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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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8-07-20 ㅣ No.562

 

고대 그리스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높은 산의 오솔길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주 괴상한 취미를 갖고 있었지요. 그에게는 철제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지나가는 길손이 있으면 붙잡아다가 거기에다 눕혀 놓았습니다. 다행히도 상대방이 침대에 꼭 맞는 체격이면 무척 즐거워하며 선물을 주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고 대부분은 침대보다 크거나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거인은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인정 사정없이 그의 사지을 잡아늘여 자신의 침대에 강제로 끼워 맞추었습니다. 반면 상대가 키가 커서 침대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다리를 잘라서 침대의 길이에 맞추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실상 우리 자신이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요. 내 기준으로 남을 재단해서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서로간의 불화가 조성되지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너무 쉽게 잘라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쯤은, 내가 받아들이기 꺼려하고 내쳐버리고싶은 생각과 견해에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시간을 두고 살펴보면 어떨까요? 성모님의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지만, 그냥 내쳐버리지 않고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셨습니다(루카 1,29).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빨리 판단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숙고의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프로크루테스처럼 내 기준에 맞추어서 남의 팔다리를 잔인하게 자르거나 억지로 늘여놓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하느님 외에는 누구도 진리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결국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지 진리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상일이 그렇게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갈리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바로 내 자신 안에서 흑과 백이, 진리와 오류가 공존합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비로소 그런 깨달음이 시작될 때 나와 생각이 다른 이웃을 비난과 단죄로서가 아니라 이해와 포용의 자세로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안에 프로크루테스라는 괴물이 들어앉아 있지 않는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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