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1년 6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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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1-10-07 ㅣ No.146

Allocutio - June, 2011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로 우리는 우리 신앙의 중심인 이 신비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삼위일체란 우리에게 정신적인 양분을 제공하는 교리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내면적인 삶으로 우리는 그 삶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우리 가정을 이루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삶을 믿고 세례 받았습니다. 우리와 성부, 성자, 성령과의 관계는 우리가 일생에서 맺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실제로 삼위일체의 바로 그 삶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은총의 삶이란 간단히 말해 우리의 존재, 우리의 참된 영혼과 우리 삶에 펼쳐지는 모든 영역의 가장 깊은 중심에 내재하는 삼위일체의 삶입니다. 우리 신앙의 이 신비는 우리의 묵상 생활의 중심이며 핵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도직 생활을 북돋아주는 원천이자 목표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온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한 위대한 명령은 삼위일체의 삶을 믿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과 같습니다.(사도 1,4-8 참조) 사목과 선교를 수행하는 모든 사도직은 궁극적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의 삶과 하느님과의 친교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개종활동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에 관한 교본의 7장은 아마도 교본 내용 중 가장 심오하고 실제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우리의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는 거기에서 ‘성인들이 강조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의 신앙 안에서 성삼위는 구분되어져야 하며, 각위는 각기 맞갖은 존경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오 신경은 이 점에 대해서 강경하고도 위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근거를 창조와 강생의 궁극 목적이 성삼위의 영광이라는 사실에 두고 있다.’라고 서술하였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습관처럼 마리아에 의지함으로써 성삼위 각위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알아듣기 힘든 신비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한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 비추어 주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은총은 성모님께 간청하여 얻어낼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성삼위의 교리를 확실하게 계시받은 분이 바로 성모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계시는 마리아가 성령의 힘으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아룀(the Annunciation)'을 듣는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성삼위께서 대천사를 통하여 마리아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이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루가 1,35)  이 계시를 통해서 성삼위의 신비가 뚜렷이 밝혀졌다. 즉, 강생의 신비를 역사하신 성령, 강생하실 분의 아버지이신 지극히 높으신 성부 하느님, 그리고 '장차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루가 1,32) 성자 그리스도가 바로 이 신비의 실체이다. 성삼위의 각위와 각기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마리아의 특별한 위치를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성삼위의 각 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라고 썼습니다.

 

간단히 말해 주님께서는 삼위일체인 당신의 삶을 우리와 나누십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아빠 아버지’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은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항상 성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추구합니다. 복자 돔 마미온(Blessed Dom Marmion)이 자주 말했듯이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같이 총체적으로 성부 하느님께로(Ad Patrem) 향해야만 됩니다. 우리 삶의 가장 소소한 부분까지 관할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사랑의 섭리라는 영역 안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예수님께 대한 성부 하느님의 사랑과 관계, 성부 하느님께 대한 예수님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들은 우리 신앙의 경탄할만한 진실이며 실제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겪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 얼마나 절망적으로 삭막해지겠습니까?

 

그래서 당연히 우리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십자가의 표지와 함께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삼위일체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도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삼위일체 안에서의 우리의 삶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결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주님께 즐겨 기도하였듯이 “저의 주님이며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이며 저의 전부이십니다.” 당연히 우리의 신앙과 삶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입니다.

 

결정적으로 성부께서는 우리에게 성자를 보내주셨고, 그리고 성부께서는 성자와 함께 성령이라는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성전(I코린 6,19 참조)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삶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삶은 우리 구원의 결실이며 여기 지상에서도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교본은 마리아가 한 분이며 또 여러 분이신 삼위일체의 신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사셨는지를 더욱더 간결하고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본의 이 장(章)을 다시 반복하여 계속 읽음으로써 이득을 얻는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章)에 대해 내가 접했던 가장 멋진 논평은 가경자 에델 퀸의 삶과 글들입니다. 그녀의 시복 청원의 부청원자는 ‘에델 퀸: 삼위일체 안에서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에델 퀸의 글과 앞의 글의 결론에서 따온 매우 간단한 인용구로 여러분들에게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에델 퀸은 ‘삼위일체를 찬미하며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실현시키며 살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를 깨달으십시오. 우리 영혼 안에 계시는 삼위일체께 하루 종일 모든 찬미와 보속, 영광을 드리겠다고 예수님께 자주 기도하십시오.’, ‘내가 삼위일체가 머무르시는 하느님의 성전임을 깨달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를 찬미합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고난 중에 있거나 일상적인 업무 중이라도 우리 영혼 안의 삼위일체를 찬미하고 우리 안에 계속 머무르시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삼위일체를 찬미합시다. 마리아를 통하여(per Mariam) ... 하찮은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고 ... 예수님을 찬미하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며 ... 삼위일체가 영혼 안에 머무르게 하십시오.'라고 썼습니다.

 

안셀름 모이니한 신부(Fr. Anselm Moynihan : 에델 퀸 시복 청원 부청원자)는 ‘그 때에 에델 퀸에게 복되신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 삶의 실제적인 일과는 상관없는, 정말 신앙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그 교리는 최고로 현실적이고 생생하며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삶, 기도, 활동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 교리를 적용시키는 그녀의 방식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또 에델 퀸이 열심히 탐독한 복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Blessed Elizabeth of the Trinity)의 글을 인용하여 결론을 내립니다. ‘복되신 삼위일체는 ... 우리가 절대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의 거주지이고 우리의 집이며 하느님의 집입니다.’ 저는 만일 우리가 모든 레지오 단원의 근본적 목적인 진정 심도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진지하게 노력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영혼 안에 삼위일체가 내재한다는 굉장한 진실과 함께 하는 생활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덧붙이고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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