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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위에서 성명 발표하고 교구장은 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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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식 [senal] 쪽지 캡슐

2008-09-05 ㅣ No.8288

정평위에서 성명 발표하고 교구장은 딴전

 

그러나 명동에 거처하는 장상들은 서울대교구 정평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명서에 나타난 내용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6월 3일,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경제 성장보다 국민과의 소통, 도덕성 회복이 우선>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날 성명에서는 “모든 국가의 제도나 정책은 인간 존엄성과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공동선을 이루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전제 한 뒤에 “최근 이명박 정부는 물질만능주의와 성장 중심주의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잃어버린 채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정책을 쏟아내 왔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정권 초기의 인사파동부터 계속된 잘못된 정치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아왔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오히려 오만과 독선의 태도로 일관하여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운하 포기와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였다. 교구의 공식입장이 그러하다면 응당 대통령과 정부각료를 만나는 절호의 기회에 장상들은 교회의 입장을 전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정작 만나서 정치권력의 입에 발린 소리만 한다면 교회의 그 발언의 진정성을 도대체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명동성당이 고흐의 오두막 교회를 찾아왔던 브뤼셀 복음전도위원회 목사들처럼 가난한 대중을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명동성당 위에는 바리케이트같은 차단철책이 있으며, 성당 들머리에서조차 가련한 이들의 농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명동성당 역사에서 1970년대를 제외하고는 1987년 6월민주항쟁 때조차도 흔쾌히 성당을 사람들의 해방구로 내어준 적이 없었다. 시민들이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시위를 했지만, 성당측에선 사무장과 사목위원 등을 동원하여 수없이 훼방을 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곳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인 노력도 없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패를 붙이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다. 수배중인 노동자들이 공권력을 피해 머물 수 있는 곳은 이제 명동성당이 아니다. 우기고 들어와 봤자 싸늘한 눈빛아래 홀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억울한 사람마다 먼저 문턱 낮은 조계사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망각의 습관, 나자렛 예수가 누구였지?

 

키에르케고르 이야기 한번 더 하자면, 그는 예수께서 짓밟히고 가련한 자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믿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느 누구도 너희 생존에 대해 눈곱만큼도 관심 갖지 않는 너희 멸시받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아! 너희 병든 자, 절름발이, 귀머거리, 소경, 불구자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너희 나환자들아!” 키에르케고르는 만약 나자렛 사람 예수가 모든 실패한 사람들, 소외된 무리와 더불어 지금 여기에 나타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아마 메시아를 처형하지는 않을 지라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진지하게 취급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를 멸시하고 질책할 것이다. 그를 거부하고 험담하고 경멸하고 조롱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고위층 인사들은 도대체 예수가 교도권의 동의 없이 교회쇄신을 시도하는 게 정당한 지 따지며 몰아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가 한때 부랑자였고, 떠돌이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갈릴래아의 흙바람 속에서 선잠을 자던 예수, 숱한 세월을 목수의 망치질로 땀을 흘렸던 예수가 남루한 옷를 걸치고 어부들과 세리들과 창녀들의 벗이 되어 예루살렘에 나타났다가 법과 권력을 거머쥔 자들에 의해 도살당했다는 것을 애써 환상 속에서나마 잊으려 한다. 복음서의 말씀 한 획도 지워지지 않을 텐데, 같은 복음서를 읽으면서도 복음 말씀을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는다. 그들이 권력과 부자들에게 영혼을 저당잡혔기 때문일까? 예수는 청년으로 죽었지만, 교회는 이미 늙고 부유한 노신사가 되어 근력이 딸리는 까닭일까? 나중에 요한 23세 교황이 된 론깔리 추기경은 1962년 첫부임지인 베네치아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의 집을 찾아가고, 고아원과 학교와 병원을 방문했다. 발걸음을 멈추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노 젖는 뱃사공의 뚝심을 칭찬하고, 바구니를 이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아낙네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리고 추기경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동자 주거지인 마르게라와 메스트레논을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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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 교황

 

그들은 좀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고흐가 말했던가. “그들은 좀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론깔리 추기경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요즘 세상은 뭔가 질식할 듯한 공기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것을 정화하십시오.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으십시오.” 그분이 교황이 되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다. 그 결과가 <사목헌장>의 첫마디가 되어 울려나왔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물론 그 가련한 사람들을 빌미삼아 성공한 사례도 있다. 뉴라이트운동연합의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가 세운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두레 천막교회’다. 청계천에서 활빈교회를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자처하는 김목사는 현재 보수적 개신교의 수장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 대통령을 배출한 소망교회처럼 ‘천막교회’도 개성있는 명품교회가 될 모양이다. 천막교회 사무국장인 오천근 장로는 광야에서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며 “소박한 의미의 천막교회를 계획했는데, 본의 아니게 천막이 매끈해져 쑥스럽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올림픽 원형 경기장처럼 천막으로 지붕을 덮은 것은 사실이지만, 80억원을 들여 2,000여평의 지상 4층 건물에 3,000-5,000석 규모의 대성전을 지었다. 그가 부자들의 편에서 기를 쓰고 있는 이유를 알만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했던 마르크스의 말을 본의 아니게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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