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터

First choice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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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국 [skpaul] 쪽지 캡슐

2003-01-06 ㅣ No.216

나는 정말이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성적도 우수했고, 담임 선생님도 적극 추천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병원비 빚더미를 짊어진 채

깡시장 한 켠에 생선장수로 나앉으신 어머니의 처지로

나를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동생들 공부시킬 일만 해도 힘겨운 노릇인데...

 

"3학년이 되면 취업반으로 옮겨 줬으면 좋겠구나"

엄마의 간절한 부탁에 나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진학반에 남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 몰래 대학 예비고사를 치르기에 이르렀다.

 

"시험 잘 봐라. 엿 딱 붙여놓고 엄마가 빌마"

교문앞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오전 시험이 끝나고 점심시간.

남들은 엄마가 싸 준 고운 도시락을 꺼내 놓는데

나는 도시락은 커녕 빵 한 조각도 없이 운동장에 나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는 부모가 왜 그리 한스러운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게 안타까워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난데없이 교내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들리는 것이었다.

"박영애 학생, 지금 바로 교무실로 오세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교무실에 가니

"아까 학생 어머니가 도시락을 두고 가셨어"

 

생선 냄새가 나는 도시락,

뭉툭하게 둘둘 말아서 듬성듬성 썰어진 김밥,

혼자 운동장에 앉아 김밥을 먹는데 눈물이 더 흘러내렸다.

김밥 그릇 바닥에는 어머니의 쪽지가 있었다.

초등학생보다 더 못 쓴 글씨로.....

 

"시험 잘 봐라, 우리 딸 장하다.."

나는 그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일을 했다.

오후 시험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텅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니의 거친 손등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김밥을 싸면서 얼마나 우셨을까.

 

 그렇게 나는대학 입시를 치르지 않고 꿈을 접었다.

하지만 그때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생을 택한

첫 번째 선택이었으니까.

 

                    (낮은 울타리) 2002년 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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