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성당 게시판

[그냥]들장미 소녀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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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람 [aramberries] 쪽지 캡슐

2000-05-30 ㅣ No.1156

꽃향기가 난다.....

 

한 낮, 홍대 앞 카페에 앉아 있다

사람을 기다린다 12시까지 온다더니......문자메시지가 왔다

’죄송해요 길이 막혀서요...1시까지 가죠.....’

피식...."재미없는 변명이지만.....용서해 주지"

기타연주가 깊게 깔리는 이곳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싫지가 않다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커피를 주문한다

괜시리 향이 짙은 커피는

어디선가 날아오는 이 꽃향을 지워버릴 것 같아

가장 묽다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를 주문한다

 

하이얀 테이블 시트가 깔려 있고..차양이 멋지게 펼쳐진 이 곳...

밤에만 들락거렸던 이 카페가 낮에도 문을 연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신기하지?

낮에 이 카페에 앉아 있는 내가 낯설고 낯설어하는

내가 왜 이렇게 신기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하얀 바깥 풍경도 낯설다....

문득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결이 뺨을 스친다

 

행복해 ...행복해...행복해...

 

고갤 들어 창밖 멀리를 본다

음...이 카페 앞에는 예쁜 벽돌집이 있었군

3년 넘게 이 곳을 들락거렸으면서도 오늘 처음 벽돌집을 본다

벽돌집 담벼락으로 하양, 빨강의 들장미들이 쏟아질 것 같다

들장미였구나.....

저 향이었구나....

 

그 사람....

1년 전만 해도 이름도 얼굴도 ...존재를 몰랐던 이....

그러나 오늘, 혼자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매일같이 그사람을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오지않을 것 같아 더더욱 기다리는....

오지않기 때문에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목숨을 다할때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여서일까?

그 사람의 모습이 보고 싶을 때 보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더욱더 간절해지고 힘들어진다....

 

이 기타 소리 같은,...현처럼 날카로우면서도 타악기처럼 울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보고 싶다

 

들장미 향이 약해진다

아마 취하는 거겠지

 

들장미가 없어져 향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향에 취해 맡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그사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거겠지...

내게 묻혀지는 거겠지...

 

들장미 소녀 캔디가 생각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꽃향기가 난다

 

행복해...행복해....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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