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다윗의 인구조사의 인과(因果)들에 대하여 - 2사무엘 24,1-25; 1역대 21,1-30 [속죄일] [흑사병] [성전]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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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ㅣ No.150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2사무엘 24장1-10절,1역대기21장 1-8절말씀 

인구조사가 왜 하느님께 죄가되어 흑사병으로 7만명이 죽게 될정도가

되었는지 이해가  않되네요 제가 좀더 연구를 하고 질문을 올려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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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질문자가 언급한 2사무엘서 24,1-10짝수 해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2사무엘 24,2.9-17)에 그 일부가 포함되나, 그러나 질문자가 언급한 1역대 21,1-8은 주일 혹은 주간의 미사 중의 말씀 전례의 제1독서에서 전혀 읽히지 않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1-2. 그런데,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주일 혹은 주간의 미사 중의 말씀 전례의 제1독서로 발췌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는 2사무엘서 24,18-251역대기 21,18-30까지, 심지어 1역대기 22장까지 또한 함께 들여다 보아야, 예를 들어, 이어지는 제1-3항에서처럼, 좀 더 포괄적인 문맥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1-2: 아래의 제1-3항을 읽을 때에,
(i) "다윗의 교만"2사무엘서 24,4에서 "위압하였다(overruled)" 라는 표현으로부터 우리가 그리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고, 그리고

(ii) 하느님께서 예루살렘 지역에 흑사병을 멈추신 것은, 2사무엘서 24,14에서 자신이 범한 교만의 죄에 대한 벌로서 그가 선택하였던 "하느님의 자비(the mercy of God)" 때문이었는데,
(iii) 다윗이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윤리적으로(morally), 우리의 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는 이유가 오로지 "용서를 청하는 죄인들에게 기꺼이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 때문임을 그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온전하게 전적으로 받아들여 믿고 신뢰하였음을, 우리에게 또한 말해 주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3.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King David" 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04642b.htm

(발췌 시작)
At this point in the narrative of 2 Samuel we read that "there was a famine in the days of David for three years successively", in punishment for Saul's sin against the Gabaonites. At their request seven of Saul's race were delivered up to be crucified. It is not possible to fix the exact date of the famine. On other occasions David showed great compassion for the descendants of Saul, especially for Miphiboseth, the son of his friend Jonathan. After a brief mention of four expeditions against the Philistines, the sacred writer records a sin of pride on David's part in his resolution to take a census of the people. As a penance for this sin, he was allowed to choose either a famine, an unsuccessful war, or pestilence. David chose the third and in three days 70,000 died. When the angel was about to strike Jerusalem, God was moved to pity and stayed the pestilence. David was commanded to offer sacrifice at the threshing-floor of Areuna, the site of the future temple.

 

2사무엘서의 이야기에 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브온 사람(the Gabaonites)들에 반하는 사울(Saul)의 죄에 대한 벌로, "연이어 세 해 동안 기근이 들었다 " (2사무엘 21,1)를 읽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의하여 사울의 혈족(race)인 일곱 명은 나무에 매달려 죽는데(be crucified)까지 넘겨졌습니다. 이 기근의 정확한 연대를 확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른 경우들에 있어 다윗(David)은 사울의 후손들에 대하여, 특별히 자신의 친구인 요나탄(Jonathan)의 아들인 므피보셋(Miphiboseth)에 대하여, 커다란 동정을 보였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에 반하는 네 개의 원정(expeditions)들에 대한 간략한 언급 후에(2사무엘 21,15-22), 이 성스러운 저자는 [하느님의] 백성(the people)에 대한 인구 조사를 하겠다는 다윗의 결심에 있어 다윗의 측에 있는 교만의 죄(a sin of pride)를 기록합니다(2사무엘 24,1-9). 바로 이 죄에 대한 참회(penance)로서, 그는 한 개의 기근, 한 개의 성공할 수 없는 전쟁, 혹은 흑사병(pestilence), 이들 중의 한 개를 선택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2사무엘 24,10-14). 다윗은 세 번째를 선택하였고 그리고 사흘 안에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2사무엘 24,15). 천사가 예루살램을 치려고 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불쌍히 여김(pity, 연민)를 향하여 이동하게 되셨으며 그리하여 이 흑사병(the pestilence)을 멈추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Solomon)에 의하여 건축되고 봉헌될(1열왕 6,62-66)] 미래의 성전의 터/장소(site)인, 아라우나(Areuna)의 타작마당에서 희생 제물을 봉헌할 것이 명해졌습니다(2사무엘 24,18).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1-4. 따라서, 결국에 주신 질문 1은, 2사무엘 24,4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다윗의 교만의 죄"의 근거가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등가임(logicall equivalent)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이 글에서는 "다윗의 교만의 죄"의 근거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1-4
:
혹시 탈출기 30,12를 다윗이 직접 읽었거나 혹은 전해 들었을 것임을 이 죄의 근거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탈출기가 지금의 형태의 모세 오경이 최종적으로 편집되어 기록된 것이, 바빌론 유배 이후인, 기원전 5세기경으로 알려져 있고 그리고 탈출기 30,12의 본문 자체가, 이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2사무엘서 24장에 이미 기록되어 있던 바를 근거로 하여 편집자들에 의하여 편집되어 마련되었을 수도 있으므로 [주: 예를 들어, NAB의 사무엘서들의 입문은 사무엘서들의 최종 편집 연대가, 바빌론 유배 이전인, 기원전 7세기 후반일 것으로 추정함], 탈출기 30,12 본문을 다윗이 직접 읽었거나 혹은 전해들었을 것임을 "2사무엘서 24장에서의 다윗의 교만의 죄"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증명하여야 하는 바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경우에 해당할 수도 있기에, 설득력 그 자체에 있어,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1-5. 다음은 유다 백과사전에 주어진 "census" 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바로 위의 게시자 주 1-4에 언급된 바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 분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출처: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4171-census

