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사랑하는 님이시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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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9-02-16 ㅣ No.4297

---------가톨릭인터넷굿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어제는 주일미사를 본당에서 드리지 않고 내 영세본당이며 20여년을 정들여 다녔던 답십리본당의 교중미사에 참석했다.

이번 사제 인사발령으로 그간 4년 반 동안 답십리본당에 계셨던 원충연 라이문도 신부님께서 교포사목을 명 받아 답십리를 떠나시게 되어 11시 교중미사 때 송별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약 3년전 교구의 본당구역조정에 의하여 본의 아니게 답십리본당을 떠나오는 바람에 원 신부님과의 인연은 불과 1년 남짓했지만 언제나 소매끝자락이 허름한 수단차림에, 덥수룩한 머리카락, 식복사도 없이 혼자 식사문제를 해결하시면서도 항상 넉넉한 미소를 짓는 원 신부님이 나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언젠가 밤에 동네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고 성당 맞은편 골목시장 안을 걸어오는데 꺼먼 비닐봉지에 찬거리를 사서 손에 들고 오시는 원 신부님과 맞닥뜨렸을 때 오히려 술 취한 내 모습을 신부님께 보여드리는 게 부끄럽고 죄스러워 급히 친구들 틈새로 내 몸을 숨겼던 기억이 겹쳐져 더욱더 잊혀지지 않는 신부님이시다.

몇해 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지만 만약 그 모습을 신부님 어머님이나 혈육들이 보셨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며칠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바람에 ‘사제를 위한 기도’를 내 입으로 달달 외우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원충연 라이문도 신부님이시다.

“좀 덥더라도 참는 거에요. 전기료가 너무 나가거든요. 에너지도 절약해야 되는 거에요? 그렇지요?” 동의를 구하시는 척 하셨지만 사실은 일방적이셨다. 어지간한 더위에는 미사시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았고, 어지간한 추위에는 온풍기도 틀지 않았다.

가끔 짠돌이 신부님이 원망스럽다가도 미사가 끝나 밖으로 나오면, 대문 앞에 서서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시는 신부님의 헤진 옷자락을 보는 순간 원망은커녕 존경심이 더하여지곤 했다.

오늘 사목회장의 송별사에서 들어보니 원신부님께서 답십리본당에 부임하신 이후 그렇게 절약하고, 또한 신자들이 2차 건축헌금으로 모은 돈이 무려 15억이라는 거금이 되었다니 정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신부님은 답사에서 “답십리본당에 오기 전에 컨테이너 건물에 살다 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기는 호텔처럼 편했다. 안이함이 몸에 밸 것 같아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자세로 교포사목을 자원했다. 그동안 부족함이 많은 저를 잘 따라 준 여러분이 고맙고 여러분과 함께한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시면서

“하느님은 사랑으로 오시는 분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곳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곳이다. 신자들이 서로 사랑을 해야 하는데 때로는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미워하는 것도 하느님께 다가가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용서를 알며 어찌 자비를 알겠느냐?”하시는 말씀이 내 마음에 남는다.

미워함조차도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풀이하실 수 있는 분, 어쩌면 그런 분이시기에 사제가 되셨거나 사제이시기에 그렇게 풀이를 하실 수 있는 건지, 내 부족한 사랑으로는 가늠이 잘 안 되지만 깊이 새겨두고 싶은 말씀이었다.

식복사 뿐만 아니라 보좌신부도 없이 혼자서 새벽미사부터 시작해서, 9시 어린이미사, 11시 교중미사, 7시 저녁미사, 밤10시 야간미사까지 주일미사 5대를 혼자 맡아 애쓰시며 답십리에 계시는 4년반 동안 휴가 한번 안 가실 정도로 검소하고 부지런한 원충연 신부님이시니 아마도 “대북 뽕나무 밭에 가져다 놓아도 산다”는 옛말처럼 어디를 가신들 원신부님만은 그 몫을 다하고 남으시리라 여겨진다.

“교회는 하느님 사랑 안에 일치를 이루는 곳이지요? 새로 부임하시는 신부님 참으로 훌륭하신 신부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새 사목자를 중심으로 일치를 이루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저가 떠나는 순간 저에 대한 인상은 싹 지워주시고 새로 오시는 신부님과 절대로 비교하지 말아야 해요. 식복사가 없는 것도 내 식이고, 김장 담굴 때 뒤에 서서 양념 그래 하면 안 된다, 설거지 할 때 들어가서 좀팽이 영감처럼 뒤에서 잔소리 하는 것도 그게 다 내 식이요, 나는 안 그러고는 안 되는 성격이어서 그러는 거요. 신부가 서로 자기 식이 있는 건데 그걸 비교해서는 안 지요. 아셨지요?” 하시면서

“새로 부임하시는 신부님을 맞이하는 선물로 오늘부터 9일기도를 본당차원해서 해 주시기를 마지막 부탁으로 드린다”하시면서 송별사를 한 총회장에게 확답을 받아내시면서

“바로 그 기간이 새로운 본당에 적응하는데 신부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는 말씀 또한 공감이 갔다.


사랑하는 원충연 라이문도 신부님, 그동안 저희도 행복했습니다. 떠나는 순간 잊으라고 하시지만 아마도 오래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신부님 안녕히 가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영육 간에 항상 건강하시어 부디부디 성인사제 되십시오.

끝으로 저도 부탁이 있는데요. 식복사는 꼭 두도록 하세요. 특히 외국으로 가신다니 그 나라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그것이에요. 

사랑합니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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