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성당 게시판

한강 위에서(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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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만 [HUMAN3217] 쪽지 캡슐

2001-06-25 ㅣ No.859

 

매일같이 넘나드는 한강 위에서

 

 

매일 넘나드는 한강.  처자식 뒤로하고 아침에 한강을 나고

 

가정을 앞에 하고 또 저녁에 한강을 찾아듭니다.

 

철교 위를 달리는  전철 안에서 오늘도 한강을 바라봅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빠르게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편린(片鱗)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오늘도 허공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저 한강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한 처음 당신이 만드신 물의 모임이 아닙니까?

 

얼을 넣어 주시고(창세 1,2)  세상 안배 축수(世上 按配 祝手)하여 주신

 

그 물방울, 물줄기가 아닙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넘실대며 흐르는 강물,

 

대열을 이루어 도란도란 낮게 낮게,  그러나 줄기차게 오늘도 흐릅니다.

 

우리를 보란 듯 그들은 항상 정겹습니다.  때로는 감동적인 에피소드에  

 

출렁거리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 ’물의 이야기’는

 

과거 현재 미래에 구애됨 없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나도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 옛날 옛적에 모세가 살았대.  지팡이를 들어 바다 위로

 

팔을 뻗쳤대.(출애14,21)  그러자 밤새도록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닷물은 뒤로 밀어 붙여지고,  물의 절벽(絶壁)이 세워지고,

 

바닷물이 갈라지고 바닥이 말랐대.  백성들이 그 길을 극적으로 건너

 

죽음을 벗어났대…"

 

 

"모세의 백성은 사흘 동안 물을 먹지 못하고 그들 앞에

 

샘물이 나타났대. 그런데 지독히 쓴 물이었대!  모세가 그 속에 나무

 

한 그루 넣자 단 물로 변했대.그 샘 이름이’마라의 샘’이래…"(출애15,25)

 

 

" 엘리사도 엘리야처럼 겉옷으로 강물을 내리 쳤대.

 

강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났대 …" (I열왕2,8 ; 2,14)

 

 

"여호수아도 그랬대.  계약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을 건널 때

 

흐르던 강물이 둑을 이루고, 바닥은 마른 땅이 되어 그 사잇길로

 

백성들이 건너 갔다는 거야…" (여호 3,13~ )

 

 

"그보다는 더 옛날 이야긴데,  빈들(광야)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이

 

물 떨어진 물부대를 부여안고 울부르짖는 절규를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대.

 

하갈의 눈을 열어 주어 샘물을 보여 주셨대 …" (창세 21, 17)

 

 

" 나도 한 마디 하자꾸나. 야곱이 있었대.야곱이 밤새도록 동틀 때까지

 

하느님과 씨름을 하였대. 그 곳이 아마 얍뽁 강의 강나루였대…"

 

 (창세 32,23 ; 35,9) 그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들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오직 겸손과 순명으로 물 속에 잠기시고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아 씻김을 받으셨대…" (마태3,13 ~ )

 

 

" 옛날 옛적 첫 번 째 재앙은 강물이 피로 변한 것이었대.(출애7,14)

 

 

그런데 성모님의 간청으로,  첫 번 째의 기적으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대. (요한 2,1)  

 

아마, 가나안의 혼인 잔치 때였다나 봐…"  

 

 

" 예제키엘 들어 봤어? 그 예언자는 민족의  

 

암울했던 운명 앞에서도 꿈과 희망을 살려낸 대예언자래.

 

성전 동편에서 시작되는 샘물이 거대한 ’생명수의 강’이 되어 흐르는

 

희망을 보았대…" (예제 47,1 ~ 12)

 

 

이야기가 이 쯤에 이르면

 

그들은 또 한 번 감격에 출렁거립니다. 그 ’생명수의 강’은

 

묵시록에 이어지고,  그들은 진실로 ’생명수의 강’이 되어

 

사람과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리자고(묵시22,1 ~ ; 2,17)

 

결의를 다지고  소리소리 파도치며 출렁거립니다.

 

 

 달리는 전철 위에서 그들과 또 멀어집니다.

 

 

정다운 모습만 보일 뿐 흥미진진한

 

그들의 이야기는 또 다음으로 기회를 엿봐야 합니다.

 

 시선은 이윽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미칩니다.

 

 

다리는 무엇이고 레일은 또 무엇입니까? 옛날엔 짚신 신고 괴나리 봇짐에

 

무수한 사람들이 나룻배에 몸을 싣고 넘나들었을 한강이 아닙니까?

 

 

" 산을 깎고 골을 메우고 사막까지 길을 내어,  당신이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신(이사 40, 30) 그 길, 곧 고속도로가 아닙니까?

 

 

저희는 해 냈습니다.  아무튼 겉으론 이상 없이 해 냈습니다.

 

인간의 가슴가슴 속속까지 당신께서 왕림(枉臨)하실 수 있도록

 

곧게 뚫고 채워서,  넓히고 닦아야 할 그 길을

 

 저희는 만들어냈다 이겁니다.

 

 

저희는 거대한 다리를 놓고,  고속도로와 고속철에 항공로까지,

 

더 나아가 위성 방송의 넷트웍에, 초광속의 인터넷 망까지

 

구축해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지름길로 당신은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초광속으로 오시는지요?

 

오셔서 저희들을 지배하시는지요?

 

 세월이 가면 갈수록,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당신은 자꾸 더디 오시나요?