(발췌 시작)
The numbering was again gone through six months later, according to the account of Num. xxvi.-xxvii., with exactly the same result. On these occasions, the numbering was done indirectly, half a shekel being given to the sanctuary by each person of the proper age, and then the half-shekels, and not the persons, were counted. This expedient, according to the critics, was resorted to by the writer of Numbers owing to the superstition which had arisen against a census through the experience in David's reign. After David had organized his kingdom he found it necessary, for military purposes, to know exactly how many men, of an age suitable for bearing arms, he could depend upon; and he determined to take a census (II Sam. xxiv.). Notwithstanding the remonstrances of Joab, David persisted in carrying out the numbering of the people. It appears to have been a laborious operation, as it took no less than nine months and twenty days to complete it.

 

민수기 26-27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구 조사(the numbering)는 이후에 여섯 달에 걸쳐 다시 진행되었는데, 정확하게 동일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들 경우들에 있어, 인구 조사는, 한 개의 반 세켈이 적정한 나이의 각 개인에 의하여 성소에 제공되었고, 그러고 나서, 개인들이 아니라, 이 반 세켈들이 계산됨으로써, 간접적으로 행하여졌습니다. 비평가들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방식은, 다윗의 통치 기간 경험을 통하여 인구 조사에 반대하여(against) 이미 발생하였던 미신(superstition) 때문에, 민수기의 저자에 의하여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국을 이미 조직한 후에, 군사적 목적들 때문에, 무장을 하기에 적합한 나이의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 그가 의지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리하여 그는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을 결심하였습니다(2사무엘 24장). 모압(Moab)의 간언(諫言, remonstrances)들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인구 조사를 수행하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persisted in). 이 조사는, 조사를 끝내기 위하여 아홉 달과 스무 날보다 결코 적지 않는 날들을 소모하였기에, 한 개의 힘드는 작업이었음이 분명합니다(app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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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바로 이 부분에 대하여, "주석 성경"의 사무엘서 입문(제665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발췌 시작)
2사무 24장이 들려주는 인구 조사는 영토를 조직적으로 정비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가진 것이라곤 군대밖에 없던 사울 시대 이후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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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5:
(1) 바로 위의 발췌문은, 2사무엘 24장에서의 인구 조사 기록이 민수기의 최종 편집 시기 이전의 어느 시점에 이미 진행되었음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2)  민수기의 저자가 의존하였다는 바로 그 간접의 인구 조사 방식탈출기 30,12-16에 기록된 바로 그 방식을 말함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3) 그리고 바로 위의 발췌문에서, "미신(superstition)"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결국에 질문 1에 대한 답변은 바로 위의 발췌문에서 간단하게 "미신(superstition)"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바에 또한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의 발췌문에서 "미신(superstition)" 라고 불리는 바는 "그 당시 하느님의 백성의 심리/사고 방식(mentality)" 을 말한다는 생각입니다.

 

2.

2사무엘기 24장1역대기 21장으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2-1. 다윗은, 자신의 신하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인구 조사를 강행하였다.

