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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9. 신관의 변화와 삶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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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0-08-27 ㅣ No.34

평화교리 9(2000/08/27)

 

나 살기도 바쁜데, 너까지야

 

 

 

9. 신관의 변화와 삶의 변화

 

  "조금이라도 더 벌고 하나라도 아끼고 아껴 그나마 나하고 우리 식구 하나 간신히 먹고살기 빠듯한데, 남 도울 정도가 되야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 때가서는 주지 말라고 해도 줄 꺼에요." "차라리 가난한 날 도와주세요." "도와주면 뭐해요,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요. 게다가 고마운지도 모르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나서 주님께서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 9)하고 대답하였다. 성서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가나안 정착이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즉 아벨의 문화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고아나 과부, 나그네도 함께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가나안에 정착하여 자기 땅과 자기 곡식을 수확하여 자기 창고를 가진 카인 세대에 와서는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의 몫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동족이 굶어 죽어가는 처지가 생겨났지만, 이미 카인의 세대에게는 이웃이 더 이상 부양가족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카인이 하느님께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이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저 못나서 굶어죽는 이를 내가 왜 책임져야 하느냐하는 사고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기가 일한 만큼 축복해주신다는 공의로운 하느님관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떠한 신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신관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관과 신앙생활을 각자 확인해 보기로 하자.

 

  첫째, 해방자 하느님(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소수 유목민족인 이스라엘은 강한 민족의 위협을 당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위협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주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자신들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 항상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을 깊이 느꼈다.

 

  둘째,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이야말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분이며,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이야말로 자신들을 세상에 낳으신 분이시고,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가나안족들은 자신들의 신이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신'이라고 주장하며 "너희의 신은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가나안족이 내세우는 정의의 기준은 자기네 사회의 문화·풍습과 맞느냐 안 맞느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와 광야에서의 불순종을 기억하며, 참으로 '하느님의 정의는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에게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자비'라고 체험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리의 하느님도 정의롭고 공의로우시지만, '굶주리고 가련하며 약한 이들을 굽어보시는 하느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한국인과 서양인이 느끼는 하느님관은 서로 다르다. 또한 자본주의와 노동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접하는 하느님관이 다르다. 그래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알아온 각 지역과 인종들이 겪어온 부분적인 하느님 체험을 한 데 모을 때 진정 하느님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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