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무서운 여인 (바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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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annasee] 쪽지 캡슐

2001-09-01 ㅣ No.2771

다윗의 부인하면 바세바가 떠오르지만 사실 그녀는 다윗의 8명의 부인중 하나였다 합니다. 신부님께서 성서의 여인들에 포함하며 잠시 고민했던 여인이라시며 강론을 시작하셨느데요...

 

2사무 11장은 이미 기혼한 몸이었던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 그녀가 어떻게 다윗의 아내가 되는지를 보여주고있다. 다윗이 저녁에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고있던 아름다운 여인 바세바를 보게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곧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게하여 왕궁으로 데려와 하루밤을 같이보내며 진행되는데... 그당시 저녁식사후 산책하는 것이 습관이었다고한다. 우리같은 평민들의 산책코스라야 마을 어귀를 돌아 뒷동산 올라가는 것 쯤이겠지만 왕의 신분인 다윗은 왕궁에서, 그것도  옥상을 거닐었으니 더 높은데서 많은 것을 볼수도 있었으리라.

 

그래도 어떻게 여념집 아낙의 목욕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상징적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는데, 즉 왕은 그의 교만에 의한 잘못된 행동일 지라도 그가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마치 다니엘서 4,27-28 느브겟네살의 교만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세상사람들이 다 보이는 순간 자칫 하느님이 안보이기 쉽다고. 그렇게 다윗은 바세바를 보았고 그녀가 이미 남편이 있는 몸인줄 알면서도 그녀를 취한다.

 

그런데 왜 하필 바세바는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있는곳에서 목욕을 했을까?. 방에서 커텐을 치고 할 수도 있는데. 성서에는 다윗이 다 움직인 것처럼 나와 있지만 뒷부분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란 것을 알 수있다고. 왜 하필 다윗이 산책하는 그  시간에 게다가 딱 가임 기간을 맞춰서! 그렇다면 바세바는 교묘히 다윗을 유혹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그도 그럴수 있는 것이

1열왕 1장 2장은 바세바가 어떻게해서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앉게 하는지가 나와있는데

그녀가 예언자 나다니엘과 결정타를 날리자 다윗이 후계자를 솔로몬으로 지목하며 정리정돈을 해버리는 것을 알 수있다. 출발은 바세바였던 것.  

 

아도니아가 왕이 되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정권을 다 가진 상태도 아니었고 더우기 왕으로 선포한 것도 아닌데 바세바는 다윗에게 우르르 달려가서는 호소를 하고있다; 아도니아가 왕이 되었고 자기와 솔로몬은 이제 역적으로 몰릴 것이라고. 다윗은 당황했고 (속으로 아도니아가 괘씸했을 것) 솔로몬을 전격적으로 자기 뒤를 잇게하겠노라 선언하기에 이른다.

 

얼핏 수동적 여인인 것 같지만 대세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움직여 가도록  권력의 방향을 조정해 가는 무서운 여인이다. 처음부터 평범한 남편 우리야에게는 만족하지 못했을 지도.

게다가 가임기간으로 정확히 맞춰논 것과  임신한 사실을 알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눈에 띄기위해 목욕을 했을 수도! 어찌보면 다윗이 바세바에게 잡힌 것일 수도있다는 데...

 

그러나 다윗은 그런면에서(도) 바세바에게 뒤지지않느다.  바세바의 남편 착한 우리야를 제거하는 음모가 얼마나 간교한가. 위기의 순간순간을 너무나 매끄럽게 처리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는 다윗이란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망연자실해진다.

 

아울러 우리의 눈길이 잠시 우리야에게 가지 않을 수없다. 융통성이 없다할 정도로 성실하고 원칙을 지켰던 인물이었다. 다윗이 집에가서 발을 씻으라며(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라는 완곡한 표현이라네요) 은혜를 베푸는 것 같지만 실은 완전범죄를 저지르려던 것이었는데 그는 다윗의 계획대로 집에가 주지 않는다. 다들 야영중인데 어찌 자기만 편히 집에가서 쉬겠냐며. 이렇게 선하고 성실한 인물이. 그러나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윗과 바세바에게 희생당하는 인물이 되고 만다. 바세바와 그와의 관계는 어땠을까?  이렇게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부부의 연으로 만나서 살고 있었을까?

 

다윗과 바세바는 그들의 죄로 잉태한 아들을 잃음으로 죄의 댓가를 치룬다. 여기서도 다윗을 식음을 전폐하고 베옷을 걸치고 중병에 걸린 아들을 살려달라 하느님께 애원하다가 아들이 죽자 마치 신이난다는 듯이 완전히 딴사람이되서 목욕을 하고 예배를 드린후 바세바에게 가서 솔로몬을 잉태하게된다. 이제 됐으니 행복을 찾아가야지 하는듯 툴툴 털고 일어나는 다윗을 보며 얼핏 이해가 안가기도 하지만

 

죄를 보속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기를 파괴하며 행복을 무침히 피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열심히 살며 다시 행복해 지는 것이라는 중요한 말씀은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도 우리가 과거의 죄를 질질 끌고 다니며 구속받는 것이 아니고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하셨습니다.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이 있는건 아닌지.그러나 결국 자손들이 그  죄 값을 치루게 되는 것을 우리는 또한 봅니다.

 

어찌보면 간음한 여인인 바세바가 예수님의 족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마태오 1,6)" 에 올랐듯이 하느님 구원의 마음은  죄지은 자들도 다 아우르는 넓은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하물며 이런 이들도  구원 사업에 초대되었는데 어찌 우리가 남을/자신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구요.

 

어머나 어떻게 그럴 수가! 저이는 안되겠어

저런 저런 나는 안돼/가 아니라

저이도/나도  될 수 있어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겠구나 잠시 묵상해 봅니다.

 

다음주는 이세벨 편입니다.  1열왕 21장; 16.29-34; 18,20-40; 19, 1-3 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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