2-2. 곧 이어 하느님의 백성에게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2-3. 그러나 흑사병이 발생하게 된 애초 원인(the first cause)은, 최종 편집/저술 연대들에 있어 상당한 간극(gap)이 있는, 2사무엘기 24,1(최종 편집/저술 연대: 바빌론 유배 이전에는 하느님께서 다윗을 부추겼다고 함) 본문과 1역대기 21,1(최종 편집/저술 연대: 바빌론 유배 이후에는 이 다윗을 부추겼다고 함) 본문에서, 대단히 상반되게 설명되고 있다.

 

3.

지금부터는 바로 위의 제2-3항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의 교부들과 주석자들의 주석들을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3-1.
3-1-1. 다음은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 주어진 2사무엘기 24,124,10에 대한 주석들입니다: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666.html 
(발췌 시작)

Ver. 1. Stirred up, &c. This stirring up, was not the doing of God, but of satan; as it is expressly declared, 1 Chronicles xxi. 1. (Challoner)
--- David was moved by vanity, &c., thus to displease God.
--- Among. Hebrew, "against;" as the king could have done nothing more prejudicial to his people, 70,000 of whom perished on this occasion, ver. 15. (Haydock)
--- We might also translate, "The anger of the Lord continued against Israel: for David, for their misfortune, was moved to say, Go," &c., as this would obviate the harshness of the expression. (Calmet)
--- However, as it is the same in the Septuagint, &c., and as similar words do not prove that God is the author of sin, we may explain this in the same sense, allowing that he suffered the evil to take place, knowing how to draw good out of it. (St. Augustine, &c.) (Haydock)
--- Some take this Satan to be an evil counsellor. (Calmet)
--- The devil may be styled "the fury of God?" as he is his creature, though rebellious. (Wort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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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10. David's heart struck him, after the people were numbered. That is, he was touched with a great remorse for the vanity and pride which had put him upon numbering the people. (Challoner)
--- His sin must have been internal, and probably involved a secret confidence in his riches and power, without referring all to God, (Haydock) or trusting entirely in him. (St. Ambrose, pœn. c. 9.; St. Augustine, contra Faust. xxii. 66., &c.)
--- There was otherwise no prohibition for David's taking this account, (Calmet) which is so natural for a prince, and may frequently prove of great service. (Haydock)
--- Josephus ([Antiquities?] vii. 13.) and others assert, that he neglected to require the payment of half a sicle. (Tirinus; Estius)
--- But where does God complain of this neglect? and how do they know that the injunction which was once given to Moses, when the tabernacle was to be furnished, (Exodus xxx. 12.) was to remain in force afterwards? Oleaster (on Exodus) says David acted against God's intention, who had promised that the Israelites should be innumerable. But this reason seems childish; and did not the king abstain, on that very account, from numbering any but those who were fit for war? (1 Paralipomenon xxvii. 23.) (Calmet)
--- Struck him. Contrition and confession are specified here, as satisfaction is, ver. 12. Temporal sufferings are inflicted, even after the sin has been remitted, ver. 16. (Worthington)

(이상, 발췌 끝)
 

3-1-2. 다음은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 주어진 1역대기 21,121,8에 대한 주석들입니다: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946.html 
(발췌 시작)

Ver. 1. Satan. This shews that the Lord only (Haydock) permitted David's sin, (2 Kings xxiv.; Worthington) and in this sense only he is said to have instigated him; (Du Hamel) though we read this was done by the fury of the Lord, or by an evil spirit. (Haydock)

 

Ver. 8. Iniquity. David was guilty, though he retained both faith and hope. (Worthington)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1; 위의 주석들을 읽어보면, 위의 제2-3항의 상반되는 본문들에 대하여 거의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며, 그리하여 질문 1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2.

3-2-1. 다음은 NAB에 주어진 2사무엘기 24,124,10에 대한 주석들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2samuel/2samuel24.htm

(발췌 시작)

[1-3] This story was probably joined at one time to 2 Sam 21:1-14.

 

[1-3] 이 이야기는 아마도 한 때 2사무엘기 21,1-4에 결합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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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e narrative supposes that since the people belonged to the Lord rather than to the king, only the Lord should know their exact number.

