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불같고, 물같고?

인쇄

배지희 [lusi71] 쪽지 캡슐

2003-04-04 ㅣ No.3928

한편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서 더러는 "유다인들이 죽이려고 찾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저렇게 대중 앞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있는데도 말 한 마디 못 하는 것을 보면 혹시 우리 지도자들이 그를 정말 그리스도로 아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모를 터인데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나를 알고 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 분은 나를 보내셨다."

 

 

...

우리는 흙에서 왔습니다.

사순 첫날, 되집어 각인하듯..

우리는 흙에서 창조되었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이들입니다.

 

흙은 정해진 모형을 만들어 냅니다.

모습이 조금씩 변형될 지언정

우리는 창조주, 우리를 지어내신 분에 의해서 그 모습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온 모습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그 한계를 스스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옛 성현과 선지자들은 덧없이 먼지로 사라질 인간의 모든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했습니다.

 

무에서 왔으니.,,,,무로 돌아가리라....

 

......

 

오늘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이 말합니다...

"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모를 터인데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갈릴레아)에서 왔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 고향이라든가, 출신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신에 대한 근본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메시아가 흙에서 오리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 옆에서 뛰어놀던 지혜와 말씀이 흙으로 오라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온 만큼 그대로 존재하다 사라지는 먼지같은 존재...

 

인간은 메시아는, 구세주는

불같고.. 물같이.. 천둥같고.. 번개같이.. 올 줄로 알았습니다.

 

 

인간은 신을 불같은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뜨거워서 무섭고, 순간에 어두움을 물리치고,

작은 불씨만으로도 삽시간에 활활 모든 것을 태우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

 

삽시간에 타오르는 불을 경험해 본 인간은 그것에서 신을 느끼고...

구원자는...그런 존재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같은 분...

작은 것이 같이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자연 곳곳에서 그들 모두에게 생명을 주고,

그 속에서 보이지 않게 모여모여 정말 큰 바다가 되는 물..

 

망망대해 .....너무나 커서 압도되는 바다를 본 이들이라면 신은 이런 존재일 것이라고..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며..

구원자역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자연을 너무나 두려워 했고,

인간이 이기지 못하는 위대한 자연 앞에서

신을 그렇게 자연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그 자연중에 가장 별볼일 없는 흙이야말로....인간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왔으니, 돌아가는 하잘 것없는 먼지같은 존재...

 

 

그들은 예수께 말합니다.

’당신이 어디(흙)에서 왔는지 알고있단 말이요...당신은 그리스도(신)가 아니요! ’

 

..

오늘 예수는 그런 인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나를 알고 있다. 내가 어디(흙)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신)은 정녕 따로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 분은 나를 보내셨다."

 

 

아마....예수님도,

흙이 아닌, 불같고 물같고, 천둥같이 오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애타게 당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이며, 뜨겁게 압도적인 존재로 내려오는 구세주.....

어느 누구도 그의 말 한마디, 굴복하고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람들 앞에 서신 예수님은,,,,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흙으로 오신 것입니다.

 

흙.....

먼지라고....보잘 것없는 인간.. 덧없음의 표본이 되고 만 흙은...

..생명을 존재케 하는 근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도 있고, 빛도 있고, 공기도, 물도 있었지만......

흙이 존재하자, ...생명이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구세주 예수를 보내신 그 분은 세상을 창조하셨던 분이십니다.

그 분은 정말 생명의 어머니를 알고 계셨기에...

가장 큰 것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불은 빛을 밝히지만 모든 것을 태울 줄만 압니다......모든 것이 소멸됩니다.

물은 생명수이지만 모든 것을 씻을 줄만 압니다...... 정화입니다.

 

.......흙은...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합니다.

 

흙이 있는 곳...어디든지 생명은 자라기 때문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도 생명은 존재합니다.

흙이 있는 한....생명은 어떻게서든 살아갑니다.

길바닥.....깨진 아스팔트 사이에서...오늘도 그 틈바구니 흙을 발판삼아 들꽃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

 

왔던 곳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흙,,,

구세주는 그런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신은 그런 모습의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

 

"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오너라..."

 

예수는 흙으로 돌아가시기 위한 절차로 죽음을 받아 들이셨고,,,

그 흙으로 돌아가는 예식을 끝내고, 모든 이들의 영원한 생명의 밑거름이 되셨습니다.

 

..

창조주는 지혜자입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 옆에서 뛰어놀던 지혜는....

모든 것을 가장 완벽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지금 많은 이들이 지금도 십자가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구원....

 

우리는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이 보잘 것없는 삶에 누군가 보란 듯이 나타나 구해주십사 기도하고 있고..

그리고 그 구원자는 역시나....

불같이 오십사..기도하고, 폭풍처럼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빛같이 화사하게 내려오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는 예수님은...

오늘의 복음처럼...답답하실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흙으로 사시며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밑거름이 되는 삶...

 

 

그러나 우리는....

 

흙으로 오신 예수를 무시합니다.

아니, 우리 자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른 이들의 밑거름으로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신이 가장 원하시는 모습...

당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모습....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가거라....

 

흙에서 온 것은 도로 흙이 되어...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지니...

너는 영원히 사는 것이다...

..

 

나는 불같고,,, 나는 물같다...

하지만...나는 흙이다..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나는 흙이다...

 

 

이 사순...

첫날에 들은 것을 모두 잊고,

다시 ’나’ 라는 존재가 활활 살고 싶은 때...

첫마음으로 돌아 가 다시..겸허히 삶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사순을 지내야 겠습니다.

 

 

 



3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