 

 

 ’우공 이산 (愚公移山)의 정신으로

 

한 삽 한 삽 흙을 파내고, 돌부리와 바위를 캐내는

 

피땀의 작업도 없이 저희는 너무 쉽게 고속도로를 내었나요?

 

  저희는 포크레인으로 떠내고  불도저로 사정 없이 밀어 붙여

 

훤한 길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가 만든 이 길로 당신은

 

진정 오시기 어려운가요?

 

도달거리 도달시간이 단축되면 될수록 당신은 자꾸

 

더디 오시는 듯 합니다.

 

 

지상망과 해상망, 항공로와 전파망,

 

초광속의 인터넷 통신망까지 당신의 기대치를 넘어 만들어낸

 

각가지 고속망을 타고

 

당신은 왜 저희들에게 못 오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길로 오시렵니까?  오십보 백보마다 십자가는 저렇게 많은데

 

곳곳에서 빛나는 십자가 불빛을 보고 오시렵니까?

 

 

주님! 그러나 이제는

 

십자가 불빛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각종 네온 사인과 대형

 

 전광판의 불빛에 알아 볼 수 없게 묻혀 버렸답니다.

 

이제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나비가 불을 찾아 몸을 태우듯 사람들은

 

휘황찬란(輝煌燦爛)한 불빛을 찾아 드나듭니다.

 

 

 

주님!  당신은 어디에서 울고 계십니까?  신새벽 삼각산에

 

계십니까?  오산리 기도원에 계십니까?  아니면 깊은 밤 촛불을 찾아

 

계룡산으로 가십니까?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다는 주님!

 

당신 정말 왜 이러십니까?

 

 

 

기껏해야 산타할아버지처럼 굴뚝이나 타고 오시렵니까?

 

꽁꽁 닫힌 대문으로도 못 오시고  담장 넘어 굴뚝타고,

 

초고속과는 아주 거리가 먼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느리고 느린 길을 택하여

 

 숨어 들어 오시렵니까?  주님, 당신을 반겨 주는 곳이

 

아예 없던가요?

 

 

’붉은 악마’들이 목 터져라 응원하는 그런 곳에서 당신은

 

떠밀려나셨나요?   방송의 전파망에서도 용량 초과로

 

당신이 들어설 곳은 없던가요?

 

 

홍록기와 남희석, 이휘재와 이경규, 서세원과 이소라가

 

온통 주름잡고 있던가요?  사람들이 박세리와 박찬호를

 

 하루라도 못 보면 안달을 하던가요?

 

 

 

’슬픈 사라’를 부르며 배꼽과 어깨, 하얀 살 봉긋한 가슴 드러내며

 

관능적이고 현란한 춤을 추는 어린 닭들에게  

 

정신을 모두 빼앗기고 있던가요?

 

 

 

당신을 반기는 곳은 정녕 없습니까?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서 대접을

 

받습니까?  저도 당신을 선뜻 반겨드리지 못합니다. 시시때때로…

 

 

 

제 마음에 오셔도 정말 부끄럽게 온갖 잡동사니가 나딩굴고 있습니다.

 

당신께 방석 하나 내어 드릴 공간조차 없답니다.

 

온통 제것으로 꽉 차 있거든요…

 

 그래서 당신은 제 마음 울타리 밖에서 그렇게 서성이고 계시는군요.

 

 

 

당신은 어디를 가시든지 일단은 멸시부터 받으시겠네요…

 

찰나적이고 향락적이며, 소모적인 것들이 당신을 몰아 내겠군요…

 

노크를 해도 문이 꽁꽁 잠겨져 있던가요?

 

 눈물이 나십니까?

 

 슬프시죠?

 

 

그때처럼 당신을 동정(同情)하며 눈시울 적시던 여인들도

 

 이제는 없던가요?  사람들 틈을 헤치며 당신 앞에 나타나

 

눈물 피땀 닦으시라 손수건을 말없이 건네 주던 베로니카같은

 

그런 여인도 (루가23,27) 이제는 찾아 보기 어렵던가요?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다는데, 당신은 정말

 

머리 둘 곳도 없군요…(마태 8,20)  

 

그러면  당신은 밤 새도록 어디를 방황하십니까?

 

골방 안에서 드리는 진실된 기도가 얼마나 가상(嘉尙) 합니까?

 

 

 

그러나 이제는 당신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지붕 위에서 외쳐라 하신 말씀…(마태10,27 ; 루가 12,3)을 생각하면…

 

일찍이 박두진 시인이 서울 어디선가 보았다는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은 더욱 미어집니다.

 

 

 

 

# 서울에 오신 예수 #

 

 

 

언제 여기 오셨을까?  길바닥 여기저기 붉은 피 번져 있네

 

골목마다 피에 젖은 가시관(冠)이 널려 있네

 

 

세종로, 난지도, 법원(法院)마당, 대학촌(大學村), 교도소,

 

의사당(議事堂), 교회 층계(敎會 層階), 달동네.

 

( 그리고 압구정 앞거리, 잠실 뒷거리에도…)

 

 

그 눈물  그 혼자 말씀  아파하신 가슴

 

고동(鼓動)  천둥으로 치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마태23,37 -

 

 

북악(北岳) 쯤,  남산 쯤, 우리들의 서울,

 

뿌리시던 피눈물로 안개 그므네.

 

 

- 박 두 진 (’16 ~ ’98) -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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