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및 기사모음

왜 '베네딕토' 이름 택했나

인쇄

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5-04-21 ㅣ No.176

[중앙일보 2005-04-21 09:30]

 

[중앙일보 오병상] "이름을 무엇으로 정하시겠습니까?"

교황에 당선된 추기경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다. 그래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과 같이 유력한 후보는 미리 이름을 준비해 둔다. 교황청 발코니에 처음 서는 순간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포부를 천명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임자 요한 바오로 1세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요한 바오로 1세는 전임 바오로 6세와 전전임 요한 23세의 뜻을 함께 잇겠다는 의지다. 이런 관례에 따를 경우, 특히 라칭거 추기경의 위상이나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의 이름은 '요한 바오로 3세'가 맞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 생존 당시 실세였던 라칭거 추기경의 별명이기도 하다.


라칭거 추기경은 대신 '베네딕토'를 택했다. 교회사에 밝은 라칭거 추기경이 선택한 이름이다. 따라서 분명한 그의 통치 철학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라칭거 추기경은 평소 18세기 교황 베네딕토 14세를 가장 닮고 싶어했다.


베네딕토 14세는 계몽주의 시대를 맞아 이성의 이름으로 신앙이 위협받던 시대를 살았다. 박학다식했던 그는 가톨릭의 위기를 논리와 대화, 그리고 설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자신이 교황 자리에 오른 21세기를 또 다른 '가톨릭의 위기'로 간주한다. 종교 상대주의와 세속주의로부터의 위협이다.


40여 권의 저서를 펴낼 정도로 해박한 신학자인 라칭거 추기경은 이 위기를 논리와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베네딕토 14세도 당시 전례와 관련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 상당한 논란과 비판을 받았다. 베네딕토 16세 역시 그러한 험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름과 관련된 또 다른 이미지는 베네딕토 수도회를 만든 성인 베네딕토와 가장 최근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사용한 교황 베네딕토 15세다. 성인 베네딕토는 기도와 묵상, 노동과 금욕의 엄격한 규율을 가르쳤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재위한 베네딕토 15세는 반전과 평화론자로 널리 알려졌다. 이 역시 베네딕토 16세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다짐의 일부일 것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obsang@joongang.co.kr

- '나와 세상이 통하는 곳'ⓒ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4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