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성당 게시판

베드로 신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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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bezart] 쪽지 캡슐

2001-02-11 ㅣ No.708

어이구, 부임한지 한 달이 지나서야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죄송하구요, 강론 올릴게요.

필요하신 분 읽어보세요.

 

 

연중 제 6 주일 (01/2/11)

(예레 17,5-8; 1고린 15,12. 16-20; 루가 6,17. 20-26)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진복팔단의 말씀인데 산상설교 중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먼저 말씀 자체에 대해 말하기 전에 오늘 봉독된 루가 복음과 똑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마태오 복음 5장 3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을 비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성서 공부를 좀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복음 저자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기술하게 되었고, 따라서 서로 다르게 기술된 복음 내용을 비교해 보면 보다 풍부한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루가에 의하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시기가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주신 다음으로 나와있는데, 이에 비해 마태오는 예수님의 전도 여행 초기에 이 말씀을 하신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따라서 마태오는 5장에서부터 7장에 걸친 긴 설교 말씀의 시작으로 이 진복팔단을 위치시키고 있는데 반해, 루가는 예수님이 전도 여행 중 잠시 하신 설교 말씀 중의 일부로 취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루가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행복 선언과 함께 부유하고 세력 있는 이들의 불행 선언이 함께 있는 반면, 마태오에서는 행복 선언만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복음이 같은 관점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당신에게 몰려오는 수많은 병자들과 마귀들린 이들을 보시고서 측은하고 딱한 마음이 들어 이 말씀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두 복음을 전체적으로 비교해봅시다. 먼저 마태오는 예수님이 전도 여행을 시작하시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긴 설교를 하시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제일 처음 하느님 나라에 관한 행복 선언을 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루가는 이미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바리사이와 논쟁을 하신 다음, 신앙적으로 왜곡되어있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개탄하시면서 가난한 이들에게는 축복을, 부유한 이들에게는 경고를 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밋밋해 보이기만 하는 복음 말씀을 이렇게 서로 비교해 봄으로써 결국 마태오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루가는 비참한 현실을 괴로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루가가 마태오보다 감성적인 서술을 하기 때문이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복음이 루가에서 인용되었으니 우린 루가의 시각으로 복음 말씀을 바라보겠습니다.

루가가 기술한 복음 말씀을 따라가면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마귀들린 이와 나병환자, 중풍환자들을 고쳐주시면서도, 간간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로부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예수님께 몰려들었고 바로 그때 예수님은 진복팔단을 말씀하십니다.

진복팔단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 안에 담겨진 예수님의 애타는 마음이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 인사들이었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당시에 그토록 불쌍한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그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행동이 자신들의 현재 위치에 위협이 된다고 그저 비난을 일삼기만 했습니다.

진복팔단의 바로 뒤 내용은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말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는지 잘 알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오늘 복음 말씀은 바리사이를 향한 예수님의 넋두리일 뿐입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장 처음 선포하신 말씀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바로 이 말씀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는 불행해 보이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천국을 차지할 것이라는 역설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저 피식 웃고 마십니다. 그런 것은 성당에서나 하는 얘기고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밥먹고 살기 힘들고 내가 지금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그런 얘기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죠. 그래요. 현실은 항상 성당에서 하는 얘기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성당을 떠나고 신앙을 버리나 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가난한 사람과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과 박해를 당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으니 이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예수님이 뭔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이 내 고민과 내 역경을 대신 져주시길 기대하고 계십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루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가슴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동전 넣으면 물건 나오는 자판기처럼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내 모든 불행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 고통과 내 시련을 같이 짊어지시는 분입니다. 나 혼자 고난의 길을 가는 걸 바라보시지만 않고 내 길을 함께 가주시는 분입니다.

외롭지 않게, 이겨낼 수 있게 내 옆에서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픔들이 주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으로, 결국 그 아픔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 마지막으로 복음 말씀을 다시 들으면서, 과연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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