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성당 게시판

작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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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진 [x2040] 쪽지 캡슐

2002-03-15 ㅣ No.9556

저녁에 먹으려고 깻잎을 씻었다. 에궁. 그런데 깻잎이 왜 이렇게 많은거야?

게다가 한장한장 씻으려니 아! 시간이 갑자기 너무 느리게 흐르는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들녀석의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소리가 귓가에서 아련히 들리는것

같더니 갑자기 몇년전의 일이 생각났다.

 

결혼하고나서 얼마지나지 않았을때 나와 남편은 시골(남양주시 진접읍 중말)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말마다 뵈러갔다. 부모님이 어릴때 이혼하셔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남편을 키워주신 까닭이었다.

토요일 일을마치고 생신음식을 준비하러 시골에 갔더니 할머니께서 마늘을 까고 계셨다. 가져다먹으라고 마늘을 한접이나 주셨는데 난 귀찮아서 그냥 놔두고 빻은 마을을 사다먹고있을때였다. 할머니는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마늘을 까시면서 나보고는 손 버린다고 놔두라고하셨다.

그래도 명색이 손자며느리인데 어떻게 할머니 혼자 마늘을 까게하랴싶어 같이 마늘을 까고있었는데 그놈의 마늘이 까도까도 끝이 없었다.

손끝은 아리고 마늘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시원한 바람은 솔솔불고

그늘진 평상마루에서 마늘을 까는데 왜 그렇게 노곤한지...

할머니는 할머니 시집 갓 오셔서 일을 조근조근 이야기하시는데 할머니 말씀이 자장가처럼 들리고 어디선가 뻐꾸기가 뻐꾹뻐꾹 아련하게 울고...

시간이 멈춘것처럼....  나는 거의 버릇처럼 마늘을 까고 또 깟다.

 

은행에서 월말이라 정신없이 마감을 하고왔는데  시골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포근했다.

한편으론 먹으라고 일부러 씨알굵은 놈으로 마늘을 주시고는 그렇게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마늘을 까서 드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니까 뒷베란다에서 푹푹썩어서 냄새를 풍기던 마늘생각때문에 더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그때는 정말 귀한줄 모르고 그렇게 버렸다. 그냥 사다먹어도 되는데 일부러 싸주시는 할머니가 때로는 귀찮았다.

이제는 직장도 그만두고 내가 살림하니까 그때 그렇게 챙겨주시던 할머니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것같다. 그것도 땀흘려서 농사지은것으로 그렇게 챙겨주시던 할머니....

이제는 아흔을 바라보시는 나이로 힘드셔서 농사도 못지으시지만 그래도 뵈러가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시려고 애를 쓰신다.

 

결혼해서 근처에서 6년정도밖에 안 살았는데도 남양주가 꼭 고향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다 남양주라는 글씨가 눈에 띄어도 반갑다.

시골의 추억이 없는 나에게 시집가서 처음으로 느껴보던 시골의 향기...

 

주일에 제사라서 시골에 올라가는데 할머니 좋아하시는 군것질거리를 챙겨가야겠다. 친구들하고 드시게 양 많은걸로...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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