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대림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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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2-12-09 ㅣ No.1056

대림 제2주일(나해. 2002. 12. 8)

                                              제1독서 : 이사 40, 1∼5. 9∼11

                                              제2독서 : 2베드 3, 8 ∼ 14

                                              복   음 : 마르 1, 1 ∼ 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면서 인권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초봄이 된 듯한 날씨 따뜻한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더 춥게 지냈던 시간입니다.  지난 한 주간 대통령 선거운동 보다도 더 뜨겁게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들이 있는데 바로 지난 6월에 미군 괘도 차량에 치어 죽은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는 행렬과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를 개정하자는 목소리에 '안된다'는 차가운 답변이었습니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인종차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게 인권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된다면 어떠한 짓이라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개정을 요구하는 SOFA규정에 대해 못한다고 말합니다.  괘도 차에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는 말로 해결하려고 하니 정말 한심하고 원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2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일흔세 살의 문애현 요한나 할머니 수녀님(29년 뉴욕출생. 53년 메리놀 수녀회 소속으로 한국에 옴)은 "주한미군은 한국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평화를 위해 왔다면서 오히려 평화를 파괴하고 있어요. 평화를 바란다면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런 모습이라면 주한미군은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같은 미국인이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서로가 평등하게 같은 지위에서 살자는 것인데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힘이 약한 나라는 없어져도 좋다는 듯이 자기들이 도와주고 있으니 자기들의 말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과잉반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했지 말입니다.  우리의 정부는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이것 역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인권을 유린하는 일을 우리도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들에게 온갖 일을 시키고 그리고 월급이나 모아놓은 돈을 빼앗고, 아프다고해도 치료는 해주지 않고 일을 하지 않아 손해라고 하여 때리고 착취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불법입국자라고 하여 노예처럼 부려먹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람의 권리를 어느 무엇도,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되새겨야합니다.  삐뚤어진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같은 피부색과 말을 사용하고 같은 나라사람에게만 인권이 적용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인권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인데 우리는 곧잘 이를 잊어버립니다.  끔찍한 범죄자나 남을 괴롭히길 밥먹듯 하는 사람의 인권은 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인권을 참 맘으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안에서 하느님을 봐야 합니다.  그가 악하면 그만큼 그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하느님을 봐야 합니다.  그게 누가 더 먼저냐 높으냐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보다 먼저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낮춥니다.  인간적으로는 예수님보다 먼저 왔고, 많은 이들이 그를 메시아라고 믿고 따르고 있었기에 뒤에 오시는 분을 욕할 수도 무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요한은 스스로 자신이 예수님의 종노릇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 분의 일을 하는데는 누가 먼저냐, 높으냐, 인기가 많으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떤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가 요한이나 예언자들의 관심사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길을 미리 닦는 이라고 외칩니다.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해 요한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회개일까?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원한으로부터의 회개이며,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무관심으로부터의 회개이며, '너 같은 것이 어디 감히 나와 맞먹으려고!  나는 너와는 다르다'고 하는 오만으로부터의 회개이며, '돈이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재물 욕과 권세욕에서의 회개이고, 하느님의 법과 양심을 우습게 여기는 무신앙에서의 회개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가난해지고, 치사해지고, 불안하다는 것을.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나눌수록 풍요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회개함으로써 이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진정으로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맞이하기에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이웃에게 발견할 때 우리는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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