신부님들의 운구 행렬이 이어졌다.  

 

  관이 제대 앞에 놓이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는 인사를 하지 않고

  바로 ’기도합시다’가 이어졌다.

  필시 지하 소성당에서 출관 예식이 있었을 것이다.

 

  정 교구장님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선종한 신부님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었다.

 

  김정진 바오로 신부님은

  1922년 3월 11일 황해도 출신으로 사제가 된 후로

  신부님=소신학교 라는 동의어가 성립할 정도로

  16년간 소신학교에서 후배 신부양성에 힘썼으며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라틴어로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는 사무엘의 말로

  면학 분위기를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또한 60 여권에 달하는 많은 책을 펴내 후학에게 큰 도움을 주었는데

  60 여권은 개인 한 사람이 펴 내기에는 대단한 분량이라고 한다.   

 

  또 선종 1개월전에 교구장님에게 보낸

 "병상에서 다시 일어 날 수 없을 것 같으니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실 것을 간청" 하는

  인간적인 편지를 들을 때

  옆 자리의 자매님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사무처장 최창화 몬시뇰의 약력 소개와

  가깝게 지내던 추기경님의 말씀이 이어졌는데

  역시 인간적인 면이 소개되었다.

  오랬동안 질병으로 받아 온 육체적인 고통으로

 ’자해’ 충동이 일어 주위에서 간호하는 분에게

 ’날카롭거나 위험한 물건’ 을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 달라고 했다고

 

 -추기경님은 소화 테레사 성녀도 비슷한 충동을

  이겨 냈으며(그런 일이 있었나? )  

  예수님조차 아버지께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면하게 해달라’ 고 하셨으며,

  또 피땀을 흘리시며 고통 속에 기도하셨다며 위로했다고.

 

  추기경님은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로 말씀을 마쳤는데

 "주님 (     )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에서

 ’그’ 를 ’저’에게 비추소서 로

  바꿔서 기도해 새롭게 들렸다.

      

  고별식이 끝난 뒤,

  십자가와 영정을 앞세우고 운구 행렬이 나갔다.

 

 "십자가가 나서면 신부님이 따라 나서는데

  왜 주교님들은 제대에서 꼼짝 않고 바라만 보고 계실까?"  

-’큰 십자가나 작은 십자 고상이나

  거관 행렬시 앞서는 거라고 한다.

  신부님이 따라 가시든 아니든...’

 

  그 뒤를 잇는 안내 방송이 우습다.

-’차량번호 서울  (       ) 번 차량은 속히 빼 주십시오,

  운구 차량이 막혀서 움직일 수 없답니다.’

- 에구!

 

 

  "사제 김 바오로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어떤 분에게 물었다.

  "신부님들은 돌아 가셔도 걱정할 것 없네요.

   저렇게 많은

   신자들 신부님들 수녀님들의 애도 속에 장례를 치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에요.

   은퇴한 지 오래되는 분은 오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래도 교구장님이 직접 장례미사를 집전하시잖아요"

  -’그게 보통이지만

    교구장님이 안 계실 땐 다른 분이 대신 집전하기도 해요’

 

   "제대 위의 초가 3대가 켜 있군요.

    제대 위에 부활 초도 켜 있고"

 - ’장례미사는 대축일 미사와 동급이니 초를 3대 켜요,

    또 부활시기가 아니어도

    장례미사는 부활을 상징하는 부활초를 켭니다.’

 

   "신부님 장례미사라 초를 3대 켜지 않았나요?

    평신도 장례는 2대이고?"

 - ’아닙니다. 사제나 평신도 모두 3대 켭니다’

 

   "어떤 본당은 장례미사에서 초를 2대만 켜고,

    부활 초도 켜지 않아요"

  -’초를 3대까지 켤 수 있다는 것이지,

    그걸 따져서 불화를 일으키는 것은

    오히려 전례정신에 맞지 않아요.

    부활초도 마찬가지죠’

 

   "성직자나 수도자는 모두 입관시 평화로운 얼굴이에요"

  -’선종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신앙생활과는 관계없이

    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가리지 않고,

    임종시 몸을 뒤틀고 일그러진 얼굴로 고통속에 가시는

    분도 있지요. 그럴 경우 옆에서 얼굴을 화사하게

    매만져 주고(Make up) 몸도 반듯하게 펴 드려야 해요.’

 

   "허리, 팔 다리가 굽은 분도 임종후 펴 드릴 수 있나요?"

  -’네, 그런 분도 수시를 하면서 천천히 부드럽게 주물러

    펴드릴 수 있습니다. 임종후 너무 오래되면 굳어서 안되지만,

    무리하게 힘을 주어 관절을 꺽거나,

    너무 서둘러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주무르다 유족에게

    야단맞지 않도록, 상황을 잘 파악하여 상주나 유족의 동의를

    얻어 조심스럽게 도와 드려야 합니다.

 

 



17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