 

[10] 이 이야기는, 이 백성이 이 임금(즉, 다윗)에게 속하기 보다는 주님께 속하기에, 오로지 주님만이 마땅히 그들의 정확한 숫자를 아셔야만 하셨음을 가정하고 있다(supposes).(*)

 

(*) 번역자 주: 이 가정의 근거는, 하느님께서는, "질투(嫉妬)하는 하느님(an envious God)"이 아니라"시기(猜忌)하는 하느님(a jealous God)"이시기(탈출 20,5) 때문이다.

다음은 네이버국어사전과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질투 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다:
출처 1: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6217800
출처 2: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질투(嫉妬/嫉?)

명사
(1)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비슷한 말] 강샘ㆍ모질3ㆍ투기6.
(2)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3) <가톨릭> 칠죄종(七罪宗)의 하나.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일을 이른다.
(이상, 발췌 끝)

따라서, 성경 및 교리 용어로 사용되는 질투((嫉妬/嫉?) 는 일곱 개의 차용된 번역 용어들을 말하는 칠죄종(七罪宗) 중의 하나이므로, 하느님께 결코 사용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한 더 자세한 글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2. 다음은 NAB 에 주어진 1역대기 21,1에 대한 주석이며, 21,8에 대한 주석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1chronicles/1chronicles21.htm

[1] A satan: in the parallel passage of 2 Sam 24:1 the Lord's anger. The change in the term reflects the changed theological outlook of postexilic Israel, when evil could no longer be attributed directly to God. At an earlier period the Hebrew word satan ("adversary," or, especially in a court of law, "accuser"), when not used of men, designated an angel who accused men before God (Job 1:6-12; 2:1-7; Zechariah 3:1-2). Here, as in later Judaism (Wisdom 2:24) and in the New Testament, satan, or the "devil" (from the Greek translation of the word), designates an evil spirit who tempts men to wrongdoing.

 

[1] 사탄: 2사무엘 24,1의 병행 절에서 주님의 진노. 용어에 있어 이 변화는, 악(evil)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탓으로 돌려질 수 없었던 때인,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의 변화된 신학적 전망(outlook)을 반향한다(reflects). 더 초기의 시대에 히브리어 단어 사탄(satan)["적대자(adversary,", 혹은, 특별히 법정에서, "고발자(accuser)"]은, 사람들에 사용되지 않을 때에,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을 고발하는 한 명의 천사를 나타내었다(욥 1,6-12; 2,1-7; 즈카르야 3,1-2). 여기서, 이후의 유다주의(지혜 2,24)에서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 처럼, 사탄(satan) 혹은 (이 단어의 그리스어 번역으로부터인) "악마(devil)"는 나쁜 행위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어떤 악령(an evil spirit)을 나타낸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2: NAB의 주석들은, 위의 제2-3항의 상반되는 본문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답변을 하고 있으나, 그러나 여전히 질문 1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3.

3-3-1. 다음은 "주석 성경" 2사무엘 24,1-25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24장의 바탕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다윗 시대에 생겨난 전승이 자리 잡고 있다. 인구 조사 제도(인구 조사는 백성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주님께 불경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탈출 30,12 각주 참조), 예루살렘에 닥친 흑사병에 대한 기억,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세워진 제단(2역대 3,1에 따르면 이곳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다.) 등이 바로 그 전승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들을 수집한 저자는 인구 조사의 죄를 '복된 탓' 으로 만든다(사실 1절에 따르면 이 죄를 부추기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공동 선을 위한 속죄 예식의 제도가 이 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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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에즈라의 개혁 이후에 이스라엘의 축제력 안에 자리잡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주: 레위기 16장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참조], "속죄의 날(the Day of Atonement, Yom Kippur)"의 근거를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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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다음은  "주석 성경"1역대기 21장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다윗의 명령으로 실시된 이 인구 조사 이야기는 2사무 24,1-15의 본문을 재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편집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사료를 바탕으로 자기의 특별한 견해를 피력하려고 사무엘기를 상당 부분 변형시켰다. 그런데 다른 곳과는 달리 다윗에게 불리한 이 대목을 생략하지 않은 것은, 미래의 예루살렘 성전 터가 어떻게 선택되었는지를 밝히려는 의도에서였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3: "주석 성경"의 주석들도, 위의 제2-3항의 상반되는 본문들에 대하여 거의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며, 그리하여 질문 1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4. (질문 1에 대한 답변)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2월 5일]

4-2. 다음은, 오늘 2014년 2월 5일인 짝수 해 연중 제4주간 제1독서(2사무엘 24,2.9-17)에 대한 "매일 묵상"에 주어진 "오늘의 묵상" 전문입니다.

 

게시자 주: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1999년 이후 발행된 매일 미사 책자의 짝수 해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묵상글들 중에서 아래에 발췌된 올해의 묵상글이, 그 내용에 있어, 가장 좋은 내용의 묵상글이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묵상글을 마련해 주신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특히 위의 질문 1과 관련한 대단히 좋은 내용이기에 발췌하였습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missaid=5792&gomonth=2014-02-05

(발췌 시작)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조사를 시행하는데, 성경은 이것이 하느님께 죄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벌로 온 이스라엘에는 흑사병이 창궐합니다. 현대인들이야 당연히 ‘인구 조사가 무슨 죄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만 구약의 배경에서 이러한 행동은 사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를 세어 인구 조사를 실시할 때, 사람마다 자기 목숨 값으로 주님에게 속전을 바쳐야 한다.”(탈출 30,12) 하고 이르십니다. 이로써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오직 당신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그 당시의 인구 조사는 일차적으로 군사적 전략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백성을 군사 조직에 남김없이 편성하고 그렇게 조직된 군대를 자신의 힘과 소유라고 여기는 것이 그 시대 임금들의 기본적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시편에 “이들은 병거를, 저들은 기마를 믿지만, 우리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네.”(20〔19〕,8)라는 대목이 나오듯, 성경은 이렇게 사람의 힘과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주님을 잊는 불신앙의 표현이며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다윗은 인구 조사의 행위로 주님이 아닌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실천적인’ 불신앙의 죄를 저질렀다고 하겠습니다.
(*)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의 많은 사람이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보다는 정치적 수완을 통한 강성한 국가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기에 다윗도 이러한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다윗은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괴로워하며 사람이 아닌 주님의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깁니다. 그리고 고통 받는 백성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자신이 벌을 받기를 청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는 자비로 변합니다. 서양 속담 중에 “하느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다른 쪽 문은 열어 두신다.”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 중에 열어 놓으신 문을 보게 되는 이는, 자신의 나약함과 죄를 온전히 고백하며 오직 주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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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자 주:

(1) 다윗의 인구 조사가 하느님께 죄를 범하였음을 다윗 스스로 깨닫게 된 시점이 "사무엘서"에 해당 부분이 기록되기 이전의 다윗의 통치 시절이었기에, 따라서,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탈출기"의 최종 편집 연대 이전의 시점이었을 수도 있음에 우선적으로 주목하라. 

 

(2)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자손들과 계약을 맺으실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a "jealous" God 이라는 말씀과 함께 곧바로 이어, 바로 이러한 '실천적 불신앙'에 대한 처벌을 또한 말씀하셨기에, 탈출기 20,5에 바로 질문 1의 답변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며, 따라서, "envy(질투)" 라는 단어 대신에,  "jealousy(시기)" 라는 단어의 자구적 의미/어의(literal sense)를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할 때에 비로소 무슨 이유로 다윗의 인구 조사가 윤리적으로(morally) 하느님께 죄를 짓는 행위였음을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아래의 4-2항에 안내된 해설과 번역자 각주를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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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4-2.
다음의 주소에 있는, 
2사무엘 24,1-25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및 이어지는 번역자 각주를 차분히 정독하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4_wed.htm <----- 필독 권고

 

왜냐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이 해설이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다윗의 인구 조사"의 인과(因果)들을 대단히 잘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기에, 이 해설은 위의 제2-3항의 서로 모순되는 설명들을 극복하는 대단히 명쾌한 답변을 제시할 뿐만이 아니라, 그리하여 그 결과, 이어지는 번역자 각주가 질문 1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음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시자 주 4-1: 마태오 복음서 17,25; 22,17.19; 마르코 복음서 12,14에서 말하는 "세금" 은 영어로 "census tax" 로 번역되는 직접 조세를 말하는데, 다음은 마태오 복음서 22,17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세금" 에 대한 "주석 성경" 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로마 제국에 속한 각 지방에서는 (통행세, 관세, 그리고 그 밖의 어러저러한 수많은 세금 등) 간접세 외에도 직접 조세를 내야 했는데, 이는 모든 유다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늟은이들만 제외되었다. 유다인들은 이러한 세금을 내는 것을 자기들의 민족이 로마에 속되었음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표지로 여겼다.(*) 그래서 열혈당원들은 지지자들에게 세금 납부를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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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자 주: 유다인들이 수치스러운 표지로 여긴 이유는 위의 제4항에서 필독을 권고드리는 글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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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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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21시간 (자료 조사, 분석 및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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